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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금강산댐엔 침묵하고 경의선은 과장했다

임동원, 금강산댐엔 침묵하고 경의선은 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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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주적(主敵)’이란 표현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오갔다. 주적 논쟁은 4월6일 임동원(林東源·68)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적 논쟁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논쟁은 북한에서 제기한 것이었다. 반면 임특보가 돌아온 후 제기된 논쟁은 한국 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때문에 이번 논쟁은 과거와 달리 매우 혼란스럽게 진행되었다.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등은 주적 표현을 없애자는 데 대해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남북화해시대를 맞아 주적 표현을 쓰지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등 남남(南南) 갈등의 양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국방부가 곧 발간할 2002년 국방백서에서 주적을 삭제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정리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논쟁은 언제라도 다시 불붙을 수 있는 것이므로 주적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국어사전에 없는 ‘主敵’

주적은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말일까. 국어사전에는 ‘주적(酒積)’과 ‘주적(籌摘)’은 나와 있어도, ‘주적(主敵)’이란 단어는 없다. 따라서 ‘주적’은 누군가가 한자어를 조합해 만든 신조어일 것으로 추정된다.



주적을 영어로 옮기면 ‘main enemy’가 될 것이다. 미국은 국방백서를 출간하지 않는다. 대신 ‘연감’ 또는 ‘연차보고서’ 정도로 번역되는 ‘Almanac’을 출간한다. 그러나 Almanac에서는 enemy 혹은 main enemy라는 말을 찾을 수 없다. 대신 ‘threat’이 눈에 띄는데, threat은 ‘주적’이 아니라 ‘위협’ 또는 ‘위협 세력’으로 번역된다.

유럽과 러시아 군은 ‘황적(黃敵·yellow enemy)’과 ‘주적(朱敵·red enemy)’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황적은 ‘가상 적’을 의미하고, 붉을 ‘주(朱)’자 주적은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적을 의미한다. 유럽과 러시아 군에서도 main enemy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일본의 방위백서(防衛白書)에는 주적이니, 적이니, 위협이니 하는 단어들이 아예 발견되지 않는다. 대만과 중국도 적이나 주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있다. 주적은 오로지 한국에서만 쓰이는 한자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main enemy는 영어사전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의미에서 가장 근접한 단어로 ‘archenemy’가 있다. 영한사전은 archenemy를 ‘대적(大敵)’ 또는 ‘사탄’으로 번역하고 있고, 국어사전은 ‘대적(大敵)’을 ‘썩 강한 적’이나 ‘강적(强敵)’으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주적은 영어의 archenemy를 옮긴 것이 아닐까. 우리가 주적을 ‘우리 앞에 있는 가장 큰 적’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이 추정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주적이란 단어를 한국 사회에 처음 알린 것은 동아일보다. 동아일보는 1992년 1월28일자에 ‘主敵 개념 주변 列强으로 전환’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처음으로 주적이라는 단어를 공론화했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김재홍(金在洪·52·현재 경기대학교 교수) 기자였다. 그가 국방부를 출입하던 1991년 12월6일 육군에서는 김진영(金振永) 대장이 제29대 육군 참모총장에 취임했다. 김기자는 김총장이 취임식 연설에서 “한반도에는 북한 외에도 위협 세력이 많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북한만을 우리의 위협세력으로 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데 주목했다.

그해 12월20일, 최세창(崔世昌)씨가 제29대 국방장관에 취임했다. 김기자는 최장관도 “우리 군은 21세기에는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언급한 데 주목했다. 김기자는 우리 군이 북한만을 위협세력으로 간주하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주변국의 위협에도 대처하려는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김기자는 또 국방부가 통일에 대비한 ‘중장기 신국방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해가 바뀐 1992년 1월28일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새해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국방부를 방문했다. 이날 최세창 장관은 노대통령에게 신국방정책에 대해 보고했는데, 김기자는 이 보고를 근거로 ‘지금까지 북한을 대상으로 했던 主敵 개념이 주변 열강들의 잠재적인 군사적 위협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하며, ‘주적’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 기사가 나가자 국방부가 발칵 뒤집혔다. 국방부는 “그러면 중국·일본 등이 우리의 적이라는 뜻이냐? 우리는 북한을 제외한 주변국을 적이나 위협세력으로 본 적이 없다”며 기사를 빼거나 정정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김기자와 맞선 사람은 육군본부 보도과장이던 박재욱(朴裁旭·육사 26기·예비역 육군 준장)대령이었다.

박대령은 기사 전체를 강판시킬 요량으로 ‘주적’이란 단어에 대해 이렇게 시비를 걸었다. “적이면 적이지 주적은 도대체 무슨 말이냐? 주적은 우리말에 없는 단어고 어법에도 맞지 않다. 그러한 군사용어도 없다. 적을 공격할 때는 주공(主攻)이 있고 조공(助攻)이 있다. 그러니 주적이 있으면 ‘조적(助敵)’이 있다는 말이냐? 아니면 ‘부적(副敵)’이 있거나 ‘종적(從敵)’이 있다는 말이냐? 북한을 주적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조적·부적·종적은 도대체 누구냐?”

박대령의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동아일보가 다음 판 제목에서 ‘주변열강’이라는 제목을 빼고, ‘北韓 대상 主敵 개념 재조정’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제목에서 주적이라는 단어를 끝까지 고수했다. ‘주적’은 이렇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며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

이후 주적은 확고부동한 저널리즘 용어로 자리잡았고 학자들은 군사용어인줄 알고 사용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 단어를 군사용어로 편입시키지 않았다. 국어사전 또한 이 단어에 대해 어떤 정의도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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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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