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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금강산댐엔 침묵하고 경의선은 과장했다

임동원, 금강산댐엔 침묵하고 경의선은 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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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고무적인 이야기를 했음에도 남측 대표단을 태운 비행기는 휴전선을 넘어 직선으로 서울-평양을 오가지 못했다. 이 비행기는 휴전선을 피해 서해로 나갔다가 ‘ㄷ’자 모양으로 서울-평양을 비행했다.

왜 김대통령 일행이 탄 비행기는 ㄷ자 항로를 택했을까. 이 의문의 답은 두 달 후 남측의 언론사 사장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의 입을 통해 풀렸다. 언론사 사장단은 8월12일 평양 모란관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오찬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사장단은 서울에 돌아온 후 기억을 되살려 김정일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내 힘의 원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모두 일심단결하는 일이고, 두번째가 군력(軍力)입니다. 외국과의 관계에서 힘도 군력에서 나오고, 내 힘도 군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친해도 군력을 가져가야 합니다.…(남북) 직항로 문제는 (북한) 정부 내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고 군부가 문제인데, 군대 문제는 내가 말해야 직항로가 열리게 돼 있습니다. 큰 대표단은 직항로로 곧바로 오십시오. 남북 모두가 휘발유를 사서 쓰는데 무엇 때문에 멀리 돌아서 다니면서 중국에 돈 써가며 굽실거리나? 직항로를 열면 비행기에서 특수카메라로 다 사진을 찍는다고 군부에서 반대를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미 인공위성이 우리 사진을 다 찍고 있는데 비행기 타고 찍는다는 게 문제될 게 있는가, 그렇게 얘기했습니다.”(동아일보 2000년 8월13자).

항공촬영 가능성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군부 때문에 남측 비행기는 ㄷ자로 비행했던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은 자신의 의사에 배치되는 의견을 내놓은 군부를 “내 힘은 군력에서 나온다”며 오히려 두둔하고 있다. 김정일의 이러한 태도는 김대중 정부와 상당히 대비된다. 군부에 대한 남북 지도자의 인식 차이가 작금의 주적 논쟁을 일으킨 먼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8월29일부터 9월1일 사이, 평양에서는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북한에서는 북남상급회담으로 표현)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남북은 공동보도문 작성에 합의했는데, 남측이 발표한 공동보도문 2항에는 ‘쌍방 군사당국자들이 회담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가지도록 협의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북측이 발표한 공동보도문 2항은 …조속한 시일 내에 가지도록 건의한다’로 적혀 있었다 (이 차이점은 뒤에서 다루기로 한다).



군사당국자회담은 경의선을 잇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경의선은 휴전선을 통과하기 때문에, 남북 군사당국간의 합의가 있어야 연결공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공동보도문 제4항에는 ‘경의선 … 등을 연결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9월중에 가지고 착공식 문제 등을 협의한다(북측 공동보도문에는 ‘건의한다’로 표기)’는 내용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협의한다’는 것은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9월14일 남측은 성대하게 행사를 열고 경의선 연결 공사에 착수했다.



조급증 對 어깃장


이때부터 김대중 정부는 ‘협의한다’ 때로는 그보다도 강도가 약한 말을 근거로, 거창한 남북 행사를 반복하는 ‘만성적인 조급증’에 시달리게 된다. 협상자의 국어 해독 실력을 의심케 할 정도로 서두르는 남측의 조급증이 지금의 주적 시비를 초래한 근인(近因)이 되었다. 이러한 남측의 조급증에 대해 북측이 어깃장으로 대응하면서, 남북관계는 꼬여갔다. 이러한 흐름을 차례차례 살펴보기로 하자.

제2차 장관급회담 합의에 따라 2000년 9월25일부터 26일 사이 남북은 제주도에서 사상 최초로 국방장관회담을 열었다 2차 장관급회당의 공동보도문에 남측은 ‘협의한다’ 북측은 ‘건의한다’로 적었 는데, 남북은 국방장관 회담을 여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회담에서도 공동보도문이 발표됐는데, 남북은 ‘경의선을 잇기 위해 비무장지대 안에 인원과 차량 기재들이 들어오는 것을 허가하며 10월초 실무급 회담에서 구체적인 사항을 추진한다’(제3항)와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2000년 11월 중순 북측에서 갖는다’는 데 ‘합의’하였다(제5항).

그러나 국방장관회담에서도 남측은 군사 직통전화를 설치하고 대규모로 병력을 이동할 때는 그 사실을 상호 통보하자며 매우 서둘렀다. 이러한 조급증에 대해 북한은 ‘어깃장’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국방장관회담이 끝난 며칠 후 한국에서는 주적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는 2000년 국방백서가 발간되었다. 이때부터 북측 언론은 “남조선의 국방백서가 동족인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일제히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9년 국방백서에서도 남측은 북한 집권층을 주적으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허락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켰는데 이제와서 갑자기 주적 시비를 들고 나온 것이다.

북측은 11월로 합의한 2차 국방장관회담을 무산시키고 대신 경의선을 잇기 위한 남북 군사실무회담에만 응했다. 그에 따라 그해 11월28일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인 김경덕(金暻德·육사30기) 준장을 대표로 한 남측과 인민군 판문점대표부의 류영철 대좌를 대표로 한 북측이 만나 제1차 남북군사실무회담에 들어갔다.

이 회담 벽두에 류영철 대좌는 “남북국방장관회담 이후 남측 회담 당사자들이 북을 자극하는 발언을 함부로 했으며, 특히 10월26일 한미 독수리훈련에 참가한 두 대의 (미군) 전투기가 북측 영공에 침입했다. 11월14일 서해에서는 남측 전투함정 네 척이 북측 영해에 침입해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고 주장해 분위기를 긴장시켰다. 이후 양측은 2차(12월5일), 3차(12월21일), 4차(2001년 1월31일), 5차(2001년 2월8일) 회담을 가졌으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孤掌難鳴

3차와 5차 회담에서 류대좌는 집중적으로 주적 표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3차 회담에서는 “남북이 대화와 협력을 추구하는 마당에 남측이 주적 개념을 유지하는 것은 대화를 버리고 다시 대결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주적 개념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남북간 대화와 협의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5차 회담에서는 “남측이 주적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제2차) 국방장관회담은 없다”는 요지의 ‘회담 종결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러한 소동을 겪으면서 5차 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경의선 등을 연결하는 데 필요한 41개항의 ‘비무장지대 관리구역 공동규칙안’이 만들어졌다. 이 합의서는 양측 국방장관이 교차서명해 서로 돌려받아야 효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자기네 국방장관이 서명한 합의서를 상대측에 보내기 직전인 2월11일, 북측은 ‘행정상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며 일방적으로 합의서 교환을 연기했다.

이날 이후 현재까지 군사회담은 올 스톱되었다. 그러나 이미 경의선 공사에 착수한 남측은 공사를 중단시킬 명분이 없어 ‘꾸역꾸역’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공사는 지난 4월 초쯤 끝날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3일 임동원 특보가 북한을 방문했다. 임특보를 상대한 이는 북한의 김용순 비서다. 임특보는 김비서와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하고 궁극적으로는 북한 군부를 설득해야 경의선 연결 합의를 성사시킬 수 있다. 여기서 ‘인질’로 잡힌 것이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이다.

때문에 김용순 비서와의 토론이 길어졌다. 임특보는 귀경을 하루 늦춘 4월6일 김용순 아태위원장과 합의한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공동보도문의 문구가 예사롭지 않다. 남측에서 발표한 공동보도문과 북측에서 발표한 공동보도문의 문안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분단 반세기 동안 남과 북의 어법과 표현법은 상당히 달라졌다. 예를 들어 남측은 서기(西紀)를 쓰는 데 반해 북측은 주체 연호를 쓴다. 우리는 ‘임동원’ ‘노동당’ ‘시찰단’이라고 쓰지만 북측은 ‘림동원’ ‘로동당’ ‘고찰단’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차이는 양해할 수 있다. 내용이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측은 김정일 위원장을 지나치게 ‘존대’한다. 이것도 내용과는 상관이 없는 부문이므로 양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이 합의했다는 내용이 다르다면 이는 지나칠 수 없다.

그런데 임투보가 갖고 온 공동보도문의 내용중에는 북측에서 공개한 공동보도문과 내용이 다른 것이 있었다.

임특보가 들고 온 공동보도문 제5항에는 ‘쌍방은 남북 군사 당국자 사이의 회담을 재개하기로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로동신문에 공개된 북측의 공동보도문 제5항은 ‘쌍방은 북남 군사당국자 사이의 회담을 재개할 데 대하여 군사 당국에 건의하기로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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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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