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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2등국민을 만들지 말라”

탈북자 교육기관 하나원을 고발한다

“더 이상 2등국민을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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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데 능력은 따라주지 않으니 6개월 이상 한 직장에서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어본 탈북자들은 대개 직업 구하기를 포기하고 식당을 차리는 등 요식업 계통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공보다는 실패하여 낙담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나이 많은 탈북자들은 북한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외로움은 서로 나눌 때 덜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남한사회 진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탈북인들끼리의 만남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필자도 처음 남한에 정착할 당시 옆집 사는 사람들과도 내왕이 없는 남한의 문화 속에서,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낀 바 있다. 남한사회에 대한 이해와 남한문화에 대한 이해는 결국 남한사람들과의 적극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인관계 능력이 미숙한 탈북자들의 경우 남한 정착과정에서 심한 고독감을 호소한다. 탈북자 H씨는 취업 면접과정에서 탈북자라는 이유로 탈락한 경우가 많았다며 그후로는 탈북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는 학원에서나 직장에서 “당신은 탈북자이니까 이런 것은 모를 것이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며, 남한사회의 배타성을 꼬집었다.

적지 않은 탈북자들의 경우 중국에서의 인맥을 살려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려 하지만, 여권을 만드는 데 보통 2∼3개월이 걸린다. 그나마 취득한 여권도 단수여권이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탈북자가 남한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2등 국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전 호주에 망명을 신청한 한 탈북자의 경우가 그러한 피해의식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탈북자들에게 직업 선택은 참으로 중요하다. 정착금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안정된 직장이 없으면 미래가 불투명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하나원을 나온 탈북자가 바로 직업을 구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3D업종이 아니고서는 하나원을 갓 나온 탈북자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탈북자 중에는 북한에서 각종 기능을 익힌 사람이 적지 않다. 탈북자들의 조기 정착을 위해 이들이 북한에서 취득한 자격증을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탈북자들은 수많은 죽음의 고비와 역경을 이겨낸 경험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수용소에서 최악의 조건을 이겨내고 살아난 유태인들은 그렇지 않은 유태인들에 비해 미국 주류사회로 진입하는 확률이 높았다는 통계가 있다.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아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의 정신으로 모든 일에 임한다면 그들의 성공은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굿피플대학의 모범 사례


‘굿피플대학’의 탈북자 적응교육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NGO ‘선한 사람들’은 탈북자들에 대한 생계비 지원활동에서 탈피해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것이 바로 1년 과정의 ‘굿피플대학(Good people college)’이다.

굿피플대학은 취업과 관련한 정보 제공은 물론이고, 창업 실패를 줄일 수 있는 노하우를 익히도록 각계의 수준 높은 강사들을 초청해 강의를 맡긴다. 굿피플대학에 다니는 C씨는 교과과정을 거치면서 나날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굿피플대학 학장 임경호씨는 “사회에 진출한 졸업생들이 1, 2년 안에 성공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나면 다른 탈북자들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고 장담한다. 그의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탈북자들에 대한 교육은 지력 위주보다는 심력(心力)·지력(知力)·체력(體力)·자기 관리능력·대인관계 능력을 함께 계발시키는 인간의 5차원 능력 개발식으로 변해야 한다.

최근 10여 명의 탈북자들이 주중 스페인대사관과 독일대사관으로 진입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남한으로 귀순해 오는 탈북자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탈북자들을 교육시켜 남한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은 남한사회가 맡아야 할 몫이다.

탈북자의 급증은 하나원을 중심으로 한 탈북자 교육이 더욱 정교하고 다양하고 치밀해질 것을 요구한다. 또 그 못지않게 탈북자들을 동포로 대하는 남한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필요하다. ‘2등 국민’을 양산하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탈북자들을 진정으로 귀순시킬 수 없다.

신동아 200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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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 가명·탈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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