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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의 보수인가, 노무현의 진보적 중도인가

2002년 대선과 지역·세대·이념

이회창의 보수인가, 노무현의 진보적 중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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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주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까. 필자는 세 차례의 대통령선거 결과와 최근 여론조사 지지율을 심층분석해 2002대선이 갖는 한국사회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2002년 한국사회의 화두는 대선이다. 민주당 경선으로 달궈지기 시작한 대선레이스는 이른바 ‘노풍’을 만나 가속도가 붙기 시작해 노무현씨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되고, 역시 경선을 통해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로 결정되기까지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곧이어 월드컵이 열리면 대선레이스는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가겠지만, 6·13지방선거를 치르고 나면 다시 불붙을 것으로 예상한다.

1987년 이후 5년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대선바람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선거만큼 중요한 일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는 우리 사회의 중대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투표는 일반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통로다. 이 점에서 대선과정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분석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의 과정을 보면 올해 대선의 초점은 지역주의와 세대문제, 그리고 이념갈등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 이슈들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이 ‘노풍(盧風)’, 즉 ‘노무현 바람’이다. 간단히 말해 노풍이란 노무현씨가 민주당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따돌리고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노후보를 지지하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나 ‘386세대’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노무현이란 정치적 상징은 신드롬으로 발전했다.

7개월 남짓 남은 2002년 대선레이스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결하는 양강구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박근혜씨를 포함한 제3후보의 등장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이제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는 노무현 대 이회창의 대립구도가 단연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성장과정과 개인경력에서 대조를 이루는 두 후보의 대결은 여러가지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2002년 대선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 그 동안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지역주의 투표성향은 약화할 것인가. 세대와 계층갈등은 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2002년 대선구도의 중심을 이루는 이슈들을 살펴보고 향후 전개과정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필자의 잠정적인 가설은 2002년 대선구도는 한국 시민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핵심 관건은 지역주의가 끼치는 영향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가에 놓여 있다. 계층적·이념적·세대적·지역적 균열이 교차하는 우리 시민사회에서 정치적 선택은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볼 수 있듯이, 높은 지역주의의 수문(水門)이 다른 요인의 영향력을 가로막아 왔다. 따라서 지역주의의 수문이 낮아질 때 세대와 이념 및 계층적 균열의 영향력은 커질 수 있으며, 한국정치는 망국적인 지역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논지를 전개하기에 앞서 미리 밝혀둘 것이 있다. 필자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며,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다만 노후보와 이후보의 대결구도를 가져온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노풍’이었던 만큼, ‘노풍’에 대한 분석에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에 양해를 구한다.



노풍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번 대선의 초반 레이스를 주도한 것은 노풍이다. 노풍에 대해서는 그 동안 여러 언론지면을 통해 다양한 분석들이 제시되었다. 지난 5월9일 ‘참여사회연구소’ 주최로 노풍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는데, 발표자로 나선 손혁재 박사(참여연대 운영위원장)와 홍성태 교수(상지대, 사회학)는 각각 노풍의 정치학적 분석과 사회문화적 분석을 시도한 바 있다.

먼저 손박사는 노풍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과 2000년 낙천·낙선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분석한다. 즉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노무현 바람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노풍의 정치적 요인은 환경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정치개혁의 부진, 정치불신의 심화, 시민사회내 합리적 개혁 세력의 비중 증대, 야당의 비전 부재, 인터넷의 보급 등이 환경적 요인이라면, 국민경선제는 제도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한편 홍교수는 노풍의 사회문화적 조건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화, 세대론으로 표상되는 주체의 변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매체의 변화를 주목한다. 이 가운데 특히 필자가 관심을 둔 것은 세대분석인데, 홍교수는 이제 30대가 된 신세대가 흔히 ‘탈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지만, 차이의 존중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최초의 문화정치 세대이며, 기성정치를 혐오하는 세대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노풍에 대한 이런 분석은, 그것이 갖는 다면적 측면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민경선제 도입이라는 제도적 요인 못지않게 사이버 공간과 긴밀히 결합된 젊은 세대의 폭발적인 관심 또한 노풍의 주요 요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와 다른 각도에서 노풍을 바라보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분식(粉飾) 지역주의’ 또는 ‘전략적 지역주의’로 노풍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호남지역이 전략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선택한 것이 노풍의 발원지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지역주의가 여전히 한국 시민사회의 정치적 선택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번 대선 역시 지역주의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필자가 보기에 노풍의 실체는 전자와 후자의 분석을 모두 포괄하는 복합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다. 어떤 결과라 하더라도 그것에는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이 있게 마련인데, 지난 몇 년간 사회구조 및 문화적 변화가 노풍의 원인이었다면, 국민경선제와 그 과정에서 부각된 전략적 지역주의는 노풍의 근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노풍이 이렇듯 복합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라면, 이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은 이번 대선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노풍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느 나라이건 시민사회는 계층적·이념적·세대적·성적·종교적·지역적 균열이 교차하고 있으며, 이 균열들이 서로 복합적인 영향을 끼쳐 선거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1987년 이후 우리 시민사회의 정치적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균열은 단연 지역이다. 지역패권주의나 지역할거주의란 말에서 볼 수 있듯이 후보가 어느 지역 출신인가는 선거의 향방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였다. 한편 서구 시민사회의 정치적 선택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계급과 이념적 균열이 지난 10여 년간 영향력을 증대해왔음에도, 앞서 지적한 지역주의의 높은 수문은 이 계급 및 이념적 균열을 활성화하는 것을 저지해왔다. 더욱이 지난 50여 년간 우리 현대사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온 반공주의는 이념 및 계급적 균열을 결빙시켜 왔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 지역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시민사회의 균열은 오히려 세대적 균열이며, 이는 압축적 경제성장이 낳은 세대격차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민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노풍을 살펴보면, 노후보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지역주의가 퇴색하는 증거일 것이라는 진단을 낳게 한다. 노풍은 과연 지역주의의 수문을 낮추고 세대와 계급 및 이념의 균열을 활성화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구체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이 글에서 활용하는 여론조사 자료는 ‘동아일보’가 3월9일, 4월1일, 5월1일 세 번에 걸쳐 조사한 것이다).

먼저 은 지난 3월9일부터 5월1일까지 두 후보에 대한 지지율의 변화다. 3월 초에는 이회창 후보가 앞서 있었지만 노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지지율이 역전되어 4월1일에는 노무현 후보가 12% 정도 앞섰다. 그러다 5월1일에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모두 약간 하락하면서 10% 정도 노무현 후보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지후보를 밝히지 않은 태도유보층의 변화인데, 노풍이 강세를 보인 4월 초에는 20.1%였지만, 민주당 경선이 끝난 5월 초에는 다시 24.1%로 늘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것은 일거에 분출한 노풍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다소 가라앉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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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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