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서울에 5촌 조카 등 친척들이 살고 있던 김씨의 경우, 조카가 지난 1994년 김씨의 북한내 생존 사실을 확인하고 통일부에 이산가족 상봉 신청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내의 정보 공유체계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김씨의 조카는 “지난 1994년과 95년 두 차례에 걸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관계자라고 신분을 밝힌 사람이 아저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제3국을 통해 귀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통일부에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민원 서류를 접수한 후 재외국민에 해당하는 업무라는 이유로 외교통상부로 이첩하지 않고 통일부에 확인만 했더라도 이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현재 통일부는 가족 중 국군포로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이산가족 중에서도 특별지원 대상자로 분류해 일반 이산가족에 지원하는 생사확인 및 상봉, 교류 지속 경비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국군포로인지 아닌지 확인이 어려웠다는 국방부의 설명과는 달리 김씨의 고향인 경기도 안산시 ○○면 ××리(현 안산시 원곡본동) 원주민들은 대부분 ‘전쟁 나가 죽었다던’ 김씨와 그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역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정모씨는 “김씨 집안은 워낙 이 동네 토박이였기 때문에 동네 노인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김씨의 신변 보호 요청을 받은 국방부가 전사자 명단을 확인한 뒤 고향 주소지로 전화 한 통화만 해보았더라도 김씨 주장의 사실 여부를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국방부와 외교부의 책임 떠넘기기, 그리고 국방부 내부의 부처간 책임 떠넘기기는 현재 투먼(圖們)에 억류중인 국군포로 전용일씨 사건과 전씨 사건 한 달 전에 벌어진 두 김씨 사건 처리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국방부는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국군포로는 재외국민이므로 외교부가 해외 공관을 통해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외교부는 국군포로는 현역 군인 신분인 만큼 국방부가 주무부처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게다가 두 김씨 사건은 부처간 업무영역 혼란뿐만 아니라 정부부처 내에서도 국군포로들에 대한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국방부는 이뿐만 아니라 이미 귀환한 국군포로들로부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국방부가 말로만 ‘선배 노병(老兵)에 대한 예우’를 들먹일 뿐 친목 모임 하나 만드는 것조차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여름 국방부가 주관해 국군포로 출신 귀환자들의 친목 모임이 열린 적이 있었다. 국군포로 출신 귀환자들이 33명(1명의 신원은 곧 발표 예정)이나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군포로 귀환 동지회’ 정도의 모임이 있을 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이 모임에 참석했던 조창호 전 중위는 “국방부측에서 우리가 만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조씨는 “1년에 한두 차례라도 만나봤으면 하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2년에 한 번’이라는 규정을 내세우며 ‘안 된다’는 이야기만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994년 귀환해 우리 사회에 국군포로 문제의 심각성을 불러일으켰던 조씨는 “국방부의 말대로 2년에 한 차례씩 모임을 갖게 되면 그 사이 이미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닐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이미 최근 몇 년 사이에 귀환한 포로 33명 중 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총리 훈령 만들겠다”
국방부 관계자는 “두 김씨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국군포로 대책위원회를 통해 각 부처간 업무 분담을 명확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국정원 등 국군포로와 관련한 정부내 부처별 업무 영역을 명확히 분담해 이를 국무총리 훈령에 명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청와대 NSC 상임위원회도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범정부 차원으로 대처한다고 결의한 바 있고 국방부도 대책위원회를 가동해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씨는 서울에서 아파트를 얻어 함께 귀환한 또다른 김모씨와 함께 생활하고 있으나 북한에 두고온 가족들의 안전을 생각해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94년 이미 김씨의 생존 사실을 확인했던 김씨의 조카는 기자와 만나 “아저씨가 귀환하기 전 국방부에서는 자료를 못 찾아서 귀환이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만을 들었다”며 국방부와 외교부가 책임을 떠넘기는 바람에 귀환이 늦어졌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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