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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90% 물갈이… 노무현식 ‘찔끔개각’ 밀착분석

‘실험내각’에서 ‘관리형 내각’으로 선회

1년 만에 90% 물갈이… 노무현식 ‘찔끔개각’ 밀착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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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집권 1기 장관들은 대체로 조직 장악력에 문제가 생겨 교체된 경우가 많다. 7월28일 강금실 법무장관과 조영길 국방장관의 교체도 이런 사유에 속한다. 두 장관 모두 특수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군과 검찰을 이끌어가는 데에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었다. 물론 조 전 장관은 교체가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고, 강 전 장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교체였다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두 장관의 교체 이면을 더듬어 보면 오래 전부터 교체가 검토돼왔다. 이런 면면을 살펴보면 노 대통령의 ‘장관 교체’에 대한 시각을 시사하는 대목이 많다.

4차례나 교체설 시달린 국방장관

조 전 장관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경질설이 꾸준히 나돌았고, 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5월 중순 이후 서너 차례나 바뀔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첫 교체설은 5월 초 신일순(申日淳)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되면서 나왔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신 장군 구속사태로 인해 조 전 장관에 대한 강한 불신임 기류가 흘렀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신 장군의 비리는 이미 오래 전에 여러 차례 제보가 있었다. 조 장관이 일찌감치 신 장군을 자진 전역시켰다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었는데, 우물쭈물하다가 사건이 커졌다. 급기야 ‘호남 군맥 숙청’이니 하는 말이 나오면서 대통령과 청와대만 대미지를 입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두 번째 고비는 5월 말 한 일간지에 ‘차제에 미국처럼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을 기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칼럼이 실렸을 때다. 노 대통령은 이 칼럼을 직접 읽고 나서 윤광웅 당시 대통령국방보좌관에게 이 문제를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미 집권 초기부터 군에 대한 문민(文民) 통제에 관심이 많던 노 대통령의 눈에 확 들어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윤 보좌관은 외국의 사례 등을 면밀히 살펴본 뒤 ‘미국은 전역 후 10년이 지나면 민간인으로 간주하는데, 한국의 경우 안보 현실을 감안해 전역 후 5년 정도 지나면 민간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는 순수한 민간인으로서 국방장관을 할 만한 군사전문가는 거의 찾기 어렵다는 점도 포함됐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간인 국방장관 기용설이 퍼졌고, 조 전 장관 교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힘을 얻어갔다. 그러나 6월30일 개각에서도 국방장관 교체는 실행되지 않았다.

세 번째 고비는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金鮮一)씨가 이라크에서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대대적인 문책성 경질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기왕에 교체설이 나돌던 조 전 장관은 또다시 교체설에 휘말렸다. 이번에는 여론도 들끓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책임이 있는지를 따져본 뒤 인사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하면서 시간을 벌었고, 즉각적인 문책 인사를 하지 않았다. 물론 이 사건으로 국방장관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네 번째 고비는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시 남북간 교신 누락사건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조 장관 교체설은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고, 노 대통령이 추가조사를 지시하면서 조 전 장관은 더욱 강력한 교체설에 시달렸지만, 경질 인사는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된 7월28일에야 이뤄졌다.

조 전 장관은 7월27일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고 다음날인 28일 자연스럽게 교체되는 형식을 취했지만, 장관 교체방침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사의 표명 5일 전인 7월22일 청와대는 인사추천회의에서 윤광웅 당시 대통령국방보좌관을 후임 장관으로 내정하고도 ‘문책성 경질’이 아니라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적당한 발표 시기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7월19일 노 대통령이 “국방부의 조사결과가 미흡하다”면서 추가 조사를 지시할 때 조 전 장관 교체를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조 전 장관의 교체 과정에 노 대통령 특유의 인사스타일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여론에 밀려 장관을 내치는 식으로 바꾸지는 않겠다는 고집이 깔려 있다. 결국에는 바꾸더라도 무작정 책임을 묻는 식이 아니라 엄밀한 평가에 의한 인사 관행을 정착시키겠다는 얘기다.

이런 스타일은 6월 말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피살된 사건이 벌어져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궁지에 몰렸을 때도 나타났다. 노 대통령은 반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사건 경위를 보고받은 뒤 오히려 신임을 표시했다.

지난해 9월 야3당이 공조해 국회에서 김두관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노 대통령은 ‘설령 국회의 결정이 부당하더라도 국회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으나 오히려 “시골 군수 출신인 김 장관은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라고 옹호했다. 노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무슨 일이 터졌다고 해서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장관을 자르면 어느 장관이 소신 있게 일할 수 있겠느냐”고 말해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유가 있다면 언제라도 ‘인사’

그렇다고 장관의 목이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니다. 여론에 밀린 ‘희생양 찾기식 인사’는 없겠지만, 이는 거꾸로 사유가 있으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의외의 교체’라는 평을 받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현 정부의 장관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려왔고, 여권 내에서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 탓에 7월28일의 전격 교체는 일반 국민에게도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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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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