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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포스트 DJ’ 구도

박지원-정세균의‘유훈정치 찰떡궁합’ 역풍 맞는다?

민주당 ‘포스트 DJ’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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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포스트 DJ’ 구도

8월20일 연세세브란스 병원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관식이 진행되는 동안 박지원 의원 등 비서진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DJ에 매우 불충한 것”

‘포스트 DJ’, 즉 DJ의 정치적 유산을 누가 이어받느냐는 문제로 야권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나온 박 의장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장 정 대표의 강력한 반대로 민주당 복당 길이 막힌 정동영 의원 측이 발끈했다. 정 의원 지지자 모임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의 홍성룡 대표는 8월27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정 대표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발언은 박 의장이 지어낸 말일 것이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김 전 대통령께서 민주개혁진영 단합을 유언으로 남기면서 ‘특정인 중심으로’라는 문구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과대 아전인수 격 해석이거나 민주당 정책위의장 임명에 대한 ‘보은의 선물’로 그런 표현이 나온 것 같아 측은해 보인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나중에 그는 ‘정통들’ 게시판에 해명 글을 올려 ‘김 전 대통령께서 누가 대표이든 간에 그 대표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단결하라는 말을 늘 해왔는데, 미처 이런 여러 가지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고 지어낸 것으로 이야기해버렸다. 박지원 의원에게 누가 된 발언을 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반면 민주당에선 박 의장이 처음 DJ의 유언을 공개했을 때 누구도 공개석상에서 반론을 펼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자 동교동계 출신을 중심으로 “DJ의 마지막을 배타적으로 지켜본 박 의장이 독점적 유훈정치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나아가 “실제로 DJ가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도 의문”이라며 일종의 ‘조작설’까지 퍼졌다. 동교동계 출신 가운데 박 의장의 발언을 가장 먼저 문제 삼고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장성민 전 의원이다.

‘동교동계 막내’로 불리기도 했던 장 전 의원은 9월1일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작심한 듯 박 의장을 비판했다. 그는 먼저 애도 기간에 논쟁적 이슈를 만들어 사회적 파장을 만든 자체가 모시던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박지원 의원이 공개한 확인되지 않은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은 평소 그분의 정치철학과 맞지 않으며 박 의원의 발언에 대해 동교동계 민주화 선배들, 동지들 모두 우려하고 있다. 또한 서거하신 김 전 대통령에게 매우 불충한 것이며 유가족은 물론,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함께 40년 동고동락해온 동지 선배들에게 매우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장 전 의원은 박 의장의 발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진위에도 의구심을 표시했다.

“DJ는 정치인 중에 거짓말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 DJ의 유지를 이어가는 일에 사심이 개입돼선 안 된다. 권노갑 고문이나 한화갑 전 대표 등 동교동계 핵심 측근들로부터도 (그런 말을) 들은 바 없으며, 이러한 엄중하고 중차대한 문제를 박지원 의원이 그렇게 함부로 가볍게 발언을 할 리가 없다. 만약,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40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해온 민주화 동지들과 협의하고 상의하고 또 동의를 구했어야 할 문제였다.”

“유훈 남겼는지 모르겠다”

장 전 의원의 문제 제기에도 침묵을 지키던 권 고문은 며칠 뒤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이 그런 유언을 남겼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박 의원이 내게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박 의원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사실일 것으로 믿고 싶다”면서도 “김 전 대통령은 평소 ‘누가 도와주거나 밀어준다고 해서 큰 인물이 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박 의장이 전한 ‘정 대표 중심 단결론’의 진위에 회의적인 견해를 표명한 셈이다.

박주선 최고위원도 “실제로 DJ가 정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란 유언을 남겼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만일 그런 말을 했더라도 영원히 정 대표 체제로 움직이란 뜻은 아니고 현재의 민주당 대표가 중심이 되는 게 통합과정에서 분열을 예방하는 길이란 의미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박 의장의 전언이 사실이더라도 정 대표를 전적으로 신임한다는 메시지가 아니란 주장이다.

이와 관련, DJ의 스타일과 동교동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김 전 대통령의 평소 어법으로 볼 때 조금 단정적으로 얘기한 측면은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박 의장이 유언을 지어내 전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실제로 마지막까지 민주당의 앞날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면서 민주세력대통합을 구상했었다”며 “이를 추진하자면 정 대표가 현실적으로 기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독주한다?

다만 그는 박 의장이 DJ의 유훈을 민주당 회의석상에서 거론한 데 대해선 어떤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그런 말을 들었더라도 국장 다음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런 말을 하면 ‘이것은 DJ의 지침이다.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가라’고 일방적으로 통고한 것뿐이 더 되느냐. 가뜩이나 옛 동교동계 내부에서조차 ‘박지원이 김 전 대통령 곁에서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고 독주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데, 결국 통합이 아니라 분열의 요소만 보탠 결과를 낳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이처럼 DJ 유훈의 실체와 내용을 놓고 일종의 진실게임이 벌어지는 양상이지만 박 의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DJ의 정치적 유언 내용을 공개한 것은 잘못’이라거나 심지어 ‘유언이 조작됐다’는 주장에 대해 “그런 말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다만 박 의장은 “나는 최소한 김 전 대통령의 말씀을 한 번도 왜곡해본 적이 없다. 현재 민주당 대표는 정 대표다. 과거 손학규 대표 시절에도 김 전 대통령의 똑같은 말씀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가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이나 일기를 독점하면서 선택적으로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서거 후에 2009년도 일기 공개는 전부 비서관들과 협의해서 이희호 여사의 허락을 받고 하는 것이지 제가 독단적으로 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쨌든 박 의장의 DJ 유훈 전격 공개는 민주당에 민주개혁세력 대통합의 화두를 던지는 동시에 DJ의 정치적 적통(嫡統)이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켰다. 대통합 문제는 어느 계파든 필요성을 인정한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야당 역사상 최악’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민주당 내에서 이 상태로는 차기는 물론, 앞으로 몇 대에 걸쳐 정권을 잡는 것은 요원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돌파구는 반(反)MB(이명박 대통령) 진영이 하나로 뭉쳐 일사불란한 대오를 형성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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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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