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간의 평가는 냉담하다. 대선 때 뜨겁게 약속했던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 구호에 떠밀려 차갑게 식었고, ‘생애맞춤형 복지’는 부족한 재원에 끼워 맞춘 ‘재정맞춤형 복지’로 주저앉았다는 평가가 많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여야 정치권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과 NLL(북방한계선) 논란 등을 놓고 지루한 공방전을 벌이는 사이 국민행복은 설자리를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조경제는 밑그림 그리기”
새 정부는 조직 개편을 통해 경제부총리직을 신설,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경제사령탑 역할을 맡겼지만, 현오석 부총리가 부동산 대책 등을 둘러싼 부처 이견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오히려 시장에 더 큰 혼선이 빚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8월 8일 새누리당 내 경제전문가로 꼽히는 이혜훈 최고위원을 만나 박근혜 정부의 지난 6개월간 경제분야 국정운영에 대한 총평을 들어봤다. 이 최고위원은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
▼ 8월 25일이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된다. 지난 6개월을 어떻게 지켜봤나.
“대통령의 경제분야 핵심공약은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다. 창조경제는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으로 봐야 한다. 한술에 배부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을 좀 더 갖고 지켜봐야 한다. 창조경제는 대한민국이 향후 50년, 100년 동안 먹고살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인프라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지금 정부에서 열매를 따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의 기초공사를 하고, 열매는 차기 혹은 차차기 정부에서 딸 수 있을지 모른다. 경제민주화는 공이 국회로 넘어와 입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지만 아직은 입법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 경제팀을 이끄는 현오석 부총리에 대해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 같다.
“취임 초반에는 아쉬움이 많았는데, 지금은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많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 현 부총리에 대한 아쉬움은 어떤 것이었나.
“초반에는 역할이 잘 보이지 않았다. 부총리는 여러 장관 중 한 명의 장관이 아니다. 경제수장으로서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고, 각 부처가 수동적으로 움직일 때 적극적으로 끌고 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기대했는데, 초반에는 그런 모습이 안 보여 아쉬웠다.”
▼ 박근혜 대통령은 현 부총리를 재신임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는데.
“대통령이 ‘힘내라, 힘내서 잘하라’고 격려한 것으로 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하반기 들어 좀 바뀐 것 같다.
“전반기에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 기초 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으니, 하반기에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려는 것 같다.”
▼ 정부 출범 6개월이 다 됐지만 창조경제의 개념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이 ‘창조경제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열매를 맛보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다. 창조경제는 정부가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창조가 발현될 수 있도록 걸림돌을 없애고, 민간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구현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기에 그렇다.”
“실패한 사업가를 만나라”
▼ 청와대에서 창조경제를 담당하는 미래전략수석비서관이 6개월도 안돼 경질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창조경제에 대해 국민이 많이 답답해하지 않았나. 대통령께서도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최순홍 전 미래전략수석은 3월 말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 참석, ‘창조경제가 뭐냐’는 의원들의 질문공세를 받았다. 최 전 수석은 “열심히 공부해 한 달 뒤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넉 달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결국 경질됐다.
▼ 이 최고위원이 생각하는 창조경제는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들려달라.
“‘창조경제=ICT(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가 아니다.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창조경제는 별개 문제다. 창조경제는 기존에 민간이 개발한 여러 기술과 아이디어를 서로 접목해 새로운 사업으로 발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창조경제가 꽃필 수 있는 인프라를 깔아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지, 앞장서서 새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 아니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창조경제=신기술 창조’로 받아들이는 세태가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의 목소리가 커지고 얘기가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