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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과 싸울 힘도 의지도 없다”

전두환·이순자 육성 토로

“우리는 세상과 싸울 힘도 의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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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왜 보수세력이 전두환을 공격할까?
  • ● 전두환이 밝힌 박정희·차지철·김재규 스토리
  • ● 박근혜는 왜 연희동을 방문하지 않았나
  • ● 전 재산 29만 원, 육사 발전기금 1000만 원
  • ● 이순자는 복부인? 그가 들려준 연희동 집 마련 과정
  • ● 오산, 성남, 서초동 땅 명의 이전 시점이 핵심
“우리는 세상과 싸울 힘도 의지도 없다”

2011년 12월 14일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빈소를 찾은 전두환·이순자 부부. 이들은 경조사를 챙겨야 할 곳은 꼭 찾는 성의를 보인다.

전두환(82)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에 나선 서울중앙지검이 ‘추징금 환수팀’을 ‘특별수사팀’으로 바꿨다. 전두환(이하 주요 인물들은 직함 생략)의 친인척들이 그의 비자금을 토대로 재산을 형성한 단서가 밝혀지면 추징금으로 환수하고, 자금 운용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발견되면 바로 수사하기로 한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모조리 털어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검찰의 공세는 6월 27일 기권자 4명을 제외한 국회의원 전원이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일명 ‘전두환법’을 통과시킨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은 1996년 내란과 반란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1997년 특별사면)과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이후 533억여 원만 납부해 미납금이 1672억 원이다. 그는 재산이 없다며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았는데, 그의 장남인 전재국 시공사 대표는 조세 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두고 있다. 다른 자녀들도 상당한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도 적극 참여해 만장일치로 전두환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별명이 ‘전두환법’일지라도 법은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전두환만을 노리는 표적수사용 법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추징금을 미납한 옛 실력자가 많다. 6공 대통령 노태우는 230억 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전두환보다 10배 이상 많은 17조8366억 원을 미납한 상태이지만, 칼날은 오로지 전두환만을 향한다. “29만 원밖에 없다”고 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배짱이 얄미운 걸까. 잘사는 그의 자녀들이 못마땅한 걸까.

그러나 전두환을 ‘사나이답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부는 그의 업적에 주목한다. 박정희 정권의 과도한 투자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국을 기사회생시킨 인물로 보는 것이다. ‘서울올림픽을 유치해 한국의 위상을 한순간에 높여놓았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단군 이래 최초로 무역 흑자를 만들었다’ ‘단임을 실천해 이후로는 누구도 장기 집권을 못하게 했다’ ‘노태우로 하여금 6·29선언을 하게 해 국민 직선으로 대통령을 뽑는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이들은 전두환을 기막힌 ‘핀치히터’로 평가한다.

기자는 2011년 3월 초 그를 만날 기회를 잡았다. 과학자 몇 사람이 인사차 그의 자택을 방문하면서 ‘비보도’를 전제로 기자를 데려간 것이다. 전두환은 명함을 건네며 자기소개를 하는 ‘불청객’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도 5시간을 머물며 대화를 하고 저녁까지 얻어먹고 나왔다.



기자는 과학자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 씨와 나눈 대화를 일절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 씨 미납 추징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그의 비서관을 지낸 민정기 씨가 검찰 조사를 반박하는 글을 배포해 파문이 커지고 있는 마당이라, 전두환의 실제 모습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그날의 대화를 다른 취재 결과와 함께 공개하기로 한다.

눈 밝은 이들은 오래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돼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전두환 자택을 방문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대중·노무현 묘소를 참배하고 김영삼·이희호 자택은 방문했으나 연희동으로는 향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전두환이 청와대를 나오게 된 박근혜 남매를 섭섭하게 했기에 인사를 가지 않은 것”이라는 추측이 쏟아졌다. “박근혜는 전두환을 반드시 혼낼 것”이라고 예측도 나왔다.

5공 시절 김종필(JP)을 비롯한 과거 실력자들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을 뺏기고 정치활동을 못하는 연금을 당했다. 그때 재산을 뺏긴 O씨는 최근까지도 전두환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과거 “5공 시절 대단히 가슴 아프게 살아왔다”고 한 적이 있으니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금 많은 사람이 박근혜와 전두환의 불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기자가 연희동을 찾아간 2011년은 ‘박근혜 대통령’ 가능성이 별로 거론되지 않았으니, 그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1931년생이다. 서먹서먹한 가운데 인사를 마치자 전두환은 “내가 1월생이야(음력으로 1월 18일생). 설을 지냈으니 확실히 만 팔십이지. 팔십이 넘었으니 자네들한테 말을 놔도 되지? 자, 그래. 이제 앉아서 이야기 좀 해봐”라는 말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만 80세치고는 기력이 왕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금마’와 박정희, 그리고 5·16

과학자들은 그들이 젊은 시절에 본 5공의 과학정책을 정리하고 그 정책으로 과학계가 발전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사 삼아 칭송한 것인데 그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건성으로 듣는 것 같았다. 건강하다고는 하지만 ‘상노인’인지라 집중력이 강해 보이지 않았다.

지루했는지 그가 말을 자르고 나왔다. 과학자들이 박정희의 과학정책을 이야기할 때였다. ‘박정희’라는 단어가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있던 기억을 갑자기 떠올리게 한 것 같았다. 박정희 차지철 김재규 등과 얽힌, 기자로서는 꼭 듣고 싶은 10·26과 12·12 어간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는 박정희의 경호실장인 차지철에게 유감이 많은 듯 그를 ‘금마(그놈아)’로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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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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