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호

“삼전 60만 원 간다” 외침 속 외면받는 ‘불편한 사실’

[윤지호의 투자공방] 장 폴 사르트르가 ‘AI 랠리’를 본다면

  • 윤지호 경제평론가

    입력2026-07-02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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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심하지 말라” “밀리면 사라” 낙관론 만연한 코스피

    • AI 내러티브 ‘정상’으로 여겨지고, 반대 목소리는 배척

    • 하이퍼스케일러 잉여현금흐름 악화…고금리 지속되면 위험

    • ‘살아남는 투자자’는 낙관론 옆 불편한 문장까지 읽어

    코스피에 대한 낙관론이 지속되면서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이 만연한 양상이 관측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코스피에 대한 낙관론이 지속되면서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이 만연한 양상이 관측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거짓말을 하는 자와 그 거짓말에 속는 자가 같은 사람일 때, 나는 속이려는 바로 그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저서 ‘존재와 무’에서 ‘자기기만’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남긴 말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자기기만은 진실을 몰라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려는 태도다. 스스로를 속이려면 무엇을 외면할지 이미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용카드 명세서를 확인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소비 습관을 전혀 몰라서 확인을 미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명세서를 확인하는 순간 마주할 진실을 짐작하고 있기에 시선을 돌리는 것에 가깝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게 될까 두려운 것이다. 어쩌면 작금의 증시도 비슷한 상황일지 모른다.

    “의심하지 말라” “밀리면 사라” 낙관론 만연한 코스피

    어딜 가도 인공지능(AI) 시대의 주인공인 한국 IT 대형주를 찬미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의심하지 말라. 밀리면 사라”는 선지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을 다지며 투자에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떤 투자 리포트는 “메모리 재평가는 아직 초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년 만에 열 배 오른 종목을 두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한때 코스피가 9000선을 돌파하면서 “지금이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물론 AI가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한국 반도체 기업이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것도 맞다. 코스피가 AI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투자자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흥분한 투자자들의 문제는 좋은 이야기 옆에 적혀 있는 ‘불편한 사실’을 알면서도 보지 않는 데 있다. 금리는 여전히 높다. 1970년대와 유사한 ‘버터(사회복지)와 총(국방)’의 시대가 열리면서 재정적자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개방과 무관하게 무위험이자율로 간주되는 각국의 장기국채 금리는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 공산이 크다. 고금리가 자리를 잡으면 자산의 지형도 바뀐다. 막대한 무역흑자에도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는 것은 글로벌 자산 재편이 이미 진행 중임을 의미한다.

    원화와 상관관계가 높은 엔화의 흐름도 걱정스럽다. 일본은 돈을 풀고 있고 멈출 기미도 없다.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치솟고 있으며, 일본은행 역시 금리 상승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고금리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동성이 다시 흡수돼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기반으로 클라우드 자원을 대량 제공하는 사업자)들이 쏟아붓고 있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본 지출(CAPEX) 역시 마찬가지다. 막대한 투자가 과연 그만한 이익으로 돌아올지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은 AI 시장의 승자가 되기 위해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가운데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잉여현금흐름(FCF)은 점차 악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투자자들이 모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증권가만 알고 있는 비밀도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다. 모두 코스피 낙관론을 담은 기사의 한편에 함께 언급되는 내용이다. 우리가 해당 부분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문득 철학자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가 떠오른다. 푸코에 따르면 광기는 특정 시대의 권력과 담론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그으며 만들어 낸 사회적 산물이다. 르네상스 시대 광인은 때로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졌지만, 17세기 이후 이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관리와 배제의 대상이 됐다. 광인들이 격리된 것도 단지 그들이 위험해서라기보다 당시 사회가 규정하던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사회는 특정한 담론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질적 존재를 주변부로 밀어내곤 했다. 

    지금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AI가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서사는 ‘정상’으로 여겨지고,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시대착오적인 ‘비정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한국 증시를 놓고 부정적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워런 버핏을 조롱하는 밈이 유행했고, 주의가 필요하다는 하워드 막스의 최신 메모를 인용해도 비난이 쏟아졌다. 2023년 에코프로 매도 리포트를 냈던 애널리스트들의 사례가 떠오를 정도다. 그들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한 내용을 끄집어냈을 뿐이었는데 시장 참여자들로부터 조롱받았다.

    하이퍼스케일러 잉여현금흐름 악화…
    고금리 지속되면 위험

    시장으로부터 냉대를 받더라도 현시점 잉여현금흐름(FCF)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잉여현금흐름은 ‘Free Cash Flow’의 줄임말로, 기업이 사업을 굴리고 필요한 투자까지 마친 뒤 손에 쥐는 돈을 뜻한다. 쉽게 말해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공장을 짓고 장비를 사들이는 데 들어간 자본 지출(CAPEX)을 뺀 금액이다. 순이익은 감가상각 방식을 어떻게 적용하느냐, 회계상 어떤 가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좋아 보이도록 보정할 수 있다. 하지만 잉여현금흐름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업이 정말 돈을 벌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이익보다 이를 살펴봐야 한다. “이익은 의견일 뿐이고, 현금이 사실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버핏이 평생 강조한 것도 이 지점이다. 버핏은 회계상 이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주주 이익’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사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투자를 모두 제외한 뒤에도 주주에게 실제로 돌아갈 수 있는 현금이 얼마인지를 따져봤다. 그가 에비타(EBITDA·상각 전 영업이익)처럼 자본 지출을 외면하는 지표를 경계했던 이유도 같다. 설비투자는 분명 현금 유출인데, 이를 없는 셈 치면 기업은 실제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버핏에게 중요한 것은 장부에 얼마의 이익이 적혔느냐가 아니었다. 모든 투자를 마친 뒤 얼마의 현금이 실제로 남느냐였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걸린 깃발. 뉴스1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걸린 깃발. 뉴스1

    버핏의 관점으로 지금의 하이퍼스케일러를 바라보면 어떨까. 그들은 AI라는 미래를 위해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붓고 있다. 어마어마한 현금을 벌어들여도 투자가 이를 웃돌면서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정도다.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현금을 태우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투자가 훗날 충분한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버핏의 시선으로 시장을 바라보면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지금의 거대한 자본 지출은 언젠가 주주에게 회수될 현금인가. 아니면 그저 돌아오기를 바라는 현금인가.

    최근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 400만 원,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60만 원으로 산정하는 리포트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그 가격에 도달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러한 목표 주가는 ‘메모리 호황이 적어도 몇 년간 이어지고, AI 투자가 충분한 이익으로 회수되며, 거시 환경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핵심은 그러한 전제가 달성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이에 대해 의심하기를 멈췄다. 지금 코스피 시장을 바라보는 모두는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외면하는 상태 말이다.

    ‘살아남는 투자자’는 낙관론 옆 불편한 문장까지 읽어

    최근 AI 관련주를 중심으로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의심하지 말라”고 말하는 선지자들은 서버 DRAM을 중심으로 LTA(장기 공급 계약)가 확산하고 있어 상황이 안정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LTA는 3년 이상의 가격과 물량을 일정 수준으로 고정하는 구조의 계약이다. 해외 리포트에 따르면 DRAM 내 LTA 비중은 삼성전자가 30%, SK하이닉스 20%, 마이크론 18% 수준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LTA가 고정불변한 계약은 아니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재협상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인 2021~2022년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LTA가 활발했지만, 2023~2024년 반도체 수급이 완화되자 일부 계약이 재협상되거나 취소됐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점유율 확보를 위해 선제적 증설에 나섰지만, 오늘의 공격적 투자는 내일의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잉 투자는 마진 압박을 불러일으킨다. 향후 감가상각비와 차입 비용이 청구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고금리 환경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된다면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차입이나 채권 발행보다 유상증자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사르트르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자. 자기기만은 무지의 상태가 아니다. 알면서도 보지 않기로 한 상태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고금리 우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 하이퍼스케일러의 잉여현금흐름 악화 등은 모두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애써 외면해 왔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반도체 랠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신중한 투자자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돼 왔다. 매도 리포트를 낸 애널리스트가 바보가 되는 시장. 어쩌면 그것이 지금 코스피를 둘러싼 풍경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모(Fear Of Missing Out·기회 상실 공포)에 올라타 지금이라도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정답일까. 아니면 현금을 쥔 채 버블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정답일까.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모른다. “시장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대응하는 것”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포모에 올라탈 것인지, 현금을 쥘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 영역이다. 그러나 그 판단이 자기기만 위에서 내려진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에 가깝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린 결정은 결과가 좋더라도 올바른 과정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금 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투자자는 가장 빨리 들어간 사람도, 가장 먼저 빠져나온 사람도 아니다. 낙관론 옆에 나란히 적힌 불편한 문장까지 읽는 사람일 것이다. 쌓아둔 카드 명세서를 꺼내 펼쳐 보는 것,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면하지 않을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윤지호
    ●1967년생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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