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신주류와 구주류는 이제 싸울 만큼 싸웠다.
- 길게는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부터, 더 길게는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경선 때부터 시작된 싸움이다. 하지만 가장 치열했던 건 올해 4월 재보선을 전후한 때부터의 100일간. 당을 장악하려는 신주류와 앉아서 당하기 싫어 사생결단으로 버티는 구주류.
- 두 진영간의 기나긴 전쟁은 이제 최후의 결전만을 남겨놓고 있다.

2003년 4월17일 청남대에서 열리는 여야 영수회담에 참석하기 전 민주당 정대철 대표는 당사 3층 대표실에서 내뱉듯 한마디를 던진 뒤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몇 개피인지도 모르게 한참동안 담배만 피워댔다.
“요즘은 잠이 잘 안 와. 밤에도 몇 번씩이나 벌떡벌떡 일어나고, 속절없이 담배만 태우고 있소.”
5선 중진으로 숱한 선거를 경험한 그에게 4·24 재보선은 해보나마나인 듯 했다. 그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후보를 민주당과의 연합후보로 세운 경기 고양 덕양갑 선거였다. 구주류측 의원들을 다 제쳐놓고 신주류측의 이호웅 의원과 이용희 최고위원을 몰래 개혁당 김원웅 대표와 만나게 해 이뤄낸 연합공천이었다. 그런 만큼 덕양갑의 성적표는 중요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매일 3건씩 여론조사를 했지만, 결과는 별 차이가 없었다. 2건은 지는 것으로, 1건은 오차범위 안에서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모두가 힘을 합쳐 선거를 치러도 어려운 판에…. 선거 끝나고 당이 어떤 꼴이 될지 무서워.”
정대표는 신·구주류 모두 각자의 계산에 분주한 현실이 징그러운 듯했다. 신당을 꿈꾸는 신주류측 입장에서 볼 때 덕양갑만 이기면 ‘절묘한’ 것일 수도 있었다. ‘민주당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신주류측 주장의 타당성이 증명될 수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신주류측 의원들은 덕양갑에서 살다시피 했다. 거꾸로 구주류측은 덕양갑에 만큼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지기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재보선 선거 전 노대통령의 암시
“(대표가) 아닐 땐 그렇게 해보고 싶더니…. 대표를 맡고 보니 단 하루만 좋더라고. 맡은 날은 여기저기서 인사를 받으니 좋았지만, 바로 다음날부터는 고민의 연속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자리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거야. 그러나 대표직을 던져버리면 선거는 어떻게 되냐구. 선거를 안 치를 수도 없고. 게다가 우린 집권여당이 아닌가.”
그는, 대표란 자리의 특성상 신·구주류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고 중재해야 한다는 점에서 버거운 자리란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면 한 가지 건의를 해야겠어.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당이 분열로 치달을 텐데 뭔가 용단을 내려달라고 말야. 의원들을 다 한번 초청해달라는 말씀을 좀 드려야겠어. 대통령이 직접 의원들을 만나면 분위기도 좀 좋아지지 않겠나.”
정대표는 호기롭게 대통령을 만나러 나갔다. 그러나 대통령 면담 뒤 당에서나 청와대에서나 정대표가 건의하겠다던 대통령-의원 간담회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당을 아우르고 모두 함께 가야 할 시점은 지났다는 노대통령의 간접화법으로 해석되는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