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호

강금실 장관이 山中 찻집에서 털어놓은 인간적 고백

“사랑…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3-12-26 1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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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 안 됐으면 춤꾼 됐을 것
    • 노 대통령이 나보다 더 강한 원칙주의자
    • ‘강효리’ 별명 개의치 않아
    • 장관직 수행의 최대 걸림돌은 잠과 식사
    • 검찰 개혁 마무리될 때까지 장관 하고 싶다
    • 참여정부 인기 없는 이유는 일 못했기 때문
    • 측근비리 특검 도입과정 지켜보며 혐오감 느껴
    • 측근비리 특검, 상대방 약점 잡아 세 과시하는 것
    • 검찰총장의 인사 협의 명문화 요구는 부적절
    • 선거법 개정해 노동자 정치파업화 해결해야
    • 상대에게 고통 준다면 사랑이 아니다
    • 돈 열심히 벌어 50대엔 자유롭게 살 터
    강금실 장관이 山中 찻집에서 털어놓은 인간적 고백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중에 ‘사랑의 목마름’이란 게 있다. 오래 전에 읽은 터라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한 여자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애잔하게 흐르는 작품이다. 강금실(46) 법무부장관과 인터뷰하고 난 다음 문득 그 소설이 생각났다.

    스산한 날씨였다. 바람이 가볍게 일었고 햇볕은 인색했다. 싸늘하지만 부드러운 12월의 공기가 목젖을 건드렸다. 강 장관은 인터뷰 장소인 환기미술관에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했다. 청와대 뒤편 북악스카이웨이 근방에 있는 이 미술관은 우아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다. 마른 대지에 물을 뿌려놓은 듯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오직 새소리만이 태엽처럼 한낮의 적막을 감고 있다.

    강 장관은 지난해 가을 이곳을 처음 알게 된 후 혼자 가끔 들른다고 했다. 무엇에 이끌렸냐고 묻자 “그림보다 미술관이 좋아서”라고 말했다. 말 맺음새가 간결하고 깔끔하다. 상대에게 틈을 허용하고 싶지 않아 하는 듯한. 단아한 기품이 배어 있는 얼굴이다. 마른 탓인지 인상은 생각보다 딱딱하고 날카롭다. 절제되고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경내 찻집에서 작품집과 스카프를 둘러본 강 장관은 “건물이 참 좋더라구요”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정장에 걸친 망토가 그녀의 작은 체구를 부지런히 감쌌다. 3층짜리인 전시관 건물은 고풍스러운 계단과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곡선미가 일품이다. 맞은편 고목에 까치집이 보였고 그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강 장관이 감탄조로 말했다. “저기 새집 좀 봐요. 어떻게 저런 데 집을 짓고 살까.” 시골에서 자란 기자는 거기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시골에서 산 적이 없냐”고 물었고 강 장관은 “서울에서 죽 자랐다”고 답했다.

    강 장관도 그렇고 기자도 그렇고 이날 인터뷰는 조금 색다르게 진행하고 싶었다. 공식적이고 딱딱한 얘기보다는 정서나 가치관, 사생활 등 인간적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사적인 대화 말이다. 애초 강 장관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할 때도 그런 취지를 밝혔고 강 장관 또한 그에 호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검찰 개혁 문제나 현안인 특검 얘기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기엔 지난 10개월 동안 강 장관이 이룬 성과가 만만찮다. 게다가 강 장관과 정치권, 검찰의 관계는 또 얼마나 관심을 끌었던가. 그런 까닭에 인터뷰 약속이 이뤄진 후 강 장관에게 보낸 질의서에는 정작 이런 분야에 대한 질문이 잔뜩 적혀 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 찻집에 다시 마주앉았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인터뷰 배석자도 없었다. 강 장관이 차를 샀다. 소리가 조금 낮으면 더 좋을 듯싶은 여가수의 재즈풍 노래가 나른한 주말 오후를 붙들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이날 인터뷰가 예정된 세 시간을 넘겨 서초동 약속장소로 향하는 강 장관의 차 안에서까지 진행될 줄은 두 사람 다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비공식적인 인터뷰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질의서를 받아보고 놀랐어요.” 강 장관이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음악에, 풍경 좋고, 무슨 검찰 얘기를 하겠어요, 이런 데서. 검찰의 ‘검’자만 들어도 지겨워.”

    “검찰 ‘검’자만 들어도 지겨워”

    화랑에 왔으니 그림 얘기부터 해야겠다. 법무부는 최근 강 장관의 아이디어로 과천 청사 1동 2, 3, 4층 복도에 그림 85점을 전시했다. 유치원생, 소년원생, 교정시설 수용자들의 그림이 대부분인데 기증받은 기성 작가의 그림도 15점 포함돼 있다. 전시 제목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시인의 시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시예요. 개혁 개혁 하는데 시스템을 바꾸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문화적인 접근이에요. 일하는 것이 즐겁도록 공간환경을 꾸며주고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정서적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거죠. 또 하나 있어요. 교정시설에 있는 사람들한테 음악을 들려주는 거예요. 반경환 시인이라고, 클래식 음악에 일가견이 있어 책도 낸 분이죠. 옛날에 실형을 산 적도 있고. 그분이 한 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곡목을 짜주셨어요. 이것을 곧 교정시설에서 활용하도록 하려구요. 딱딱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정서적 접근을 통한 교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아직은 많이 미흡하죠. 시간도 너무 없었구요. 너무 일할 시간이 없어요. 지치고. 법무부 안에서 법무부 일만 하면 좋겠는데.”

    -춤과 음악에 일가견이 있으시죠.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춤이고 그 다음이 노래예요.”

    -노래,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죠. 잘은 못하지만.”

    -애창곡은요?

    “많죠. ‘고향의 노래’도 좋아하고. 가요는 김광석 것 좋아하고. 최근 CD 전집 사서 듣는데, 계속 들어도 편안한 특징이 있더라고요.”

    강금실 장관이 山中 찻집에서 털어놓은 인간적 고백
    2003년 11월29일 강 장관은 과천 청사에서 전국 일선 지검장들과 워크숍을 가졌다. 이날 회의가 끝나고 국무위원 식당에서 점심 먹는 자리에서 강 장관이 초청한 실내악단이 현악4중주를 연주한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반응이 좋았어요. 오신 분들도 좋아하고. 회의하면서 문화행사 하는 건 보편적인 거라 보거든요. 그런데 법무부나 검찰에서 그런 예가 없었는지 국무위원 식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얘기하더라구요. 저는 참 좋던데요.”

    -검사장들이 머쓱해하지 않던가요.

    “좋아하시던데요.”

    -익숙지 않을 텐데요.

    “좋아했어요. 모르죠, 속으론 어땠는지.(웃음)”

    -장관님을 보면, 몸 속에 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예술적 끼.

    “누구나 다 있잖아요.”

    -정열적인 끼가 느껴집니다. 내림인가요.

    “예술적 재능이 유전되긴 했어요. 아버지가 음악 선생이었거든요. 바이올린 하셨어요. 손재주가 뛰어났지요. 자식들이 음악적 소질은 있는 것 같아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습니까.

    “북 두드리는 걸 좋아하는데, 하도 배우다 말고 배우다 말고 해서. 대학 2학년 때 탈춤반에서 활동했는데, 법대 왔으니까 이런 건 그만둬야 한다, 뭐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그만두고. 그런 식으로 20년, 30년 가버린 거죠. 전 타악기를 좋아해요. 장고도 배우다 말았는데. 북은 나중에 다시 배워야죠.”

    -춤은 인간문화재한테 배우셨죠?

    “계속 배우지 못해 아쉽죠. 85년에 처음 배웠는데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배우다 말고. 그 후에 또 한 차례 배우다 말고.”

    -춤을 추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정신이 산만하면 춤을 못 춰요. 머리를 비워야 춤을 출 수 있어요. 너무 피곤하거나 신경 쓸 일이 많고 잡념이 있으면 못 춰요. 손발은 움직이지만 몸이 무겁죠. 오래 추다 보면 호흡이 저절로 배 밑으로 가라앉거든요. 명상 호흡법과 원리가 같죠. 명상 수준에 이르러야 제대로 몰입해 출 수 있어요.”

    판사 시절 춤을 배우다 만 게 못내 아쉬웠던 강 장관은 변호사 개업 후 제대로 배우겠다는 의욕에 경기도 도살풀이 인간문화재인 김숙자 선생의 딸한테 1년 가까이 춤을 배웠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잘 늘지 않았다.

    “96년인가 97년에 배웠는데, 영 안 되더라구요. 정신이 산만하니까. 변호사 개업한 다음 계속 돈 문제, 사건에 신경을 쓰다 보니 명상 수준에 이르지 못한 거예요. 처음엔 그냥 배우고 싶어 배웠는데 추다 보니 명상 효과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춤 배운 게. 사람들한테 권하고 싶죠. 차분해지죠, 이런 공간처럼.”

    -현대 댄스와는 많이 다르죠?

    “요즘 유행하는 검도나 단전호흡, 요가와 원리가 같다고 봐요.”

    “기형도 시 좋아해요”

    -첫 직업이 판사인데, 판사가 안 됐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대로 했다면 춤을 본격적으로 배우거나 그 주변을 왔다갔다했겠죠. 무용평론을 했던지.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죠. 대학교 1, 2학년 때는 불교와 신학에 관심이 많아 그쪽 책을 많이 봤죠. 그 후 사느라고 바빠 불경도 안 보고 절도 안 가게 됐지만. 지금 생각하면 30, 40대가 가장 세파에 시달리는 나이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50이 지나 늙으면 옛날로 돌아가 명상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저도 시집을 제대로 읽은 지 한 10년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난 또 시집을 냈다고 그러는 줄 알았네.(웃음) 국문과 나오면 다들 시집 안 내나.”

    -아닙니다. 국문과 나왔다고 다 시집 내나요. 법대 나왔다고 다 사시 되는 것 아니듯.

    “어떤 시, 누구 시 좋아해요? 나는 기형도 시 좋아해요. 특별한 느낌이 있는 시예요.”

    -저는 예전엔 김수영을 좋아했고….

    “저도 좋아해요. 대단한 시인이지요.”

    강 장관은 문학 얘기를 더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갈 길이 먼’ 기자는 화제를 바꾸었다. 내심 나중에 틈 봐 다시 얘기해야지 하고는. 하지만 문학 얘기를 더 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기자는 후회했다. 특검 얘기를 덜 하더라도 문학 얘기를 더 하며 강 장관의 정서를 더 깊이 들여다봤어야 했다.

    -법대는 어떻게 가게 됐습니까.

    “고등학교 때까지 잘 모르잖아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 줄.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 줄을. 10대는 자기 확인을 잘 못하는 나이 아닌가요. 인생에 대해 종교에 대해 관념적인 번민은 많았지만 구체적인 직업 선택에 대한 계획은 없었던 것 같아요. 뭐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데생도 배우러 다니고, 사진도 찍고, 연애도 하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확인이 안 됐던 것 같아요. 미학 강의도 듣고, 종교학 강의도 듣고. 그때만 해도 서울대 법대에 여학생이 세 명 들어갈 때였으니까. 객관적으로 성적이 너무 좋았거든요. 집에서 기대가 너무 크고 법대 가라고 주문하니까. 판사 하라고.”

    -성적이 좋은 게 문제였다?(웃음)

    “공부를 너무 잘한 게 문제였죠.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닌데. 하여튼 1등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법대에 들어간 거예요. 사실 갈등이 있었어요. 다른 것을 할까 말까. 10년쯤 지나니 갈등이 없어지더라구요. 예술도 현실 속에서 할 수밖에 없잖아요.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고. 우리 삶이라는 게 직업을 통해 생계도 해결하고, 전문성도 갖추고, 신분도 보장받고, 사회에도 기여하고, 그런 구도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죠. 누구나 현실과 접점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법대 가서 법률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죠.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죠. 다른 직업을 딱히 잘했을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왜 빚만 있고 재산이 하나도 없을까. 참 특이한 일이죠. 경제활동을 그렇게 오래했는데. 신기하죠, 저 말이에요.”

    -그런데도 사회생활 하는 데는 전혀 지장 없지 않습니까.

    “지장은 없죠.(웃음) 화사하게 호화롭게 살고 있죠.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원.”

    -많은 채무자들한테 희망을 주는 분이지요.

    “호의호식에 호화롭게 사는데, 어떻게 재산은 하나도 없지.”

    -매달 꼬박꼬박 갚고 있나요.

    “은행 이자 부담하고 있죠. 원금은 못 줄이고 있고.”

    -참 태평하시네요.

    “(웃음) 성격이 태평하니 이렇게 됐겠죠, 그쵸?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해. 어떻게 이 나이에 고급생활 하면서 재산이 하나도 없을까.”

    -그게 어쨌든 전 남편 빚이라는 건데,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도 그런 문제가 생기면 헤어지게 되나 보죠?

    “사랑은 하는데 돈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니구요, 그 문제를 겪는 과정에 사랑이 깨져나간 거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지. 사랑한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죠. 고통을 주는 거죠, 상대방한테. 내가 깨달은 것은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는 거예요. 결혼 전 연애할 때도 사랑과 고통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됐는데, 사랑한다면 고통을 줄 수 없는 거예요. 고통스러울 때는 이미 사랑이 아닌 거예요.”

    “사랑한다면 고통 줄 수 없어”

    강 장관은 “아 이게 사랑이 아니구나, 깨달았을 때 이혼을 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가해를 할 수 없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건. 많은 사람이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감수한다고 착각하는 거지. 그걸 깨달았어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서로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게.

    “종교적 생활 하는 사람들 봐요. 고통을 주지 않잖아요. 종교적 사랑이 충만하면 남한테 해도 안 끼치고.”

    -남자라면 지긋지긋하십니까.

    “아뇨. 한 사람과의 사랑이 실패한 문제지, 남자이기 때문에 싫다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살다 보면 생기는 문제니 사랑하고 있을 때는 예상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온전치 못한 사랑 속에서 살다 가는 거죠. 사랑이라는 게 있긴 있는데 가슴속에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잖아요. 보통은 그러다 가는 거 아니에요? 사랑이 찾아올 때는 행운이 온 거지.”

    -외로움을 느낄 때는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그거 어떡해야 하나. 어떡해요?(웃음) 원래 다 고독한 것 아닌가.”

    -누구나 고독하죠.

    “그냥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대개는 관계에 의해 고독을 나누거나 덜거나 하죠.

    “저는 깊이 천착하는 편이에요. 없애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파고들어 어디까지 가나 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원 상태라면 피하기보다는 수용해야죠. 그런 상태가 좋더라구.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편안함을 주죠.”

    시오노 나나미는 ‘남자들에게’라는 책에서 ‘자기 냄새를 피울 줄 아는 남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남자’를 매력 있는 남자로 규정했다. 이 얘기를 꺼내며 강 장관에게 물어봤다. 어떤 남자가 매력적이냐고.

    “따로 생각해둔 바는 없지만 만나서 매력을 느낄 때는 있죠. 자기 나름대로 갖고 있는 완결성이랄까. 나는 순수한 사람이 좋더라. 마음이 맑은 사람 만나면 기분이 좋구.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만나도 재미없고, 시큰둥하고, 헤어져도 기분이 안 좋고.”

    -전에 사랑했던 남자분들은 어땠어요.

    “딱히 뭐 만족스럽지는 않았는데.(웃음). 사랑했다기보다도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진짜 사랑을 하셔야겠네요.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마다할 리가 없다니까. 제일 중요한 건데.”

    -혼자 계시는 게 불편한 것 같지 않네요.

    “아주 편안하고 좋아요. 공간이 넓어지니 너무너무 좋더라구요. 특히 목욕탕을 혼자 쓰니 좋아. 집에 목욕탕이 2개 있는데, 전에는 언니가 하나를 쓰고, 다른 하나를 남편과 같이 썼거든요. 근데 혼자 쓰니 너무 좋은 거예요. 방도 혼자 쓰고.”

    인간적 정서에서의 흑백논리

    독신인 강 장관의 언니는 1994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강 장관 부부와 죽 한 집에서 생활해왔다. 강 장관은 인터뷰 시작 전 미술관 경내를 둘러볼 때 독립하고 싶은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동네(부암동)에 한번 와보고 나서는 반했어요. 새소리 들리고 공기도 좋아 혼자 전세로 오고 싶은데 언니가 반대해요. 떨어져 지내기 싫다고.”

    -학교 다닐 때나 판사 할 때 여성차별을 겪어본 적이 있나요?

    “없다고 할 수 없죠. 심하게 겪은 건 아니지만. 그런데 저는 있을 수밖에 없어 있는 차별에 대해선 분노하지 말자는 입장이에요. 성차별을 인정하자는 게 아니라 성차별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화낼 필요는 없다는 거죠. 분노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냉정해져야지. 아까 말한 인간적 정서에서의 흑백논리와도 관련된 얘기예요.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 분노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는 건 몹시 힘들죠. 그걸 이겨내면 이긴 거예요. 그 상태에서 벗어나면.”

    -지금은 양상이 좀 바뀌었지만 초기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등 과격한 면이 있었죠.

    “운동의 발전사로 봐야죠. 처음엔 분노하죠. 증오하고. 싸워나가고. 다치고. 그러다 평화가 찾아오고. 제 얘기도 분노하고 증오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지점까지 가야 한다는 거죠.”

    -페미니스트들의 주장 중 사회적 쟁점이 되는 것으로 간통죄 폐지, 낙태 권리, 일부일처제 반대 등이 있습니다. 장관님 생각은요?

    강 장관은 간통죄 폐지와 관련해 “장관으로서 적절치 않은 발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을 삼갔다. 대신 이에 대한 법리논쟁을 소개했다.

    “반사회성의 문제죠. 간통죄 폐지론자들은 남녀의 성교 행위를 반사회성 범죄로 처벌하는 것이 형사상 범죄구성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보죠. 행위 자체엔 범죄성이 없다는 거예요. 반면 존속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그것이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범죄성이 인정된다고 보는 거죠. 폐지론자들은 이에 대해 가정을 지키는 문제는 서로 의무를 다하는 도덕적인 문제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보죠. 또 의사결정 자유를 침해한다는 견해도 있고.”

    강 장관은 낙태 문제에 대해선 “인간 생명권과 관계된 것으로 법률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답이 없다”고 말했다.

    -개인적 시간을 별로 못 갖죠?

    “바쁘니까.”

    -일요일은 좀 쉬세요?

    “가끔은 일요일도 일해요. “

    영화에 대해 묻자 얼마 전 ‘코난’을 재미있게 봤다며 웃었다. 또 ‘매트릭스’ 시리즈를 좋아해 1·2편을 다 봤고(2편은 중간부터 봤다고 함) 곧 3편을 보러 극장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3편은 워낙 기대치를 높여놓아서 그런지 재미없다는 사람이 많던데요. 저는 그런 대로 봤지만.

    “찬반양론이 있데.”

    “권력무상이에요”

    -책은요?

    “머리가 차져야 읽지. 머릿속에 빈 공간이 있어야 남의 것을 볼 거 아니에요. 거의 못 봐요. 원래도 많이는 안 보지만. 요즘엔 다 귀찮고 미련이 없네요. 책 읽고 싶은 마음도 없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네.”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그만두시는 것 아니에요?

    “모르죠. 지금은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데, 더 있어야 한다는.”

    -비가 적당히 내리고 누군가와 한잔 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는요?

    “요즘 술 먹기가 싫어서요.(웃음) 그런 느낌 없는데.”

    강 장관은 요즘 가까운 친구들도 얼굴 본 지 오래됐다.

    “내가 지쳐 있고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가득 차 있으니 친구들도 재미없어 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차가 강 장관의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약속시간인 6시까지는 이제 10여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강 장관은 “마무리 질문을 하게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차를 약속장소 뒤편 골목으로 돌렸다. 차는 천천히 움직였다. 누군가가 강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옆에 앉은 탓에 강 장관의 얘기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됐다. 이광재, 안희정씨가 거론되고 ‘출금’ ‘알아보겠습니다’ 등의 말이 나온 걸로 미뤄 상대방은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아닌가 싶었다. 통화가 끝난 후 강 장관은 “권력이 뭔지. 권력무상이에요”라고 중얼거렸다.

    -나중에 대선후보로 추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어쩌시겠습니까.

    “내면에서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권력에 대한 욕망은 누구에게나 잠재돼 있지 않나요?

    “전 없어요.”

    강 장관이 단정적인 어투로 말했다.

    “권력의 문제는 내가 평생 고민하는 화두 중 하나예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자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게 권력의 문제, 자유의 문제, 사랑의 문제, 그런 것 아닌가요.”

    차가 약속장소 앞에 되돌아왔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에요.”

    차에서 내리자 세찬 바람이 달려들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주말 오후 강남의 거리는 혼잡했다. 반대편 도로는 아예 주차장이었다. 정확히 6시에 차에서 내릴 요량인지, 강 장관의 차는 도로 한 편에 서서 비상등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소통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신호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강북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문득 쓸쓸함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강금실 장관이 山中 찻집에서 털어놓은 인간적 고백

    환기미술관 앞에서. 강 장관은 “그림보다 미술관이 좋아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가진 직업이 부럽더라고요, 살다 보니.

    “깔끔한 면이 있어요. 조 기자께선 아직 나이가 젊은데요. 이제 뭘 새롭게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은 나이인데.”

    강 장관도 음악소리가 크다고 느낀 모양이다. 종업원에게 부탁해 음악소리를 조금 낮췄다. 법치주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우리 사회에는 실질적 법치주의가 정착이 안 돼 있죠. 게임의 법칙이 없고. 룰을 지키면서 전술전략을 써야 하는데 룰을 안 지키거든요. 제가 해야 될 일이나 참여정부의 역할도 법치주의의 정착이죠. 대통령 말씀이 잘 전달이 안 돼요. 공동체나 집단의 리더그룹, 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이 법에 의한 룰의 정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해관계나 역학관계에 의해서만 사물을 보니까. 법률가이시기도 한 대통령께서는 뭐든지 룰에 의해 얘기하는데, 사람들에게 이게 안 먹히죠. 무슨 엉뚱한 소리 하냐고.

    특검도 마찬가지예요. 어저께도 아는 변호사님이 저한테 권한쟁의심판 청구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야단 치셨는데, 어떤 측면이 있냐 하면 검찰이 잘하든 못하든 한 나라엔 일반적인 수사 시스템이 있다는 거죠. 지금 수사를 하고 있어요. 근데 국회가 나서서 중단시켜 (수사권을) 가져간 거예요, 이번 특검이란 것이. (수사가) 끝났는데 이러이러한 점이 문제니 특별 기구를 만들어 대책을 세우자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수사 시스템을 중단시키고 특별 시스템으로 넘기는 거잖아요. 이건 국가 시스템을 흔드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께서 법무부 건의를 받아 ‘수사중인 사건이니 다시 한번 검토해달라’고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는 것은 합법적인 절차예요. 그런데 이게 정치적 역학관계로만 해석되잖아요.”

    강 장관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강 장관보다 더 강한 원칙주의자다.

    “저는 어떤 문제를 풀 때 꼭 원칙만 고집하지 않고 여론이나 역학관계를 감안하는 좀 온건한 입장이거든요. 성격 자체가 그래요. 그런데 대통령은 안 그러시거든요. ‘죽어도 나는 원칙을 지키겠다’고 하시거든요.(웃음) 저보고 ‘법무부가 훨씬 정치적’이라고 뭐라 그러신 적도 몇 번 있었죠. 그럴 땐 저도 혼란스러워요. 원칙만 갖고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인간관계를 감안하면서 균형점을 찾아야죠. 법치주의이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과 정서가 살아 있는. 막스 베버가 정치 발전 단계에 대해 인치에서 법치로, 법치에서 다시 예술로서의 정치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제가 원하는 것도 한 단계 진전된 상태죠. 법만 요구하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죠.”

    노대통령의 고집

    -어차피 수사가 끝난 다음 특검을 할 바에야 아예 처음부터 특검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죠. 이런 식으로 수사 도중에 특검 할 바엔. 그런데 정치권에서 진정으로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최도술 사건이 터질 때부터 그런 얘기를 했어야죠. 하지만 한나라당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 이후잖아요. 한 달 가량 간격이 있어요. 최도술 건이 터진 게 10월 초고 특검 얘기가 나온 게 10월 말이거든요.”

    강 장관은 특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자신은 애초부터 특검 반대론자라고 했다.

    “일반적 수사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해야지 문제가 있다고 자꾸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면 부작용이 생기죠. 설렁탕 집에서 ‘특’을 주로 팔면 보통 설렁탕은 없어져버리잖아요. ‘특’이 일반화되고 또 다른 ‘특’이 나오겠죠. 검찰이 수사를 잘못한다면 바로잡아주는 쪽으로 접근해야지, 이거 안 되겠다, 빼버려야겠다고 하면 곤란하죠. 그러려면 차라리 검찰 없애버리지, 특별검사가 다 하게. 그럴 순 없거든요, 국가기관이라는 건.”

    -시민단체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특검제 도입을 요구해오지 않았습니까.

    “나무가 제대로 못 자란다면 약을 뿌리고 고쳐줘야 튼튼해지죠. 다만 시간이 좀 걸려요. 50년 동안 쌓인 검찰 조직의 문제가 3개월 만에 해결되겠냐구요. 5년 이상 천천히 가야죠.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걸 못 참아요. 나무가 시들시들하면 당장 뽑고 새 걸 심으려 해요. 고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인내가 없어요. 법무부장관으로 온 이후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원래 제 생각이 그래요. 형사법 시스템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특가법이란 게 특별법이잖아요. 국가보안법도 그렇고. 이와 관련된 형법이 사문화되다시피 했지요. 가치가 인플레된 사회예요. 차분하게 원형을 찾기가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죠. 저는 그런 점에서 보수적인지도 모르겠어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해 특검 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죠.

    “국민 여론이 그렇다면 해야죠.”

    강 장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찰이 독립적으로 수사할 여건이 갖춰졌다고 보십니까.

    “그것보다는 원칙에 반한다는 생각에서 (특검에) 반대하는 겁니다. 정말 목숨 걸고 수사하고 있는데 ‘너 안 되겠다’며 도로 빼앗는 꼴이잖아요.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수사검사들이 느낄 낭패감을 생각해봐요. 일반 국민의 시각과 전문가 시각엔 갭이 있어요. 검사들은 수사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어요. 수사에 대한 철학이랄까 방법론이랄까. 저는 여기 와서 그걸 이해했거든요. 여론이 일일이 전문가 영역에 개입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모양은 더 안 좋아진 것 같아요. 거부권이 행사되고 재의결되는 바람에.

    “특별히 더 나쁠 게 뭐 있겠어요.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강 장관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결국 검찰과 특검을 경쟁시키자는 것 아니에요? 이제 대선자금 수사와 측근비리 특검 수사가 같이가게 생겼잖아요. 어떻게 할 거냐구요. 수사로 도배질하게 생겼는데. 세계적으로 이렇게 특검 하는 나라는 없어요. 특검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건 옳지 않죠.”

    강 장관은 기자가 검찰이 최근 일부 인사를 대선자금과 관련 없는 개인비리로 구속한 것을 거론하자 “특검 얘기 그만하죠” 하며 말을 잘랐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혐오감을 느껴요. 외형상 특검법 발의는 합당하고 타당해요. 법률적 구성요소도 갖추고 있고. 검찰 인사권자의 주변 사람들 문제니까 다른 데서 수사하자, 좋아요. 그런데 이것을 도입하는 과정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구요. 그런 순수한 의도에서 특검을 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얘기하다 보니 기분 나빠지네요. 상대방 약점을 잡아 자기 힘 과시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

    “도대체 뭐가 정의냐구요?”

    강 장관은 특검을 추진한 정치권을 강한 톤으로 비난했다. “기사엔 넣지 말라”며 거친 표현도 사용했다.

    “도대체 뭐가 정의냐구요. 절차상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동기와 의도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건가요. 동기와 의도가 명백한데. 총선 때까지 특검을 끌고 가 시끄럽게 만들고 망신 주겠다는 건데. 도대체 측근비리가 있는 대통령이 나쁜 거예요, 그것을 이용하는 한나라당이 더 나쁜 거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강 장관은 측근비리라는 용어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측근비리라는 것은 대통령 재임중 측근들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말해요.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는 건 대선 때 일이에요. 측근비리라는 말 자체가 안 맞는 거죠. 우리 사회엔 이런 식의 용어 인플레가 많아요.”

    “특검 얘기 너무 오래했죠” 하고 강 장관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특검 관련 질문을 더 던질 뻔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부드러운’ 얘기로 넘어갔다.

    -대중적 인기가 대단합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면.

    “자꾸 드러나는 게 뭐가 좋겠어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기분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공직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건 긍정적 측면이 있죠.

    “나쁠 건 없지만 특별히 좋을 것도 없어요. 나하고 관련짓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효리요?

    “인기를요. 어느 정도인지 실감도 잘 못하겠구요. 신문에 매일같이 사진이 나더군요. 공직자의 업무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라고 받아들이고 싶어요. 인기가 있으니 별명도 붙었겠죠.”

    -화내셨다면서요?

    “그건 공보관이 잘못 전달한 거예요. 강효리라고 해서 화낸 게 아니고 공식 업무수행을 다룬 기사에서 제목을 강효리라고 붙인 건 곤란하지 않느냐는 뜻이었죠. 그런 경우 외에는 맘대로 불러도 상관없어요.”

    -드라마 ‘대장금’에 빗대 강장금이라고도 하지요.

    “상관없어요.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되죠. 그 드라마, 초기에 한두 번 봤는데 눈에 띄게 재미있더라.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추리적인 요소가 있어요. 그래서 재미있는 거예요.”

    -강 장관의 높은 대중적 인기를 두고 여성적 리더십이 한국 사회에 먹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더군요. 장관께서 생각하는 여성적 리더십엔 어떤 특징이 있나요.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본의 아니게 제가 그 변화의 한 축에 서 있는 거죠. 그런 거지, 그것이 저와 바로 일치된다는 느낌은 못 받고 있어요. 젊은 여성이 법무부장관에 취임했다는 게 일종의 사건이었던 데다 변화에 대한 요구, 특히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강했잖아요. 그것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게 아닌가 싶죠.”

    -여성성이라는 걸 의식하는 편인가요?

    “그냥 편한 대로 살아요. 좋아하는 대로. 더 좀 그러고 싶은데, 사실은. 직업이 하도 얌전하게 지내야 하는 직업이라 맘놓고 못 그러죠.”

    -국회에서 화장하는 것까지 화제가 됐었지요.

    “점심 먹고 와서 잠깐 카메라가 안 보이기에 얼른 콤팩트를 했는데 찍혔더라구요. 아직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해요. 그래서 실수를 많이 하는 거죠. 기도하는 듯한 모습도 찍히고. 맘놓고 킥킥거리다가 녹음 당하고. 좀 둔해요.”

    -대중적 인기라는 게 공인들한테는 긍정적 부정적 양 측면이 있을 텐데, 관심이나 기대나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지 않겠습니까.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의식하지 않아요.”

    -시민들한테 편지도 옵니까.

    “그건 모르겠고. 오다가다 잘해주죠. 물건값도 깎아주고. 선물도 주고. 백 사면 지갑도 주고.(웃음) 고맙죠. 미장원에서 머리도 잘라주고 화장도 고쳐주고. 잘해줘서 고마워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daum) 카페에는 강 장관 팬클럽 모임이 8개나 있다. 그중 ‘강금실 법무장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회원 수가 5000명을 넘는다.

    -인터넷 팬클럽 사이트에 들어가본 적 있습니까.

    “어쩌다 한번요. 집에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아 자주 볼 수는 없고.”

    -‘강금실 장관 5년 재임을 위한 모임’도 있는데요.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여성 법무장관인 재닛 리노는 8년간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 뜻대로 되겠어요?”

    강 장관은 “법무장관이라는 자리가 이토록 많은 일을 하는 자리인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여기서 잠깐 강 장관이 지난 10개월간 추진한 개혁 관련 업무를 살펴보자.

    먼저 검찰 인사위원회 운영 개선. 자문기구에 불과하던 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해 실질적인 권한을 갖도록 했다. 또 검사장급 이상에만 해당되던 위원 자격을 평검사에게도 부여하고 외부인사를 2인 이상 참여토록 해 검찰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추게 했다.

    다음으로 철저한 상명하복으로 검사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었던 검사동일체 원칙을 폐지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규정을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로 개정했다. 또 위법하거나 부당한 지시에 대한 이의제기권을 신설했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준법서약서도 과감히 폐지했다. 아울러 인권보장기관으로서의 위상 확립을 위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제도를 개선하고 국선 변호 대상을 확대하는 한편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제도를 도입했다.

    수사권 남용을 방지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검사적격심사제를 도입해 검사 임관 후 일정 주기마다 직무수행능력을 심사토록 했다. 말하자면 검사 재임용 심사인 셈이다. 또한 ‘제 식구 감싸기’ 시비에 휘말려온 감찰제도를 강화할 방침이다. 법무부 감사관실을 장관 직속 감찰실로 격상시키고 장관 자문기구로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대검 감찰부가 1차 감찰기구라면 법무부 감찰실은 2차 감찰기구가 되는 셈이다.

    검사 직급 폐지와 단일호봉제 도입도 눈에 띄는 개혁방안이다. 검찰의 수직적 구조를 개선하고 검사의 신분보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현재 검찰총장-고검장-검사장-검사 4단계로 구성된 검사의 직급체계를 2단계로 축소, 고검장·검사장 직급을 폐지했다. 그에 맞춰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검사의 보수 체계를 단일호봉제로 변경했다.

    “편하죠, 내일 당장 그만두면”

    이 정도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쌓인 과제들을 부임 1년도 안 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의 반발도 만만찮다. 그 탓에 강 장관은 지난 10개월 동안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현재 개혁업무를 총괄하는 부서는 정책기획단. 여기에 최근 검찰 내·외부 인사 13명으로 구성된 ‘제도개선연구팀’이 장관 직속기구로 발족돼 인사·조직 개편안을 연구하고 있다.

    “하는 데까지 하다 가야죠. 일 자체는 재미도 있어요. 검찰 개혁과 관련한 제도개선 방안이 시행되고 정착되기까지는 몇 년 걸릴 것 같아요. 적어도 정착할 때까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교정행정도 개선할 게 많고.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오래 있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내일 그만둬도 좋거든요. 편하죠 뭐, 내일 당장 그만두면. 가장 고통스러운 게 새벽에 일어나는 거예요.”

    -보통 몇 시에 일어나시는데요.

    “아침 약속이 있으면 7시 반에 나서야 되니까.”

    -원래 야행성이신가 보죠.

    “예.”

    -그러면 보통 일이 아니네요.

    “보통 일이 아니에요, 진짜로. 가을 들어와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고민이에요. 잠 때문에.”

    -잠이 최대 걸림돌인가요, 장관직 계속하는 데.

    “예. 잠하고 식사.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니까. 아침 회의가 많으니 꼭 먹게 되죠. 점심때도 회의 끝나면 먹어야 하고. 저녁때 회식하면 또 먹어야죠.”

    -식사량을 조절하시면 되잖아요.

    “그게 안 돼요. 음식을 앞에 두고 안 먹을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오래 못할 것 같아. 오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오래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어찌 보면 검찰 제도개혁은 이제 시작이거든요.”

    -가장 큰 목표가 그것이군요, 검찰개혁.

    “검찰개혁이 가장 중요하죠. 검찰이 제대로 돼야 나머지도 원활하게 돌아가죠. 2∼3년은 해야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힐 것 같아요. 검사들한테는 한 3년 하겠다고, 2006년까지 있겠다고 얘기했죠. 그런데 있고 싶다고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더라구, 와보니까.”

    -우리도 이제는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장관이 나올 때가 됐지요.

    “내가 검사들에게 2006년까지 있겠다고 얘기한 것을 대선 출마와 연결시키기도 하더라구요. 2007년 12월에 대선 있으니 1년쯤 전에 장관 그만두고 대선 준비한다는 거지.”

    -그때 가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사람 팔자는 하늘의 뜻에 맡기는 게 좋아요.”

    강 장관은 “내일 당장 그만둔다 생각하면 너무 즐거워요”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공직자 생활보다는 개인 생활이 훨씬 낫거든요. 놀아야죠. 놀 것 생각하면, 그만둬야죠.”

    -몇 년 전 미국에서 한 장관이 아이들로부터 아빠 노릇에 충실해달라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사표를 내 화제가 됐죠.

    “장관직에 업무수행 이상의 의미는 두지 말아야 돼요. 거기다 자신의 퍼스낼러티를 실으면 안 된다는 거죠. 내일 당장 그만둘 수 있을 정도로 태도가 객관화돼야 해요. 내가 장관이 됐으니까 무조건 오래 해보고 싶다는 태도는 촌스러운 것 아닌가요? 아까 인기에 대한 부담이 없냐고 물었는데 인기나 평가는 국민의 몫이고 나는 나대로 일을 하면 그만이에요. 인기가 떨어지면 할 수 없지, 내가 왜 부담을 가져요. 일 못하면 인기 떨어질 거고, 그럼 그만둬야지. 환기미술관에 와 즐기는 건 내 일이지. 하지만 공직이란 건 내 일이 아니잖아요. 국민의 일을 대신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 일 못한다는 평이 나오면 빨리 그만둬야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도록.”

    최근 강 장관 관련 기사 가운데 화제가 된 것 중 하나가 민주당 추미애 의원과의 비교다. 강 장관이 나이와 사시기수로 1년 선배다.

    -추미애 의원과 비교하는 기사를 보면 솔직히 기분이 어떠세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뭐 언론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죠.(웃음)”

    -기사거리 없으니까?

    “글쎄, 언론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기사화되는 걸 보면.”

    -자꾸 건드리니 추미애 의원 쪽에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던데요.

    “총선 지나면 조용해질 거예요. (2004년) 2월15일 지나면. 2월15일이 총선에 출마하려는 공직자의 데드라인이거든. 그때 되면 안 나가는 게 확실해지니까 잠잠해지겠죠.(웃음) 어쩌려고들 그러는지 몰라, 내가 안 나가면. 그것 좀 물어보고 싶어요. 언론에선 어떻게 생각하는 거예요? 나갈 거라고 보고 있어요.?”

    강 장관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기자가 “언론의 희망사항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또다시 “언론 나름대로의 사정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냐”며 한참 웃었다.

    -예전에 국민회의에서 영입하려고 한 것은 사실인가 보죠?

    “거짓말은 아니죠. 근데 나 궁금해. 나 안 나가면 어떡할라 그래요.”

    강 장관이 또 웃어제꼈다.

    -말씀하시는 게 꼭 나갈 것 같네요.

    “아니, 재미있어서. (내가 나간다는 얘기를) 너무 퍼뜨려놓아서. 안 나가면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강 장관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 나가면 안 나가는 대로 또 기사 만드는 거죠 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뭐 이렇게?”

    -바람만 잡았다고.

    “바람만 잡고….”

    정계 소식통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이 최근 서울 강남 모 지역을 대상으로 강 장관 출마를 전제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나라당 중진인 모 의원을 더블 스코어로 눌렀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려주자 강 장관은 “우와, 진짜 인기가 있구나” 하고 즐거워했다.

    “노는 게 꿈이야, 진짜로”

    -열린우리당의 구애 공세가 대단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도 않아요. 하도 내가 시큰둥하니까. 이해를 하시죠, 제 성격을.”

    -공식 제의는 없었나요.

    “예. 괜히 그러는 거죠.”

    강 장관의 제의로 차를 더 시켰다. 이번엔 기자가 샀다. 머리 스타일이 화제에 올랐다.

    “파마머리 때문에 난리가 났었지요. 동네 미장원 갔다왔냐, 웬 아줌마냐 하며. 저는 미장원에 가면 따로 주문을 안 해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미용사가 알아서 해주거든요. 지난번엔 미용사가 한번 심하게 볶은 거지.”

    -삶의 계획표라 할까, 나는 몇 살 때 뭘 하고 뭘 성취하고, 이런 계획표를 작성한 적이 있습니까.

    “한번도 없었구요. 아무런 계획 없이 사는 사람이에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획 세우면 얼마나 좋겠냐만. 여기서 이제 잘 해봐야지 하고 맘 먹으면 꼭 다른 데로 옮기게 되더라고요. 판사 시절 초기엔 갈등이 많았는데 10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지요. 비로소 법률 전문가로서 기량도 쌓고 정진하겠다고 맘먹었는데 그때부터 가세가 기울어서 등 떠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