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운동 하고 개혁 부르짖는 사람들, 자기반성 필요
- 2006년 개헌 가능성 발언, 국회가 정치의 중심 돼야 한다는 뜻
- 언론개혁, 언론계가 자율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
- 역지사지, 기브 앤드 테이크, 신뢰가 정치협상술의 요체
- 노 대통령, 중요한 문제에서 나와 입장 달리한 적 한번도 없다
- 김홍일 공천 부탁 안 들어줘 DJ와 멀어져

역대 대통령은 국회의장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 몫의 부의장과 상임위원장, 사무총장(장관급), 의장비서실장(차관급)까지 사실상 임명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심지어 부의장실 비서까지 청와대가 명단을 내려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국회가 ‘통법부(通法府)’라는 놀림을 받던 시대의 이야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7월17일 제헌절에 국회의장 공관을 방문해 4부 요인들과 만찬을 들며 대화를 나눴다. 대통령이 국회의장 공관을 방문한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 김 의장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날 만찬은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의 관계, 김 의장이 여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준 행사였다.
국회의사당 의장실에서 김 의장을 2시간 반 동안 인터뷰했다. 당초 오후 3시 반부터 시작할 예정이던 인터뷰가 20분이나 지연됐다. 김 의장이 답변자료를 검토하는 동안 김기만 공보수석이 부지런히 의장 방을 드나들었다. 보좌관에게 ‘왜 이렇게 늦어지느냐’고 묻자 웃으며 ‘지둘러’라고 대답했다. 호남 사투리로 ‘기다려’라는 뜻의 ‘지둘러’는 김 의장의 닉네임이다.
“17대 국회, 의회정치 시대 열 것”
-제헌절 의장 공관의 만찬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노 대통령이 식사 전에 기자들에게 국회의장 공관을 방문한 뜻에 대해 잠깐 말씀하시더라고요. 첫째, 의회를 존중하고 의회가 정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의장 공관을 방문했다더군요. 둘째, 김원기 국회의장에 대한 개인적 신뢰와 존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어요. 제헌절에 4부 요인들이 의장 공관에서 만찬을 한 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17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회가 정치의 중심에 서는 의회정치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기대해도 됩니다.”
-공·사석에서 여당이 제1당을 차지한 국회구조에서 대통령이 지명하지 않은 최초의 국회의장이라는 말을 자주 하던데요.
“불과 1, 2년 사이에 정치구조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개원사에서 ‘제2의 제헌국회’란 표현을 감히 썼습니다.
첫째, 17대 국회를 만든 4월15일 총선거가 역대 어느 선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했습니다. 관권 개입이 일절 없었습니다. 선진국에 비교해 조금도 손색없는 선거였습니다. 깨끗하고 돈 안 드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먼 나라의 꿈 같은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4·15 총선에서 이뤄졌어요. 얼마 전 농협중앙회장 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 과거엔 농협회장선거도 돈 선거였어요. 교육감선거마저 돈 선거였으니까. 그런데 국회의원선거가 깨끗해지니까 농협회장선거도 깨끗해졌어요. 자연스럽게 변화가 온 거죠.
과거 여당에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고 갑론을박하는 과정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최종적으로 공천권을 장악한 것은 대통령 아니었습니까. 이번 총선에서는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공천과정에서 전국구건 지역구건 단 한 명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어요. 행사할 수 없게 시스템이 갖춰졌어요.
17대 원(院) 구성에서는 대통령의 의지와 관계 없이 의원 합의하에 국회의장이 탄생했습니다. 내 권한에 속하는 사무총장 이하 국회직을 임명할 때 단 한 명도 청와대 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면 야당도 같이 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대적인 흐름이 형성된 겁니다. 야당 몫인 상임위원장도 당 총재가 임명하지 않고 의원총회에서 경선을 통해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모두 불과 1, 2년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대통령 권력이나 당권을 가진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경선 또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모든 결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1, 2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정치에서 상상할 수 없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일부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자랑스러운 변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굳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여야간 대화의 정치가 실종된 느낌입니다. 야당 대표가 ‘유신독재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공격받고 있죠. 야당은 여당에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벌써부터 대선 전초전을 보는 것 같아요.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했지만 자영업이 무너져내리고 있어요. 일자리가 없어 대졸 ‘백수’가 넘쳐납니다. 경제가 어려운데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정치가 과거사에 매달리니까 국민이 피곤해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대단히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특히 서민경제가 어렵습니다. 내수가 일어나지 않고 투자의욕이 상실돼 있습니다. 수출을 비롯 거시지표는 대체로 괜찮은 편입니다. 그러나 피부로 느끼는 경제지수는 우울할 정도입니다. 이런 마당에 지난 일을 붙들고 지나치게 소모적인 정쟁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빨리 경제를 살리고 국민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여야가 힘을 합치는 일에 국정의 무게를 둬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군사독재 시절을 그리워한다든지, 거기에 지나친 평가를 하는 데 마땅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왜 이런 병리현상이 생깁니까. 민주화운동을 하고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고 봐요. 얼마나 실망했으면 국민의 심리가 거기까지 가겠습니까. 민주화세력에 낙담한 국민이 독재를 그리워하는 거죠. 역사가 옳지 못하다고 규정지은 시대로 역류하려는 현상이 생기는 것은 민주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현실정치에서 그만큼 국민한테 잘못했기 때문이죠.”
정치는 직업이자 취미생활
김 의장은 ‘군사독재 시절’에 관해 말하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길 꺼렸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박 전 대통령의 인기도가 올라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김 의장은 “당적을 떠나 여당과 야당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국회의장이 야당 대표와 직결되는 문제에 관해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러한 현상이 오게 된 데 대해 집권세력이 남을 나무라기 전에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2006년 개헌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더군요. 이 시점에서 개헌 이야기를 꺼낸 뜻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개헌의 방향은 어느 쪽입니까.
“국회가 개헌 논의를 포함해 정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뜻에서 그런 말을 한 겁니다. 과거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이 국회에서 이뤄진 적이 없어요. 대통령 권력이나 당권을 장악한 카리스마적인 당 총재가 밖에서 결정을 내리면 국회에선 형식적 논의만 이뤄졌죠. 그래서 국회를 ‘통법부’라고 한 거죠. 17대 국회에서는 모든 논의가 국회의 장으로 모여 여기서 충돌할 것은 충돌하고 소용돌이칠 것은 소용돌이쳐야죠.
그래야 국정이 안정됩니다. 국회에서 법으로 통과된 것도 국회가 통과시켰다고 생각지 않고 청와대에서 시켰다고 생각하니까 갈등이 청와대로 집중되는 겁니다. 나는 시민단체가 이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민단체 때문에 국회가 형식적인 절차로 흘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개헌 문제도 국회 안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봐요.
이원집정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책임제, 대통령중심제 같은 논의를 국회에서 해야죠. 그리고 지금처럼 정치권이 사생결단하는 선거여서는 안 됩니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바꾸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지금 이대로 가서는 문제가 많다는 생각은 같습니다.
선거용으로 써먹지 말고 국회에서 여야가 함께 논의를 해야죠. 개헌처럼 중요한 문제는 어느 당이 수로 밀어붙일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각계 여론을 듣고 전문적인 의견을 수렴하고, 여야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해관계를 절충하고, 바뀐 시대상황에 맞는 제도를 연구하고 찾아내는 장이 국회 안에 마련돼야 합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다른 문제가 있으니까 2006년쯤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의장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18년 동안 했다. 마지막 직책은 조사부장. 동아일보 퇴직 사우들에 따르면 기자로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김 의장은 이 이야기를 꺼내자 솔직하게 “기자로서는 재미를 못 봤죠. 나는 정치에 더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에 자신이 넘친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정치는 김 의장의 직업이자 취미생활이라고 말한다.

인터뷰중인 김원기 국회의장.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에 유학을 가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직장을 잡은 것이 동아일보였다.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정치의 꿈을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시절 언론계에는 정계(政界)로 가는 징검다리로 기자생활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79년 언론계를 떠나 제10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때도 동아일보라는 배경이 큰 힘이 됐다고 자서전 ‘믿음의 정치학’에서 회상하고 있다.
언론계 출신 정치원로로서 김 의장은 열린우리당에서 논의되는 언론개혁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청와대, 열린우리당과 언론의 관계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메이저 신문과의 관계가 불편합니다. 권력이 주도하는 언론개혁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권력과 언론의 적절한 긴장관계는 필요하지만 대립하는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까요.
“언론과 권력이 대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언론계 스스로 규제하고 개혁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지요.
언론은 정부권력에 못지않은 영향력과 비중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 기업하고는 다릅니다. 시대에 맞게 스스로 변화해야 합니다. 신문시장의 공정거래 질서 확립도 신문사 자율에 맡겼지만 잘된 적이 별로 없어요. 언론계도 스스로 그 점에 대해 반성해야 해요. 권력의 규제가 있기 전에 언론이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게 스스로 변화해가려 노력해야 합니다.
언론계의 변화는 언론에 맡겨야지 밖에서 나서서는 안 됩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말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권력의지만으로 언론개혁을 강행해 성공할 수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아요. 지금 열린우리당에서 하는 건 내가 알기로는 당장 어떻게 하겠다기보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과정입니다. 급격하게 당장 어떤 것을 마련하기 위한 과정은 아니라고 봐요.
실질적으로 국민을 이끌고 나가는 면에서 우리나라처럼 언론의 영향력이 큰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요. 권한에 걸맞은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17대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 창당과 탄핵 바람으로 초선의원의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지금까지 초선 비율이 가장 높았던 때는 여소야대로 구성된 13대 국회(55.9%)였다. 1992년 14대 39.1%, 1996년 15대 46.2%, 2000년 16대 40.7%였다. 17대 국회는 초선이 63%로 국회의원 299명 중 187명이 초선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지금까지 구경하지 못한 ‘변종’이 대거 출현한 것이다.
17대 국회에서 최다선(6선) 원로인 그에게 초선의원들에 대한 당부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젊은 의원이나 초선의원이 늘어난 현상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초선 의원뿐 아니라 모든 의원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정치를 좀더 긴 호흡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인기나 여론의 진폭에 매달리지 말고 모름지기 자기 축적과 내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힘쓰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튀는 의원이 많긴 하지요. 자기의 독특한 개성이나 소신을 내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조직에 참여한 이상 정말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조직의 결정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러나 ‘당이 결정하면 나는 따른다’는 식으로 당명(黨命)이 절대적이던 시대는 지나갔죠. 개별적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당이 다 규제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법안통과 또는 정책결정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