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연 변호사는 헌법소원을 가장 많이 내고 가장 많이 승소한 변호사다. 240여 건의 헌법소원을 제기해 그중 50건 가량을 승소했다. 대표적인 것이 수도이전 위헌 결정을 받아낸 헌법소원이다. 이 변호사가 8월21일 ‘동아일보’ 논설위원들을 대상으로 ‘헌법 정신에 비춰본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과 현 정부의 정책’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으로부터 나오고 대통령의 정책 수행은 헌법 집행 행위”라며 노무현 정부 정책의 위헌요소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헌법 경시 풍조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강의 내용을 정리했다.
최근 한 모임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저한테 농담 비슷하게 “대통령이 일을 좀 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 헌법을 들이대며 재단하느냐, 그러니 어떻게 일을 하느냐….” 이런 투로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깜짝 놀랐어요. 제가 “돈 안 받고 헌법 강의해줄 테니 청와대에서 좀 들으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헌법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보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봅니다. 대통령의 직무집행 행위 자체가 헌법 집행 행위입니다.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은 헌법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이는 교과서적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청와대뿐 아니라 여당, 아마 언론계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모든 정부 정책이나 권력은 헌법에 근거를 두고 헌법의 범위 내에서 행사돼야 한다는 게 기본 상식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 하나하나가 헌법과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의 거창한 통치구조 같은 걸 떠나서라도 말입니다.
오늘 오후에 개인택시 기사들이 찾아와 “개인택시 부제(部制)가 부당하니 헌법소원으로 구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개인택시는 하루 운전하고 하루 쉬는 부제가 있죠. 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손님이 꽤 많은데 부제 때문에 운행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범택시, 점보택시, 회사택시에는 부제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개인택시의 안전을 위한다는 근거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는 헌법상 직업의 자유, 영업의 자유, 평등권,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크게 침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은 국민의 생활규범 자체이며, 그 어떠한 법도 헌법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지금 국내 경제는 큰 침체기를 겪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31%이며 성장률도 3%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설비투자도 감소하고 있고,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반(反)기업 정서가 팽배하며 내수는 다시 감소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자가 느끼는 체감경제는 굉장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우리 경제가 이처럼 어려워진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국가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일관성 결여,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 상실이 주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는 신뢰와 예측 가능성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헌법의 바탕은 개인주의
2년 전쯤 TV에서 노 대통령은 시장경제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시장경제 원리는 정글의 법칙이 아니며 신뢰, 법적 안정성, 예측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걸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법치주의입니다. 법치주의까지 포괄적으로 전제되는 것이 헌법상 자유시장 경제원리입니다.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제 질서의 기본이 자본주의에 입각한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헌법 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緊切)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라는 두 가지 이념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이념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헌법은 적법절차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의회주의, 사법권 독립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적법절차를 내용으로 하는 법치주의입니다. 이런 이념과 수단에 의해서 달성하려는 기본적 가치, 최고의 가치질서는 바로 우리 헌법 10조에 담겨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추구권이 최대한 확보되는 사회 건설이 그것입니다.
덧붙여서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헌법은 상당한 개인주의적 바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미국의 독립선언서 구절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최고의 가치는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이고 행복 추구입니다. 이는 우리 헌법뿐만 아니라 인류보편의 가치라고 봅니다. 학자들은 이것이 헌법개정시에도 고칠 수 없는 ‘헌법 개정의 한계(限界) 사항’이라고 합니다.
헌법 4조에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해 평화적 통일정책을 추진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통일 후 우리의 정치·경제·사회 체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입각해야 한다고 헌법은 명백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통일정책은 어디까지나 이를 추구하는 데에 모아져야 하는데도 지금껏 우리의 통일방안 어디에도 그 원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원리를 주장하면 오히려 통일에 방해되며 수구적이라고 비난받는 실정입니다.
대북정책, 동북아 균형자론 모두 위헌
제가 경실련에 있을 때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이종석 사무차장과 상지대 서동만 교수는 헌법에 규정된 통일정책에 대해 “그것은 통일 이후에 논의해야 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근식·강철규 교수도 “그러한(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은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며 “그것을 조장함으로써 오히려 통일론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북한에서는 통일체제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로 통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동방정책을 추진할 때 서독 헌법재판소는 독일 통일정책의 기본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조금이라도 위반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어떤 통일이 돼야 하는가’를 묻지 않는 몰(沒)체제적인 통일지상주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통일은 자유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돼야지,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가 통일의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헌법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은 헌법상 우리 국호(國號)이고 우리 정체성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국가 일개 부처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장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도 쓰지 말고 태극기도 흔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이는 그 자체가 위헌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 북한이라면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헌법에 명백하게 규정된 국호와 상징을 일개 부처가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분명 위헌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의 기본적 인권상황을 도외시하는 대북정책 역시 위헌소지가 큽니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다수결로 통과시킬 때 우리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모두 기권했습니다. 이건 국가로서의 직무유기 이전에 위헌 행위입니다. 헌법 제10조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기본권적 가치는 인권의 보편성 원칙에 의해 북한 주민에게 당연히 적용되는 겁니다. 우리가 앞장서야 하는데도 6자회담에 장애가 되고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권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 코앞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했습니다. 한때 노 대통령은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을 주장했지만 사실 동북아 균형자론은 그 자체가 허구이자 한미 동맹관계만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 절차와 내용도 모두 헌법에 위배됩니다. 그런 중요한 내용은 국가안보회의 자문을 받아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고 관계 국무장관 총리의 부서(副署)를 거쳐 반드시 문서화하도록 헌법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3사관학교 치사에서 이를 발표했습니다. 그후에는 청와대 e메일로 보냈습니다. 이는 절차적으로 엄연히 헌법 위반입니다.
대통령의 언행은 헌법 수호자로서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행사 방법을 헌법에 정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 절차를 밟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 안위(安危)에 관한 중요사항이기 때문에 국민투표 사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일·외교·국방정책은 그 중요성을 감안해 대통령에게 국민투표를 통한 민주적 정당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헌법 72조에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한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대통령이 재량껏 국민투표에 부쳐도 좋고, 안 부쳐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헌법 해석상 이를 자유재량이 아니라 기속(羈束)재량이라고 합니다. 일정한 요건이 갖춰지면 그 행위의 중요성에 비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리 버린 盧 정부 주도세력
지난해 김영일 헌법재판관은 수도 이전과 관련해 ‘관습헌법 개정사항이 아니라 국민투표에 부칠 사항’이라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저는 이번에 소위 수도분할법,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의 판단에서 헌법재판소가 이 이론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제부처 하나를 옮기는 것도 대외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총리실과 23개 부처를 집단으로 이전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국가 안위에 관련되는 중요한 사항이며 설사 백보를 양보해 관습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헌법 72조에 규정된 국민투표 사항입니다.
우리 헌법은 국민 소환제도나 국민 발안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직접민주주의로 유일하게 72조의 국민투표와 헌법 개정 때 국민투표만 채택했습니다. 재신임 같은 것으로 국민투표를 주장할 게 아니라 외교·국방·대외·대북정책에 대해 이 조항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의 정책에는 일관성이 결여돼 있습니다. 정부는 서울을 동북아 경제중심,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산업·금융 관련 부처를 전부 지방으로 옮긴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 주도세력에게는 실리(實利) 추구 의식이 희박한 듯 보이며, 세계 변화에 대한 전략적 사고도 빈곤합니다. 협력과 편승 전략을 펴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용의주도함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모든 것이 개혁과 변혁에 맞춰지고 개혁을 위해서라면 헌법을 뛰어넘어도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어느 정권을 불문하고 개혁 정책의 방향은 국민의 구체적 삶을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실용주의적 방향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명문화되어 있진 않지만 우리 헌법은 국민 생활의 상향적 조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큰 사회구조 골격을 형성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개혁에 접근해야 하며, 거창한 이념을 주장하는 개혁은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헌법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사회적 합의의 기준으로 해서 점진적으로 추구하는 실용주의 방향의 개혁 필요성이 절실합니다.
우리 헌법은 권력이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의해 독점 행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책 결정 이나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참여의 기회균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여의 기회균등에 바탕을 둔 국민적 합의만이 헌법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고 개혁과 국민 통합을 이루는 길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름은 ‘참여정부’이지만 실제로 국민의 참여는 매우 저조합니다.
링컨과 노무현이 다른 이유
얼마 전 국민이 대통령에게 정권을 맡길 때 과연 어느 범위까지 위임했는가 하는 위임의 한계에 대해 헌법학자들과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고 훼손할 수 있는 권한까지 대통령한테 부여한 건 아닙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미 연방을 분열의 위기에서 구해 통합하고 자기를 희생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벤치마킹하면서 닮고 싶어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대통령의 모든 권위는 국민에게서 나오며, 국민은 대통령에게 나라의 분리를 결정하는 권한까지 부여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의무는 현 정부를 인수한 상태에서 관리하고 후임자에게 손상되지 않은 채로 넘겨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링컨은 노예해방도 했지만 미 연방을 분열의 위기에서 구한 통합의 대통령, 관용의 대통령으로 높이 평가받습니다. 링컨이 국민을 통합하는 기준은 항상 헌법 정신이었습니다. 링컨은 헌법 정신을 강조해 국민 통합을 이뤘고, 그 통합에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목숨을 뺏겼습니다.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도 미국 헌법 정신부터 인용합니다.
“87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세웠고 그 건국이념은 헌법에 구체화됐는데 이게 바로 통합이다. 이 안에서 우리는 전쟁의 상처를 딛고 같이 통합해서 나아가자.”
법률가인 노 대통령도 이를 벤치마킹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 대통령은 “링컨도 언론과 야당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링컨은 그러한 공격을 관용과 통합의 정신으로 결국 이겨냈습니다. 그 점이 노 대통령과 링컨의 다른 점입니다. 국민의 헌법의식 고취와 헌법의 생활화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정(聯政)론은 위헌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지금도 연말까지 유효하다고 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 어느 모임에서 연정론에 대해 헌법적 조명을 하면서 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마침 고건 전 총리가 “과거 3당 합당도 있었고, DJP연합도 넓은 의미의 연정 형태니까 위헌은 아니지 않느냐”고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3당 합당이나 DJP 연합은 헌법의 틀은 건드리지 않고 정권을 잡기 위한 정파끼리의 연합입니다.
대통령이 말을 쉽게 바꾸기 때문에 연정론에 대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노 대통령은 정권을 내놓고 대통령의 권한을 양보하겠다며 한나라당이 들어오면 조각권(組閣權)까지 총리한테 일임하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 또한 헌법 위반입니다. 대통령이 가진 조각권, 국무위원 임명권은 헌법적 권한이라 누구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러한 재량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선거를 통한 국민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사임은 않고 대신 권한만 이양하겠다는 것은 그 말 자체가 헌법에 맞지 않습니다. 연정 자체가 내각책임제나 의원내각제 용어이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는 연정이라는 말 자체가 법률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알 권리 보다 타인의 명예가 우선
노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기념사에서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를 거론했다가 위헌 문제가 제기되자 또 “그런 뜻은 아니다” 하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친노(親盧) 시민단체와 법률가 단체가 “반인권적 범죄는 시효가 없다고 국제형사규약에 나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국제형사규약 부칙엔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돼 끝난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연장해 다시 처벌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저도 공소시효가 남아 있거나 앞으로 발생할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울 때까지 시효를 배제하는 데 찬성합니다. 그러나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범죄에 이를 적용하면 안 됩니다.
노 대통령이 이른바 ‘X파일’ 내용을 공개토록 하는 특별법을 지지한 바 있습니다. 특검이건 특별법이건 X파일 공개는 우리 헌법이 정한 적법절차를 현저하게 위배하는 것입니다. 헌법 21조 4항에 언론 출판은 타인의 권리나 명예 또는 공중도덕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론’이라는 말에는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포함되기 때문에 알 권리는 타인의 권리·명예 침해보다 우선하지 못한다는 게 우리 헌법의 정신입니다.
대통령은 또 X파일에서 밝혀진 1997년 대선자금은 수사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일관성이 없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를 시작했다면 대선자금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자금 관계는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됐으며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도 관여할 수 없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 지휘하게 돼 있습니다. 이는 검찰총장을 방파제 삼아 검찰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입니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검찰권에 대한 명백한 간섭이자 위법행위입니다. 대통령은 헌법을 지키고 국가의 계속성을 수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헌법 119조 1항은 우리나라가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했으며, 126조는 시장경제적 법치주의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헌법 119조 2항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조항을 들어 우리 헌법이 수정자본주의 내지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독일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논리의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헌법에 나와 있는 경제질서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1항 자유시장경제 원리이며 2항은 이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수정자본주의나 사회적 시장경제원리를 보충적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헌법상 사유재산권 보장 또는 사적 자치의 원칙, 계약 자유의 원칙, 영업의 자유,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에 그쳐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도 우리 헌법상 경제 질서의 기본은 119조 1항의 자유시장경제 질서라고 여러 번 판시했습니다.
세계에 유례 없는 출자총액제한
정부의 경제에 관한 규제와 간섭은 헌법 119조 2항에 근거가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정부 관리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말 출자총액제한이 문제 됐을 때 헌법 119조 2항에 근거가 있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기본원리는 119조 1항이고 119조 2항은 보충 조항입니다. 원칙과 예외를 혼동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예외를 원칙화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위헌 소지가 커, 결국 헌재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합니다. 정부도 3년 안에 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저는 지금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입법례가 없는 제도입니다.
정부가 시장개혁을 할 때 시장에 반(反)하는 수단으로, 어떤 경우에는 패몰이식으로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정부 관계자가 “돈 많은 사람들에게서 돈을 거둬 낙후된 지역의 못사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것이 어떻게 해서 편 가르기냐”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던데,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6월에 “한국 정부의 ‘유비쿼터스(ubiquitous·어디에나 있는) 핸드’가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현 정부는 막연히 부당해 보이는 경제·사회 현상을 참지 못해 관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짐(朕)이 정의의 수호자’라는 생각이죠. 어디서 무슨 조그마한 일이 터져도 정부가 나서 법을 만듭니다. 어떻게 보면 헌법적 의식이 결여된 사회일수록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결국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죠.
수도이전반대 국민연합 대표 최상철 서울대 교수(오른쪽)와 이석연 변호사(가운데) 등 222명이 지난 6월15일 ‘행정중심도시특별법’에 대한 위헌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고 있다.
상대적 평등주의
우리 헌법은 사회적 기본권을 강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여성과 연소자의 근로를 보호할 권리 등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가 평등과 분배, 복지를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 헌법은 스칸디나비아식 복지국가 모델을 상정하고 있진 않습니다. 국가가 국민생활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간섭하는 제도가 인류 발전 형태에 안 맞는다는 것이 차차 입증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사회국가 원리는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골격, 구조적인 틀을 만드는 것이지, 정부가 직접 관여해 모든 국민을 하나의 연대집단으로 묶는 제도가 아닙니다.
평등과 관련해서 우리 헌법재판소가 세계적인 통설 판례를 내놓은 바 있어요. 평등 정신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은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이것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면 유권자나 국민한테 어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상 평등은 절대적 평등이 아니며 산술적 평등이 아닙니다. 헌법 제11조 1항에서 보장하는 평등권은 같은 것은 같게 대접해 주고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함으로써 달성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배분적 정의에 입각한 상대적 평등입니다. 헌법 재판소 결정문 10개를 보면 7, 8개에 이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절대적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획일적 평등주의는 헌법 정신과 맞지 않습니다. 인간의 맹점 중의 하나인 평등의식을 자극,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그럴 듯한 분배·복지·평등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인 혜택은 그것을 행하는 관리자한테만 가는 것입니다. 현 정부도 분배와 복지, 평등을 내세웠지만 통계에서 보듯 지금까지 국민 생활은 더 어려워졌고 빈부 격차는 더 심해졌습니다. 빈부 대결이나 사회적 편 가르기 식으로 가면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평등의식을 교묘하게 이용한 정책의 결과입니다.
정부 기구는 계속 확대됐습니다. 장·차관 자리가 22개 늘었고 공무원의 수도 증가했습니다. 위원회도 많아졌습니다. 제가 경실련 사무총장을 할 땐 정부에서 장·차관 자리 하나만 늘려도 성명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민단체가 반대도 안 하고 오히려 같이 한 자리씩 나눠먹고 있는 실정이에요. 위원장 중에도 시민단체 출신이 많습니다. 생산적인 차원에서 늘려야 하는데, 보건복지 분야는 오히려 그 수가 줄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정책과 관련해 과잉금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정책 목적의 정당성과 동기의 도덕성 내지 순수성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책이 헌법적으로 정당성을 가지려면 목적이 정당한 것은 물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과 수단의 적절성이 있어야 하고, 법익의 균형도 갖춰야 합니다. 공익과 사익을 비교할 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국민이나 기업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하라는 게 과잉금지 원칙입니다. 그것이 헌법재판소가 확립한 판례입니다.
세금 만능주의는 必敗
헌법 37조 2항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다”고 돼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법률이 목적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갖춰야만 합헌이라는 판례를 확립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방법의 절차성이 잘못됐거나 법익의 균형이 없다는 이유로 수많은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최근에 부동산 정책이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정략적인 것이라면 헌법상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한번 봅시다. 세금 만능주의로 인해 오히려 고통은 더욱 커졌고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도 갖추지 못하면서 피해는 더 늘었습니다. 그 점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위헌적인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현실적으로 성공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금 만능주의 부동산 정책이 장기적으로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과거 초과토지세 또는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이라든가 택지부담금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위헌결정이 나자 세금을 내지 않고 끝까지 버틴 사람들이나 위헌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은 그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았습니다. 정부가 4000억원 이상 예산편성을 해 돌려줬지만 성실하게 세금을 냈던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하나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정부의 이러한 세금정책은 향후 엄청난 조세저항을 받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자체가 조세평등주의에 어긋나요. 저는 지금 서울 강남구 일원동 48평 아파트에 삽니다. 시가 9억원 정도합니다. 저는 투기해본 적 없습니다. 그곳에서 벌써 10년 살았고 앞으로도 10년, 20년 더 살려고 해요. 그런데 100만원씩 종부세를 내라고 하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겁니다.
생활수준의 상향적 조정은 헌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그 전제하에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어요. 국민생활의 하향 평준화는 헌법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과거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에서 제게 자문한 바 있습니다. 권문용 강남구청장은 “지방세의 세목(稅目) 교환을 통해 기초자치단체의 평준화를 기하는 방향으로 지방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기초자치단체 구세(區稅)인 재산세와 시세(市稅)인 담배소비세·주류세·자동차 운행세를 교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담배소비세가 많지만 2, 3년 후면 담배소비세는 줄고 재산세가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에 결국 그로 인해 강남과 강북의 형평을 이룰 수 있고 서울시 재정자립도가 56%에서 26%로 떨어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하향 평준화입니다.
세목 교환은 김대중 정부 말기에 한참 논의되다가 백지화됐습니다. 기초를 튼튼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기초를 오히려 허약하게 하고 통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지방자치의 자율성·독자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한 현 정부가 항상 강조하는 지방분권에도 어긋납니다. 지방분권이 아니라 지방주권이라는 표현이 더 옳다고 봅니다. 사실 종부세도 전형적인 지방세죠. 하지만 정부는 국세(國稅)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거기서 거둬들인 세금을 형편이 어려운 시군구에 배정하겠다는 의도죠. 하지만 외국 어디에도 이러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 논의되는 공동학군제, 통합학군제도 또한 기초를 흔들려는 잘못된 정책입니다. 교육부문에 있어 경쟁력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강남 땅값을 잡기 위해 각 학군을 하향 평준화하는 것은 헌법에 맞지 않습니다. 헌법상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육을 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가르칠 권리, 학교에 보낼 권리가 모두 포함됩니다. 경제적 능력이 있고 없음에 따라 차별을 받으면 안 됩니다.
적성, 능력, 개성 무시해서야
그러나 타고난 적성이나 능력, 개성까지 모두 무시하고 균등하게 교육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세계적인 통설의 판례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고교평준화도 위헌이라고 봅니다. 사실 고교평준화는 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행령 바로 밑 부령에 의해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법률도 아닌 거예요.
3년 전 제가 고교평준화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적이 있습니다. 2002년으로 기억하는데 과천, 의왕, 시흥, 군포시에서 처음으로 평준화를 시행한 때였습니다. 학부형 300여 명이 자기 아들, 딸의 고교진학 등록을 거부하고 검정고시를 보도록 하겠다고 해서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그해 4월에 학부모 20명이 저한테 와서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문제가 되자 교육부는 경기도 교육위원회에 지시해 모두 구제해주고, 그 학생들 가고 싶은 고등학교로 갈 수 있도록 처리했습니다.
헌재에서 심리가 한창 진행 중인데 헌법소원을 낸 학부형들이 와서 취하해달라고 하더군요. 아마 교육부나 교육위원회에서 회유한 것 같았습니다. 결국 헌법소원을 취하해 헌재의 판단을 받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지방 명문인 전남 순천고등학교의 평준화를 앞두고 동문회에서 저를 찾아와 평준화를 막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동문회는 청구인 자격이 없습니다. 자립형 사립고를 늘리고, 국·공립학교는 제외하더라도 자립형을 희망하는 사립학교는 머리가 좋거나 적성이 다른 학생들을 선발해 특성화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교 입시제도가 전반적으로 부활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국공립의 평준화, 사립의 통합,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의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헌법 27조 5항에 규정돼 있습니다. 얼마 전 노 대통령과 서울대 정운찬 총장의 의견이 대립할 때 열린우리당 모 의원이 국립대학을 법적으로 묶어버리겠다는 엄청난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법은 아무렇게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의 자유는 대학의 자율성에서 비롯됩니다. 대학 자율성의 핵심 내용이 학생선발의 자율성 보장입니다. 이것을 막는 것은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 것입니다.
대학 본고사를 못 보게 하는 규정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입니다. 학생에겐 능력에 따라 공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건학이념에 맞는 우수한 학생을 뽑아서 교육할 권리는 대학의 본질적 자유에 관한 사항입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본고사를 금지한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면 이기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들은 헌법소원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부에 감히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만연한 헌법 경시풍조
경제적 영역에서 평등주의를 강조하면 그 경제는 역동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회의 균등은 필요하지만 결과의 불평등은 불가피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처진 사람들을 국가가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사회정책, 분배 복지정책의 기본입니다. 잘나가는 사람까지 끌어내리는 하향평준화, 즉 획일적 평등으로 가는 것은 헌법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나 열심히 일한 기업이 평생을 통해 이룩한 성과나 업적은 그 과정에 불법이 없는 한 인정하고 보장하고 존경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게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류사회의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이걸 마치 기득권이라는 이유로, 잘나간다는 이유로, 개혁의 대상인 것처럼 폄훼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정부는 국경일 중에서 제헌절을 가장 먼저 없앴습니다. 이 또한 헌법 경시 풍조라고 봅니다. 일본은 헌법기념일을 국경일로 하고 있으며 미국 또한 헌법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에 국경일로 삼았습니다. 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조정한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제헌절을 뺀 것은 분명 헌법을 경시한 때문이라고 봐요.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부동산 정책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이것도 헌법 경시 풍조이며 헌법을 뛰어넘는 잘못된 발상입니다. 헌법에 의해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 의무수행에 대해선 경시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수도이전 헌법소원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자 국회에서 헌법재판관을 매도하면서 헌재 해체론까지 들먹였습니다. 선출된 권력인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킨 수도이전법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위헌결정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도 의회주의의 위기라고 말했습니다.
헌법 117조 헌법재판소 관련 규정을 보면 명백히 나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권한 중 하나로서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권한이 있습니다. 분명 헌법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다수결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국회가 통과시킨 대통령 탄핵안이 헌재에 의해 뒤집어지는 것도 바로 그 규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난해 수도이전 헌법소원이 나왔을 때 노 대통령이 “수도이전에 반대하는 것은 대통령 퇴진운동으로 간주한다”고 한 것도 헌법 무시라고 봅니다. 정권의 진퇴와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당 사람들도 헌법소원에 강력 대처하겠다고 피력했습니다. 헌재에서도 2, 3개월이면 판단이 날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결국 정부는 공주·연기로 수도이전을 확정지었습니다. 헌법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경외심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쉽게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0월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나기 며칠 전 세계지식인대회가 열렸을 때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수도 이전은 국가의 명운이 걸렸기 때문에 차질 없이 추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국가가 정말 어려워질 거라 봅니다.
국민에게 헌법의식이 필요합니다. 특히 헌법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할 대상은 청와대, 국회 그리고 언론입니다. 탄핵 이후 포퓰리즘에 입각한 헌법 해석이 많아졌고, 헌법 정신에 입각한 합리적 논의구조는 사라졌다고 봅니다. 자기도취적 정의감과 조급한 이상주의가 판치고 있고, 일부 신문과 공중파 방송이 패몰이식으로 이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언론이 추구하는 불편부당한 정론(正論)의 최종적인 귀결점도 헌법 정신이어야 합니다. 그 점에서 헌법과 언론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밀턴 프리드먼의 말을 재인용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도자기가게에 뛰어든 황소나 다름없습니다.
‘정리·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