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최문순號’ 출범 6개월, 흔들리는 미디어왕국 MBC

현직 간부, 주운 카드로 심야 이발관 결제…끊이지 않는 비리·방송사고

  •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5-09-28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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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감사실, 경찰 통보받고도 “루머 수준일 뿐” 쉬쉬
    • 2003∼2005년 MBC 직원 징계 60여 건
    • ‘731부대 오보’…두 번이나 놓친 게이트키핑 기회
    • 외국인 게스트하우스를 싸구려 숙박업소로 몰기도
    • 사내 게시판에 MBC 수뇌부 비판글 잇따라
    ‘최문순號’ 출범 6개월, 흔들리는 미디어왕국 MBC
    MBC (문화방송)가 휘청거리고 있다.

    올 들어 MBC가 공개사과 방송을 한 횟수만도 다섯 차례. 이른바 ‘구찌 핸드백 파문’(2005년 1월)으로 연초부터 체면을 구긴 이래, 오락 프로그램 ‘파워TV’의 촬영기간 조작(1박2일 촬영한 내용을 2박3일 촬영한 것처럼 거짓 방영·6월), ‘생방송 음악캠프’ 성기노출 방송사고(7월), ‘뉴스데스크’의 일본군 731부대 관련 오보(8월), 다수 직원이 연루된 ‘브로커 홍씨 사건’(8월)과 같은 비리사건과 방송사고가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공영방송사로서의 신뢰도가 거듭 추락했다. 이쯤 되면 “‘문화방송’이 아니라 ‘사과방송’이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법하다.

    그뿐이 아니다. 취재 결과 일부 MBC 직원의 기강 해이 또한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신동아’는 MBC의 한 기자 출신 부장급 간부가 절도 등의 혐의로 형사입건돼 경찰의 조사를 두 차례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의 간부는 9월2일 MBC 본사 보도본부 보도전략팀에서 보도제작국 소속으로 자리를 옮긴 S부장(47). 그는 지난 7월5일 새벽 2시5분쯤 서울 논현동의 한 재즈바에서 지인(知人)과 술을 마시던 중 근처 테이블에 놓여 있던 한 20대 남성의 지갑을 가져가 그 안에 든 ‘체크카드(check card·직불카드와 신용카드의 중간형태인 지불결제 수단)’로 인근 심야 이발관에서 선불요금 8만원을 결제하려다 피해자에게 발각돼 경찰에 넘겨졌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인 20대 남성은 당시 혼자 맥주를 마시다 지갑을 테이블 위에 놓아둔 사실을 미처 모른 채 평소 안면이 있던 재즈바 주인 옆의 바텐더 의자로 자리를 옮겼고, 이 과정에서 지갑을 손에 넣은 S부장이 카드를 사용했다는 것. 그러나 카드 분실신고를 해둔 덕에 카드승인이 거절됐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은 피해자는 곧 이발관으로 쫓아가 S부장을 찾아내 실랑이를 벌였고, S부장은 피해자의 신고로 관할 서울 강남경찰서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S부장의 범죄혐의는 절도, 그리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강남서 형사과 관계자는 “피의자(S부장)와 피해자가 다투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으나 이후 양자가 합의해 폭력혐의에 대해선 ‘공소권 없음’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절도혐의에 대해선 피의자가 줄곧 ‘만취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함에 따라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조만간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것”이라 밝혔다. 한편 이발관 종업원은 피해자의 카드로 요금을 결제하려던 이가 S부장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에 대해 S부장은 9월9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술 때문에 ‘필름’이 끊겨 전혀 복기(復棋)가 되지 않는다”며 사건 당시 만취상태였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 “사건이 사내 일부에 알려진 뒤 회사의 명예에 누를 끼친 점을 뉘우치고 윗분들에게 사죄했다. 또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보직 변경을 자청, 9월2일 단행된 인사에서 자리를 옮겼다”며 “취중에 저지른 실수”라고 해명했다.

    본사 부장급 간부 절도혐의로 형사입건

    S부장의 범죄혐의가 그의 직무와 연관된 것이라 보긴 어렵다. 문제는 S부장이 사회적으로 높은 윤리의식과 도덕적 책무를 요구받는 언론 종사자로서, 그것도 공영방송사 간부 신분으로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계된 사실에 대한 MBC의 부적절한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S부장은 지난해 17대 국회의원 선거의 출마예상자(강원 속초·고성·양양·인제 선거구)로 한때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한 공인(公人) 신분이다.

    그럼에도 MBC의 오모 감사실장은 9월9일 이뤄진 통화에서 “S부장 사건에 대해 MBC 내에서 어떤 조치가 이뤄지고 있냐”는 물음에 “사내에서 그와 유사한 소문이 돌지만, 루머 수준이라 현재로서는 탐문단계일 뿐이다”고 답했다.

    과연 그럴까. 경찰은 S부장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이미 MBC 본사측에 사건 내용을 전한 바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MBC의 일부 직원 사이에서도 “S부장이 남의 카드를 취득해 안마시술소에서 사용했다더라”는 등의 소문이 나돈 바 있다. MBC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도 유사한 내용의 글이 오른 적이 있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김상훈 위원장은 “S부장 사건에 대해 아느냐”는 질문에 “회사가 본인에게서 경위서를 받은 뒤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겠냐”고 말해 이미 MBC 내 상당수 직원이 S부장 사건을 알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감사실측의 답변은 최근 잇따라 불거진 MBC 관련 각종 비리·방송사고의 연장선상에서 S부장 사건이 외부로 드러날 경우 다시 한 번 자사 이미지가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 쉬쉬하며 내놓은 군색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MBC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S부장 사건이 국회 등에 알려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한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2003~2005년 MBC 직원 징계 현황

    ‘최문순號’ 출범 6개월, 흔들리는 미디어왕국 MBC
    ‘최문순號’ 출범 6개월, 흔들리는 미디어왕국 MBC


    ‘최문순號’ 출범 6개월, 흔들리는 미디어왕국 MBC
    흐트러진 조직 기강

    주지하듯 MBC는 올해 들어 ‘구찌 핸드백 파문’과 ‘브로커 홍씨 사건’이라는 ‘치명적’인 비리사건과 맞닥뜨리면서 대외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이상호 기자의 폭로에서 비롯된 ‘구찌 핸드백 파문’은 그 여파로 이 기자 본인은 물론 강모 당시 보도국장, 신모 차장 등 3명이 징계를 받는 한편 시사 프로그램 ‘뉴스 서비스 사실은…’의 방영이 아예 중단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네팔 인력송출업체 관련 비리의 주역인 브로커 홍모(64)씨로부터 금품로비를 받은 강모 전 보도국장 등 3명이 해고되는 등 5명의 직원이 9월1일 중징계를 받음으로써 공영방송 MBC의 신뢰도는 또다시 땅에 떨어졌다. MBC는 특히 ‘브로커 홍씨 사건’에 자사 직원들이 연루됐다는 사건 초기의 언론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강변하다 결국 망신살이 뻗쳤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사고가 발생할 소지는 조직 기강이 느슨해진 MBC 여기저기에 이미 배태(胚胎)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아’가 입수한 MBC의 ‘2003∼2005년 직원 징계 현황’(표 참조)이 이를 뒷받침한다.

    징계 현황을 보면, 2005년 징계 건수는 17건. 2004년은 15건, 2003년은 17건에 이른다. 언뜻 보면 연도별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2005년 통계는 지난 6월27일까지의 집계일 뿐이다. 이중 지난 2월25일 최문순 사장이 취임한 이후의 징계 건수는 9건이다.

    그러나 올해 7∼8월 집중적으로 터져 나온 ‘음악캠프 성기노출 방송사고’(4명 징계) ‘브로커 홍씨 사건’(5명 징계) 등으로 인해 이미 징계를 받았거나, ‘731부대 오보’로 9월13일 열릴 인사위원회에서 징계가 확실시되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징계 건수는 최 사장 취임 이후 6개월여 만에 20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징계 규모는 최근 3년 동안 최대치다.

    3년간 이뤄진 징계의 사유들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비리사건이나 방송사고 이외에도 ▲숙직근무 중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다 라디오 뉴스를 진행하지 못함(아나운서국 아나운서 1부, 근신 15일) ▲부적절한 사생활로 추정되는 행동과 그에 연루된 사안 등으로 회사의 명예와 위신을 크게 훼손(제작기술국 TV중계부, 정직 6개월) ▲홍콩으로부터 가짜 유명 외국상표 의류 등을 반입하려다 세관에 적발돼 상표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아나운서국 아나운서 1부, 감봉 2개월) ▲협찬사에 간접광고 효과를 줬다는 이유로 방송위원회로부터 ‘해당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징계’ 명령을 받았으나, 해당 프로그램이 외주제작물이어서 해당 연출자를 징계할 수 없어 제작책임자인 드라마국장을 징계함(드라마국장, 주의각서) 등 MBC 내 각 국(局)과 부서를 망라하고 있다.

    과도한 의욕이 부른 대형 오보

    ‘최문순號’ 출범 6개월, 흔들리는 미디어왕국 MBC
    뉴스 및 프로그램의 제작·보도를 위해 보장된 광범한 자율성이 되레 오보나 왜곡보도를 낳는 사례도 MBC 내에서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중국 제작 영화 ‘흑태양(黑太陽) 731’(한국에선 ‘마루타’라는 제목으로 1990년 개봉)의 한 장면을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 장면 공개 특종(?)으로 둔갑시킨 이른바 ‘731부대 오보’의 주역은 계열사 중 하나인 안동MBC.

    ‘신동아’가 입수한 MBC의 ‘뉴스데스크 일본군 731부대 생체실험 장면 오보 발생의 구체적 경위 및 사후조치 결과’ 자료를 보면, 안동MBC 정모 기자는 지난 2월 설 연휴에 러시아를 방문, 현지의 한 다큐멘터리 PD와 접촉해 그때까지 자신이 추적해오던 안중근 의사 저격 장면 필름 건과 관련해 협조를 부탁했다. 그후 4월 초 다큐 PD가 안중근 의사 관련 필름 추적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우편으로 보내온 문제의 필름(영화 ‘흑태양 731’의 한 장면)을 손에 넣었다.

    이후 정 기자는 8월10∼12일 일본 현지 취재에서 전직 일본 군의관과 인터뷰하면서 ‘731부대에서 해당 필름에 나오는 내용의 만행이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8월13일 ‘악마의 군의들’이란 제목의 리포트 기사 2개를 제작해 본사로 송고했다. 본사 보도국은 이 기사를 한 꼭지로 수정한 뒤 8월15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러시아 군사영상보관소에 있는 731부대 자체 촬영 화면을 단독 입수했다”며 입수한 필름을 영상으로 내보냈다.

    결국 방송 직후 시청자 제보에 의해 오보로 판명돼 MBC는 단 하루 만에 사과방송을 내보내야 했다.

    문제는 ‘731부대 오보’에 대한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MBC엔 최소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번은 안동MBC 보도국 자체에서 입수한 필름의 진위를 추적하는 것. 다른 한번은 본사 보도국 차원에서 필름을 검증하기 위한 기사 보완 내지 재검토 지시를 할 수 있는 기회다.

    ‘731부대 오보’의 당사자인 정모 기자는 “731부대와 마루타에 관한 영화가 수십 편에 이르는데 게이트키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것 아니냐”며 “사과방송과 그에 뒤이은 본사 보도국장(신용진 국장)의 전격 교체 등으로 파문은 일단락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MBC의 한 간부는 “‘731부대 오보’는 공영방송사의 뉴스 보도과정이 기본적인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사례”라며 “그 원인은 ‘주인 없는 회사’인 MBC의 온정주의적 조직문화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보장된 보도의 개별적 자율성에 기반을 둔 취재기자의 과도한 의욕과 자신감, 그리고 60주년을 맞는 광복절이란 특수한 시의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본사 보도국의 섣부른 보도행태가 대형 오보로 이어졌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혹 문제의 필름을 입수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다큐 PD에 대한 금전적 대가는 없었을까. 이에 대해 MBC 감사실 관계자는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필름 입수와 관련해 정 기자와 다큐 PD간에 금품이 오고간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 기자는 다큐 PD와 자신을 연결해 준 현지 중개인의 아들과 개인적 친분이 있어 PD를 소개받고 필름을 입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외주제작 관리·감독도 소홀

    ‘최문순號’ 출범 6개월, 흔들리는 미디어왕국 MBC
    시청자에게 널리 알려진 오보만 있는 건 아니다. MBC는 최근에도 오보성 기사를 내보냈다.

    MBC는 지난 8월9일 방영한 ‘뉴스투데이’의 ‘현장 속으로’ 코너에서 서울 북촌한옥마을의 한옥마을체험관이 숙박업소로 변질돼 근본취지를 잃고 있다는 요지의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홈스테이 시설인 ‘서울게스트하우스’(종로구 계동)를 싸구려 여관으로 묘사한 것.

    MBC는 인근 주민이라는 김모씨의 입을 빌려 “게스트하우스 손님이 술을 잔뜩 먹고 고함을 지르는 등 이웃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내용의 코멘트를 넣었으나, 최근 그런 일이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은 데다 김씨가 계동이 아닌 잠원동 주민으로 밝혀지는 등 취재과정에서 기본적인 사실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목조건물의 전기배선 문제에 따른 화재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이웃 한옥 건물을 촬영해놓고도 곧 이어서는 서울게스트하우스의 간판을 화면에 내보내기도 했다.

    서울시로부터 한옥을 임차해 부인 명의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인 사람은 현준희씨. 1996년 감사원 재직시 효산콘도 비리 감사 중단 의혹을 폭로해 내부 고발자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그는 “9월2일까지 MBC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 제작진, 보도국장, 최문순 사장 등에 모두 아홉 차례 항의서신을 보냈지만, 8월27일 제작진 의견을 담은 담당PD의 e메일 회신이 온 걸 제외하곤 정정보도는 물론 이렇다 할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장 속으로’ 코너는 외주제작물. 이 코너의 책임자인 MBC 뉴스편집 2부 윤모 부장은 “‘연합뉴스’와 ‘국민일보’ ‘한국일보’ 등에 이미 보도된 내용을 소재로 외주제작을 맡겼는데, 취재 당시 인근 주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김씨의 코멘트가 가장 생생하다고 판단해 삽입했으나 김씨가 계동 주민이 아니라는 사실은 몰랐다”며 “화재 위험성을 부각하면서 이웃 한옥을 촬영한 것은 가장 적합한 ‘그림’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현씨의 게스트하우스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MBC로서는 현씨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지만, 그래도 오해가 있다면 현씨가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해임과 개혁 사이’ 상관관계 있나”

    MBC 내부의 혼란은 MBC에 몸담았던 고위 인사들의 잇단 소송 제기로 심화되는 양상이다. 최문순 사장 취임 직후인 지난 3월 대폭 교체된 MBC 계열사 전직 임원 16명 중 8명이 7월11일 MBC와 최 사장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이들은 소장에서 “MBC 정관과 상법상 임기가 보장된 임원들에 대해 경영상 하자가 없는데도 집단사표를 제출케 해 잔여임기(임기 3년)를 남기고 중도에 퇴진시킨 것은 불법 부당한 처사”라며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계열사 임원들이 사표를 일괄 제출한 것은 MBC 신임 사장의 인사권 보장 차원에서 행해지는 관례로 알았기 때문이지, 진정으로 사직 의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집단 해임은 정당한 기준과 근거 없이 강제적인 방식과 기만행위로 이뤄진 불법행위이므로 회사는 사표 수리의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밝히고 그 과정과 배경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한 전직 계열사 임원은 “MBC 내에 다시는 개혁이라는 허명 아래 불법적인 행위가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소송 제기의 의미”라며 “도대체 ‘해임과 개혁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직 임원들이,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방송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낸 것은 초유의 일. 더욱이 타 방송사와 달리 공채 기수 위주의 ‘순혈(純血)주의’ 조직으로 내부 갈등이 외부로까지 좀체 불거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MBC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 MBC 홍보실 관계자는 “새로운 사장이 취임하면 일단 계열사 임원들의 일괄사표를 받은 뒤 그중 경영능력에 문제가 있는 한두 사람의 사표만 수리하고 나머지는 통상 반려한 뒤 자리만 옮기게 하는 것이 전임 사장 때까지의 관행인 것은 맞다”면서도 “이번엔 왜 그 관행을 깼는지, 그리고 해임의 명확한 원칙과 기준이 무엇이었는지는 인사권자만이 아는 사항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본인들이 스스로 사표를 냈고, 주주총회를 거쳐 적법하게 처리된 만큼 위법성은 없다”는 것이 MBC 본사의 해명이지만, 전직 임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전근(轉勤)식 사표’ 관행의 존재만은 사실인 셈이다.

    지난 3월부터 사장 교체 문제와 관련해 노사간에 진통을 겪으며 한때 본사에 의해 네트워크협정을 폐지당하기도 했던 강릉MBC의 경우 계열사 임원에 대한 MBC 본사의 일괄 사표 제출 요구에 김모 사장이 반발한 사태와 관련, 강릉MBC 주식 51%를 보유한 MBC 본사가 김 사장의 해임에 반대해온 최돈웅 전 한나라당 의원의 보유 주식 49%를 사들여 100%의 지분을 차지해 경영권을 장악한 뒤 7월22일 주주총회를 열어 김 사장을 해임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여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강릉MBC는 현재 60여 명의 직원 대다수가 김 사장의 퇴진을 주장하던 노조측과 그를 지지하던 ‘강릉MBC 정상화를 위한 사원들의 모임(약칭 정사모)’측으로 양분돼 반목이 심각한 지경이다.

    9월1일 ‘브로커 홍씨 사건’ 연루자로 해고당한 강모 전 보도국장도 9월7일 징계처분에 대해 재심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MBC 규정상 회사의 인사결정에 이의가 있는 직원은 7일 이내에 인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강 전 국장은 이에 앞서 지난 1월 ‘구찌 핸드백 파문’으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것에 불복해 8월4일 서울중앙지법에 징계무효확인소송을 낸 바 있다.

    그의 소송대리인인 김준우 변호사는 “소송의 쟁점은 고가의 선물인지 모르고 받았다가 사실을 안 뒤 바로 돌려줬는데도 중징계를 내린 건 부당하다는 강 전 국장의 주장과, 고가의 선물이란 사실을 알고도 받았다는 MBC측의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를 면밀히 따지는 데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집단소송을 제기한 MBC의 전직 계열사 임원들과 징계무효확인소송을 낸 강 전 국장 공히 ‘명예회복’을 소송의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 이면엔 40대 나이로 부장대우 출신인 최문순 사장이 취임한 이후 MBC 내부의 기존 위계질서가 붕괴된 데 따른 반발의식이 끼여들었다는 점도 유추해볼 수 있다. 집단소송을 낸 전직 계열사 임원들이 승소해도 1인당 1300만원 남짓한 액수가 지급될 뿐인 총 1억원의 소송가액을 제시한 것은 물적 피해에 대한 금전적 배상 요구라기보다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성격이 짙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X파일 뒷북 보도’, 수뇌부 비판 잇따라

    MBC가 ‘뉴스데스크’를 통해 ‘X파일’ 관련 뉴스를 대대적으로 쏟아낸 지난 7월21일을 전후해 MBC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는 MBC 구성원으로서의 자괴심을 토로하거나 최문순 신임 사장을 비판하는 기자들의 글이 잇따랐다. 이는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가장 먼저 입수하고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우물쭈물하다 관련 내용을 발빠르게 보도한 ‘조선일보’와 경쟁사인 KBS에 보도 주도권을 뺏긴 것과 관련, 보도에 대한 결단력이 부족했던 MBC 수뇌부에 실망이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상호 기자가 ‘X파일’을 입수한 이후인 지난 1∼2월경 관련 특별취재팀을 꾸릴 당시 팀장이 ‘시사매거진 2580’ 부장이던 최문순 현 사장이었다는 사실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음은 ‘신동아’가 입수한, MBC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 기자들의 비판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정작 문제 되는 기사는 막고 그래도 삼성에 할 말은 하고 있다는 내부 과시를 위해 두루뭉술한 삼성 비판기사는 나가게 해주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는 또 한번 희망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은 하나뿐입니다. 개혁에 힘을 실어달라며 가져간 내 월급 6%를 돌려주세요.’(ID ‘우민1’, 7월20일)

    ‘지도부의 방심과 오만, 무능이 빚은 사태라고 봅니다. MBC 보도의 정체성과도 직결된 사안이 이렇게 처리되다니… 젊은 기자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탄생한 최문순호, 그 지지 속에 투영돼 있는 ‘제대로 된 방송에 대한 열망’을 현 지도부가 오만하게 해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난 수뇌부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ID ‘평기자’, 7월22일)

    ‘X파일이 기사로서 가진 의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도대체 누가 불법도청을 일삼았는가이고, 또 하나는 자본과 언론이 만나 무슨 모의를 했는가다. 그러나 관련 소스를 가장 먼저, 그리고 한때 유일하게 갖고 있었던 우리는 이 둘 모두에서 낙종했다. 한번은 조선일보에 또 한번은 KBS에…아침저녁으로 눈뜨고 당한 것이다…국장단은 끝까지 몸 사리기로 일관했다. 법원의 결정을 연합뉴스를 비롯한 다른 언론매체들은 모두 사실상 삼성의 이의신청을 기각한 것으로 해석했다. 육성과 직접인용을 금지했을 뿐 내용 보도를 막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내가 국장이라면, 이런 쪽팔림을 구성원들에게 주고 나서 더 이상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부장들 시켜서 무슨 장관 이제는 물러나야 할 때라는 데스크 리포트 시키면서 많이 즐거워했던 사람들이 현 국장단 아닌가? 용퇴라는 말. 이런 때 잘 어울리는 말이다.’(ID ‘우울’, 7월21일)

    ‘MBC는 삼(三)순이가 이끌어간다.’

    최문순 사장 취임 이후 회자된 조크(joke)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과 ‘굳세어라 금순아’의 인기는 시청률을 통해 이미 검증됐다. 남은 것은 취임 직후부터 숱한 ‘악재’에 직면하면서 “내부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겠다”고 공언한 최 사장이 ‘MBC 개혁’을 제대로 이뤄낼지 여부다.

    지난 8월25일로 ‘최문순 체제’ 6개월을 맞은 MBC. 추락하는 MBC에 날개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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