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월남해 ‘탈북자 출신 박사 1호’, ‘탈북자 출신 외국대학 교수 1호’로 불린 바 있는 건국대 안찬일 초빙교수가, 최근 국가정보원의 도청 문제를 계기로 불거진 논란에 대해 의견을 보내왔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해체론이나 분리론 등이 국가정보기구의 역량이나 국가이익 증진에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그렇듯 오랜 전통을 가진 첩보활동의 역사에는 손꼽힐 만한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트로이 왕국의 멸망을 불러온 목마사건이나,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것이라는 정보를 믿지 않은 스탈린의 오류, 1982년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를 침공하기 전 경고할 것이라고 믿었던 영국인들의 오판을 들 수 있다.
반대로 가장 성공적인 첩보원으로는 흔히 러시아의 리하르트 조르게를 꼽는다. 1941년 도쿄에서 “일본이 여름 군복을 만들고 있다”는 단 한 줄의 첩보를 모스크바에 타전함으로써 일본군의 공격방향이 남방지역임을 확신케 한 그는, 러시아군이 극동지역의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이동시켜 독일군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크게 공헌했다.
세계의 모든 첩보원에게 통용되는 공통적인 세 가지 격언이 있다. ‘절대 붙잡히지 말라, 붙잡히더라도 우리는 결코 너희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위의 계명 외에 더 이상의 계명은 필요치 않다.’ 격언이 말해주듯 첩보활동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야 하며, 활동내용이 공개됐다면 벌써 정보활동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최근 국정원의 과거 도청사건으로 한국의 국가정보기관이 도마에 올랐다. 권위주의 시대가 남긴 불미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 국정원이 환골탈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검찰과 일부 언론이 보인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경청할 만하다. 검찰은 사상 초유의 국정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국가정보기관의 사무실과 컴퓨터를 뒤졌고, 일부를 밖으로 들고 나갔다. 원래 ‘훔치고 감추는 일’을 업으로 하는 정보기관에 들어가 얼마나 ‘소득’을 올렸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국가정보활동의 중량을 폄하했다는 비난을 완전히 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혹자는 이를 권위주의 청산의 한 과정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정원은 권위주의 시대로부터 가장 먼저 탈피했다는 자긍심을 지닌 집단이다. 국정원의 수장인 원장은 불필요하게 대통령과 독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솔선수범해 지킨 바 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 지나쳐 말을 다치게 하는 우를 경계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은 아닐 것이다.
첩보전쟁의 최전선을 누벼온 영국도 한때 도청사건으로 온나라가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MI5(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5)는 1972년 노동당의 피터 만델슨과 해리엇 하먼 장관 등 정치인과 민간인들을 사찰하고 도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에 휩싸였고, 1998년에는 잭 스트로 내무장관이 MI5가 자신을 포함해 44만명의 사찰 파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같은 사회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정보기관에 대해 압수수색이나 공개 사법심판, 기구해체 같은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진 적은 없다.
오히려 정보기관의 피해자였던 영국 노동당 정부는 2001년 이후 4년간 국가정보기관의 예산을 24억파운드 이상 증액했으며 MI6(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6)의 규모도 두 배로 늘렸다. 분명 잘못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사법심판은 국가이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확고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우리 국가정보원의 주된 상대라 할 수 있는 북한의 정보기관은 어떨까. 최대기구인 국가안전보위부는 산하에 전파탐지국(17국), 과학기술국(23국), 화학국(18국) 등을 두고 북한 내 모든 통신시설과 전화와 컴퓨터를 사용하는 고위 간부 전원을 도·감청하고 있다.
전파탐지국은 북한의 모든 기관·기업소 및 불순분자들에 대해 도청을 실시하며, 과학기술국은 당·정·군의 고위간부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도청업무를 수행한다. 화학국은 북한에서 소요되는 일체의 도청 및 감청장비들을 생산·수입하는 업무를 맡는다. 이들은 주로 전화선로나 전화국 교환기에 도청기를 설치하거나 교환수를 매수하는 다소 낙후된 방법을 사용한다.
북한 군부와 정보기관의 체제 고수 의지는 그들의 표현대로 불요불굴(不撓不屈)이다. 북한의 지도집단은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에서 외적과 싸운 전통을 자랑스러워 하며, 그의 세습자들인 군대와 정보기관의 리더들은 ‘남한군의 접수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또 한 차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정보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고의 인격’이 ‘최고의 조직’ 만든다
이제 중앙정보부로부터 시작된 국정원의 과거 ‘어두운 그늘’은 이번 도청사건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막을 내려야 할 것이다. 반면 과거의 오류를 들어 마치 정보기관 자체와 구성원 전체가 죄악의 소산인 양 몰아붙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식 접근법도 지양해야 한다. 해류(海流)가 모이는 곳에 어류(魚類)가 번성하듯, 대륙과 해양이 만나고 자유주의와 전체주의가 만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세계 첩보전쟁의 각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정보기관에 대한 선입견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국방정보본부와 외교통상부의 정보분석실, 검찰 및 경찰의 정보부서, 국군정보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 등 여러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가장 종합적이고 첨단화된 국가정보체계를 갖춘 곳은 단연 국정원이다. 다른 정보기관들이 부문별 정보수집으로 일관한다면 국가정보원은 전국가적인 정보망을 운영하는 까닭이다.
국정원에는 국정원법을 비롯해 정부조직법과 국가안전보장회의법 등 정보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다. 많은 이가 국정원의 국내 정보활동 대부분이 기관출입이나 사찰성 정보수집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사뭇 다르다. 현재 국정원 요원이 정당이나 정부부처에 출입하는 경우는 공식적 업무협조나 관련 정보 지원 등 필요한 경우에 한해 ‘연락관’ 형식을 취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방대한 예산과 인원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도 무성하다. 통계수치를 보면 이 또한 다시 생각해봐야 할 여지가 있다. 국정원은 1990년 이후 전체 검거 대상 간첩 123명 중 89%인 109명, 2000년 이후 검거 대상 간첩 16명 중 88%인 14명을 검거했다.
테러방지활동도 마찬가지다. 2003년 1월부터 2005년 7월 사이에 국정원의 정밀심사를 거쳐 입국불허조치된 국제테러 연계 혐의자나 유사성 혐의자가 262명에 달한다. 2004년에는 국제불법체류 조직 연계 혐의자 8명을 검거해 추방했다. 한편으로는 2005년 하이닉스사 반도체 기술의 중국 유출을 미연에 방지하는 등 1998년 이후 85건의 산업스파이를 적발해 약 77조원의 국부유출 피해를 원천 차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근래 국정원을 분리하거나 해체해 재구성하자는 여론은 국가정보 기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고해야 한다. 구 소련의 정보기관 KGB는 연방 해체와 함께 연방보안부(FSB)와 해외정보부(SVR)로 분리됐으나, 이후 두 조직은 정보수집과정에 빚어진 마찰과 불필요한 경쟁으로 국력낭비만 초래했다.
군도 군사령부를 줄여 작전사령부로 통합하는 시대에 또다시 정보기관을 분리해 조직과 수장의 수를 늘리는 것은 현대의 국가관리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 대만,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도 정보기관을 축소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비록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시대로 진입하고 냉전이 희미한 추억으로 사라져 간다지만, 오히려 국가정보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정원은 오늘의 질타와 비판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여 다시 한 번 환골탈태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일부 미숙한 인격의 직원이 국정원 전체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면 이는 한 조직의 손실을 떠나 국가 이미지의 실추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최고의 조직’이라는 국정원 직원들의 자부심은 ‘최고의 인격’이 결정해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의 어두움을 깨끗하게 청산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국민은 기대하고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