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측근그룹 좌장이 전횡”
- “업체선정 의혹, 예산낭비, 이벤트행정 도(度) 넘었다”
- 오세훈 측근 감싸주고 내부고발자 뒷조사
- 서울시 “시장이 잘못된 보고받아” 해명
오세훈 서울시장
위로는 세종대왕 동상이 새로 놓였다. 그 아래로는 세종이야기라는 전시공간이 생겼다. 광화문광장에선 ‘플라워 카펫’ ‘빛의 축제’ ‘스노우 잼 페스티벌’ 등 서울시 예산이 대거 투입된 다채로운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KBS 2TV 드라마 ‘아이리스’도 서울시가 한나절 차선을 막아주는 지원 속에 촬영됐다.
광화문광장 지하에 무슨 일이…
그러나 볼거리 많은 화려한 ‘축제의 장(場)’은 지하에 비밀 이야기를 묻어두고 있었다. 2009년 6개월여 동안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광장 지하 세종이야기와 관련해 ‘업체선정 의혹, 예산낭비, 이벤트행정’ 의혹이 제기됐다. 세종문화회관 내에서 나온 투서와 고발이 서울시, 감사원, 청와대, 국회 측에 전달됐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이 문제로 감사결과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내홍을 겪었지만 서울시 밖으로는 일절 알려지지 않았다.
수차례 제기된 의혹은 이모 당시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이 사장은 ‘오세훈 측근그룹의 좌장’으로 묘사돼 있었고 감사과정에서 오 시장 측이 이 사장을 봐준다는 얘기가 나왔다. 다음은 세종문화회관 측 관계자가 설명하는 투서와 고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광화문광장 지하에 세종이야기가 들어서게 된, 알려지지 않은 내막을 담은, ‘새로운 세종이야기’였다.
“이모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2009년 친분이 있는 정모(45·여)씨의 2개 회사에 세종문화회관이 발주한 공사 4건을 주도록 했다. 정씨는 이 사장이 국제디자인대학원 디자인아카데미원장이던 때부터 알던 사이로 이 사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세종르네상스의 1기 회원이기도 했다.
이 사장은 출장복명서 없이 해외출장을 떠나기도 해 ‘사적인 업무로 해외출장을 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는데 2009년 6월 그는 정씨 등 세종르네상스 회원들과 함께 중국여행을 갔다. 세종문화회관이 발주한 사업을 하던 J건축 사장은 ‘이 사장 일행의 여행경비를 지원해달라’는 정씨의 요청으로 1500만원을 정씨에게 송금했다. J건축 사장은 광화문광장 지하공간의 활용방안 용역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정씨는 J건축 사장에게 추가로 3억원의 투자를 요구했고 J건축 사장은 이를 거절했다. 공교롭게 이후 J건축은 세종문화회관 사업에서 제외됐다.
J건축은 ‘세종문화회관이 권위주의적이고 10, 20대의 접근이 어렵다’고 문제점을 진단해, 세종문화회관과 이어지는 광화문광장 지하를 ‘젊은 세대를 위한 문화상업 공간’으로 조성하는 방향으로 안을 잡았다. 그러나 J건축이 배제되고 광화문광장 지하에 세종대왕 동상과 연계한 ‘세종이야기’라는 전시장을 만들기로 급하게 결정됐다.
눈 덮인 광화문광장(중앙)과 세종문화회관(왼쪽)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가며 공사를 진행할 여유가 없었다. 공사비는 100억원대로 뛰었다. 업체 선정에도 의혹이 터져 나왔다. 이 사장은 자신이 잘 아는 업체인 K사에 임의로 일을 맡겼다. 그러나 가뜩이나 시간이 부족한 가운데 K사의 프레젠테이션은 원래의 기획의도에서 빗나간 실패작으로 드러났다. 7월3일 서울시 측 회의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서울시는 7월5일 부시장이 나서서 공기(工期)를 맞추라고 독려하는 등 난리가 났다. 이 사장은 K사를 빼면서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보상으로 3000만원을 주려고 했으나 직원들이 ‘너무 많다’고 반대해 결국 700만원을 지급했다.
“일 먼저 시키고 공개입찰”
10월9일 한글날 즈음해 세종대왕 동상과 지하의 세종이야기 전시관이 함께 일반에 공개됐다.
이 사장은 오세훈 시장의 측근으로 통했다. ‘오 시장이 이 사장을 특별히 신임하며 이 사장이 부시장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 사장은 직원들과의 회의 도중에 ‘류우익 실장 좀 연결해봐요’라고 하는 등 류우익 주중대사(전 대통령실장), 정정길 대통령실장 등 현 정부 실세와의 친분을 드러냈다.
이 사장의 화장품 사업에 참여한 후배는 공기청정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사장은 ‘세종문화회관에 공기청정기가 필요하다’면서 이 후배의 제품을 구매하도록 지시했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5700만원어치를 사줬다.
이 사장은 과거 자신이 데리고 있던 K씨(58)를 세종문화회관 산하 삼청각의 총괄지배인으로 채용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의 나이제한 내규를 고쳐 K씨를 세종문화회관 경영본부장으로 승격시키려 했으나 말썽이 나자 포기했다.
이 사장은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자신의 친구 아들을 세종문화회관이 발행하는 잡지 ‘문화공간’의 베이징통신원에 임명해 월 수당을 지급했다. 또 다른 친구 아들도 7월1일 삼청각 개소식 때까지 삼청각 직원으로 채용하라고 지시했다. 세종문화회관 직원들이 ‘그때까지는 채용명분이 없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며 이를 이행하지 않자 대노(大怒)했다. 이후 해당 직원 한 명은 이 사장에 의해 다른 건으로 직위해제돼 재택근무 조치를 받았다. 나중에 이 사장이 물러난 뒤 이 직원은 업무에 정상 복귀했다.
세종문화회관 행정 및 광화문광장 조성과 관련해 이처럼 ‘복마전’ 논란이 일었으나 내부고발이 있기 이전에 서울시는 제재하지 않았다.”
이 같은 의혹제기와 관련해 세종문화회관 측은 최근 ‘신동아’에 “정모(45·여)씨가 관계한 두 회사에 4건의 공사를 준 것은 맞다. 이 중 3건은 수의계약, 1건은 공개입찰이었다”고 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광화문광장 지하 세종이야기 공사에는 128억7300만원이 들었다. 이 중 구조물 공사는 도시기반시설본부가, 콘텐츠 인테리어 조성공사는 세종문화회관이 각각 맡았다.
‘세종이야기’ 씁쓸한 비화
J건축의 사장은 ‘신동아’에 “광화문광장 지하 세종이야기는 불투명한 업체선정방식, 과다한 예산규모, 즉흥적 행정 등 많은 논란을 부를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대화내용이다.
▼ 정씨에게 1500만원을 준 사실이 있나.
“정씨가 ‘세종문화회관 이 사장 일행의 중국여행 경비가 필요하니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정씨와 이 사장이 꽤 친한 사이로 알고 있었고 당시 우리 회사는 세종문화회관 일을 하고 있어서 돈을 줬다.”
▼ 투자금 조로 3억원을 더 요구받았나.
“그 요구는 이상하다고 생각해 거부했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처음에는 ‘광화문광장 지하를 젊은 세대를 위한 문화상업 공간으로 꾸미는 건 좋다’며 우리 회사의 계획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투자요청을 거절한 후 세종문화회관과의 일도 끊겼다. 광화문광장 지하공간은 세종이야기 전시장으로 콘셉트가 바뀌었고….”
▼ 세종이야기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광화문광장 지하공간은 총 3000평쯤 된다. 그 공간을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활용하는 것이 서울시민에게 좋다. 그런데 서울시는 거기서 1000평쯤 떼어내 세종이야기 전시장을 만들었다. 향후 또 일부를 떼어내 충무공이야기 전시장도 만든다고 한다. 공간을 조각 내어 활용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본다.”
▼ 세종이야기에 대해 ‘잘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안 만들었으면 더 잘 만들 수 있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국가적 영웅의 기념관을 무덤에 들어가듯 높이가 1m90㎝ 정도로 낮고 공간도 협소한 지하에 두지는 않는다. ‘세종대왕동상’에다 ‘세종이야기’를 갖다 붙이면 홍보가 되겠다고 보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역사성이나 시민 편의성을 고려한 게 아니었다. 동상 설립에 맞춰 조급하게 세종이야기를 조성하다보니 공사비도 더 들었다고 본다.”
“반값이면 만들 수 있다”
▼ 관계기관에 따르면 128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는데 과다하다는 뜻인가.
“세종이야기 면적을 1000평이라고 봤을 때 공사비는 128억여 원이니 대충 잡아도 평당 1000만원이 넘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비싼 공사비가 들어간 건축물은 우리나라에서 잘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안다.”
▼ 세종이야기를 조성하는데 어느 정도 예산이면 가능했다고 보나.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공개경쟁입찰에 부쳐서 조성하면, 조달청 입찰로 할 경우에는 평당 500만원 이하로 조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종이야기는 설계변경 방식과 공개입찰 방식으로 조성됐다. 주변지역에서 공사를 하던 D사는 설계변경 방식으로 세종이야기 구조물 공사를 추가로 맡았다. C씨 측 컨소시엄은 일은 먼저 하면서 나중에 공개입찰에 참여해 낙찰받은 방식으로 콘텐츠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했다. J건축 사장은 C씨에 대해 “업계에선 ‘세종이야기 공사 한 건으로 일어섰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신동아’에 “세종이야기 공사비는 평당 654만원”이라고 알려왔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J건축 사장과 서울시 간에 차이가 발생한 주된 이유는, 서울시 측이 ‘세종이야기 사업비용’에 들어있는 비용 항목 중 일부(동상 기단부 공사비, 통로 구조물 공사비)를 뺐고 ‘사업면적’에선 세종문화회관의 면적을 더해 계산했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광장에 대한 내부고발이 서울시 감사부서에 전달된 뒤 서울시는 감사에 착수했다. 서울시는 내부고발자인 세종문화회관 경영본부장을 뒷조사하는 쪽으로 감사 방향을 틀었다. 이후 경영본부장에 대한 조사가 강도 높게 이어졌다. 당시 이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외부기관에 임의로 컨설팅을 의뢰했다’는 이유로 경영본부장 해임을 시도했다.
세종문화회관 측 관계자는 “오세훈 시장의 측근인 모 간부가 감사 책임자에게 ‘경영본부장이 문제인 것 같다’고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 감사의 표적이 내부고발자 쪽으로 향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 사장은 오 시장 측근이었다고 한다. 이는 이 사장이 2009년 6월12일 “내가 오 시장 재선을 위한 측근그룹의 좌장을 맡았다. 그 모임은 오 시장의 핵심 측근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변에 말해 알려졌다.
실제로 오 시장은 서울시 감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사장에게 “계속 일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서울시도 오 시장에게 “이 사장에 대한 제보내용은 별문제가 안 된다”는 취지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엔 ‘CJ그룹 밀착’ 논란
이 전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최근 가진 ‘신동아’ 인터뷰에서 “오세훈 시장은 나를 좋아했고 내가 그만두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은 이 전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오세훈 시장과는 친분이 있었나.
“채용 과정에서는 아니었지만 친분은 있는 것이고, 오 시장은 ‘이 사장이 하자는 대로 내버려둬라, 사심 없이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 부시장이 될 거라는 얘기가 있었나.
“그런 얘기 나돌긴 했다. 정무부시장으로…. 오 시장이 일하면서 나를 상당히 좋아했다.”
광화문 광장 지하 세종이야기 전시관
“정확하게는, 오 시장에게는 모 서울시 간부 등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내게 ‘저녁을 함께하자’고 해서 갔다.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이 ‘앞으로 자주 모이는 것으로 하자. 오 시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으냐’고 했다.”
▼ ‘오 시장의 재선을 돕자’는 의미였나.
“그렇게 말 안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좌장’을 뽑자고 하면서 가장 연장자인 나를 좌장으로 뽑았다.”
▼ 서울시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오 시장의 반응은 어땠나.
“오 시장은 내가 그만두는 거 절대 바라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내가 사의를 밝혀도 반려할 것이라는 믿음이 80%였다. 오 시장은 구두로 내게 ‘그냥 계속해서 끝을, 마무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끝까지 해주기를 바라는 의사표시가 있었다.”
경영본부장은 서울시가 이 사장 대신 내부고발자인 자신을 추궁하며 궁지에 모는 태도를 취하자 감사원, 청와대 등 다른 기관에도 비리의혹을 전달했다. 사태가 서울시의 영역을 넘어 외부기관으로 확대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측 관계자는 “감사원 측은 이 사장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서울시 조사내용에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안다”고 했다.
10월 들어 서울시의 분위기는 달라졌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 사장에게 자진사퇴를 수차례 요구했다고 한다. 10월19일 서울시는 이 사장과 정씨의 유착관계를 다시 조사했다. 4일 뒤인 10월24일 이 사장은 사퇴했다.
한 달여 만인 11월26일 세종문화회관 측은 박모씨를 신임 사장으로 발표했다. 전임 이 사장의 경우에는 공모절차를 거쳐 선임했는데 이번엔 그런 절차도 없이 지명했다. 세종문화회관 측 관계자는 “오 시장 측이 서울시와 사업관계가 긴밀한 CJ그룹 이재현 회장 측에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하자 이 회장 측이 계열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을 지낸 박씨를 추천해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서울시와 특정 대기업 간의 또 다른(유착)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안이라고 본다”고 했다.
시 “감사 공정했다”
서울시 측은 내부고발 문제와 관련, ‘신동아’에 “감사 결과 이 전 사장은 고의는 아니지만 일부 행정 과정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 사장직을 계속 수행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어 “제보가 접수되어 감사가 시작될 무렵 서울시 한 간부가 감사 담당자에게 ‘내부고발자인 경영본부장의 문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은 있다고 한다. 초기엔 감사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오 시장이 감사과정에서 이 전 사장에게 “문제 될 것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시장에게 정확하지 않은 감사보고가 올라가는 바람에 시장이 이를 근거로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서울시는 공정하게 감사를 진행해 이 전 사장에게 자진사퇴를 요청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전 사장과 서울시 모 간부가 만난 적은 있지만 이는 외부 기관장들과 함께한 단순한 모임”이라면서 “이 전 사장은 오 시장의 측근이 아니며 선거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신임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CJ그룹 출신이 선임된 것에 대해선 “CJ그룹뿐 아니라 각계에 세종문화회관 사장 추천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서울시 측은 “감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이나 의혹은 오 시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세종이야기는 각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시설물로, 조성과정도 일절 잡음 없이 투명했다. C씨 측 업체선정 문제는 공사발주처가 세종문화회관인 만큼 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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