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서 SNS 여론 중심에 섰던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왼쪽)와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결국 두 후보는 낙선했다.
2009년 아이폰 국내 출시 이후 SNS가 ‘주요 공론장’으로 부상했지만, 실제 SNS의 정치 영향력이 시험대에 오른 적은 없었다. 지난해 실시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SNS를 통한 정치 참여 가능성이 관심을 끌었지만 선거구가 서울로 한정돼 제한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12월 대선을 여덟 달 앞둔 시점에서 SNS 정치 여론의 힘과 그 전략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겠다.
김용민 막말에 SNS 굳건-보수층 결집
선거운동 기간 많은 이가 SNS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표출했다. 공지영, 이외수, 선대인 등 소위 ‘파워 트위터리언’의 글은 많게는 1000회 이상 리트윗(전달하기, 이하 RT)되며 퍼져나갔다. ‘신동아’는 국내 대형 홍보업체인 미디컴과 함께 19대 총선 기간 SNS 민심을 조사해 실제 총선 결과와 비교했다. SNS는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 메신저로서 가능성과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번 선거에서 SNS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인물은 ‘막말 논란’의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다. 4월 5일부터 2주간 김 후보와 관련된 트윗은 22만8161건이었다. 2위 문재인 후보(3만6092건)와 비교해 7배 이상 많은 수다. 2월 28일 민주당이 정봉주 전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갑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확정하고 김 씨를 공천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김용민 관련 글 중 RT가 많이 된 상위 30건 중에 25건은 긍정적인 여론이었다. 3월 22일 야권 단일후보로 확정되면서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정봉주 전 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김 후보를 지지했다.
4월 3일부터 언론을 통해 김 후보의 ‘막말 퍼레이드’가 공개되면서 사퇴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SNS 지지 여론은 굳건했다. 4월 3일부터 1주일간 김용민 관련 RT 상위 30건 중 김 후보에게 긍정적이거나 김 후보를 응원하는 글은 23건이었고 이 23건은 2만2789번 RT됐다.
4월 6일 김용민 후보가 본인의 트위터(@funronga)에 올린 글 “과거 욕설이나 음담패설이 지금 보면 부적절해 보이지만, 제한된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19금 방송에서, 더구나 부시와 네오콘의 만행에 대해 욕하고 음담패설한 것이 지금 와서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는 데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1065회 RT됐다. 또 4월 5일 한겨레 정치부 기자들의 트위터(@maljjin)가 김어준 씨의 말을 인용한 트윗 “(중략) 우리는 끝까지 간다. 사퇴하면 ‘나꼼수(나는 꼼수다)도 여기까지구나’라며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안 나올 수 있다” 역시 1000회 가까이 RT됐다. 하지만 선거 초반 일부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이노근 후보에 10%p가량 앞서기도 했던 김 후보는 개표 결과 6%p가까이 뒤졌다. 이에 대해 “김용민 후보에 대한 젊은층과 SNS의 일방적 지지가 오히려 보수층 유권자들을 결집시켰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밖에 문재인(2위)-손수조(4위), 정동영(3위)-김종훈(8위), 홍사덕(9위)-정세균(19위), 천호선(11위)-이재오(12위), 정몽준(10위)-이계안(18위) 후보 등 접전지역으로 꼽혔던 지역구 후보들이 SNS 버즈량(언급순위) 상위권에 링크됐다. 또한 논문 조작의혹에 시달린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5위), 제수 성폭행 미수 관련 녹취록이 공개된 새누리당 김형태 후보(6위)는 이전엔 거의 버즈량이 없다가 의혹이 제기된 직후부터 SNS 언급 수가 급속도로 늘었다. SNS 여론과 달리 문 후보와 김 후보는 모두 당선됐다.
손수조-김종훈 차이는 ‘50대 지지도’
이번 선거에서 언론에서 가장 주목한 두 선거구는 부산 사상구(손수조-문재인 후보, 이하 새누리당-민주통합당 순)와 서울 강남을(김종훈-정동영 후보)이다. 각각 20대 정치 신인과 야권 대선주자의 대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극렬히 대립했던 두 인물의 대결이었다. 두 선거구 모두 선거 기간 내내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다. 두 지역구 모두 SNS 여론장에서 야당 후보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총선 결과는 이와 달랐다.
2월 20일부터 총선 직전까지 손 후보에 대한 트윗은 16만4134건, 문 후보에 대한 트윗은 12만6311건이었다. 손 후보에 대한 SNS 여론은 급변했다. 2월 20일 손 후보가 ‘3000만 원으로 선거 뽀개기’ 공약을 내걸고 등장했을 때만 해도 손 후보에 대한 긍정 트윗이 많았다. 2월 27일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이 트위터를 통해 손 후보의 출마를 두고 장난스럽다고 비판하자 오히려 손 후보에 대한 동정, 지지 여론이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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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월 14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손 후보 선거사무소를 방문하고 이어 박 위원장과 손 후보의 카 퍼레이드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이면서 SNS 여론은 손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3월 23일 손 후보가 ‘3000만 원 선거’ 공약을 포기하고 나흘 후 선관위가 손 후보의 카퍼레이드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하면서 SNS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특히 이 시기에 ‘레인메이커’(@mettayoon), 선대인 세금혁명당 대표(@kennedian3), 고재열 시사iN 기자(@dogsul) 등 파워 트위터리언들이 손 후보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트위터 영향력이 센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patriamea)는 손 후보의 ‘3000만 원 전셋집’에 대한 의문 공세를 이어갔다.
반면 문 후보에 대해서는 지지 의사를 밝히는 트윗이 대다수였다. 4월 2일 문 후보가 정부가 제기한 ‘참여정부 사찰 논란’에 적극 대응했을 때와 4월 8일 문 후보 자택 일부가 무허가 건물이라는 논란이 일었을 때, 그의 해명 트윗이 급속히 RT되며 방어 여론이 형성됐다. 투표 결과 문재인 후보가 55.0%를 득표하며 승리했다.
손 후보는 개인 블로그에 ‘선거 가계부’를 올리고 SNS를 통해 관련 이슈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등 SNS를 활발히 이용했지만, SNS 영향력이 큰 사용자들의 집중공세를 받으면서 방어 및 대응 의지를 잃었다. 단순히 후보자가 SNS 열혈 이용자라고 해서 SNS 여론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 강남을의 경우 새누리당 김 후보가 3월 18일 공천되면서 SNS 경쟁이 시작됐다. 3월 19일부터 2주간 정 후보에 대한 트윗은 6만5971건에 달했고, 김 후보에 대한 트윗은 4만622건에 이르렀다. SNS에서 김 후보와 정 후보는 ‘선과 악’ 구도가 명확했다. 김 후보 관련 트윗 중 RT 상위 30건에 29건이 비판 트윗이었고, 정 후보에 대한 RT 상위 30건 중 29건이 긍정적인 여론이었다. 특히 소설가 이외수(@oisoo),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mindjj), 책 ‘88만원세대’ 저자 우석훈 씨(@Retiredwoo) 등 파워 트위터리언들이 김 후보 낙선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 이정희(@heenews)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서기호 전 판사(@gihos1) 등 통합진보당 측 인사들도 정 후보에 대한 강한 지지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투표 결과 김 후보가 59.5% 득표하며 승리했다.
김 후보는 손 후보에 버금가는 ‘부정적 트윗 공세’의 대상이었으나 SNS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는 50대 이상 유권자의 절대적 지지 덕분에 당선이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장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손 후보와 김 후보는 모두 젊은 ‘SNS 이용자’ 계층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김 후보는 50대 이상의 표를 확실히 확보한 데 반해 인지도가 없는 손 후보는 50대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SNS만으로 선거의 판세를 뒤엎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지지율 열세 천호선 선전은 SNS 덕
노회찬 통합진보당 공동대변인은 이번 총선에서 트위터를 가장 잘 이용한 정치인 중 한 명이다.
SNS의 선택과 실제 선거 결과가 차이를 보인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선거가 지역선거였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구 유권자들이 아무리 SNS로 지지해봤자, 지역구 유권자의 표로 이어지지 않은 것. 하지만 대선의 경우 모든 유권자의 ‘정보 대상’과 ‘투표 대상’이 일치해, SNS의 영향은 더욱 크게 작용할 것이다. 또한 SNS 정치 여론을 형성하고 소비하는 계층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20~40대로 한정됐고, SNS 특성상 1개의 글은 수만 번 RT돼 퍼질 수 있지만 유권자가 행사하는 표는 단 한 표라는 점도 SNS 여론 신뢰성의 한계다. 4월 11일 작가 공지영이 올린 “타워팰리스 투표율 78%” 트윗이나 부산 사상구청장이 손 후보 지지 문자를 보냈다는 내용의 트윗 등 허위 사실이 트위터를 통해 급속히 퍼지면서 손 후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 사건은, 허위 사실도 여과 없이 퍼뜨리는 SNS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SNS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결과도 발견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은평을 새누리당 이재오 후보와 통합진보당 천호선 후보다. 두 후보는 출구조사에서 천 후보가 앞섰으나 결국 1.1%p 차이로 이 후보가 승리했다. 한편 3월 28일 중앙일보와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 엠브레인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이 후보가 39.1%로 천 후보(24.2%)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15%p 가까운 지지율 차이를 보였던 두 후보가 이처럼 팽팽한 접전을 벌인 것은 천 후보에 대한 SNS 지지 여론이 한몫한 것으로 해석된다.
선거 기간 중 이재오, 천호선 후보가 언급된 트윗 전량을 분석했을 때 이 후보 관련 트윗은 70% 이상이 부정적인 내용이었고 천 후보 관련 트윗은 80% 이상이 긍정적 지지 내용이었다. 특히 작가 공지영(@congjee), 선대인 대표, 허재현 한겨레 기자(@welovehani) 등의 지지 트윗이 많게는 하루 600번까지 RT되면서 ‘천호선 살리기 여론’이 형성됐다.
이밖에 민주당이 수도권 112석 중 65석을 얻은 것이나, 4월 11일 SNS를 통한 투표 격려 메시지와 투표 인증샷 올리기 놀이가 확산되면서 오후 2시 이후 수도권 투표율이 급등한 것 역시 SNS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트위터, 노회찬처럼 해라”
이번 선거에서 SNS를 가장 잘 활용한 후보는 누구일까? 전문가 10인에게 물은 결과 노회찬 통합진보당 공동대변인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18대 총선에 이어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노 후보는 2009년 6월경부터 트위터를 이용한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다. 4월 중순 기준노 후보의 계정(@hcroh)의 팔로어는 21만8580여 명. 대다수 파워 트위터리언은 소수의 지인만 ‘팔로잉(following)’하는 데 반해 노 후보가 팔로잉하는 사람은 20만 명에 가깝다. 대다수 파워 트위터리언은 일방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데 반해 그는 트위터를 대화의 창구로 이용한다.
노 후보의 트위터에서는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배우를 물었는데, 제 답변은 (이렇습니다). ‘전 세계 정치인들. (왜냐면) 연기가 생활화돼있습니다’”(3월 22일) 등 유머와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은 트윗이 다수 눈에 띈다. 이장혁 교수는 “쉽고 유쾌하면서도 상황의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하면서 “긴 의견을 딱 140자로 압축해 표현하는 트위터의 생리를 잘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트위터를 잘 이용하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말’보다 ‘유권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 것.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공감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되 △집단별로 영향력 있는 사용자를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이끌어 공감을 자아내야 한다. 또한 △다양한 SNS 매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트위터에 의견을 올리고 관련 동영상이나 배경 설명을 유튜브, 블로그 등에 올려 링크하면, 관련 정보를 폭넓게 전할 수 있다. △이런 대화가 친분 위주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인들에게 퍼져나가면 일석이조다. 대선이나 SNS 파워가 더욱 강해질 향후 선거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할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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