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4차 산업혁명…한국만 ‘친박’ ‘친노’
- 국민 의식 저변에 4당 체제 기반 있다
- 차기? 현재 인물 구도 그대로일 가능성 0%
- 운명에 대면하면서 판 짜겠다
“성공은 했는데 충청포럼이 돼버려서….”
원희룡 제주지사가 웃으면서 답한다. 제주포럼(5월 25~27일)의 스포트라이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쏠렸다.
▼ 섭섭했겠다.
“아니다. 반기문 총장이 부각됐지만 그 덕에 포럼도 주목받았다.”
그도 잠룡(潛龍)이다. “반기문은 대통령직에 안 맞는다. 내년 초 원희룡·남경필 바람 불 것”(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신동아’ 6월호 인터뷰) “반기문, 원희룡, 유승민이라면 대통령이 되도록 돕겠다”(정의화 전 국회의장 ‘중앙일보’ 6월 11일자 인터뷰)….
그를 호출하는 목소리가 늘었다. 3선 의원을 지낸 보수정당 내 개혁파 선두주자였으나 서울시장 후보 경선(2010년), 당 대표 경선(2011년)에서 연거푸 쓴잔을 마셨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에 당선되면서 귀향했다. 지천명의 나이(52세)에 고향을 정치적 돌파구로 선택한 셈이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법대 수석’ ‘사법고시 수석’…. ‘제주도가 낳은 인재’는 6월 7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정계 개편의 역동적 과정은 필연”이라면서 “대통령으로 일한다면 영광 아니겠나”라고 했다. 또 “젊은 세대에게 희망으로 향하는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며 “출구는 세대교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프트웨어 코딩 배우는 중
▼ 어떤 공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소프트웨어 코딩을 배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최적화한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하려면 정치 지도자도 소프트웨어 코딩을 알아야 한다. 전문가가 되겠다는 건 아니다. 초보적인 것을 익힌다.”
▼ 소프트웨어 코딩이 뭔가. 애플리케이션 제작?
“맞다. 전문 프로그래머의 영역이 아니라 툴을 사용해 소프트웨어를 코딩하는 기초 수준이다. 기본적인 것이라도 알아야 더 나은 정책을 만들 수 있다.”
▼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는데 정치는 지체됐다는 반성에서 비롯한 공부인가.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때도 정치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기계가 인간의 근육, 가축의 노동력을 대체한 게 산업혁명이라면 기계가 인간의 두뇌를 대체하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는 시대의 화두가 ‘스마트 국가’ ‘포용 국가’에 있다고 봤다.
“부지불식간에 소프트웨어가 모든 산업 분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정치·사회·경제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정치권이 몰두할 시점이다. 잘 준비된 인재를 키워낼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1차),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2차), 자동화·정보화(3차)를 잇는 인공지능·로봇기술·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가리킨다. 그는 “미국·영국·싱가포르 정치 지도자의 당면 과제가 4차 산업혁명 분야”라면서 “한국 정치만 공천이 어떻게 되느니 ‘친노’니 ‘친박’이니 하면서 그런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꼬집었다.
▼ ‘동아일보’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DB)를 살펴보니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꼽았더라(토플러는 농업혁명=제1의 물결, 산업혁명=제2의 물결, 과학기술혁명=제3의 물결로 문명 단계를 구분했다).
“1990년대에 꼽은 게 DB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 당시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 이념적 지향의 변화와도 관련 있는 책인가.
“당연히 그렇다. 1980년대 독서 목록의 상위 순번은 이념 서적이었다. 사회과학 책을 주로 읽다가 1990년대부터 미래학을 읽으면서 세계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는지와 경제 정책에 대한 책으로 독서 목록이 변했다.”
“진보에서 보면 사이비”
▼ 지난 4·13총선에서 무엇을 배웠나.“역사적 교훈과 일반의 상식이 표심(票心)으로 표출된다는 진리를 통렬하게 느꼈다.”
그는 “합리적 보수가 등을 돌렸다”고 해석했다.
▼ 스스로를 ‘합리적 보수’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 합리적 보수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개혁성을 가진 보수가 합리적 보수다. 합리적 보수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성취의 원동력과 방향성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같은 원동력, 방향성을 부정하거나 단절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보수다. 그렇지만 경제력 집중이나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이 막히고 기회 균등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한다.
경제성장의 목표가 뭔가. 열심히 일했는데도 노후를 대비할 여력을 갖지 못해선 안 된다. 합리적 보수는 국민 모두가 중산층이 되고 민심이 안정되며 국력이 커지는 것을 원한다. 또한 교육, 주택 등 기본적 복지에서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면서 약자를 끌어안는다. 무엇보다 사회 계층 간 통합을 이뤄내려는 생각을 가졌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다른 견해를 포용하려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혁신이 조화된 건강한 경제 구조를 가진 ‘스마트 국가’ ‘포용 국가’를 중심에 놓고 가치 기준을 판단한다.”
▼ 2000년 보수정당에 입당한 것은 그런 바람을 이루기 위해선가.
“그렇다.”
▼ 보수정당에서 개혁성을 가진 보수를 충원하는 게 과거만 못하단 평가가 있다. 동종교배(in-and-in breeding)라고나 할까.
“새로운 창출은 이질적인 것과의 접촉에서 이뤄진다. 세계화·개방경제를 지향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질적인 것과 접촉하면서 공존하고 통합하는 게 발전의 동력이다. 다른 것을 담을 그릇의 크기를 잃어버린 채 편협해지고 배타적이 되면 역사의 변화를 주도할 수 없다. 동종교배는 우성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열성으로 후퇴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울시장 후보, 당 대표 등 큰 경선에서 쓴맛을 봤다. 고정적 기반이 없다시피 한 데다(그의 고향 제주도의 인구는 63만 명이다) ‘너무 진보적’이라는 시각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보수가 볼 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것일 뿐이다. 진보 동네에서 볼 때는 사이비 비슷하게 여기지 않겠나.”
▼ 노동관계 등에 대한 발언을 보면 보수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명확히 드러나더라.
“생산성을 높인다는 전제 아래에서 복지 등 진보적 가치를 포용하는 것일 뿐이다. 성장을 늘리는 것을 남 얘기처럼 도외시해버리고 진보적 가치를 생각하진 않는다.”
강요된 협치
▼ 도정(道政)에서 ‘협치(協治)’를 강조하던데.“2014년 도지사에 취임할 때만 해도 협치라는 말이 잘 안 쓰였다. 민관이 협력해 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표현이 어려운 탓에 생소하지만 협치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최근엔 협치가 정파가 다른 세력이 함께하는 ‘협력 정치’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민관 협치’와 ‘협력 정치’ 두 갈래 뜻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제주에서는 민간이 각종 위원회의 운영과 정책 결정 과정에 깊숙이 참여하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공무원만의 행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민관 협치를 통해 해내고 있다. 다른 정치 세력과의 협력 정치는 기득권을 바꿔나가는 개혁을 하면서 동시에 협력까지 하려니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 중앙정치에서 협력 정치가 잘 이뤄지리라고 보나.
“여소야대 상황인 터라 여당 처지에선 협치가 불가피하다. 야당도 ‘발목 잡는다’는 책임론 탓에 협치를 강요받는 측면이 있다. 여당이 국정 책임을 내팽개치고 야당에 무조건 양보하는 게 협력 정치일 순 없다. 여당이 대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정책을 내놓으면 야당이 협조 안 할 방법이 없다. 노동개혁 등 다양한 개혁을 얘기한다. 충분한 토론을 거쳐 설득력 있게 세워진 의제라면 주도권을 갖겠으나, 국민이 실질적으로 지지해주지 않으면 야당을 끌고 가지 못한다.”
▼ 정부·여당이 내놓은 개혁 어젠다가 선언은 거창하나 처방은 빈약하다는 뜻인가.
“꼭 그렇단 얘긴 아니다. 국민이 아파하는 것, 요구하는 것, 국민의 상식적 바람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지지와 신뢰를 얻는다.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더 겸허하고, 더 아프게 수용해야만 국정 운영 동력이 나온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국민이 아파하거나 절대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 반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해달라는 것은 우선적으로 해줘야 한다. 국정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건 하고, 양보할 건 양보하는 협력 정치를 주도할 수 있다. 전열 정비가 필요한데 총선 충격 이후 잘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걱정이 많다.”
▼ 2014년 출간한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에서 “우리 정치의 지역 구도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고질적인 병이 다음 선거에서도, 그 다음 선거에서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오늘도 우리는 그저 개탄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썼다. 지금도 생각이 같나.
“4·13총선 결과를 볼 때 (지역 구도가) 크게 약화한 것 같다. 영남도, 호남도 많이 깨졌다. 대중을 순간적으로 결속할 정책이 많지 않기에 표를 결속하는 과정에서 지역 구도가 부분 변수로 작용하는 게 냉엄한 현실이지만 과거보다 약해진 게 아닌가 싶다.”
“고향을 바꿀 순 없지 않나”
“낙관까지는 아니지만 올해 총선을 통해 많이 깨졌다. 변화무쌍한 과정을 통해 지역 구도가 더 깨질 수도 있고, 대선으로 가면서 원위치로 복원하려는 힘이 더 세질 수도 있다.”
▼ ‘충청 대망론’ 같은 정치공학 수사(修辭)가 나오는 것으로 봐선 나아진 게 별로 없는 것도 같다.
“득표 요인은 모두 건드리는 게 정치다. 지역 구도에 기대는 움직임은 당연히 나온다. 다음 선거에서 시대적 흐름을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과연 지역 구도일까. 세대적 요인이 더 커 보이기도 한다. 지역과 세대를 넘는 국가적 큰 이슈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아직은 알 수 없다고 본다.”
▼ 현재의 지역 구도가 유지된다면 제주 출신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각 지역이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상황이면 어떤 공백 상태에서 될 수도 있겠으나 현실성이 없다.”
▼ 제주 출신이라는 한계 탓에 중앙정치에서 손해 봤다고 생각하나.
“그렇다고 고향을 바꿀 순 없지 않나. 한국인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있나. 운명을 탓하는 건 철없는 것이다. 운명을 대면하면서 그 나름의 판을 짜는 것이다.”
▼ 판을 잘 읽는다고 ‘책사(策士)’ 소리를 듣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신동아 6월호 인터뷰에서 “반기문 총장은 대통령직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내년 초 원희룡·남경필 바람이 불 것”이라고 하더라. 정말 ‘바람’이 불 것 같나.
“국민이 취미로 정치 변화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삶의 절박함으로 바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출구를 찾아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희망으로 향하는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물이 웅덩이에 고이면 출구를 찾아 흘러가는 게 이치다. 출구는 세대교체에서 찾을 수 있다. 보수 본류에서 못 찾으면 보수 개혁파에서 찾을 수 있다. 가능성 부분에서는 당연히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나의 주된 관심사는 국가를 운영하는 집단 내지 세력에 있다. 그 안에서 대통령으로 일할 수 있다면 영광 아니겠나. 국가 운영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책임감과 능력을 바탕으로 어떻게 가슴 뛰는 변화를 만들어낼지, 첩첩산중으로 얽힌 국가의 문제들에 어떻게 출구를 만들어낼지 고민하고 도전하는 경쟁이 치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계 개편의 역동적인 과정은 필연이다” “주전자 물이 뜨겁게 끓는다”면서 정치 구조 변화를 예측했다.
“국민 의식이나 정치 성향의 저변을 보면 4당 체제의 기반이 있다. 국민의 이 같은 성향에 맞춰 각자 집을 지어 4당 체제로 가는 것은 다당제, 연립정치 기반의 유럽식일 것이다. 중도를 포용하면서 다수를 얻으려는 국민통합적 정치로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미국식 양당제로 갈 수도 있다. 다당제로 갈지, 양당제 내에서 그때그때 대결하는 구도로 갈지는 아직….”
“출구는 세대교체에서…”
▼ 반기문 대망론이 거론되면서 정계 개편 얘기가 줄었다.“주전자 물이 끓는데 물을 더 부으면 숨이 좀 죽었다가 다시 끓는다. 국수를 삶을 때도 똑같다. 반기문 변수가 정치판에 흡수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반기문 총장 임기가 올해까지이기에 12월까지는 가상의 반기문으로 존재하는 터라 정계 개편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
그는 제주포럼 이전 언론 인터뷰에서 반기문 대망론과 관련해 “상처만 받을까 걱정된다. 존경받는 국제지도자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역동적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보는 까닭은 뭔가.
“현재의 정당 구조, 인물 구도가 그대로일 가능성은 0% 아닌가. 내년 들어 정치 세력 간 판도가 구체화하면 자신들의 생존과 목적 달성을 위해 더 나은 여건을 만들고자 움직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개편은 필연이라고 본다.”
▼ 대북 정책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가졌나.
“기본적으로 평화 관리가 시급하다고 보는 쪽이다. 핵 개발은 당연히 억제해야 하는 것이다. 교류 단절로 인해 연고권(緣故權)이 약해지는 부분이 있다. 민심을 한국 쪽으로 끌어당길 방향성을 유지해야 한다. 대화냐, 제재냐는 탄력성을 갖고 강온(强穩) 양면을 써야 할 문제다. 무조건 대화를 재개하라는 것은 현재로선 순진한 생각이라고 본다.
똥파리
우리가 해선 안 될 일은 선제 타격이라든지, 미래의 정복 대상지처럼 여기고 접근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IT 인력을 함께 키우는 등 북한의 현 정권과 함께 할 일을 찾아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리스트를 만들고 그 사이에서 평화를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탈북자를 2등 국민으로 대접해선 안 된다. 잘 보살펴야 한다. 민심이 한국으로 오게끔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똥파리.
서울대 82학번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희룡 지사, 나경원 의원,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이 ‘똥파리’다. 졸업정원제로 입학 방식이 바뀌면서 신입생 수가 늘었다. 81학번은 서울대 초유의 입학정원 미달사태가 벌어진 학번이다. 숫자가 많다 보니 일종의 세력처럼 여겨졌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덧붙여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첫 세대다. 1984년 학원 자율화 조치 이후 학생회를 재건하고 공개적인 투쟁 조직을 만드는 데도 이들이 앞장섰다. 떼로 몰려다니면서 거침없이 행동해 생긴 똥파리 별명은 지금도 따라다닌다.
원 지사는 똥파리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았다. 전국 수석이 비합법 지하서클에서 활동하는 운동권이었기 때문이다. 원 지사와 함께 구로공단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한 똥파리 K씨는 “원희룡은 무엇을 하든 동기들 사이에 주목받았다. 운동권 학생이 야학에서 일한 목적은 노동자를 의식화하고 선진적인 노동자를 발굴하려는 것이었다”고 했다.
▼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웠겠다.
“힘들었다.”
▼ 관계 기관에서도 더 주목했을 거고.
“어차피 숨어 다녔으니까.”
▼ 1980년대를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불행한 세대다. 세상을 바꾸겠단 열정을 갖고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용기를 가진 부분은 가상한 것 같기도 한데,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정상적이지 않은가. 관념적으로 너무나 많은 짐을 떠안았다는 점에서 불행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때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래?’라고 물으면 뾰족한 답이 떠오르진 않지만, 똑같이 했으리란 생각도 든다.”
“소장파라 불러주면 고맙다”
▼ 2016년의 청년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적은 듯하다.“진로랄까, 미래랄까, 개인적 고민이 많지 않나. 1980년대엔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이상론적 고민, 확장론적 고민을 했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같은 것에 관념적으로 끌렸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속은 것 같아 억울하다. 한국 경제가 외채 탓에 망한다 했지만 다 엉터리였다. 리영희의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 같은 책도 가슴을 뛰게 했으나 되돌아보면 우물 안 개구리 식의, 근거가 희박한 교조주의적 내용이다.
폭발적으로 지성을 키울 수 있는 20대에 교조적인 이념을 열정의 땔감으로 삼은 게 솔직히 조금 창피하다. 창조적 모색을 해야 할 시기에 그랬다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이 시대가 우리에게 준 불행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대기업에서 취업하라고 편지가 와도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랬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비판하고 싸웠던 고도성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세대가 이른바 386세대이기도 하다.”
▼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검사를 선택한 까닭은.
“앉아서 판결문 쓰는 일은 답답해서 못하겠더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마약 담당 검사로 일하다가 한편으로는 힘들기도 하고, 외환위기가 닥치는 것을 보면서 검사 일 열심히 한다고 세상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방황했다.”
▼ 정치권에서 잔 주먹은 날렸는데, 큰 주먹은 휘두른 적이 없다.
“새누리당의 풍토적인 면도 영향을 미쳤다. 주먹이 다 닳아버린 게 아닌가 싶다.”
▼ 언제까지 ‘소장파’냐는 비판도 있다.
“나이 먹다 보니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 소리 듣는 것 같아서 소장파라고 불러주면 고맙더라.”
“묻지마 투자 주의하세요”
▼ 새로운 제주의 토대는 마련했는지.
“그렇다. 무엇보다도 난개발, 옥석을 구분하지 않은 투자 유치를 막고자 확고한 원칙을 세웠다. 환경 보전이 최우선이라는 점도 확고히 했다. 원칙이 너무 강한 게 아니냐는 반발이 나올 정도다. 바깥에선 중국에 땅을 계속 파는 것 아니냐, 난개발을 계속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 중국인 관광객 대상 유흥업소도 중국인이 한국인 ‘바지 사장’을 내세워 운영한다고 들었다. 관광산업을 키우려면 중국 자본이 필요하지 않나. 딜레마일 것 같다.
“자연을 파괴하거나 부동산 개발 위주의 투자는 받아선 안 된다. 지역 경제와 선순환 관계가 이뤄지도록 투자 내용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중국 여행사를 통해 중국 항공기 타고 와서 중국인 식당, 중국인 술집을 폐쇄회로처럼 돌면서 제주도 경제에 낙수 효과가 없는 형태를 개선할 것이다.
중국의 투자는 장기적으로 안보와 주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많이 올수록 좋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 경제에 편입된다든지 중국의 정체성에 휩쓸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투자 유치를 일본, 중동, 유럽으로 다변화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제주도에서 단호하게 지켜야 한다.”
2030년까지 100% 전기차
▼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는.
“청정 환경을 지키지 않고는 현재도, 미래도 없다. ‘탄소 없는 섬’으로 무조건 간다. 2030년까지 화석 연료 없는 전력 생산, 100% 전기차를 이뤄내는 것과 관련해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겪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정책 의지가 확고하다.”
▼ 스마트 경제의 토대는 마련했나.
“에너지, 관광을 스마트화하고 있다. 예를 하나 들면 가로등에도 스마트 기술을 도입한다.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전기차 등을 앞서 경험하는 체험장이 될 것이다.”
▼ 부동산 값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투기가 끼여서 그렇다. 실수요가 많은 데다 개발 계획 때문에 토지 가치 자체가 올라가는 측면이 있다. 기획 부동산이 투기를 부추기는 데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해야 한다. 강력한 억제책을 펼치고 있다.”
▼ 투자할 때 꼼꼼히 살펴봐야겠다.
“일찍 투자한 분은 대부분 수익을 냈다. 막차 타는 분은 실패할 수 있다. 공항, 항만 등 도시 구조와 교통체계 전반에서 큰 틀의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장기적 투자를 원하는 분은 이 같은 변화를 잘 읽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과거에는 도로가 닿지 않는 맹지에 투자해도 괜찮았던 모양이다. 묻지마 투자로 맹지를 사는 분이 있는데 피해 볼 소지가 상당히 있다. 묻지마 투자로 산 땅이 개발 억제 정책에 묶일 것 같아 폭탄 돌리는 것을 덥석 물었다가 낭패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