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임종석 통일포기론, 28년 전 지만원 주장과 데칼코마니

[노정태의 뷰파인더] 2024년에 1990년대 낙관론 꺼낸 것은 안보 포기 다름 없어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4-09-29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임종석 통일포기론 “남북, 통일하지 말고 따로 행복하자”

    • 문재인도 같은 생각… 더 비현실적으로 변한 민주당 대북관

    • ‘한국과 교전 상태인 국가’라는 북한

    • 도대체 어떻게 북한과 평화적‧민족적 2국가 체제로?

    • 낙관적 전망 만연하던 1990년대… 시대 바뀌었다!

    • 대한민국, 무근거 낙관론에 빠질 만큼 한가하지 않다

    •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 준비하라”는 말 되새길 때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발표하고 있다. [뉴스1]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통일, 하지 맙시다. 그냥 따로 함께 살면서 서로 돕고, 존중하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요?”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문재인 정부)이 한 말이다. 북한과의 통일을 포기하고, 서로 다른 두 국가로 병존하자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북한과의 평화 및 통일을 대북정책의 핵심 의제로 삼고 있는 정당이다. 민주당의 강령에는 ‘통일 기반 조성’이 명시돼 있다. 임 전 비서실장의 이 발언은 그가 속한 정당이 그간 취해온 대북정책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뒤집자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여파는 컸다. 한평생 통일을 외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임 전 비서실장의 입에서 통일을 포기하자는 발언이 나왔다는 것도 놀랍지만, 발언 시점도 공교로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한민국과의 통일은 성사될 수 없다고 밝힌 지 채 한 해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니 말이다.

    “결국 통일이 아니라 김정은 지배 체제를 추종하고 있었을 뿐이냐” “평생의 신념을 북한에서 내려온 말 한마디로 뒤집을 수 있는 것이냐” 등 각계각층에서 비판, 비난, 아니 어쩌면 비아냥이라 해도 좋을 반응이 쏟아졌다.

    필자도 그러한 비난 대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청와대에서 대한민국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좌우하던 그가 북한의 기류 변화와 함께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 섬뜩할 정도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임 전 비서실장 혼자만의 생각일까. 같은 날 그 자리, 문재인 전 대통령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나서면서 기존 평화·통일 담론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임 전 비서실장과 궤를 같이 하는 이야기를 내놓았다.

    임 전 비서실장의 통일 포기 발언은 개인의 돌출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문재인 정권, 더 나아가 민주당 전체의 방향 선회를 암시하는 복선일까.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원래도 현실성이 그리 높지 않던 민주당의 대북관‧통일 정책이 더 비현실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이름 가리고 보면 구별 불가한 임종석‧지만원 통일론

    지난해 말 김정은은 “북남(남북) 관계는 더 이상 동족‧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밝혔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한국과 북한은 더는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 없다. 둘째, 그러므로 한국과 북한은 공존할 수 없는 관계다. 그런데 이 두 전제를 놓고 보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 도출된다. 북한은 한국에 대한 무력 통일시도 등 한국의 국익을 해치는 일을 꺼리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 대 국가로 군사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포석에 가깝다. 여기에는 ‘평화로운 2국가 체제’의 단초 따위 전혀 없다. 그 점을 임 전 비서실장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글을 시작하며 인용한 문장 뒤에 바로 이런 말을 덧붙였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분명히 말합니다. 평화적 두 국가, 민족적 두 국가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체 무슨 수로 스스로를 ‘대한민국과 교전 상태인 국가’로 정의하는 나라와 평화적‧민족적 2국가 체제를 정착시킬 수 있단 말인가. 금강산에 호텔을, 개성에 공장과 남북연락사무소를 지으면 북한이 전쟁 아닌 평화를 택할까.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다. 햇볕정책은 실패했다. 북한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손에 핵을 쥐게 됐다. 반대로 대한민국은 햇볕정책의 결과로 기대했던 그 무엇도 얻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당 정권만을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일이다. 집권 세력의 성향을 완전히 논외로 할 수는 없지만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당시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1990년대라는 격변기의 맥락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1991년 12월 26일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공식 해체했다. 건국 69주년을 나흘 앞둔 시점의 일이다. 소련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핵심국 러시아를 향해 미국은 여러 방향으로 경제적 ‘당근’을 내밀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것 역시 마찬가지 흐름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국은 구 공산권 국가들을 적극적으로 자본주의 국제무역 질서에 끌어들임으로써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하고자 했다. 그렇게 경제가 성장하면 중산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이 민주주의를 요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미국적 가치가 반영된 민주국가로 거듭나게 되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1990년대는 그런 시대였다. 공산권이 와해되고 냉전 질서가 무너졌다. 북한 상황은 한층 더 처참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이어진 대기근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은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과 체제 경쟁을 벌일 수 있었던 북한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졌다.

    그로 인해 달라진 것은 북한만이 아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 역시 격변을 겪었다. 1987년 대령으로 전역 후 군사평론가로 활동하던 지만원이 1996년에 펴낸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라는 제목의 책엔 그러한 시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0년 2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선고기일에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발언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만원 씨가 출석하고 있다. [뉴스1]

    2020년 2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선고기일에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발언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만원 씨가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그는 군대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시스템 차원에서 분석‧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피력하며 유명 논객으로 떠올랐다. 요즘도 군사전문가는 흔치 않으니 당시엔 더 희소성이 있었다. 온건한 보수주의자 포지션이던 그가 ‘한겨레’ 등 진보 매체에서도 필자로 기용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앞선 그의 저서 머릿말엔 이렇게 쓰여 있다.

    “많은 이들이 한반도에 한 사람의 대통령을 갖는 정치적 통일을 생각하고 있겠지만 나는 사회적 통일을 생각하고 있다. 군사적 긴장이 사라진 상태에서 남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통일 아닌가.”

    이 주장을 좀 더 길게 풀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체제 1국가 통일’을 목표로 하는 한 우리는 언제든지 북한에 의해 무력통일 당할 수 있다는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길 원치 않으면 욕심을 버리고 지금부터 평화 공존 시대를 열어야 한다. 마치 한국과 일본이 공존하듯이 남북한도 서로 침략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금의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자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평화 공존, 휴전선의 국경선화, 두 개의 독립 국가화, 분단의 영구화 이 네 낱말은 모두 동의어다. 평화 공존을 원한다면 분단의 영구화와 두 개의 독립 국가화를 원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 “통일, 하지 맙시다. 그냥 따로 함께 살면서 서로 돕고 서로 존중하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요?”라는 임 전 비서실장의 발언을 다시 읽어보면 사실은 명백하다. 임 전 비서실장의 통일 포기 발언은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이제 ‘극우 논객’으로 자리매김한 지만원의 ‘영구분단론’과 다르지 않다. 영구분단론을 그저 좀 더 ‘민주당적 감성’이 담긴 수사법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수준이다. 지만원이 쓴 글임을 모른 채 다음 문장을 읽어보자. 이것이 임 전 비서실장의 글인지 아니면 지만원의 글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가. 통일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통일을 추구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선택인가. 분단이 공식화돼서 몫이 보장돼야만 비로소 긴장이 없어지고 신뢰가 생길 수 있다. 신뢰가 생겨야 교류와 협력이 가능해진다. 교류와 협력이 일상화되면 동족 간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연합도, 연방도, 그리고 통일도 모두 다 할 수 있다. 휴전선의 국경선화, 분단의 영구화만이 가장 빠른 통일의 지름길인 것이다.”

    1990년대 하던 말을 지금해서야…

    임 전 비서실장과 지만원이 같은 생각을 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를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두 인물이 1990년대적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할 따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시는 그런 시대였다.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개방하기 시작했으며 북한엔 아사자가 속출했다. 구 공산권이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은 빠른 속도로 의식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러시아가 민주국가가 되고, 중국이 잘 살게 되고, 북한과 한국이 상호 합의하에 군축을 한다면 총 한 발 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던 때인 것이다.

    이런 생각이 오판이었음이 드러나기까진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2000년 러시아 대통령 자리에 오른 전직 KGB 요원 블라디미르 푸틴은 빠른 속도로 모든 권력을 자신의 손에 틀어쥐었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쌓여가는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체첸을 침공 및 점령했다. “전쟁 영웅”이라는 러시아 국민의 환호성에 취한 그는 남오세티야에서 또 전쟁을 벌이고, 크림반도를 병합하며, 급기야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공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아직 러시아처럼 극적 장면을 연출하고 있진 않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지 모른다는 불안은 대만해협을 떠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경제 성장이 중산층을 낳고 중산층이 민주주의를 낳을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낙관론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1국가 2체제를 통해 특유의 개방성과 자유로움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홍콩이 몇 차례의 민주화 시위 실패 이후 평범한 중국의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로 전락했을 따름이다.

    한국의 햇볕정책 역시 그렇다. 그 시작부터 끝까지 국제 정치와 무관한 사건이라 할 수 없다. 공산권이 붕괴하고 해체되던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 노태우 정권부터 시작된 북방정책의 일관성 하에 도출될 수 있는 결론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민주당과 그 정권이 표방해온 비현실적 대북관과 낭만적 통일론은 엄중한 역사의 평가를 받아 마땅한 실책임과 동시에 벌써 30년도 더 된 과거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북한을 향해 ‘튼튼한 울타리’를 친 후 이쪽에서 공격적 태도를 내려놓음으로써 두 나라가 각자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제도적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마치 국경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왕래할 정도로 밀접하게 살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 국민들처럼, 남과 북도 실질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는 아름다운 꿈. 지만원이 1996년에 논객으로서 한 이야기를 2024년의 임종석이 전직 고위 공직자로서 되풀이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다. 앞서 확인했듯 북한은 대한민국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의향이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혔고, 올해 10월 헌법 개정을 통해 이를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도 그 끝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우리는 1990년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 시대에서 1990년대 낙관론 = 안보 포기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정관 인근에 북한이 살포한 오물풍선 잔해가 흩어져 있다. [뉴스1]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정관 인근에 북한이 살포한 오물풍선 잔해가 흩어져 있다. [뉴스1]

    5월 28일 북한은 대한민국을 향해 오물이 담긴 풍선을 내려 보내기 시작했다. 9월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금은 그저 오물만 담겨 있지만 내용물이 언제까지나 그 수준에 머물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생화학무기 등 다양한 변형 테러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심각한 안보 문제다.

    과도한 걱정처럼 보인다면 국제 뉴스를 살펴보자. 얼마 전 헤즈볼라 요원들이 가지고 다니던 무선호출기(삐삐) 3천 대가 동시에 폭발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 미리 심어둔 폭약이 신호를 받아 폭발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소행임을 인정하지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이는 상대는 헤즈볼라만이 아니다. 애초에 이 전쟁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에서 납치 학살극을 벌이면서 시작된 것이다. 하마스는 거의 괴멸 상태에 이르렀지만 그 배후에 있던 이란은 다른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을 늘리며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키웠고, 그것이 결국 ‘삐삐 폭탄’ 사건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이런 시대다. 미사일이 국경을 넘어 날아다닌다. 어떤 나라는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과격 무장 단체를 후원하며 대리전을 벌인다. 그에 대한 응수로 또 어떤 나라는 디스토피아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수천 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인명을 앗아간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90년대 사람들에게 1960년대의 냉전 시대 사고방식이 어떻게 보였을지 상상해보자. 혹여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기억을 되짚어보자. 2024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1990년대의 낙관주의가 어떻게 보일까. 한없이 비현실적이고 구시대적 사고방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북한을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동급으로 취급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낭만적 대북관‧통일관만큼이나 통일 포기와 영구 분단론 역시 구시대의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북한이 기아로 스스로 붕괴되기 직전에 이르렀고, 핵무기 보유 여부가 확실치 않던 1990년대가 아니다. 장기간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손을 내밀며 북한은 숨통이 트였고, 핵개발은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있다. 전 세계에 기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이브리드 전쟁과 전투가 속속 벌어지고 있으며, 북한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속에서 실전 경험을 쌓아가는 중이다.

    그런 북한이 이제 우리를 향해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선포했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 와중에 “한국도 북한도 각자 따로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지금 우리는 “대북확성기를 끄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와 같은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북한이 우리에게 전방위적 정보전‧인지전‧비정규작전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

    헌법에 규정된 평화적 통일 지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그런 면에서 분명하다. 우리의 모든 안보 태세가 그러한 법적 근거 위에 성립해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북한과의 분단을 영구 고착화하고 2국가 체제를 인정하자는 것은 '안보 포기 선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아직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변치 않는 원칙을 지키면서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군사 저술가 푸블리우스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의 ‘군사론’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로 결론을 대신할 수 있을 듯하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