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파기환송, 법치주의가 국민주권주의에 도전한 사건
국가 백년대계 결정하는 건 대법관 수 아닌 대통령선거
증원 시 대법원 7개 소부 가능…민사 3개, 형사 3개, 노동 1개
李 대통령이 16명 모두 임명해 걱정? 유예기간 연장 가능
대법관 증원 규모 협의 가능, 다만 걱정되는 건…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민주당이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까지 차지하면서 삼권분립 훼손에 대한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대법관 증원은 향후 관련 논의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신동아’는 대법관 증원 문제에 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2인의 인터뷰를 마련했다.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김용민 민주당 의원과 ‘신중론’을 주장하는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인터뷰를 나란히 싣는다. <편집자 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새 정부가 닻을 올렸으나, 정작 세간의 이목은 행정부가 아닌 입법부와 사법부로 쏠리고 있다. 대통령 임기 시작과 동시에 대법관 증원 문제가 부상하면서 삼권분립을 둘러싼 격론이 거세진 탓이다. 야권은 이를 ‘사법 장악’ 시도로 규정하며 반발하는 반면, 여권은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용민(49)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법관 증원 이슈의 핵심 플레이어다. 그는 5월 1일 대법원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다음 날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증원하는 원포인트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른바 ‘대법관 증원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대안이 반영돼 폐기됐으나, 통과된 것과 진배없다. 대안 법률안 역시 대법관 증원 규모를 30명으로 동일하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증원 기간을 2년(연간 8명씩 증원)에서 4년(연간 4명씩 증원)으로 늘린 것만 다르다.
대법원 파기환송, 법치주의가 국민주권주의에 도전한 사건
김 의원은 “지난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에 대해 국민이 정치적 심판을 내려 국민주권을 실현한다’는 의미를 가졌는데 소수의 대법관이 이를 막아 섰다”며 “법치주의라는 한 영역이, 그보다 상위 개념인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에 도전한 중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사법부를 종속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국민주권을 침탈하려 해 이를 막겠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이 대통령이 ‘국민주권 정부’를 표방하는 만큼 그의 주장은 새 정부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6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 의원을 만났다.“대법관의 업무가 과중해 증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있어왔다. 다만 이 대통령 재판 직후 관련 법안이 발의돼 시기에 대한 지적이 있다.
“오래된 개혁 과제의 경우 개혁이 가능한 시기가 찾아온다.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개혁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고 국민이 목소리를 높이는 지금이 개혁의 적기다. 야당에서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법원이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보복성 법안을 발의한 것 아니냐’고 정치적 공방을 펼치겠지만 해당 관점에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대법관 증원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보나.
“국민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자신의 사건을 꼼꼼히 살펴 판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 왔다. 1·2심에서 패소하더라도 대법원으로 재판을 끌고 가는 경향을 많이 보인 이유다. 이번에 이 기대가 무너졌다. 대법관인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대법원은 원래 판결할 때 관련 기록을 다 보지 않는다’고 얘기한 것이다. 판사가 기록을 모두 보지 않은 채 판결한다는 사실을, 그것도 대법원에서 인정했다.”
천 처장은 5월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이 대통령 재판 과정에서 대법관들이 소송 기록을 모두 읽었느냐는 질의에 “상고심의 특성상 대법관이 모든 기록을 보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이는 “재판을 소홀히 했다”는 취지가 아닌, “1·2심에서 확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법률 해석만을 따지는 법률심의 특성상 소송 기록을 모두 살피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법적 쟁점이 사실상 정해져 있으니 해당 부분 위주로 판단하면 문제없지 않나.
“쟁점을 정리하고, 판결에 필요한 기록이 무엇인지를 누가 판단하는가. 결국 법원이다. 재판 당사자 입장에서 A라는 사실이 너무나 중요해 호소하는데, 법원은 ‘A는 의미가 없고, B를 보겠다’고 취사선택을 한다는 의미다. 재판부가 모든 기록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판결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 백년대계 결정하는 것은 대법관 수 아닌 대통령선거
대법관 증원 규모를 30명으로 정한 기준은 무엇인가.“대법관 증원과 맞물려 등장하는 논의가 있다. 대법원을 영역별로 세분화 및 전문화하자는 것이다. 독일 등 사법 선진국의 방식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은 실질적으로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만큼, 대법관을 30명으로 증원하면 28명의 대법관으로 소부를 구성할 수 있다. 1개 소부에 4명의 대법관을 배정하면 이들로 7개 소부를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3개 소부는 민사를 담당토록 하고, 3개 소부는 형사를 맡게 할 수 있다. 남는 1개는 노동 전담 소부로 구성할 수 있다. 운영 측면에서 대법원을 전문화할 수 있는 것이다.”
법안에 대법관 증원 규모에 대한 내용만 담겼고, 제반 시스템에 대한 내용이 없어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6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마친 뒤 조희대 대법원장을 지나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법관 증원에 대해 “국가 백년대계가 걸린 문제”라며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는데.
“원론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하는 것은 대법관의 수가 아닌, 대통령선거다. 그런데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대법관들이 지난 대선에 함부로 개입했다. 법치주의라는 명분으로 함부로 국민주권의 시간을 약탈하려 한 것이 지난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백년대계를 결정할 국민주권의 시간을 함부로 침탈한 조 대법원장은 백년대계를 말할 처지가 아니다. 백번 양보해 대법관 증원이 국가 백년대계라 치자. 헌법은 대법관의 구성과 수에 대해 법률로 정하도록 (국회에) 위임했다. 입법 재량 사항인 만큼 국회가 충분히 논의해 결정하면 된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지점은 한 명의 대통령이 대법관 16명을 모두 임명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로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먼저 정말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된다면 증원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식으로 조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하다. 헌법상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려면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특정한 사람을 지정해 대법관으로 임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구조다. 이 대통령 임기 중 16명의 대법관이 임명되더라도, 대통령이 직접 고를 수 있는 대법관은 한 명도 없다. 헌법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 놓고 있다.”
하지만 정권마다 코드인사 논란이 반복되지 않았나.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면 모든 것이 코드인사로 보인다. 대법원장을 누구로 지명할지는 대통령의 몫이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게다가 대법관은 판사·변호사·시민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복수의 후보를 추천하면 그중에서 대법원장이 국회에 추천하는 구조다. 절차상 코드인사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대법관을 증원하면 전원합의체 판결이 마비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는 보통 30여 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되며, 이들이 다양한 사안에 대해 논의하며 굴러간다. 보통 만장일치 방식으로 최종 의견을 결정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운영된다. 의견을 개진하는 시간 역시 충분히 주어진다. 전원합의체는 다수결로 진행돼 결과를 도출하기 훨씬 수월하다. 대법원의 구성을 개편해 전문 분야별로 전원합의체를 열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법관 증원 규모 협의 가능, 다만 걱정되는 건…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과 협의하며 법안을 처리하길 바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이 사실상 법안에 반대하고 있어 협의가 쉽지 않을 텐데.“물론 야당과 합의할 것이다. 이제 여당이 됐으니 야당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합의점을 도출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간 국민의힘은 개혁 과제에 대해 일단 반대하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 반대한다고 판단되면 법안을 과감하게 처리해야 할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다만 이를 염두에 두고 협의 자체를 불성실하게 하지는 않겠다.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수용하겠다.”
협의 범위를 어디까지 열어두고 있나.
“대법관 증원 규모를 30명 전후에서 조정하는 것은 충분히 협의 가능하다. 이 경우 세부 영역을 나누는 식으로 대법원을 전문화하는 것까지 나아가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실질적으로 걱정되는 것이 있다. 오늘(6월 10일) 3대 특검법(내란특검법·김건희특검법·채상병특검법)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특검이 출범하면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가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법원 및 검찰과 관련된 개혁 과제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더 나아가 개인의 이익이 녹아든 주장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협의가 힘들게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실질적 우려가 있다.”
앞서 “법안을 과감하게 처리해야 할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게….
“경우에 따라 그럴 수 있겠지만 원내대표가 결정할 문제다. 정치력을 잘 발휘해 관련 상황을 조율해 나갈 것이라 기대한다.”
대법관 증원 유예기간(1년)은 언제까지 추가 연장이 가능한가.
“유예기간이 연장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을 준비하는 인적·물적 시스템을 갖추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대법관이 늘어나면 별도의 공간이나 인력이 필요할 수 있고, 각 부를 어떻게 나눠 운영할지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왜 이 대통령이 대법관 16명을 모두 임명하느냐’는 우려가 매우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다. 국민의 우려는 수용해야 한다. 이 경우 다음 대통령이 증원되는 대법관 일부를 임명할 수 있도록 법안을 조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제안이 나온다. “현 법안처럼 대법관을 16명 증원하되, 대통령마다 4명씩 서서히 증원하자”는 목소리다.
“그 방식으로 하면 개혁이 너무 늦어진다. 대법관 증원의 출발점은 ‘대법관이 내 기록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다. 증원이 지나치게 장기화하는 것은 개혁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국민적 우려가 있다면 거기에 맞춰 (법안 내용을) 조정하겠지만, 지나치게 장기화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다.”
법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 기일을 연기했다. “법원이 물러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헌법에 따른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다. ‘법원이 물러섰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애당초 대법원에 대해 ‘기록을 전부 읽지 않고 지나치게 빨리 판결했다’는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고등법원 역시 파기환송심 기일을 너무 빨리 잡았다. 이 때문에 고등법원 역시 주권자의 선택의 시간을 침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대통령의 재판이 멈추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는데, 향후 입법부와 사법부 간 긴장이 완화될 여지는 없나.
“정치적 해석이다. 다만 사법개혁은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 가며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 만큼, 검찰 개혁보다는 천천히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이 대통령이 ‘사법제도비서관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사법제도비서관이 사법개혁 과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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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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