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호

김일성이 실천한 북한식 자연요법

  •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2-27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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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은 음악 명상을 즐겼고, ‘산삼꽃’에서 나는 산삼향기를 들이마시면서 보양하고, 각종 한약재가 들어 있는 베개를 베고 자면서 장수를 꾀했다.
    •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위해 연구해온 북한식 자연의학 요법이 남한보다 훨씬 발전했다.
    • 경락 실체 밝힌 북한학자 김봉한의 ‘봉한학설’이 매장된 진짜 이유 있다.
    • 고급간부들이 즐겨하는 촛불명상법은 정신집중과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 제1부 - 남한보다 우월한 북한 자연의학 ]

    “김일성은 음악명상을 즐겼다. 그는 인민들이 현장에서 녹음해 보내주는 솔바람 소리, 파도 소리 등을 틀어놓고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을 했는데, 특히 백두산 밀림의 눈보라 소리를 가장 좋아했다. 그가 사용하는 만년필에서 이렇게 녹음된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했는데,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음악명상 요법을 가리켜 ‘김일성 수령이 원대한 구상을 펼쳤다’고 말한다. ‘구상’이라는 말은 오로지 김일성만이 쓸 수 있는 단어지 인민들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연구하는 ‘장수연구소’는 이외에도 과학적으로 효능이 입증된 갖가지 자연요법을 개발해냈다. 연구소에는 김일성과 비슷한 키와 몸무게와 체질을 갖고 있는 인간 모르모트가 여럿 있었다. 그들은 평소에 김일성과 똑같이 먹고 자는 등 항상 김일성과 비슷한 신체상태를 유지하도록 관리됐다. 연구소 연구원들은 중국 등지에서 귀한 약재들을 이용한 신약을 개발하면, 그들에게 먼저 투약하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그 효과를 면밀하게 검토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비로소 김일성에게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김일성 개인을 위해 장수연구소에서 개발한 자연요법은 현대인들의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김일성은 32가지 한약재가 들어 있는 특수 베개를 자고 잤는데, 이는 ‘의방유취’(조선 세종 때 편찬된 의학 백과사전)에 나오는 ‘신침(神枕;신선이 베는 베개)요법’으로 두통·혈압·불면증 등 머리 병을 없애주고 풍증을 예방하며 장수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검증됐다.

    또 김일성은 각종 질병 예방 및 치료 효과가 있는 ‘오목수(五沐水;한약재를 이용한 목욕법) 요법’를 즐겼으며 당 고급간부들도 몰래 따라할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김일성은 양 손바닥을 뜨겁게 마찰하여 열을 낸 뒤 얼굴을 비롯해 온 몸을 마사지하는 ‘건욕’요법도 자주 했다. 건욕요법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는 누구나 하는 양생비법인데, 손바닥 마찰로 생체전기를 활성화시켜 인체의 자연 치유력을 높여주는 방법이다….”



    북한 의학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평양의대 출신으로,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위해 만들어진‘장수연구소’연구원들을 감시 감독하는 공작원이자 북한 고위층 주치의로 활동하다가 92년 귀순한 김소연씨(52)의 증언이다. 국가안전기획부의 ‘비공개 귀순자’로 분류된 김씨는 한국에서 오랜 세월 ‘잠수’하고 있다가 최근 들어서야 북한의 자연요법을 세상에 전격 공개한 것이다.

    기자는 지난 1월초 북한 자연의학요법, 특히 김일성 건강비법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그녀의 사무실인 ‘보궁(保宮)자연요법연구소’(서울 신당동 소재)를 찾았다. 김씨는 북한식 자연요법과 식이요법을 일반인에게 보급한다는 취지에 호응한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보궁자연요법연구소를 최근에 설립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귀순한 이후 97년 동국대 한의대 대학원에 진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올해에 학위 논문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씨는 92년 귀순한 이후 이제껏 침묵을 지키다가 말문을 연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1956년 당 대회 이후 옛 문헌에 나타난 선조들의 고려의학(한의학의 북한식 이름)과 민간요법을 과학화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김일성 독재체제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자연요법을 의학적, 약리학적으로 분석 연구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주체의학’이라는 사상적 측면에서도 필요한 것이었지만, 본질적으로 김일성의 무병 장수라는 큰 목표 아래서 맺힌 열매였다. 문제는 이런 열매를 인민에게 골고루 나누지 않고 김일성과 당 고급간부들만 향유했다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귀순해서 보니까 남한의 자연의학요법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반면 북한은 훨씬 앞질러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남한에서는 병 아닌 것을 병이라고 하고, 치료해야 할 병은 거꾸로 병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북쪽에서 김일성, 김정일 단 두사람만을 위해 연구했던 고려의학과 민간 자연요법을 남쪽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게끔 공개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제는 남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해도 적응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경락실체 밝힌 김봉한 교수를 만나

    남한에 귀순하여 북한에 김일성, 김정일을 기쁘게 하기 위한 ‘기쁨조’ 존재 사실을 처음 알린 이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밝히는 김소연씨는 누구인가. 김씨가 밝히는 자신의 이력은 대략 이렇다.

    그녀는 49년 서울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대학교수인 어머니를 따라 평양의 외가로 갔다. 그러다가 1960년 평양제10중학교 3학년 시절 어머니가 중앙당 지도검열에 걸려 숙청당하게 되자 어머니와 절친하게 지내던 한 ‘전사자 가족(혁명가 집안)’에 위장 입적된다. 당시만 해도 어수선해서 호적 정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던 때라서 얼마든지 친딸로 위장 입적이 가능했다고 한다.

    확실한 공산당원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자란 그녀는 의사의 꿈을 키우게 된다. 64년 북한에서 명문으로 꼽힌다는 남포고등의학전문학교에서 ‘준의(準醫; 임상을 할 수 있는 준의사)’ 자격을 취득한 후 곧바로 평양의학대학 본과에 입학했다. 그녀는 살을 꿰매는 수술 능력이 탁월해 외과에 배치받았다.

    그런데 김씨는 평양의대에서 세계 최초로 경락(經絡)의 실체를 발견, ‘봉한학설’로 유명했던 김봉한교수를 만나게 된다. 북한 당국은 62년 평양의학대학에 동의학부를 설치한 후 산하에 경락연구소를 두어 김봉한교수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때 외과 집도 능력을 인정받아 김교수 밑으로 들어가 일하게 됐던 것. 여기서 그녀는 인체의 경락과 경혈을 비롯해 동의학 이론을 배워나갔다.

    그러던 67년 김봉한교수의 유력한 후원자이던 박금철이 실각하게 되자 김교수 역시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을 당하고 만다. 여기에는 소련과 동독의 서양의학자들이 경락의 존재 및 ‘봉한 학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한몫했다. 소련을 위시한 선진 공산권으로부터 과학 및 기술 지원을 받고 있던 북한으로서는 난처한 상황을 면하기 위해 ‘봉한학설’을 매장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때 김봉한교수의 제자였던 김소연씨는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봉한학설에 대한 숙청 작업이 한창일 때 나는 4차 당대회 선전선동 일 관계로 차출돼 10개월 간 경락연구소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나는 원래 남포의전 때부터 선전선동에 기량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뽑혀나가곤 했다. 행사를 끝내고 돌아와 보니까 김교수를 비롯해 경락연구소 연구원들이 숙청돼 버린 상태였다. 나는 69년에 학교에서 테마로 지정해준 산부인과학 논문을 제출하고 의대를 졸업했다.”

    이후 김씨는 인민군11호 종합병원에서 실습과정(인턴 과정과 비슷함)을 마치고 바로 그 병원에 배치됐다. 그러다 25살이 되던 74년에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는 군의(軍醫)가 되기 위해 인민군 군의대학에 들어갔는데, 실제로는 평양시 용성구역의 국가정치보위부 산하 정보원 양성소인 정치보위대학으로 배치돼버렸다.

    거기서 김씨는 자신의 표현대로 당이 바라는 ‘가공인물’로 가꾸어졌고 출신성분 배경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그녀는 “한국에서 상영된 영화 ‘쉬리’에 나오는 북한 특수부대 훈련 장면은 실제에 비하면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혹독한 특수교육 훈련을 받았으며, 탁월한 사격 솜씨를 발휘해 저격수로 선정됐다고 한다.

    아무튼 김씨는 79년에 정치보위부 산하의 비밀 정보원으로 재탄생, ‘비로봉’ ‘노메르(넘버의 러시아어) 08’이라는 암호명을 부여받는다. 그녀는 이후에 해외반탐국 대남공작부 소속으로 여러 가지 비밀 공작을 하는 등 ‘혁명과업’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밝힌다.

    잠재능력 키워주는 촛불 훈련

    김씨가 다시 동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82년의 일. 보위부 명령을 받아 국가 직속 동의연구소 특설학부에 근무하면서부터다. ‘특설학부’는 질병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잠재능력 등 인체에 대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특수 기관이라고 한다. 김소연씨의 설명.

    “예를 들어 촛불훈련 또는 정신집중훈련이라는 게 있다. 여기 와서 보니까 이것을 ‘촛불기공’이라고 하던데, 아무튼 앉은 자리에서 촛불이 뚜렷하게 보이는 지점(사람에 따라 1.2m~3m 거리가 됨)에 초를 켜놓고 15초에서 30초 동안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촛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훈련 방법이다. 그렇게 보고 있다가 귀에서 소리가 나는 듯한 현상을 느끼게 되면 그때 눈을 감는다. 이때 눈물이 나와야 제대로 한 것이다. 이를 20~40분 하다보면 촛불이 심장 안에 꽉 들어차는 느낌이 들고, 촛불이 커지면서 내 존재를 다 덮는 느낌도 든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촛불이 작게 보이면 초를 더 멀리 놓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렇게 하고 나면 처음엔 시신경에 자극을 주니까 눈이 아프고 눈물이 나오지만, 시력이 무척 밝아지고 안구건조증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남한에 와서 안구건조증 환자들에게 이 요법을 권해봤는데 무척 효과가 좋다고 하면서 나한테 고마워했다. 게다가 촛불훈련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분산된 정신이 한곳에 모이이므로 마음이 안정되고 기억력도 몰라보게 향상됨을 알 수 있다.”

    김소연씨는 이외에도 남한에서는 비과학적이라고 하는 수상학(手相學)도 심리학의 한 분야로 터득했다고 한다. 사람은 손바닥에 그 운명이 나와 있으며 천성적으로 타고난 운명은 못 버린다는 게 수상학의 이론. 극단적으로 무척 선량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런 운명을 손바닥에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는 것인데, 실제로 북조선에서는 혐의는 있으나 증거가 없이 붙잡혀온 사람들의 경우 손바닥을 들여다봄으로써 성격 유형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확대경을 대고 손바닥의 털구멍까지 샅샅이 살펴보면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 심보가 나쁜 사람, 마음은 천사인데 겉으로만 억센 듯 보이려고 하는 사람 등 성격 유형이 다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무튼 김소연씨가 몸담은 동의연구소는 북한 당국이 각별히 신경을 쓰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동의연구소가 곧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연구소 내 핵심 부서는 내부에서 김일성 장수연구소로 불렸다고 한다. 동의연구소 곧 장수연구소에 대한 김씨의 설명.

    “동의학 연구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김봉한교수의 봉한학설이 정치적인 이유로 매장된 후, 봉한학설 청산 작업이 완전히 끝나갈 즈음인 76년 경에 북한에서는 다시 동의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런데 이 연구소에서는 독창적으로 연구 과업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비밀문서고에 보관해 두었던 과거 봉한학파의 연구 성과를 하나씩 꺼내 사용해 먹기도 했다. 또 동의연구소 연구원 가운데는 봉학학설과 관계있던 사람도 여럿 있었는데 탄로날까봐 모두 쉬쉬하는 형편이었다. 나도 사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동의연구소는 김씨가 연구소에 근무하던 해인 82년 경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당시 이 연구소에 종사하는 인원만 4000명에 이를 정도로 범국가적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구체적인 인적 구성을 살펴보면 기초의학자와 임상의학자가 각각 100명씩 의료집단을 구성하고 있었고, 농작물 관리를 비롯한 제반 경영단이 800명, 가공인원 1000명, 그외에 연구소 부속 만년제약공장(현 고려제약), 수송 인원, 재정관리 인원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여기서 의료집단의 재정은 중앙당 3호청사가 맡았고, 그 나머지는 중앙당 8국 후방총국이 담당했다. 특히 이 연구소의 의료집단 200명이 바로 장수연구소의 핵심인 만수무강조로 분류돼 국가보위부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었다. 김씨가 장수연구소에 근무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그녀가 맡은 일은 이랬다.

    “각 도에서는 매년 김일성 생일에 맞춰 산삼이나 장뇌삼, 웅담 등을 중앙으로 보냈는데, 동의연구소가 이를 관리했다. 나는 동의학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산삼이나 장뇌삼이 진짜인지, 그리고 어디 삼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을 지도했고, 연구원들이 중간에 빼돌리거나 잘못 검사하는 것을 관리했다. 물론 이런 일은 비밀리에 하는 작업이었고, 나 역시 장수연구소 연구원 신분으로 맡은 일을 충실히 했다.”

    김씨는 동의연구소에서의 탁월한 실력 발휘로 86년에 ‘공작원’ 칭호를 받았다다. 공작원 하면 혁명가와 같은 칭호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단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한편 김씨가 관리 감독하는 동의연구소에서는 이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장수연구소 연구원들은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기 위해 김일성 체질 연구에 달라붙었다. 김일성과 유사한 체질이라고 판단되는 100명을 가려내 사상의학(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체질을 연구했다. 그런데 김일성은 처음에 태음인으로 분류됐다가 아니라고 판명됐고, 나중에는 태양인으로 봤는데 이 역시 아니었다. 김일성은 사상 체질에 들지 않는 특수체질로 분류됐던 것이다. 우리는 김일성이 이 세상 사람으로는 먹어보기도 체험하기도 불가능한 것들을 먹고 겪으면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체질로 변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78세가 되던 해 처음으로 온 몸을 젊은 사람의 피로 교체했고, 그 2년 후에도 피를 교체했다. 김일성에게 피를 뽑히는 ‘채혈조’는 김일성과 혈액형이 같은 젊고 건강한 20살 전후의 젊은이들이었다. 이 채혈조 역시 김일성에게 기쁨을 준다 하여 ‘기쁨조’ 소속이었고, 중앙당 조직부 5과가 관리했다. 채혈조는 김일성에게 피를 뺏긴 후 폐인이 돼 얼마 못살고 죽고 말았다. 그런데 김일성은 채혈하면 몸이 건강해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목 뒤에 있는 혹만 급속도로 자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 김일성은 평소 약을 먹거나 주사 맞기를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 연구소 연구원들의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김일성 집무실에 있는, 산삼 향이 나는 ‘산삼꽃’이다. 이것은 일년 내내 꽃이 피는 화초에 산삼을 비롯해 사향, 우황, 웅담 등의 농축액을 주입하면 그 꽃이 향기로 농축액을 뿜어내므로 김일성이 공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섭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김일성은 치아를 교체할 때도 액을 막아준다는 호랑이뼈와 장수를 상징하는 상아로 만든 치아를 사용했고, 옷도 손바느질로 만든 것만 입었고, 참새 5만마리분의 목털로만 짠 침구를 덮고 자는 등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북한 동의학이 남한보다 몇수 위

    그런데 김씨는 북한 장수연구소의 동의학 연구 수준이 남한의 한의학보다 앞서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연구소 8호 작업반에서 만들어낸 산삼꽃 향은 ‘식물 분자원리를 이용한 육종학’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주로 각종 채소나 과일 재배 및 육종학을 연구하는 8호작업반은 산삼꽃 외에 ‘단백질 사과’도 만들어냈다. 이는 고단백질을 사과에 주입해 만든 것인데, 그 제조과정이 흥미롭다.

    일단 겨울에 사과나무를 동면시킬 때 뿌리가 있는 부분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누렁개(황구)를 묻어 부식시킨다. 이듬해 봄이 되면 나무 밑에서 열이 발산되면서 김이 무럭무럭 나고, 질소도 형성된다. 또 봄에 사과나무 가지치기할 때는 고단백질인 개구리를 한 삼태기 넣어 둔다. 그렇게 해서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사과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벌레도 먹지 않는다. 사과나무에서 열매를 딸 때가 되면 음이온 종이로 열매를 싼 뒤, 설탕 20kg과 물을 뿌리에 붓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충성 1호’라고 불리는 단백질 사과다. 이 사과는 마치 고기를 먹는 것처럼 맛이 고소하면서도 당도가 높아 매우 달다. 껍질을 깎을 때 껍질이 과일에 끈끈하게 붙어 있을 정도다. 북한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배도 만들어냈다. 이런 작업은 몸에는 좋은데 독이 있는 생약이나, 심장에는 좋은데 위장에는 해로운 음식을 중화시키기 위해 식물분자원리와 동물분자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자연의학 혹은 동의학에 비해 남한의 한의학 수준은 어떨까. 한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씨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기로 하자.

    “내가 여기 와서 느낀건데 남한의 한의학과 북한의 동의학을 비교해볼 때 동의학이 더 심도있고 고전적인 연구를 행하는 것 같다. 북한에서 동의학을 배우는 사람은 산에 가서 직접 약초를 캐는 등 약재부터 완벽히 익힌다.

    그리고 그런 약재가 현대 약리학적으로 어떤 효능이 있는지도 다 배운다. 북한에서는 한약재에 대한 성분분석이 다 돼 있어서, 어떤 약재는 비타민, 탄수화물,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서 어디에 좋고, 항암 효과가 어떻다는 걸 다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 다음에 경락체계를 배우고 방제학을 배운다. 방제학을 익힐 때도 법제를 하는 법, 즉 독초는 어떻게 가공하고 인체에 어떻게 투여할 수 있는지 등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실습한다.

    그런데 여기 와서 한의대생들에게 한약재를 현대 약물학적으로 말해보라고 하니까 전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남한에서는 한의학을 하는 한의사들이 산에서 자라는 초근목피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어 보였다. 약초의 약성이나 생김새, 맛도 모른 채 이름만 줄줄 외우는 등 한의학을 겉으로만 배우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또 여기서는 본과 4년만 마치고 바로 개업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의학에서는 천명의 환자를 진맥해야 한 가지 병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임상경험이 필요한데, 여기 한의대 졸업생들은 그냥 한의학 교과서에 실린 대로 처방전을 잘 쓰면 된다는 식이었다.”

    김일성의 사망 이유

    기자는 북한자연의학에 대한 김소연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94년 김일성이 남북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돌연 사망한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한 개인의 만수무강을 위해 4000명의 연구진이 동원되고,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초월한 자연요법도 그에겐 소용없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김씨의 대답.

    “김일성은 72세부터 동맥경화증이 있었고, 그래서 장수연구소도 생긴 것이다. 나는 92년 귀순하기 전까지 옆에서 그를 지켜볼 수 있었는데, 한마디로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인한 심장마비사 아닌가 해석하고 있다. 즉 마음의 조화가 깨졌다는 말이다.

    김일성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죽었을 때 약간 충격을 받았고, 특히 무기 중개소가 있는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졌을 때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뇌동맥경화로 소출혈을 일으키기도 했다. 유고의 붕괴로 노동1호 미사일 등 무기를 못팔아먹게 되자 나라 살림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때 장수연구소 의료진에 비상령이 내렸다.

    또 김정일이 데리고 온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막대한 외화를 가지고 탈출했을 때도 충격받았다. 오죽하면 그 무렵 희극배우(코미디언)들에게 김일성을 하루에 열번 웃게 하면 공훈배우 칭호를 주겠다고 했겠는가. 또 소련이 붕괴됐을 때는 거의 병들다시피 했다.

    이렇게 동구권과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마저 개혁개방의 길을 걷게 돼 사면팔방이 막힌 김일성으로서는 인민들을 계속해서 속여야 하는 마음의 부담과 지도자로서의 고통이 컸을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젊은 사람의 피로 간 뒤 혹이 빨리 자라 목을 누를 정도였다는 점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미 정상회담 합의시점에서 김일성은 많이 쇠해 있었을 것이다.”

    김소연씨는 자기 목숨을 다바쳐 충성을 바칠 것을 서약한 김일성이 죽자 인생이 허무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사실 그가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 것도, 젊은 시절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김일성과 당에 충성을 바쳐왔는데 나이 40을 넘어서자 자신을 퇴물 취급하는 조치에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신 김씨는 북한에서 안고 온 한을 그가 이곳에서 설립한 보궁자연요법연구소에서 풀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의 소수 특권층만을 위해 존재하는 자연의학요법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동의연구소에서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 자연요법, 식이요법, 생체에너지 요법 등을 이곳 실정에 맞게 개량해서 알리고 김일성이 먹고 착용한 건강비법을 대중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김씨는 이를 위해서 경기도 양평 쪽에 북한식 요양지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백두산 정일봉에서 소백수쪽(두만강 상류)에 북한 고위층의 요양을 위한 최고급 휴양지가 마련돼 있는데 그야말로 약을 먹지 않은 채 자연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온갖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온천을 이용한 오목수 치료법, 한약재를 응용한 핀란드식 사우나, 솔잎 찜질 요법 등 북한에서 실천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재현해 보고 싶다는 것.

    한편 김씨는 박사학위논문으로 봉한학설을 다루고 있다고 밝힌다.

    “봉한학설은 동양의학에서 말로만 전해오던 경락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기념비적인 이론이다. 북한과 다른 나라에서 논란이 많긴 했지만 우리 제자들은 봉한관(경락내에 존재하는 물질)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었다. 김교수와 함께 해부실험을 통해 봉한관을 추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비록 김교수가 북한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지만, 남한에서는 제대로 인정받기를 바라기 때문에 박사논문도 봉한학설로 잡았다. 얼마전에는 동국대 한의대 임종국교수팀이 주축이 돼 ‘경락·경혈학회’를 창설했는데, 조만간 의미있는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산 한약재 훌륭해

    김소연씨는 92년 한국에 온 후 의사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남한 정부가 북한에서 취득한 의사 자격증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훈처의 주선으로 93년 의료보험연합회에 취직하러 갔을 때 그녀가 정말로 평양의대를 다녔는지 테스트를 받았다. 환자가 복통을 호소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오줌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떤 처방을 하느냐 등등 질문을 받았고 그녀는 북한에서 임상한 대로 대답을 했다.

    ‘다행히’ 남한식 테스트에 통과해 의료보험 연합회에 근무(93~95년)하게 됐지만, 의사 대신 간호사로 배치됐고 경력도 70%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김씨 역시 의료행위를 고소득 직업으로 인식하는 남한의 풍토가 자신과 영 맞지 않아서 정식 의사로 나설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대신 그녀는 양의사도 한의사도 아닌 ‘자연요법 전도사’로 나서게 됐다.

    김소연씨는 남한의 한의사와는 다른 방법으로 진단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음알음으로 보궁자연요법연구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는 상담을 하면서 사강팔진법이라는 맥진법을 사용한다. 맥에는 계절맥과 남녀맥, 음교, 양교 등이 있는데 이를 전통적인 맥진법과 함께 응용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여기에 더해 김씨는 북한에서 배운 사상체질학, 관상학, 수상학, 심지어 사주학까지 동원해 환자를 진단하고 있다는 게 그녀를 아는 한의사들의 말이다. 그녀는 아픈 사람을 진단할 때 자신의 몸에서 아픈 증상을 그대로 느낄 정도로 깊은 수준까지 들어간다고도 한다.

    그러나 김씨는 정작 남한사람들이 약의 독성에 너무 중독돼 있는 게 큰 걱정이라고 말한다.

    “남한 사람들이 병을 고치려면 먼저 몸안에 있는 양약의 독성을 없애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약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오히려 병을 깊게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한약 역시 농약문제 등 환경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최소한 북한산 한약재는 방부처리를 한 게 없고, 법제가 잘돼 있어서 사람들에게 북한산 한약재를 구해보라고 충고한다. 실제로 경동시장이나 약산지로 가서 보면 중국산이라고 꼬리뼈가 붙은 약재 중에 북한산이 많다. 나는 오랫동안 약재 연구를 해봐서 북한산을 금방 구별해낼 수 있다.”

    그러나 김씨는 가급적 약보다는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키워주는 자연요법으로 승부를 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적어도 김일성 장수연구소에서 쌓은 임상 경험이 승부에 지지 않을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김소연씨는 우리나라 선인들이 남긴 의학서인 ‘의방유취’ ‘활인심방’ 등에는 현대인인 우리가 따라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그러면서도 놀라운 효과를 거두는 요법이 많다고 말한다. 북한에서는 약리학적, 생리학적 임상을 거쳐 이를 자연요법으로 이미 개발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김소연씨가 추천하는 자연요법이다. 이중에서 한두가지라도 꾸준히 실천하면 질병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건강 증진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옥천요법(침요법)

    입 안의 침을 옥천(玉泉)이라 하는데 침을 옥처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침의 효능은 이미 동서의학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침은 건강의 척도로, 나이를 먹거나 병으로 건강을 잃었을 때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타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침은 정(精)을 저장하는 데 필수적인 물질이며, 오장육부에서 올라와 음과 양이 결합된 진액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침은 가능한 한 뱉지 않는 것이 좋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침을 만들어 자주 삼켜주는 것이다. 혓바닥을 입천장에 대고 잠시 머금고 있거나 혀를 입안에서 이리저리 휘저어 이의 구석구석을 닦아내듯 하면 입 안에서 침이 저절로 생기는데, 이를 목으로 넘겨 배꼽 및 단전까지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침은 만들면 만들수록 많이 생기는 것이므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라도 자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편도선염이나 감기 때문에 목이 부어 도저히 아무것도 못 넘길 정도로 아파도 목을 싸매고 있는 것보다 침을 만들어 억지로 몇 번 삼키면 상태가 훨씬 부드러워지고 빨리 낫는다. 또한 노화방지에 효과적이고 암을 억제하는 성분도 들어 있다.

    침 속에 함유돼 있는 파로틴은 25~30세 정도에서 점점 감소하므로 중년이 되면 의식적으로 침이 나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루에 40분쯤 침을 모았다가 삼키면 보약보다 좋다.

    ■고치(叩齒)요법

    이를 자주 부딪쳐 잇몸에 연결된 신경을 활발하게 해주는 요법이다. 예로부터 이가 건강한 사람은 위장도 건강하다는 말이 있다. 잇몸은 위뿐만 아니라 뇌수, 오장육부, 음과 양이 마주치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자주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 소리가 나게 마주쳐주는 것이 좋다. 고치요법에는 따로 정해진 요령은 없고 수시로 부딪쳐주면 된다.

    ■건욕요법

    양 손바닥을 마주 비벼 열이 날 때 얼굴을 아래 위로 열네번씩 비벼주면 얼굴에 윤이 난다. 또 계절에 따른 한열, 두통에도 효과가 있다.

    ‘활인심방’에 의하면 양 손바닥을 비벼 열이 날 때 두 눈을 지그시 27차례 눌러주면 신장을 보호해주고, 이마 위를 자주 문지르면 얼굴에 윤기가 흐른다 하고, 가운뎃손가락으로 양쪽 콧등을 20~30번 문지르면 폐를 윤택하게 해주며, 양쪽 귓바퀴와 귀 전체를 쓸어내리듯 주물러주면 신장을 보호하고 귀가 어두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오목수(五沐水)요법

    오목수란 한약재를 이용해 목욕하는 요법이다. 중풍 예방을 비롯해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풍에는 뽕나무가지와 천궁을 이용한 오목수 요법을 실천하고, 간에 복수가 찼을 때는 생강쑥을, 피부병에는 창이자·진피·뽕나무 뿌리·서리맞은 뽕나무 잎을 이용하면 좋다. 또한 백일 전 아이가 경기를 할 때는 고사리를 이용한 오목수가 좋다. 열이 날 때는 얼음을 이용해 물을 차갑게, 한기가 들 때는 뜨겁게 하면 된다.

    ■육자결(六字訣) 호흡법

    이는 오장육부 하나하나를 튼튼하게 해주는 호흡법이다. 방법은 오장육부에 해당하는 글자 하나를 입으로 말하면서 토해내고 다시 코로 숨을 들이쉬면 된다.

    ▲신장―‘취(吹)’ 소리를 낸다. 촛불을 훅 불어 끌 때의 모양으로 ‘취’ 소리로 토해낸다. 이렇게 해서 사기(邪氣)를 내보내면 장수할 수 있다.

    ▲심장―‘가(呵)’ 소리를 낸다. 하하하 웃는 소리를 낼 때의 모양으로 ‘가’ 소리로 토해낸다. 이 방법을 계속 사용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심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

    ▲간장―‘허(噓)’ 소리를 낸다. 한숨 쉴 때의 모양으로 ‘허’ 소리로 토해낸다. ‘허’ 소리로 사기를 몰아내면 정신이 맑아지고 간장을 보호할 수 있다.

    ▲폐장―‘히’ 소리를 낸다. 숨 쉬는 소리를 의미하는데 ‘히’ 하면서 토해낸다. 날마다 숨소리를 가다듬어 나가면 자연히 폐가 좋아진다.

    ▲비장―‘호(呼)’ 소리를 낸다. 추울 때 따뜻한 입김을 내뿜는 모양으로 ‘호’ 소리로 토해낸다.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운 기가 있으면 마음이 안정을 잃고 불안해진다. 이럴 때에 급히 ‘호’ 소리로 다스리면 비장이 조절된다.

    ▲삼초―‘희’ 소리를 낸다. 열이 날 때 누워서 끙끙 앓는 소리 같은 모양으로 ‘희’ 소리를 토해낸다. 삼초(三焦; 상초, 중초, 하초)에 이상이 있으면 급하게 ‘희’ 소리로 다스린다.

    ■들기름생동찹쌀밥: 공해로 인한 독과 약독 방지

    찹쌀과 생동쌀(차조)을 1 : 1 또는 2 : 1 비율로 섞어서 물에 담가 불렸다가 밥을 짓는다. 이때 밥그릇은 뚝배기 같은 돌 솥, 불은 센 불이 아닌 연한 불이 좋다. 밥이 되는 동안 찧은 마늘과 잘게 썬 파뿌리를 들기름에 조린다. 밥 먹을 때 소스로 활용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므로 걸쭉하게 만든다.

    이 밥은 공해독과 약독을 방지하며, 비허증 환자에게 특히 좋다. 비허증이란 밥 먹고 난 뒤 돌아서자마자 또 배가 고픈, 끊임없이 간식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증세다. 이것을 끼니마다 먹는다.

    ■마늘요법: 감기에 최선

    마늘은 악성 감기를 치료하는데 아주 좋은 식품이다. 임산부와 같이 약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시도해 볼만하다. 방법은 마늘을 찧어서 즙을 낸 뒤 이 즙을 콧구멍 속에 넣는 것이다. 무서워서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휴지를 심지처럼 돌돌 말아 마늘 즙에 담가 즙을 묻힌 다음 그것을 콧구멍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면 톡 쏘는 마늘 성분 때문에 대부분 재채기를 하게 되는데 그렇게 세 번 정도 재채기를 하고 나면 감기가 뚝 떨어진다.

    ■무즙요법: 무좀에 특효

    땀띠나 무좀과 같은 피부병을 앓을 때 무를 강판에 갈아(믹서보다 강판이 좋다) 그 즙을 바른다. 아토피성 피부염에도 아주 좋다.

    ■생콩요법: 당뇨 치료

    콩에는 체내 모든 장부의 기운을 소통시키는 효소와 췌장의 당을 배설하지 않도록 하는 성분이 함유돼 있다. 토종콩 반 홉을 24시간 동안 물에 담갔다가 나무 절구에 나무주걱으로 퍼담아 잘 찧은 다음 아침 저녁으로 나누어 식사하기 전에 먹는다.

    이어 날계란 한 개와 참기름 한 숫가락을 섞어서 마신다. 이때 주의할 점은 순수한 목기(木器)로 다루어 비린 맛이 없게 해야 한다. 당뇨에는 비릿한 맛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촛불기공: 기억력 향상, 정신집중력 강화 작용

    촛불기공은 정신력을 좋게 하는 것으로 하루에 세 번, 두 달간 꾸준히 하면 아주 좋다. 방법은 초를 켠 다음 방바닥이나 의자에 편안히 앉는다. 앉은 자리에서 3m가 채 안되는 곳, 즉 길쭉한 타원형의 촛불 선이 또렷하게 보이는 지점에 놓는다. 그 촛불을 15초에서 30초동안 눈을 깜빡이지 않고 뚫어져라 본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귀에서 소리가 나는 듯한 현상을 느끼게 되는데 그때 눈을 감는다. 그때 눈물이 나와야 제대로 한 것이다. 이 방법을 꾸준히 하다보면 촛불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호흡은 천천히 가만가만 깊게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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