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충격적으로 협상 시작하는 스타일
방위비분담금, 상호 이익 위한 균형점 찾을 것
비상계엄 사태 후 “민주·법치주의가 한미동맹 핵심” 재확인
“미국은 한국 민주주의 강력하고 회복력 있다 믿어”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이 외교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우리 외교와 국민 간의 이음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2024년 2월 국민의힘에 입당해 비례대표로 제22대 국회에 입성한 김건 의원(외교통상위원회 간사)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1989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9년 외무고시 23회로 외교부에 들어가 북미국 심의관, 북핵외교기획단장,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차관급)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을 지낸 앨리슨 후커와도 친밀한 사이다. 후커 전 보좌관이 미 국무부 싱크탱크로 불리는 정보조사국(INR)에서 근무할 당시 중국에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2024년 11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그와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어 나흘 뒤인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있은 후 추가 질의와 답변을 문자메시지로 주고받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트럼프 황금 인맥이라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1기 정부에서 내가 상대한 사람은 장관급이 아닌 실무 담당 책임자가 대부분이다. (트럼프 진영) 인재풀이 그리 넓은 건 아니어서 회전문 인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 카운터파트였던 미국 실무진 상당수가 2기 정부에도 재배치될 거라는 얘기다. 또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부보좌관으로 내정된 앨릭스 웡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재직할 때 만난 적이 있어 익숙하다. 그렇다고 해서 ‘황금 인맥’이라고 하는 건 과장이다. 약간 부담스럽다.”
인재풀 넓지 않아 회전문 인사 가능성 높아
트럼프 당선 이후 2024년 11월 중순 박진 전 장관과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의 김석기 위원장 등 국회 여야 대표단은 미국 워싱턴DC에서 미 정치권 주요 인사들을 만나 대선 후 한미동맹 및 의회 외교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외통위 국민의힘 간사인 김 의원도 그 일원으로 미국에 다녀왔다.
현지에서 트럼프 2기 정부의 불확실성을 확인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공화당 의원을 많이 만났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펼칠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안심된 점은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 내 시각이 지난 2~3년 동안 아주 긍정적 방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바뀐 이유가 뭔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한일 관계를 개선해 한미일 협력이 가능해지고 안보를 포함해 한미 협력이 튼실해진 데 있다. 미국이 여러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 두 동맹국이 협력해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은 한국이라는 동맹국의 전략적 가치를 새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 기업들이 최근 2~3년간 미국에 1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약 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데 있다. 미국이 지금 가장 원하는 건 단순히 일자리 창출이 아닌,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산업 경쟁력 회복이 절실할 때 한국 기업이 와서 제조업의 미래를 이끌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공장을 세우고 생산력을 회복해 주니 얼마나 고맙겠나. 미국 정치인들의 한미동맹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확고히 느낄 수 있었다.”
외교부에 있으면서 직접 겪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을 평가한다면.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분이다. 보좌진을 다루는 방식도, 대외적으로 협상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아주 충격적인 것으로 대화나 협상을 시작한다. 부동산 개발업을 하며 만들어낸 방식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자면?
“1기 때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가 시리아에 군대를 둘 이유가 뭐가 있느냐? 시리아에 있는 미군을 다 철수시켜라’ 이렇게 시리아와 군사 협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미군을 파병한 이유는 아이시스라는 이슬람 단체가 발호(跋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철수시키겠다니 난리가 나지 않았겠나. 트럼프 대통령이 소집한 회의에서 미국의 국방 관료들이 다 반대하며 논점을 얘기하니까 다 듣고 나서 ‘8000명만 빼라’로 결론이 났단다. 이 얘기를 전해 들으며 받은 느낌은 사업가 출신답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것을 던져놓고 솔직하고 객관적인 얘기를 털어놓게 만든 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도출해 내는 식의 협상을 즐기는 것 같다. 1기 때 우리와 방위비 분담금을 놓고 협상할 때도 50억 달러로 시작했다. 2기 때는 100억 달러로 협상을 시작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우리도 대비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 대응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나.
“시작이 충격적이더라도 좀 담담하게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대응 방법인 것 같다. 결국 한미동맹 관계는 상호 이익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지금 미국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동맹의 가치를 완전히 새롭게 보고 있으니 노심초사하지 말고 만나서 우리 입장을 잘 설명하면 양국이 새로운 이익의 균형점을 찾아나갈 것이다.”
미국 의회와 싱크탱크 인사들이 트럼프 2기를 어떻게 전망하나.
“구체적으로 전망하기 어려워한다. 다만 미 의회 의원들이 강조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려는 많은 정책이 결국은 미국 의회의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그 과정에서 상당한 완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많이 알려주면 미 의회에서 참고하겠다’고 했다. 또 ‘한미 의회 간에 소통이나 협력도 강화해 갔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미국 정치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한일 관계가 개선된 게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시작됐다고 여겨 윤 대통령의 리더십을 상당히 높이 평가한다. 한일 관계 개선이 미국에 전략적으로 어마어마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한미일 협력이 가능해지고 그로 인해 미국의 안보 전략이 탄력을 받게 된다.”
미국의 네포티즘 허용 범위, 우리보다 넓어
김 의원은 바이든에서 트럼프로 정권이 바뀌어도 윤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지지가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그와 인터뷰한 지 나흘 만에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비상계엄 선포가 그것. 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로 170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재와 공직자를 상대로 한 잦은 탄핵 소추를 언급했다. 이 때문에 국정이 마비될 지경이니 이는 반국가 행위라는 주장이었다. 한밤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해가 뜨기도 전에 해제됐다. 국회는 내란죄 등을 이유로 2024년 12월 14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이 사태 이후 윤 대통령을 향한 미국의 긍정적 평가가 달라졌을까. 윤 대통령이 언급한 야당의 입법 독재와 잦은 탄핵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까. 2024년 12월 6일 김 의원에게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던졌다. 김 의원은 사흘 뒤인 12월 9일 오후 이렇게 답했다.
“트럼프 진영에서 구체적으로 밝힌 바는 없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강력하고 회복력이 있다’며 ‘정치적 이견이 평화적으로, 법치주의에 따라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또 ‘민주적 가치와 법치주의는 한미동맹의 핵심이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1기 정부 때 딸 이방카와 사위 제러드 쿠슈너를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임명한 바 있다. 2기 정부에서는 큰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직책에 관계없이 최고 실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 가족이 통치를 돕는 네포티즘(nepotism·가족·친척에게 관직이나 지위 등을 주는 것)에 미국 사회가 관대한가.
“우리나라에선 큰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미국은 우리보다 열린 마인드를 견지하는 것 같다. 힐러리 클린턴 등 역대 미국 영부인들이 정책을 이끌어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그렇다고 족벌주의를 용납하는 건 아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우리보다 (네포티즘) 허용 범위가 조금 넓은 것뿐이다.”
우리가 앞으로 국익을 늘리고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재외공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 이유가 뭔가.
“미국이 추진하는 정책이 우리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려면 미국 지방정부와 지역 의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래서 미국에 상주하는 총영사관들의 역할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 총영사관은 한인 사회를 보호하고 한인들이 잘살도록 하는 것이 기본 임무인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무적 기능을 한층 강화해 한인들이 미국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미국 정치인들이나 의회가 한인 사회의 이해나 이익을 고려하게 된다. 이걸 잘하는 나라가 이스라엘과 대만이다. 우리도 한인 사회의 목소리를 키워 필요한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는 2022년 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활약하며 소기의 성과를 냈다. 특히 2022년 9월 북핵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사회 확대회의에 북핵 수석대표로 참석해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 이행안을 소개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기에는 북한의 핵 위협은 억제하고, 핵 개발은 단념시키며, 외교와 대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뤄나간다는 우리 정부의 대응 방향이 담겨 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거라는 얘기가 들린다. 북한이 계속 핵 보유를 고집하면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한 여론조사 응답자의 70~80%가 핵무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무장에 대한 지지의 의미는 북한의 새로운 위협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세우라는 거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우리가 핵무장으로 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무너져 세계 평화와 안전을 우리가 해치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우리가 핵무장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럴 가능성이 생기면 불행한 일이다. NPT 체제가 무너져야 우리가 핵을 보유할 수 있다. NPT 체제가 무너졌다는 건 전 세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로 NPT 체제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 중심적으로만 사고하지 말아야
국민의힘에 국제 문제, 외교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자원한 것으로 안다. 공직 생활과 의정 활동의 차이가 뭔가.
“유사 업종 재취업 정도로 생각했는데 보좌진과 조그마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느낌이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 같다. 관료 조직은 매사 방침이 있고 방향이 있다. 반면 정당 조직은 훨씬 느슨하고 의원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이 많다. 또 공직에 있을 때는 외교만 생각하면 됐는데 지금은 국민이 관심 갖는 모든 국정에 신경 써야 한다. 그 때문에 국정에 관한 뉴스를 죄다 정독한다.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려면 무엇이든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김건 의원은 인터뷰 말미에 “국력이 막강한 나라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며 “외교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의 부연설명이다.
“우리 중심적으로만 사고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는 주변의 강한 나라들이 우리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중심을 지키면서도 주변의 변화에 잘 적응해 가야 한다.”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뭔가.
“국내 정치에만 관심을 가지면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외교가 중요한 줄 알면서도 국민적 관심을 못 받는 이유는 용어나 설명이 어려운 데 있다. 외교관으로 35년 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민이 외교를 친숙하게 느끼도록 돕는, 우리 외교와 국민 간의 이음새가 되고 싶다.”
신동아 1월호 표지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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