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김건희 숭배’가 자신은 물론 김건희마저 망쳤다
尹에 “다 죽자는 거냐” 맞짱 뜰 배포 없는 韓, 이게 서울법대 한계
“법대는 똑똑한 아이들 바보 만드는 곳”
법조 출신 정치인, 밑바닥 정서 읽는 능력 부족
“정당이 사들인 법조인, 선거판에서 뽑는 유권자”
“법 기술자 판치는 ‘법조 국회’부터 객토해야”
[Gettyimage]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서울법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종고가 2013년에 출간한 ‘서울법대시대: 내가 본 서울대 반세기’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이어 그는 “사실 ‘천하제일 서울법대’라고 자부하면서도 대통령은 내지 못하였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설적으로 서울법대가 아닌 상업고등 출신 법률가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법률가 대통령’의 꿈은 희석되고 말았다. 서울법대 동창회는 한동안 정신적으로 상당한 좌절을 느끼는 것 같았다. (중략) 끝내 대통령을 내지 못한 최고 엘리트 대학 서울법대 시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법대의 무능인가, 한국 국민의 수준인가, 아니면 엘리트 대통령은 원래 거부되는 것인가?”
2022년 3월, 드디어 서울법대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최종고가 던진 질문은 민주화 이후 30여 년간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던 것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사석에선 그 나름의 근거를 대면서 ‘서울법대 출신 대통령 불가론’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불가론’까지는 아닐망정 서울법대 출신이 대통령 되기 어려운 이유를 우회적으로나마 글로 제시한 논객들도 있었다.
‘공부만 잘하면 만사형통’ 오류에 빠진 외골수 인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라오스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0월 9일(현지 시각)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뉴시스]
서울법대 출신의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이 2010년 1월 25일에 발표한 ‘법대(法大) 유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시작해 보자. 1939년생인 그는 대학 초년생 시절, 민법을 가르쳤던 교수 김증한이 학생들에게 한 말을 소환했다. “법과대학이란 똑똑한 아이들 데려다가 바보 만들어 내보내는 곳이다.” 김대중은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성적 좋은 학생들 뽑아다가 판·검사 만드는 학교라서 그렇게 입학 경쟁이 치열한데 그것을 ‘바보 만드는 곳’이라니, 교수의 말장난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뿐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교수가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김 교수는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고시 공부에 돌입하면서 학교 수업은 뒷전이고 절(寺)이나 고향집(당시는 고시촌이 없었다)에 처박혀 육법전서(六法全書)와 씨름하는 학생들이 인문(人文)교육과 세상 물정에 소홀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세상의 이치와 삶의 가치, 교양과 상식. 이런 것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출세를 향해 매진하는 젊은이, 고등고시를 인생의 유일한 지름길로 여기는 학생들이 결국 인간적으로 불완전한, 공부만 잘하면 만사가 형통이라는 오류에 빠진 외골수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이어 김대중은 “물론 김 교수의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다.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 많은 인재(人材)가 법률 공부를 통해서 나왔고, 그것이 나라의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데 큰 틀을 제공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의 지적은 여전히 옳은 측면이 있다. (…) 법을 제대로 해석하고 양심을 제대로 발동하기 위해 법을 다루는 사람은 보다 많은 지식과 깊은 경험과 넓은 상식을 지녀야 한다. 법대생들은 오로지 사전적(辭典的) 지식에 매달리는 사태를 김 교수는 걱정한 것이다. 그가 말한 ‘바보’는 법을 다룰 자격이 없는 인간적 장애를 의미한 것이었다.”
‘현실, 특히 낮은 곳을 모르는 무지와 무식’
홍준표 대구시장이 8월 15일 대구 북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2개월 후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돈이 ‘시사IN’에 ‘법조 출신들이 한나라당 망쳤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요즘 한나라당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 1년여 동안 뉴스의 초점이 된 한나라당 주요 인물이 대부분 법조 출신이다. (…) 한나라당은 ‘법조당’이라고 할 만한데, 이 같은 막강한 ‘법조군단’이 이끈 한나라당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 법조 출신 정치인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한 법조인이 정치를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런저런 기회에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정치권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조 출신 정치인은 사회의 밑바닥 정서를 읽는 능력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 시험 위주로 공부하다 보면 어떤 법리와 제도의 역사라든가, 이를 둘러싼 정책적 문제 같은 데는 등한하기 마련이다. 대학 시절 사법시험 공부에 몰두하다보니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고, 외국 역사와 문화에 어두운 ‘무식한 변호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대중·홍준표·이상돈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법조 출신의 문제는 ‘현실, 특히 낮은 곳을 모르는 무지와 무식’이다. 반면 일반 대중은 그것보다는 그들의 이기적 특권의식과 탐욕을 더 우려했다. 한겨레 정치부 기자 석진환이 ‘관훈저널’ 2012년 봄호에 기고한 ‘여의도행 버스엔 무임승차 법조인이 너무 많다’는 제목의 글이 재미있다. 그는 2월 말 트위터에서 ‘법조인’과 ‘국회의원’을 나란히 넣어 검색해 봤더니,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냉소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며, 몇 가지 글을 소개했다.
“오늘 아침 국회의원 예비후보 명함을 받았다. 화려한 경력의 검사 출신이다. 그가 국회의원이 되면 누구 이익을 대변할까요?” “19대 총선에서 기자, 교수,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자, 제발. 아버지하고 밥 먹어도 밥값 계산 안 한다는, 자기밖에 모르는 저들이 나라를 다 말아 드신다.” “분야별로 상한선을 두어야 합니다. 현재 국회의원 중 법조인 출신이 제일 많은데 왜 이렇게 국회가 개판입니까. 분야별로 15% 넘으면 ‘당선무효제’라도 도입해야 할 판입니다.”
유권자들이 법조인 선호하는 이유
아닌 게 아니라 제19대 총선(2012년 4월 11일)을 앞두고 그런 걱정을 하는 유권자가 많았다. ‘한겨레21’(2012년 3월 26일)이 ‘법조인, 당신들의 대한민국 국회’(김남일 기자)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게재한 건 시의적절했다. 김남일은 무엇보다도 ‘과잉 대표’의 문제를 제기했다. 2012년 기준 전국의 판사는 2700여 명, 검사는 1700여 명, 변호사는 1만2600명 정도로 법조인이 전체 국민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0.034%였지만, 4·11 총선의 여야 지역구 공천자에서 법조인 비중은 새누리당 14.87%, 민주당 16.74%로 588배나 ‘과잉 대표’됐다는 것이다. “검증 가능한 정치적 이력을 찾아볼 수 없는 전·현직 판검사, 돈만 열심히 벌어온 변호사들이 ‘초선’ 딱지를 달고 여의도에 당당히 입성”하는 풍토가 괜찮으냐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발끈한 대한변호사협회는 미국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역대 대통령 43명 가운데 30명이 법학 전공자다. 상·하원도 변호사들이 장악하고 있지만 이를 탓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남일이 인용한 전문가들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법조인은 지배엘리트임은 맞지만 권력을 독점하는 권력엘리트는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역에서 시민·정치운동을 벌이던 변호사였다. 선거로 뽑히는 미국 검사장들은 다음 선거를 위해 주민들의 눈높이를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갑’ 위치에서 큰소리만 치던 사람들과 같을 수 없다.”(김도종 교수) “미국에서 정치하는 법률가는 바닥에서 표를 모으며 올라간다. 우리처럼 장원급제했다는 이유로 위에서 떨어지는 구조가 아니다.”(김두식 교수)
수요 쪽, 즉 유권자의 문제도 있다. 김남일이 잘 지적했듯이, “정당이 사들인 법조인을 선거판에 내다 팔려 해도 유권자가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유권자들에게 이것이 또 상당 부분 먹힌다는 게 문제다.” 한국의 선거에서 법조 출신이 잘 먹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천에서 용 난다”를 삶의 좌우명으로 갖고 있는 많은 한국인에게 “장원급제에 대한 환상, 장원급제 프리미엄”(김두식)이 잘 먹혀들기 때문일 게다.
한국은 시험 성적으로 ‘인간 등급제’를 실시하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에서 유권자와 법조인은 한통속이다. “시험과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 법조다. 경기고를 졸업해도 서울대에 붙지 못하면 소용이 없고, 같은 서울대라도 법학과를 졸업해야 한다. 이런 잣대의 최정점에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이 있다. 더 이상 수험생이 아닌 예비 법조인을 상대로 고도의 논리력과 분석력을 강도 높게 검증한다. 머리 좋은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렇게 나오는 연수원 순위이기에 서로들 인정한다.”(경향신문 사법전문기자 이범준)
잘 먹혀드는 것이라고 해서 그게 꼭 옳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옳다는 이유로 학벌 브랜드의 노예가 되는 건 아니잖은가. 현실 세계에서 그만한 ‘프리미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이봉수는 경향신문(2019년 9월 11일)에 기고한 ‘‘서울법대 공화국’의 파탄’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출세한 서울법대 출신 상당수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몇 가지를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4대 공통점은 가혹한 비난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다수의 학부모가 ‘성공과 출세’를 위해선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첫째, 초·중·고교에서 대부분 1등을 놓친 적이 없을 만큼 머리가 좋고 성취욕구가 강하다. 이런 이력은 지고는 못 배기는 경쟁지상주의와 자기가 주역이 되지 않으면 친구도 끌어내리는 자기중심주의를 키우는 토양이다. 둘째, 선민의식에 빠져 남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셋째, 학교 공부가 다라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서울법대에 다니는 친구 하숙집을 방문했다가 고시 과목 말고는 책이 전혀 없어 “왜 이렇게 책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다른 책은 사시의 방해물일 뿐”이라는 그의 대답에 “죄짓지 말아야지, 너한테 재판받을까 겁난다”고 대꾸했다. 넷째, 학벌 등 기득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편법도 불사하며 무한 노력을 기울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자식이 ‘성공과 출세’와 무관하게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 되길 바라고, 기득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하지 않는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법사위는 하루하루 지옥이었다”
9월 23일 충남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에서 열린 학교폭력 예방 특별강연회에서 표창원 소장이 강의를 하고 있다. [충남교육청]
이에 대해 경향신문 논설실장 양권모는 “이번에 ‘지옥 같은’ 법사위를 연출한 것은 결국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다. 법사위의 과반을 차지하는 ‘법 기술자’들이 정쟁을 기능적으로 뒷받침하며 돌격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타협이 생명’인 정치와 만사 ‘법대로 하겠다’는 데 익숙한 법조인의 속성은 본디 부조화적이다. 민의는 법전처럼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정치는 이미 정해진 규칙에 따라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기존 틀을 깨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지옥 같은 법사위’는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의 둘레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 한마디로 여의도에 법조인 명패만으로 정치에 무임승차한 국회의원이 너무 많다. 그 결과는 정치의 사법 의존을 부추기고, 경직된 법 논리가 득세해 대결 정치를 추동하는 걸로 나타났다. (…) ‘국민을 닮은 국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법조인으로 기울어진 대의 운동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지옥 같은’ 적대 정치의 혁신을 위해선 내년 총선에서 ‘법조 국회’부터 객토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당 또는 양쪽 정당이 ‘지옥 같은’ 적대 정치에서 얻을 것이 더 많고, 최종 성과는 ‘정치의 사법화’를 통해 결정된다고 믿는다면, ‘법조 국회’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2020년 2월 12일 한겨레는 ‘20명 중 6명 ‘법조인’, 씁쓸한 민주당 인재영입’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두 사람은 사실상 법원에서 정치권으로 직행한 경우다”라며 “내부 개혁의 한계를 절감하고 밖에서 ‘사법개혁’을 추동하겠다는 진정성을 이해하더라도, 판사의 정치권 직행은 ‘사법의 정치화’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정권현은 “당 지도부를 법조인들이 장악해 ‘법조 주류당’으로 통하는 자유한국당도 이에 질세라 7명을 영입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총선 때마다 나오는 ‘법조인 과잉 논란’이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벌써 200명 안팎의 법조인 출신이 출사표를 던졌다. (…) 문제는 법조인이라는 품질보증서를 달고 선거에 나서면 유권자들에게 상당 부분 먹혀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거에 떨어져도 다시 변호사를 하면 된다’는 안전판까지 준비된 사람들이다.”
2021년 6월 28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출마 예정이던 전 국민의힘 의원 유승민은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서 야권의 주요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이 “대부분 검사, 판사 출신”이라며 “법조인이라는 분들은 평생 과거에 매달리는 분들인데, 우리는 지금 미래를 만들어가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야권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검사 출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 판사 출신 최재형 감사원장 등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그는 “판·검사분들이 상당히 훌륭한 법조인으로 생활을 했을지 몰라도”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취지로 이같이 말했다.
“정치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
2021년 12월 29일 동아일보 논설위원 송평인은 ‘문과의 위기 그 자체인 이재명과 윤석열’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델라웨어대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하고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뒤 나중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다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기 전에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해 철학·정치학·경제학을 공부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1982년 중위권 대학 법대에 학비에 더해 생활지원금까지 받는 장학생으로 들어가 그 대학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늘려주기 위해 죽어라고 사법시험 공부만 한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악착같은 생존 본능에 법 지식만 갖춘 사람이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다닌 서울대 법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윤 후보는 9수를 했다고 하니 20대 청춘을 온전히 사법시험에 갖다 바쳤다는 얘기다. 9수가 가능했던 경제적 여유에서 오는 한량 특유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만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에서 문과의 위기는 단지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로 표현된 그 분야 교수와 학생만의 위기가 아니다. 젊은 시절 인문사회과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계·관계·재계로 진출해 지도층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 전반의 위기다”라고 했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은 법률신문(2022년 8월 15일)에 기고한 ‘‘서울대 법대 정치인’은 왜 실패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싶다며 자문을 구하면 웬만하면 말린다고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면 정치가 적성에 맞는지 생각해 보라며 몇 가지 얘기를 덧붙이는데, 그중에 하나가 “왜 서울대(특히 법대) 출신이 정치에서 실패하는지”도 단골 레퍼토리라고 했다. “정치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합니다. 정치를 혼자 합니다.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할 줄 모릅니다.”
경향신문 경제부장 박병률은 ‘서울법대 망국론’(2022년 9월 5일)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윤석열은 “할당이나 안배를 하지 않고 능력만 보고 뽑았다”는 변명을 내세워 서울법대 출신을 초대 내각 전면에 배치했다고 지적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서울법대 출신이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서울법대 편애는 여당의 분열도 불러왔다. 대선에 기여하고도 아직 한자리를 얻지 못한 여당 관계자들은 ‘서울법대 출신이어도 그랬겠느냐’는 푸념을 많이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울법대 출신들의 공부머리야 시비를 걸기 어렵다. 하지만 일을 시켜 보면 안다.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다르다는 것을. 시험만으로 민생을 살릴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서울법대 출신들을 써야겠지만, 국가 운영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국내외 갈등과 난제를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람들과 만나 협의와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내각이 그렇다. 만약 국내 최고 학벌로 이뤄진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다면 보수에 대한 또 다른 책임론이 제기될지 모를 일이다. 서울대 망국론, 아니 서울법대 망국론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우상의 기쁨만 추종하는 몽매의 극치
누구나 다 인정하겠지만, 윤석열 정부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실패가 확정되면 ‘서울법대 망국론’이라는 책임론이 제기될까. 그럴 것 같진 않다. 서울법대 정치인들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가 “정치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는 것이었는데, 윤석열은 그 점에선 예외적인, 아니 오히려 정반대 유형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가슴이었다. 그간 정치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한 대통령들이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윤석열만큼 가슴 의존도가 높았던 대통령은 없었다. 가슴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그의 가슴은 유별났다.
나는 ‘신동아’ 9월호에서 윤석열을 “공적 마인드가 없는 부인을 자신의 우상으로 섬기면서 그 우상을 기쁘게 해주는 걸 국정 운영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해 온 사람”이라고 했다. 모두가 다 알고 있거나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권에서 큰 정치적 논란이 된 사건들을 보라. 주도면밀한 머리나 이성이 작동했거나 개입된 사건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가슴의 충동이나 폭발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다. 곧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지금 당장 자신의 충동을 해소하거나 자기 우상의 기뻐하는 얼굴만 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몽매(蒙昧)의 극치였다고나 할까.
어떤 이들은 “윤석열에겐 자기 객관화 능력이 없다”고 했지만, 아예 ‘현실감각’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사법시험 9수도 그래서 가능했겠지만, 그러고서도 검찰총장에 대통령까지 됐으니, “나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중독됐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자신의 ‘김건희 숭배’가 자신은 물론 김건희마저 망쳤으며, 더 나아가 정권, 아니 나라까지 망치고 있다는 걸 눈곱만큼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윤석열은 자신이 이런 식으로나마 버틸 수 있는 이유가 1인 사당(私黨) 체제의 보스에게 낯뜨거운 충성 경쟁을 벌이면서 무책임의 극치를 치닫는 야당 정치인들 덕분이라는 것도 모를 게다. 야권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문재인 정권의 실정은 까맣게 잊고 보수 유권자들의 손가락 탓을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양쪽 모두 어찌 그리 똑같은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선 성찰 불능 유전자를 갖고 있어야만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건가.
윤석열의 실패에 한동훈이 져야 할 책임
한동훈(가운데) 국민의힘 대표가 10월 9일 부산 금정구 윤일현 금정구청장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민의힘]
왜 애정과 신의에 근거한 분노의 힘을 발휘할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 아니, 할 수 없었던 걸까. 국정 운영을 망친 윤석열의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대해 “다 죽자는 거냐?”라고 면전에서 거칠게 맞짱을 뜰 정도의 열정과 배포가 한동훈에게 없었다는 것, 이게 바로 서울법대 출신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윤석열과 치열한 갈등 관계에 있다곤 하지만, 그 갈등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그런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잖은가. 역사적으로 임기가 반 이상 남은 대통령에게 그런 식으로 대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하니, 서울법대 출신에게만 그걸 요구하는 건 불공정한 일일 수도 있겠다. 잃을 게 많은 데다 권력에 대한 갈증과 사랑이 강한 수재일수록 오히려 그런 일이 더 어려울 수 있잖은가.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은 “우리는 대통령에게 도저히 한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과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책임과 도저히 한 사람이 견뎌낼 수 없는 압박을 주고 있다”고 했다. 어찌 생각하면 대통령제란 인간이 만들어낸 우스꽝스러운 제도임에 틀림없지만, 모두가 진지하고 심각할 뿐 웃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스타인벡이 지적한 그런 압박을 잘 견뎌낼 것 같은 자질을 가진 사람을 대통령감으로 선호해 뽑아놓고 나선, 그런 자질이 ‘축복’에서 ‘저주’로 바뀌는 게 드러나면 그때서야 딴말을 하면서 불평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다음호에 계속).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