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건의 원제목은 ‘좌경위장취업자의 활동양상 및 전략전술’이다. 문건의 서문을 보면 출처를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 ‘1987년도의 격렬한 노동분규를 주동한 위장취업자 또는 운동권 근로자로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된 자들의 소위 학습 아지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적색문건으로 ‘단위사업장 활동 지침서’가 있다.’ 바로 80년대 운동권들 사이에 ‘단사’로 불렸던 문건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문건의 중반부를 보면 ‘위장취업자의 보안수칙’이라는 제목으로 쓰인 도표가 있다. 여기에는 80년대 운동권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와 관련, 80년대 대학가에서는 수많은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관계당국의 공식 문건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문건의 주요 내용을 싣는다.
운동권 근로자의 보안수칙
3-1. 일상생활
1) 문건
―문제가 될 것은 정기적으로 소각, 처분할 것.(특히 정리한 것, 메모 등)
―자료는 집중을 원칙으로 하고 분산은 엄격히 제한할 것.
―자료에 대한 개인적 소유욕을 버릴 것.
―출처를 명확히 하고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안전한 곳에 집중시킬 것.
2) 방
―직업에 맞는 생활습관을 지킬 것.(회사원은 규칙적이며, 자유업은 불규칙적이다)
―이웃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유사시에는 이웃이 자신의 보위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직된 모습을 풀고 부드러운 인상과 자연스러운 생활을 할 것.
―출입할 때 안전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을 마련할 것.
―주거지 주변의 지리를 완전히 익힐 것.
―주거지 주변의 전화를 사용하지 말 것.
3) 조직생활
▲모임
―모임의 내용을 암기하고 가명을 사용할 것.
―만날 때마다 될 수 있는 한 공공장소를 피하고 특히 정기적으로 사용하지 말 것.(다방, 공원, 레스토랑,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메모지 이용 금지.
―특정인의 이름을 부르지 말 것.(A, B, C 등으로 사용)
―두드러진 분위기를 주지 않도록 하며 특히 두드러진 복장, 용모는 피하고 평범, 단정한 상태를 유지, 주위에 어울리는 복장상태 유지.
―시간 엄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하다.
―공공장소에서 모일 시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무르지 말 것.
―약속시 기다리는 시간을 정하고 (예를 들어 15분, 30분) 그 시간 내에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사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것.
▲대화
―공공장소에서 자극적 용어 사용을 금하고 타인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언행을 절대로 하지 말 것.
―주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나 대화 모습을 제한하고 최대한 은어, 약어를 사용할 것. (이때 지나치게 소곤거리거나 머리를 맞대고 있으면 오히려 주의를 끌게 된다.)
―주위가 수상할 때에는 대화를 중단하고 즉각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바꿀 것.
―전화를 사용할 때는 공중전화를 쓰고, 모든 전화는 도청된다는 것을 명심할 것.
3-2 피신
―연락체계를 확립할 것.
―어떠한 경우든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하지 말 것.
―연고관계를 단절할 것.(부모, 친구, 기타 노출될 우려가 있는 관계, 즉 애인, 친척)
―연고자와는 일방적으로 연락하고 일방적으로 요구할 것.
―도피시 사진, 앨범, 수첩, 일기장, 증명서, 통장 등 신분상 드러날 소지가 있는 것을 처분할 것.
▲보행, 이동시 유의사항
―차량이 진행하는 방향으로 보행
―연고지를 벗어나 생활할 것.(근처에도 가지 말 것)
―검문시 지하철 사용 금지.
―시외버스 사용 제한.
―버스 탈 때 자신보다 뒤에 타는 사람을 기억, 확인할 것.
―보행시 사람들의 눈과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할 것.(경계심 유발, 용모 인지)
3-3 신고
―피체시 허리띠를 잡히지 말 것.
―완강한 저항으로 피체를 알릴 것.
―급소를 노리고 도망갈 기회를 늘 찾을 것.
―방이 열렸음을 알릴 수 있는 흔적을 남길 것. (유리를 깬다 등)
―메모지는 삼킬 것.
―무조건적 도피는 금물. 최대한 상황을 조직 내부에 알리도록 노력할 것.
―미행에 언제나 유의할 것.
―미행시 지하철, 주거 밀집지대 이용법을 익힐 것.
3-4 조사시 명심할 사항
―주거지는 2~3회 거짓 진술을 할 것.(최소한 24시간 이상 버틸 것)
―확증이 없는 경우 절대 부인할 것.
―자신이 진술하지 않은 사실은 적이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회유, 협박, 공갈에 의연할 것.
―동지에 대한 배신, 분노를 결코 느끼지 말 것. 언제나 냉정할 것.
―조사자의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부정, 비리)
―적과 논쟁하려 들지 말 것. 언제나 극단적인 고문을 염두에 둘 것.
―진술내용을 철저히 암기할 것.
―아무리 맞더라도 질문에 무원칙하게 대답하지 말 것.
―수치심을 갖지 말 것. 수치심은 보안 누설의 전제.
―가능한 한 거짓 진술을 꾸미고 시간을 지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
―거짓 진술은 처음부터 황당하게 꾸밀 것.
―구타, 폭언, 협박, 공갈 등은 초보적인 것이므로 냉소적으로 대할 것.
―적의 인간적인 호소, 요구는 언제나 기만인 것이다.
3-5 운동권 근로자의 활동내용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인자·꼭두각시’를 선정하는 기준, 즉 인자의 조건을 제시하며 이러한 조건에 해당되는 인자들을 중점적으로 포섭 가능성 있는 인자로 제시하고 있다. 이 조건이란 일반적으로 남자들의 경우 25세에서 27세, 28세의 미혼인 인자가 가장 좋고 여자인 경우에는 18세에서 27세 전후이고 미혼인 인자가 가장 좋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들 다음으로는 나이 어린 노동자들을 꼽고 있다. 왜냐하면 나이 어린 노동자들은 사회의 물이 덜 묻어 있어 포섭이 용이하게 때문이다.
3-4 이들의 對 근로자 관계 형성방법
―첫 번째 만남에서는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포섭된 인자(꼭두각시)의 성분, 즉 입사동기, 학력, 나이, 공장생활, 친한 사람들을 파악한다. 이들은 다음번의 만남을 연결시키기 위해 몇 개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회사, 사회, 노동자,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지난 과정의 문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도산이야기, 고문실태, 대우자동차, 대우어패럴, 광주, 와이에이치, 독립운동, 현업자, 중국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 경우에도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간접 대화의 방식을 이용한다고 한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정치신문이나 전단을 통해 정치적 선동을 한다. 그리고 만일 신분이 노출되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준다.
―네 번째 만남에서는 세 번째 만남과 비슷한 내용이나 좀더 은밀한 관계로 발전하면서 동지적 신뢰를 구축한다. 이 경우에는 세 번째 만남까지의 일반적인 정리와 네 번째, 다섯 번째 만남에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것 등을 미리 준비하고 학습과 실천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한 후 가능한 실천(낙서, 잔업거부, 불량내기 등)에 대해 결정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들의 이러한 계획은 순번대로 행하지 않을 경우도 있으므로 이중의 어느 것부터 출발을 하더라도 감지할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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