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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달인 김종호 인간적 삶의 등불 이소선

인간관계의 달인 김종호 인간적 삶의 등불 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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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호 국회부의장과 인권·노동운동가인 이소선 여사는 ‘인간적’이라는 삶의 화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비슷한 연배로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전혀 다른 삶의 역정을 걸어온 두 사람에게서 ‘인간적’이라는 가치관의 의미를 살펴본다.
‘~적(的)’이라는 접미사는 한자어 뒤에 붙어 ‘그러한 성질, 경향, 상태에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적’이 붙은 수많은 말 중의 하나인 ‘인간적’이라는 단어는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인간적’이란 말을 긍정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인간적이다’는 말은 어떤 사람에 대한 호감의 다른 표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악마가 천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 세상살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처럼 ‘인간적’이라는 단어도 이따금 그런 갈등을 유발한다.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넌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니?” 하는 질문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면서 “공부는 얼마큼 했니?”에 관해서는 끊임없이 묻는다. 아이를 공부기계처럼 여러 학원으로 몰아대는 부모를 ‘비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하다가도 막상 그 부모를 접하면 자신의 아이가 이 다음에 더 ‘인간적’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 잠시 매몰찬 모습을 감수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인간적’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미묘하고 복잡한 의미를 좀더 정밀하게 살펴보기 위해서 30대 후반의 남자가 작년에 경험한 사례 한 가지를 들어보자.

휴일 늦은 저녁 한적한 거리에서 불법유턴을 한 남자가 이면도로에 들어서니 갑자기 어디선가 교통순경이 나타났다. 현행범이라 거수경례를 붙이는 경찰관에게 할 말을 잃고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는데, 그 남자를 쳐다보던 경찰관이 친근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법적으로 하실래요? 인간적으로 하실래요?”



대번에 경찰관의 말뜻을 알아들은 그 남자는 교통순경에게 지폐 한 장을 쥐어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지금도 그렇게 인간적(?)인 풍경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경우 ‘인간적’이란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또 어떻게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인간적’의 의미를 그렇게 쉽게 알아듣는 것일까. 한 신앙인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저 사람은 참 인간적이야’라고 할 때는 분명히 자신의 가치판단을 근거로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와 수준에서 나에게 좋으면 인간적이다. 옳고 그름은 나중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적이며 또 나는 인간적인가?’”

이렇게 만만치 않은 ‘인간적’ 삶의 화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두 사람이 있다. 김종호 국회부의장과 인권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인 이소선 여사다. 부연하자면 김부의장은 현재 6선 국회의원이자 자민련 총재대행이고 이여사는 노동자의 살아 있는 ‘불꽃’으로 불리는 전태일의 어머니다.

이소선 여사가 70대 초반이고 김종호 부의장이 60대 후반이니까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겪은 삶의 역정은 전혀 다르다. 김부의장이 내무관료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외형적인 절차를 꼼꼼히 따지며 법을 만드는 삶을 살았다면 이여사의 삶은 불법과 막무가내식 투쟁으로 점철되었다. 물리적인 측면에서 김부의장은 줄곧 ‘양지의 삶’을 살아왔다면 이여사의 삶은 ‘음지’ 그 자체였다.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인간적’인 가치관을 중시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물론 공통점은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떻게 그토록 상반된 이력을 가진 두 사람을 ‘인간적’이라는 공통된 잣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인간적인 삶과 비인간적인 삶’의 대칭구도로 설명해야 아귀가 맞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필자는 ‘인간적’인 그리고 ‘더 인간적’인 병렬식 구도로 두 사람의 삶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김종호 부의장은 어떻게 ‘인간적’이고 이소선 여사는 왜 ‘더 인간적’인가.

김종호 가는 곳에 권력 있다

먼저 김종호 부의장에 관해서 살펴보자. 권력의 고비고비에서 김종호만큼 절묘한 선택을 한 정치인도 흔치 않다. 5공때는 내무장관, 6공 때는 원내총무, 문민정부에서는 당대표 그리고 현재는 자민련 총재직무대행이자 국회부의장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그의 행보에는 그늘이 없다. ‘향일성(向日性)’이라고 비난도 받지만 어쨌든 그의 선택은 늘 성공했다. “여권내 힘의 향배와 줄서기에 특출한 후각을 보여왔다”는 언론의 평가나 “김종호 가는 곳에 권력이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내무부 주사에서 시작하여 내무장관에 올랐을 만큼 집념이 강하고 대세 판단력이 빠르다는 게 그 첫째고, 또 하나는 은근한 미소에 현악기 선율이 흐르듯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상징되는 그의 뛰어난 처세술과 인간적 친화력이다. 독특한 사교술과 윗사람에 대한 무한의 충성심은 그의 그늘 없는 인생을 설명하는 두 개의 키워드라 할 만하다.

국회부의장에 선출된 지 한 달 만인 작년 7월, 김종호는 자민련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일련의 사건으로 뉴스의 중심인물이 되어 ‘인간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자민련과의 밀약설에 항의하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 몇 명이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뒤늦게 귀가한 김종호는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로열살루트 21년산’ 술병을 꺼내와 권하면서 정겹게 술잔을 주고받는 것으로 앙금을 털어버렸다.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김부의장에게 항의할 것은 모두 했다”면서 “손님에게 내온 술을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어려운 것 아니냐”고 해명했단다. 인간적 접근이란 그렇게 강력하다.

그 다음날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날치기 처리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수십 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그의 자택에서 출근저지 투쟁을 벌였다. 이때도 김종호는 ‘감칠맛 나는’ 친화력을 여지없이 발휘한다. 농성중인 한나라당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수고가 많다. 제대로 대접을 못 해서 미안하다”며 자장면 130그릇을 대접하는 광경은 정겨움 그 자체다. 그런 와중에 양말을 신은 채 도망갔다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이끌려 다시 자택으로 돌아오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김종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성인용 버전의 재미있는 숨바꼭질을 보는 느낌이다.

정치인 특유(?)의 욕설과 멱살잡이도 안 하고 인간적으로 대처한 것을 두고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적인 정치’를 지향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해도 이 정도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김종호는 좌우명을 ‘인자무적(仁者無敵)’으로 삼을 만큼 정치세계에서 인격적인 인간관계를 남달리 강조하는 사람이란다. 그가 요직에 등용될 때마다 신문의 인물평에는 거의 빠짐없이 “지나치게 싹싹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대인관계에 열심”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다. ‘인격적인 인간관계’ 같은 아름다운 행동은 정치세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해야 옳다. 그러나 현관 열쇠 하나로 자동차 문도, 책상서랍도 모두 열려는 듯 ‘인간적’인 면모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드는 부적절함이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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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 < 정신과 클리닉 ‘마음과 마음’ 원장 > okopenmind@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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