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은 미국의 ‘교육 수도(首都)’다.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비롯해 터프스대, 보스턴대, 보스턴칼리지, 매사추세츠주립대 등 미국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100여개 대학이 밀집해 있다.
살인적인 물가(物價)
교육도시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보스턴의 물가는 가히 살인적이다. 미국 내에서도 세계경제의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 신기술의 요람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물가가 비싼 곳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보스턴에 처음 발을 내디딘 한국 유학생들을 당황하게 하는 것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세. 다운타운 보스턴은 논외로 하더라도 하버드대나 MIT가 있는 케임브리지 지역은 침실이 하나 딸린 아파트 월세가 1000∼1300달러(약 130만∼170만원). 한국의 원룸에 해당하는 스튜디오도 최소한 800달러(100만원)를 내야 구할 수 있다.
현재 월세시세는 1998년 이후 매년 100달러씩 오른 금액으로 남부나 중서부 도시에 비하면 거의 세 배에 가까운 집세를 내야 하는 셈이다.
그나마도 가을학기가 시작하는 9월에는 월셋집이 품귀현상을 보여 집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유학생을 쉽게 볼 수 있다.
더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에 셋집을 얻어 들어갈 때, 대개 석 달에서 넉 달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월세가 1000달러라면 첫달분, 마지막달분, 그리고 한달분 월세에 해당하는 보증금(security deposit)을 더해 모두 3000달러를 집주인에게 한꺼번에 주어야 한다.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방을 얻을 경우에는 한달 월세와 동일한 금액의 소개료를 지불해야 한다. 보증금은 부동산 계약이 만료될 때 돌려주는데, 살던 집에 손상을 입혔을 경우 수리비 명목으로 일부를 공제한다.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붙박이장이 설치되어 있고, 온수와 난방시설 이용비가 집세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보스턴 터프스대에 있는 외교안보 전문대학원인 플레처스쿨에서 공부하기 위해 6월11일 보스턴에 도착한 김정기(金正基·32)씨는 10일간 보스턴 시내를 샅샅이 뒤진 끝에 두 개의 침실이 있는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미국에도 이삿짐을 운반해 주는 이삿짐 센터가 있지만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트럭이나 밴 등을 빌린 뒤 손수 운전해 이삿짐을 운반한다. 한국 유학생들은 이삿짐을 꾸리거나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 서로 품앗이를 해준다.
1.5t 트럭을 빌리는 경우 대여료는 20달러(2만6000원)밖에 들지 않지만, 이동거리와 보험료 그리고 주행에 따른 연료비 등을 고려하면 한 번 이사하는데 70∼80달러(약 9만∼10만원)를 지불하는 셈이다.
김정기씨는 7월1일부터 터프스대에서 마련한 ‘외국유학생을 위한 여름학교’ 수업을 듣고 있다. 김씨와 같은 반에는 이탈리아, 터키, 알바니아, 인도네시아, 일본에서 온 대학원생 8명이 함께 수강중이다.
이 수업에서는 일반적인 회화교육뿐 아니라 미국 대학원 수준에서 요구하는 리포트와 논문작성법, 미국강의 적응요령, 교재학습요령을 가르치고 있다. 김씨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으로서 미국생활 첫해는 영어라는 언어장벽을 극복하는 시간으로 투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어와의 힘겨운 싸움
1992년 뉴욕주 코넬대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해 현재는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김주희(金株希·35·여)씨에게 유학생활 첫해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김씨는 “강의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된 나머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회고한다.
하버드대 화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김상균(金相均·28)씨는 “박사과정 학생은 학부생을 상대로 강의해야한다”는 화학과의 규정 덕에 비교적 빠른 시일에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냈다.
김씨는 “처음에 강단에 섰을 때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두려웠지만 ‘선생님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자신있게’ 강의를 이끌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머뭇거리거나 쭈뼛거리는 태도보다는 실수가 있더라도 자신있고 명확하게 말하다 보니 어느새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는 설명.
서울대 제어계측과에서 석사를 마친 뒤 1992년에 유학생활을 시작해 이제는 텍사스 A&M 대학교 기계과 교수가 된 김원종(金元鍾·35)씨는 “교수가 되어서 한국학생을 보니 무엇인가 자신 없어하고 쭈뼛거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며 “그런 태도를 빨리 떨쳐버린다면 언어장벽도 빠른 시간 안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듣기 훈련엔 역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자주 듣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유학생들의 한결같은 지적.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영어를 귀로만 듣지 않고 입으로 따라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한다.
잠잘 때도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영어방송을 틀어놓으면 영어로 꿈을 꾸는 횟수가 늘어나고 잠결에도 영어방송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귀가 뚫렸다’는 것은 이 단계를 의미한다.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적응기간이 지나면 유학생들은 미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나름의 취미활동이나 클럽활동에 눈을 돌리게 된다.
서부의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을 공부한 뒤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MIT 경영대학원에서 파이낸스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채준(蔡濬·34)씨는 주말이면 학교 동료들과 축구를 하면서 우의를 다진다. 창립 당시엔 한국인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외국 친구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다국적 축구클럽이 되었다.
김주희씨는 코넬대학에서 공부할 때 카약, 요트, 등산 등의 스포츠활동을 주로 하는 ‘아우팅클럽’에서 활동하면서 미국문화에 적응을 높였다.
미국 대학 특유의 게시판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미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미국 대학의 게시판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무빙세일’이다.
문자 그대로 학위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미국인이나, 본국으로 귀국하는 외국인들이 이사를 앞두고 사용하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은 것. 덩치가 큰 승용차나 침대, 장, 책상에서부터 옷걸이, 숟가락, 접시 등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예상치 못한 이유로 급거 귀국하는 경우 급매물도 종종 나오고, 운이 좋으면 쓸 만한 물건을 공짜에 가까운 헐값에 얻을 수도 있다.
종교를 가진 유학생들은 일요일에는 사찰·성당·교회 등 종교시설을 찾는다. 유학생들에게 종교시설은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곳이라는 본래의 의미 이외에 한국인들간의 교류와 친교의 장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내포한다.
7월8일 보스턴 근교 웨이크필드에 있는 한국사찰 ‘문수사’에서는 청년부의 공양(供養)이 있었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공양’을 위해 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청년부 15명은 7일 오후부터 문수사에 모여 김밥과 메밀국수, 팥빙수 등의 재료를 준비했다.
8일 문수사에 다시 모인 유학생들은 대부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 처녀가 주류를 이룬 탓인지 익숙하게 일을 처리하지는 못했지만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에서 60여 명의 문수사 신도들에게 급식을 훌륭하게 치러냈다.
유학생들은 몸은 보스턴에 있지만 그래도 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한국에서 비교적 최근에 떠나온 유학생은 가장 최근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죄(?) 때문에 한국 국내사정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브리핑을 도맡아 해야 한다.
여자 유학생들의 경우는 연예계 소식과 한국 드라마에도 관심이 많다. 보스턴에는 한국 비디오가게가 서너 곳 있는데,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는 한 달 정도의 시간차이를 두고 유학생들에게 배포된다.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9월부터 매켄지 서울사무소에서 일하게 되는 황민하(黃珉夏·28)씨도 매주 성당에 다니면서 밴드활동도 하고 아이들을 위한 미사시간에 전자기타를 치면서 반주를 해주는 등 성당을 신앙활동 외에 취미활동 장소로 적극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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