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활어로 화제를 돌려보자. 국내로 들어오는 활어는 대부분 중국산이고 참돔 등 일부 고급 어종은 일본에서 들어온다. 횟감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중국산 미꾸라지도 상당량 들어오고 있다. 미꾸라지는 추어탕 재료로 소비되는데, 산 채로 들어온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은 미꾸라지 가루로 만든 추어탕보다 가격이 대체로 싸다. 산 미꾸라지보다는 미꾸라지 가루를 운반·보관하는 비용이 훨씬 더 적게 들기 때문이다. 복어(鰒魚)와 홍어는 중국에서도 생산되는 양이 적어, 대개 남미에서 수입한다.
어쨌든 중국산 활어의 대량 유입은 횟집 메뉴판을 바꾸어놓았다. 과거 횟집 메뉴판에는 광어·도다리·민어 등 어류별로 kg당 가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요즘 메뉴판에는 대개 ‘모듬회 특(特)’과 ‘모듬회 대(大)’가 윗자리를 차지한다. 모듬회 특의 가격, 모듬회 대의 가격에 이어, 비로소 광어의 kg당 가격, 도다리의 kg당 가격이 나와 있다. 모듬회의 범람은 중국산 활어의 유입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중국산 활어 중에 홍민어(일명 點星魚)가 있는데, 이 고기는 활어 중에서 가장 단가가 싸다. 이 고기의 수입가는 kg당 3000∼4000원인데, 수입업자들은 이를 7000∼8000원에 횟집으로 넘기고, 횟집에서는 대개 1만원으로 계산해 손님에게 내놓는다. 홍민어는 싸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이 없는 고기가 아니다. 횟집에서는 홍민어를 중심으로 모듬회 접시를 채운다. 다른 회 값이 오를 때는 홍민어의 비율을 늘리고, 내릴 때는 홍민어를 줄임으로써 모듬회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홍민어의 소비량이 이렇게 많은데도 국내 양식업자들은 이를 양식하지 않는다. 국내 양식업자의 기술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kg당 1만원 이내 가격으로는 도저히 홍민어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홍민어는 겨울이 오면 사료를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성장을 멈춘다. 그러나 사시사철 따뜻한 바닷물이 넘실대는 남중국에서는 홍민어의 성장속도가 매우 빠르다.
난대성 어류인 홍민어를 값싸게 양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다. 지금은 유리온실에서 한겨울에도 수박과 포도를 생산하는 세상이 아닌가. 겨울철에도 바닷물을 따뜻하게 데울 수만 있다면 홍민어를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바닷물을 따뜻하게 데우는 데 드는 돈이 남중국에서 홍민어를 가져오는 운반비보다 싸다면, 한국의 홍민어 양식은 하루아침에 되살아 날 수 있다.
온배수를 이용하자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오포리 보령화력본부 내에서 온배수(溫排水)를 이용한 양식장을 운영하는 이신복(李信馥·49)씨는 이러한 꿈을 꾸는 어업인이다. 보령화력은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전기량의 약10%를 생산하는 굴지의 발전단지로 50만㎾급 석탄 화력발전소 여섯 기와 복합화력 발전소 네 기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화력발전소는 석탄이나 중유를 사용해서 물을 고온고압으로 끓여 만든 수증기로 발전기와 연결된 터빈을 돌림으로써 전기를 생산한다.
수증기를 발생시키는 데 사용되는 물은 민물이다. 바닷물을 사용하면, 소금기 때문에 보일러와 터빈이 금방 녹슬어버린다. 때문에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는 주변에 큰 강이나 대형 저수지가 있는 곳에 위치한다.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도 수력발전소만큼이나 물(대형 저수지)이 필요하다. 보령화력은 보령댐에서 민물을 공급받고 있다.
50만kW급 석탄 화력발전소는 시간 당 1720t의 민물을 수증기로 바꾼다. 보령화력에서는 이러한 발전기 여섯 기가 돌아가므로 시간당 1만320t, 하루에는 무려 24만7680t의 물을 수증기로 바꾸고 있다. 이러한 수증기를 전부 대기중으로 방출한다고 상상해보라. 보령댐은 1억3000만t의 저수량을 자랑하는 대형 댐이라 그런대로 견디겠지만, 웬만한 저수지는 며칠 만에 말라버릴 것이다.
발전으로 인해 저수지가 말라버리면 더 이상 발전도 하지 못하고, 농민들은 가뭄이 들어 논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도, 물 한 동이 퍼올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화력발전소는 수증기를 냉각해 다시 물로 만들어 재활용한다. 수증기를 다시(復) 물(水)로 되돌리는 것을 ‘복수(復水)’라 하고, 이러한 일을 하는 장치를 ‘복수기(復水器)’라고 한다. 이 복수기는 냉장고처럼 전기를 소비해서 수증기를 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적잖은 전기를 소모하므로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량이 적어진다. 때문에 화력발전소는 ‘무한자원’인 바닷물을 끌어들여 수증기를 식힌다. 즉 바닷물을 담은 거대한 수조 속에 수증기가 지나는 관을 만들어 수증기를 내보내면, 수증기는 이 관을 지나는 사이 식어 물로 되돌아간다.
관 속을 지나는 수증기는 고온고압이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바닷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바닷물도 언젠가는 펄펄 끓게 된다. 따라서 화력발전소의 복수기는 끊임없이 바닷물을 교체해 준다. 수증기를 식히기 위해 복수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바닷물을 ‘냉각수’라 하고, 수증기를 식힌 후 약간 데워진 채 바다로 나가는 물을 ‘온배수(溫排水)’라고 한다.
이신복씨는 “온배수를 이용하면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바닷고기를 양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씨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이 어민들은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를 눈엣가시로만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 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해 온 어장이 발전소가 가동된 후 황폐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 양식장이다. 김은 찬물에서 잘 자라는 해조류(海藻類)인데 온배수가 쏟아져 나오는 바닷가에서는 죽거나 성장이 느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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