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휴대전화 번호와 이름은 어떻게 알았나요?”
남성으로서 성희롱 첫 배상판결을 받은 장모(28)씨. 지난 5월초 법원의 판결이 나온 직후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걸자, 그는 마치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당황해했다. 거듭 인터뷰를 사양하는 그를 설득해 겨우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다음날 저녁 7시30분, 서울 지하철 5호선 군자역 구내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 10분 전 그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잊지 않고 있어요”라고 짧게 대답한 그는 7시45분이 지나도록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자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어요. 미안합니다. 20, 30분만 더 기다려주세요” 하고 끊었다. 8시20분께, 그로부터 군자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을 찾고 있는 듯한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장○○씨 되시나요?”
“아닌데요.”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성이 다가와 “접니다”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연한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그는 쌍꺼풀진 큰 눈이 인상적인 미남형이었다. 20대 후반의 나이치고는 조금 앳돼 보였지만 체격은 건장했다.
-약속시간을 계속 미뤄 안 오나 생각했습니다.
“안 나오긴요. 약속을 했는데…. 전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요. 아니, 지키려 최대한 노력한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텐데….
“아, 예…. 많이 힘들었어요. 아주 많이요.”
늦은 시간이지만 두 사람 모두 저녁식사 전이라 먼저 식당을 찾았다. 손님이 거의 없는 감자탕집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여자(가해자)로부터 그렇게 (성희롱을) 당하고 나서 회사의 담당자에게 하소연을 했지만 제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고요. 반강제적으로 회사에서 쫓겨났죠. 한마디로 황당했어요. 직원들이 쳐다보는데도 몸을 건드리면서 장난치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뭐라고 말도 못하겠고. 다행히 증인이 있어서 이길 수 있었어요.”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그동안 맺힌 게 많은 듯 지난 1년 동안 ‘당했던’ 일을 먼저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고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의 앞뒤 경과를 처음부터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 회사에는 언제 입사했나요.
“2000년 5월2일이에요. 편의점에서 일하다 알게 된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저녁밥도 주고, 일요일은 다 쉰다고 해서 친구의 소개로 입사했어요.”
-어떤 회사였습니까.
“여성 의류 제작·판매 업체였어요.”
-직원은 몇 명이나 되는지요.
“생산라인이 A부터 H까지, 한 라인에 스물다섯 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니까 여직원만 200여 명쯤 되겠네요. 남자는 저를 포함해서 단 7명이었어요. 3명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연장자였고, 나머지 4명은 저와 또래거나 한두 살 정도 많았어요. 남자직원 중에는 제가 가장 어렸지요. 관리직에 있는 직원들까지 합치면 모두 300명쯤 되는 회사였어요.”
-생산라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쉽게 말해 재단된 천을 재봉틀로 박아 옷을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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