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노는 인간과 노는 문화가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퍽 궁금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책에서도 인간 삶의 반을 이루는, 역사의 절반이 될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나의 이 글은 우리나라 역사의 절반(?)에 대한 탐구의 시작이다.
놀이문화 소개하는 노래
‘한양가’란 가사가 있다. 1848년경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이 가사는 국문학 연구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19세기 중반 서울 시정의 활기찬 동태를 정확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한양가’는 당시 신분과 사회적 처지에 따른 한양의 각계각층이 즐기던 온갖 놀이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 바,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자료다.
화려가 이러할 제 놀인들 없을소냐/장안소년 유협객과 공자왕손 제상자제/부상대고 전시정과 다방골 제갈동지/ 별감 무감 포도군관 정원사령 나장이라/남북촌 한량들이 각색 놀음 장할시고/공물방 선유놀음 포교의 세찬놀음/ 각사 서리 수유놀음 각집 겸종 화류놀음/ 장안의 편사놀음 장안의 호걸놀음/재상의 분부놀음 백성의 중포놀음/각색 놀음 벌어지니 방방곡곡 놀이철다
공자 왕손으로부터 돈 많은 시전상인을 거쳐 의금부 나장까지 온갖 계층이 모두 유흥을 벌인다. 놀이의 종류도 가지가지다. 나는 이 놀이의 내용을 알기 위해 10년 이상 무척 애썼지만, 아직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
이처럼 다양한 놀이를 소개한 뒤에 각별히 관심을 끄는 별감(別監)의 ‘승전(承傳)놀음’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다른 놀음은 모두 이름만 소개되어 있으나, 승전놀음은 ‘한양가’ 전체 서술량의 약 17%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그 구체적인 놀이 과정을 길게 묘사하고 있다. 별감들이 기생과 가객(歌客), 금객(琴客)을 불러 기악(器樂)과 노래, 춤으로 벌이는 거창한 놀이판인 승전놀음이 조선후기 서울의 놀음판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승전놀음의 주최자인 별감이다. 별감에 대해서는 ‘검계(劍契)와 왈자(‘신동아’ 2002년 11월호 참조)를 다루면서 간단히 언급한 바 있다. 특히 대전별감은 왈자의 하나로 조선후기 유흥계의 주역이었다. 나는 그 동안 이런 글 저런 글에서 별감의 존재에 대해 주목해왔다.
역사란 항상 승자의 것이란 말이 있듯, 조선의 사회적 승자는 양반계급이었기에 역사 서술의 주 대상도 늘 양반이었다. 민중사관은 양반의 대타적 존재인 민중을 역사서술의 주 대상으로 삼지만, 이도저도 아닌 중간부류들은 늘 잊혀지게 마련이다. 별감 같은 부류가 그 짝이다. 나는 이 글에서 별감을 서술 대상으로 불러내고자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별감이란 단어가 지시하는 대상은 여럿이다. 유향소(留鄕所)의 좌수(座首) 다음가는 자리를 별감이라 부르고, 또 하인들끼리 서로를 별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이 용례와는 다른 궁중의 액정서(掖庭署) 소속의 별감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딱딱하지만, 먼저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들추어보자. ‘경국대전’의 ‘이전(吏典)’ ‘잡직(雜職)조’에 액정서란 관청이 있다. 액정서의 임무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