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노씨의 추징금 환수 실적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2000년 12월 청와대 만찬에 참석한 두 전직 대통령
이는 노씨가 나라종금에 차명으로 예탁했던 248억5000여만원을 2001년 2월 환수한 것에 뒤이은 조치. 이로써 노씨에게 선고된 추징금 2628억9600만원 중 환수액은 2073억8200만원으로 전체의 78.88%에 이른다. 미환수 금액은 555억1400만원. 하지만 검찰은 노씨의 비자금 은닉처가 비교적 쉽게 노출돼 추가 추징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크게 두 가지다. 노씨와 함께 추징금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추징금은 왜 제대로 환수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환수조치가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걸까.
두 전직 대통령에게 추징금이 선고된 때는 1997년 4월. 당시 대법원은 이들이 대통령 재임중 재벌총수들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를 적용, 무기징역과 함께 전씨에게 2205억원, 노씨에겐 2628억9600만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이들은 확정판결 후 8개월 만인 같은해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추징금은 사면대상이 아니어서 그후 7년째인 지금까지도 환수대상으로 남아있다. 2003년 1월 현재 전·노씨의 미납 추징금 합계는 2445억1685만원. 이중 1890억285만원이 전씨가 내야 할 몫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전씨로부터 환수한 금액은 314억9715만원. 전체 추징금 2205억원 중 14.3%에 불과하다. 이는 노씨의 경우와 비교할 때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다. 2000년 10∼12월 전씨의 중고 벤츠 승용차와 용평 콘도회원권에 대한 경매를 통해 1억1200만여원을 강제집행한 이후로는 전씨에 대한 추가 추징은 전혀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드러나지 않는 은닉재산
검찰이 전씨의 비자금에 대해 전혀 손을 쓰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뭐니뭐니해도 전씨의 비자금 추적 자체가 어려워 그의 재산상황을 파악조차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검찰은 수사요원 5명으로 구성된 전담추적반을 편성해 은닉재산 추적을 계속해왔지만, 비자금 대부분이 노출되지 않는 무기명 채권 등의 형태로 은닉된 것으로 보이는데다 강제로 계좌추적을 할 수 없어 전씨 본인 명의의 재산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관계자는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다”고 답했다.
한때 전씨의 장남 재국씨(44)의 을지서적 인수와 관련해 전씨 비자금이 서점 인수자금으로 유입됐다는 설(說)이 나돌고, 논란거리로 떠올랐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가회동 빌라의 실소유주가 전씨의 셋째 며느리라는 사실이 밝혀져 전씨가 사준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지만, 검찰이 전씨의 가족이나 관계인의 명의로 된 재산을 추징하려면 재산을 고의로 위장한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이 또한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다. 게다가 현행법상 납부하지 못한 액수에 대해 노역장 유치(환형유치·換刑留置)를 할 수 있는 벌금과 달리, 추징금의 경우 강제책이 없는 ‘내재적 한계’ 때문에 이래저래 추징금 징수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형편이다.
속 앓는 검찰
전씨의 비자금 추징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일까. 예단하긴 어렵지만, 물거품으로 스러질 공산이 크다. 문제의 핵심은 추징작업이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전씨에 대한 추징금 징수 시효의 만료시점이 임박했다는 데 있다.
형법상 ‘추징’이란 범죄와 관련된 물건으로 범인이 가진 물건이나 제3자가 얻은 장물을 몰수할 수 없을 때 그에 해당하는 금전을 강제로 받아내는 재산형. 추징 대상엔 추징 선고를 받은 본인 명의의 부동산이나 동산·채권만 포함된다. 추징금 징수 시효는 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