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호르몬은 동물이나 사람 몸 속에 들어가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들어 쓰레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다이옥신이나 음료수 캔 코팅 물질로 쓰이는 비스페놀 등이 체내에 들어가 생식, 면역, 정신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전세계가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시험법 중 국제적으로 승인된 것이 없어 아직까지 환경호르몬의 유해성 여부는 정확하게 결론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OECD는 4년 전부터 회원국들과 공동으로 정확한 검색 시험법을 연구·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식약청 산하 국립독성연구원은 바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100여 마리의 래트에겐 매일 오전 환경호르몬이 투여된다. 그리고 환경호르몬이 난소, 자궁, 고환, 전립선 등 생식선 내분비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부검된다. 독성연구원 신재호 연구관(내분비독성과)은 “내년 8월 프로젝트가 완료될 때까지 모두 1000여 마리의 래트가 ‘사용’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간 400만마리 희생
식품, 의약품의 효능과 안정성을 평가하고 관련 연구사업을 수행하는 식약청은 매년 쥐, 토끼, 기니피그, 개 등 12종류 5만여 마리의 동물을 실험에 사용한다. 청정동물실은 이러한 시험·연구에 사용되는 실험동물을 관리할 뿐 아니라 일부 실험쥐도 사육한다. 실험동물이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 실험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실험실도 갖췄다. 청정동물실에 출입하는 연구자들은 하루에 두세 번씩 실험복으로 갈아입고 에어샤워를 한다.
생명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유전자 변형을 한 각종 ‘맞춤형 실험쥐’가 애용되고 있다. 청정동물실에서 사육하고 있는 누드 쥐가 대표적인 종류다. 누드 쥐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털이 없는(hairless) 쥐로 피부 실험에 주로 쓰이고, 다른 하나는 면역성이 완전히 결핍된 쥐로 특정 질병을 유발한 뒤 치료제 연구 등에 쓰인다.
누드 쥐가 사육되는 방에 들어서자 복실복실한 털은 오간 데 없고 분홍빛 속살만 드러낸 새끼 쥐들이 눈에 들어왔다. 청정동물실 남종우 관리사는 “누드 유전자를 가진 부모에게서도 일부 새끼만이 누드로 태어나기 때문에 귀한 쥐로 취급된다”고 했다.
특정 형질을 보존하기 위해서 근친끼리만 교배해 계대(繼代·대를 이음)하는 임무를 띤 쥐들도 있다. 이 쥐들은 오직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데 그 존재 의미가 있다. 남씨는 “1년 동안 4∼5차례 새끼를 낳고 나면 안락사된다”고 설명했다.
청정동물실의 실험쥐말고도 식약청에는 기생충이나 전염병 연구, 화장품 독성 실험 등에 쓰이는 개, 토끼, 거위 등이 있다. 최근에는 양 세 마리가 식미생물 배양에 쓰이는 혈액을 제공해줄 임무를 띠고 식약청의 새 식구가 됐다.
국내에서는 연간 400만마리의 동물이 실험에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물실험이 활용되는 분야는 다양하다. 대학 실습을 비롯해 유해물질 독성 검사, 의약품과 화장품 효능 검사, 각종 질병 연구, 의료기기 개발 등에 널리 쓰인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실험동물은 단연 쥐. 전체 실험동물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쥐는 이미 19세기부터 실험용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축적된 연구자료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생애주기도 짧고 몸체도 작아 실험에 용이하다. 최근에는 개, 돼지, 원숭이, 토끼 등도 널리 활용된다.
자유로운 삶을 박탈당한 채 인위적으로 가해진 고통을 겪다 생을 마감하는 실험동물. 그들을 지켜보는 연구자들의 마음도 편할 리 없다. 만화 ‘스누피’의 모델이자 애완견으로 인기가 높은 비글(Beagle)은 가장 널리 쓰이는 실험용 개. 한 연구관은 “쥐에겐 번호만 붙이지만 비글에겐 이름도 지어준다”며 “연구자를 알아보고 잘 따르면서 매일 함께 뛰놀던 비글을 내 손으로 해부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