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 : 죄송한데요. 다른 병원으로 가야겠네요. 본인 : (황당) 의사 : 아기가 열이 높아서 위험할 수도 있는데, 현재 저희 병원에 소아과 침상이 남은 게 없어요. 빨리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본인 : (너무 경황이 없어서) 네.
그 순간 간호사들이 아기의 체온을 내리기 위해 물 마사지를 한다고 다가오는데 그 의사가 간호사들을 막으며 하는 말이 ‘아기가 3개월이라는데 받으면 안 돼요.’ 제 아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럼 응급처치만 해주세요’ 했더니 간호사가 물 마사지 할 것을 놓고 가버립디다. 경황도 없고 아기는 울고 해서 급히 마사지를 해주고 빨리 다른 병원으로 가려고 간호사에게 ‘이 근처 다른 병원 어디로 가야 하나요?’ 하니까 응급실 접수구로 가서 물어 보라더군요.
응급실에서는 환자에 대한 응급처치 의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환자 얼굴 한번 보지도 않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진료거부 아닌가요?”
2003년 8월 한밤중에 고열에 시달리는 3개월 된 아이를 안고 황급히 응급실을 찾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한 의사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통이 터진 최모씨가 의료사고 전문 변호사에게 상담을 요청한 내용이다.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굳이 의료법 제16조 ‘진료거부금지’ 조항을 들어 소송까지 갈 만한 사항은 아니라 해도 다급한 부모와 앞뒤 재는 병원 사이에 상당한 심리적 격차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응급실에서 흔히 겪게 되는 다른 황당한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003년 11월26일 또 다른 변호사의 의료사고 공개상담실에 접수된 내용도 응급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다음은 환자의 제보를 재구성한 것이다.
한밤중에 배가 너무 아파 일반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위경련이라며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차도가 없자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위염 진단을 받고 진통제를 맞은 후 새벽 2시에 귀가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너무 배가 아파 대학병원 소화기내과로 갔더니 급성맹장염이라며 응급실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시 응급실로 오니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에게 “수술 들어간 외과의사가 오면 다시 진찰을 받아야 한다”며 진통제만 놓아주었다. 소화기내과에서 응급실로 온 것이 오전 10시경, 다시 6~7시간을 기다려 겨우 만난 의사는 “충수염 같은데 나는 더 급한 수술환자가 있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협력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다”며 수술하러 가버렸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CT촬영까지 마치고 다시 다른 외과의사가 와서 결국 충수염 확진을 받았지만 그 의사도 “급한 수술환자가 있으니 협력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구급차를 탔다. 드디어 협력병원 도착. 대학병원에서 CT촬영한 것을 보며 “빨리 수술을 하자”고 해서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황당하게도 응급환자가 생겼다며 1시간만 기다리라는 것이다.
다시 입원실에서 대기. 그 동안 경기와 발열 증상이 일어나고 이번에는 열이 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며 또 지체하다 마침내 수술실로 갔으나 이미 맹장이 터졌다. 그러나 의사는 수술 후 가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수술이 잘 되었다”고만 하더니, 수술 다음날 너무 배가 아파 치료를 받게 되자 그제야 “터졌다”고 알려주었다. 그 바람에 20cm 가까이 절개하고, 복통은 심하고, 가족들은 분개하고.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단순 충수염을 방치하여 복막염에 이르게 했다면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응급실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다. 12월7일 ‘의료사고시민연합’에는 충남 금산에서 병원을 전전하다 수술 시기를 놓쳐 결국 다섯 살짜리 아들을 잃은 부모의 안타까운 사연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