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불황과 고용 환경 악화로 30대들의 앞길에는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절벽 끝에 선 30대
서른의 나는 투명한 호리병 속에 갇힌 물고기였다. 앞은 보이지만 힘껏 나아가려 할수록 몸은 부서지듯 아팠다. 잠깐 뒤를 돌아다보기만 했어도 나는 더 큰 세상을 헤엄쳐 다녔으리라. 마음은 비오는 날의 우산장수처럼 허덕대며 바빴지만, 행동은 비 개인 후 나타나는 지렁이나 다름없었다.
사막에서는 때아닌 오한으로 태양의 싱그러움을 쪼일 수도 없었으며, 바다에서는 밀려오는 갈증 때문에 물속을 허우적거렸다. 언제나 말이 행동을 앞섰다. 생각없이 무료하게 내버린 시간들, 그것은 내 인생에 대해 죄책감으로 밀려오는 기억들이다. 아, 30대여.
한국의 경제 현실과 정치 사회 전반의 정책 기조들은 이제 30대들을 피할 수 없는 절벽 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시대의 조류가 30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엉뚱하게 날아온 IMF 포탄에 숱한 30대들이 쓰러진 뒤 처절한 40대를 보내고 있는 것도 안타깝지만, DJ정부의 화려한 ‘벤처열풍’에 휩쓸렸던 지금의 30대들도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신문지상에 오르는 몇몇 젊은 벤처기업 사장들의 성공담과 수조원에 가까운 정부지원자금이며 상장만 하면 수백배의 주가 차익을 가져다준다는 일확천금의 꿈들이 인생의 목표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경우가 허다하다. 코스닥 열풍에 휩쓸려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던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2004년 1월, 이 시대의 30대는 숨조차 쉴 수 없이 다가오는 사방의 벽들에 둘러싸여 한 가닥 신념의 끈마저 놓아야 할 운명에 직면했다. 그들은 어려운 경제 현실 속에서 바늘귀보다도 작은 취업관문과 사업성공의 기회를 놓고 매일같이 서바이벌 게임을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넌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냐?’는 친구들의 질타를 받았던 직장인들은 이제 어엿한 대리나 과장의 직함을 달았다. 젖은 낙엽처럼 회사에 붙어 있었던 그들이 현명했는지, 아니면 발빠른 이직자들이 옳았는지를 판가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잔류한 이들은 통합병원 병실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반면, 전장에 나갔던 병사들은 거의 사상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벤처 열풍의 희생자들
남아 있는 직장인들도 두 가지 걱정을 떠안고 있다. 하나는 승진에 대한 중압감이요, 또 하나는 뒷자리에 앉아 있는 과장이나 부장들의 모습에 비친 불안한 미래다. 어쩌면 이보다도 더 큰 스트레스는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는 실직(失職)의 공포일지도 모른다. 55세 정년이 어느새 ‘사오정’을 넘어 ‘삼팔선’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현실에 불안감이 또 밀어닥친다. ‘탈출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했지만 성공으로 가는 비상구를 찾을 수 없다. 앞은 아득한 사막뿐이다.
한편 가정문제도 직장생활 못지않게 어깨를 짓누르는 큰 짐이다. 피부양자에서 부양자로 뒤바뀐 나이가 된 후에는 자유로움이 없어졌고 운신의 폭도 급격히 좁아진 느낌이다. 직장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남부럽지 않게 돈을 쓰는 친구들을 볼 때면, 성공이라는 탈출구를 엉뚱한 데서 찾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사랑을 좇아 결혼하기는 했지만 선인(先人)의 말씀대로 ‘돈, 그리고 나서 사랑’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결혼생활 내내 떠나지 않는다. ‘사랑이 역시 밥 먹여주지는 않았다’는 명제를 하루에 한번씩 노트에 써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