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영어 못하는 건 운명도 팔자도 아니다. 굳이 팔자라고 한다면 고쳐야 할 팔자이고 충분히 고칠 수 있는 팔자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쉽게 깨칠 수 있는 길이 있다.
사람의 뇌 중 언어능력을 관장하는 부분은 10세에 전성기를 맞고 12세 무렵이면 발달을 멈춘다고 한다. 그래서 13세 이전에 영어를 접하지 않고는 원어민처럼 구사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10세는 대개 초등학교 3, 4학년이고 12세는 5, 6학년 시기이므로 초등학생 때 영어를 공부하면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얘기다.
현실적인 면을 보더라도 초등학생 시기는 영어를 익히기엔 적기다.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기일 뿐 아니라 다른 학과목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아서 영어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정서적인 면에서도 초등학생 때는 유리하다. 아직 자의식이 자라기 전이라 별 생각 없이 종알거리고 그걸 즐긴다. 혹 실수를 하더라도 헤헤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5, 6학년만 돼도 슬슬 자의식이 고개를 들면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야 원래 실수투성이고, 이를 통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건만 조금만 실수를 해도 마음이 상한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입 밖에 내는 걸 꺼린다.
이런 감정 소모를 겪지 않으려면 자의식이 자라기 전 영어공부가 습관이 돼 있어야 한다. 자의식이 자라기 전에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데 별 어려움이 없도록 영어공부 스케줄을 짜는 게 좋다.
이렇게 보면 기성세대가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니 그거 하나만 봐도 결과가 뻔하다. 뇌 발달과정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불리하기만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학습 부담이 갑자기 커진다. 거기다 사춘기까지 시작되어 생각이 많아지고 말수가 적어진다. ‘water’를 ‘워러’, ‘little’를 ‘리를’이라고 할라치면 몸부터 꼬인다. 그런 상황에서 영어를 시작했으니 잘될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말 배우는 과정 답습하라

우리말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유치원 때까지는 자연스럽게 익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등 네 기능을 분리해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그러다 중고등학교 시기에는 문학작품을 간간이 읽으며 문법을 배운다. 그동안 말하고 듣고 읽고 써온 것들에 대해 계통을 짚어보고 갈래를 갈라보면서 문법적인 체계를 세운다. 대학에 가서 그런 대로 괜찮은 보고서와 논문을 쓸 수 있는 것도 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영어에 적용하면 된다. 100%는 아니지만 90% 이상은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왜 100%가 아니고 90%일까. 영어의 본고장이 아닌 데서 배운다는 환경적인 제약, 각기 다른 철자와 소리의 체계 때문이다.
언어는 듣는 게 기본이다. 사람은 들으면 말할 줄 알고, 말하면 쓸 줄도 알게 된다. 듣기가 언어의 4기능(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첫 단추다. 무엇으로 어떻게 듣는 게 효과적일까. 많은 사람이 카세트테이프를 이용한다. 하지만 대상이 어린이라면 카세트테이프보다는 TV가 낫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TV 보는 걸 좋아한다. 당연히 좋아하고 익숙한 매체를 이용해야 효과도 크다. 또 TV는 별다른 준비과정 없이 언제든지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활화하기 쉽다. 하루이틀 듣고 말 게 아니니 가장 접하기 쉬운 걸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 거기다 TV는 영상으로 언어 상황을 전하기 때문에 카세트테이프로 공부한 경우보다 실제 상황에 부딪쳤을 때 현장적응력이 뛰어나다.
EBS나 AFN을 뒤져 짧은 프로그램들은 같이 본다. 긴 프로그램은 녹화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나 간식 시간 같은 때 20∼30분씩 끊어서 보여준다. 웬만큼 알아들으면 아이들이 지루해하는데, 그때는 프로그램 난이도를 좀 높여달라는 요구로 받아들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