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박사학위를 따러 하버드대에 가서 공부를 하다보니 자연생태계를 잘 알려면 수학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어요. 그래서 수학 수업을 한 과목 청강했는데, 그때 수학이 그렇게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깨닫게 됐습니다. 논리학과 철학이 결부된 신학문을 배우는 듯한 느낌이었죠. 수업을 한참 들어보며 지켜보니, 미국 학생들이 기본적인 수학 계산능력은 뒤처졌지만, 결론이나 해결책을 유도하는 능력은 한 수 위였습니다.
하버드대와 미시간대에서 생태학 교수를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강의 첫날 저는 굉장히 어려운 수학공식을 칠판에 적어놓고 학생들에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날엔 한숨을 내쉬던 학생들이, 학기말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공식을 다 해독합니다. 어떻게 알아냈냐고 물으면 도서관에서 관련서적을 보면서 터득했다고 해요.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 그 수식을 이해하기 위해 행렬이나 고차방정식 계산법을 알아야 하는데 학생들이 독학으로 그 개념을 익혀오는 거예요.
이처럼 어떤 문제가 주어지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공부는 무엇인지, 내가 갖춰야 할 지식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걸 갖추려면 공부할 때 생각을 더 많이 하고, 당장은 입시에 도움이 안 될지라도 더 넓은 범위의 다양한 지식을 익혀야 합니다.”
▼ 통합형 논술시험이라는 우리 현실에 적합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을까요.
“중·고교에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데 좀더 충실히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 고교생인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시험 자체에 얽매이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 배경지식을 쌓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 녀석이 어림잡아도 수천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 때문에 이젠 어떤 식의 테스트가 나와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물론 한국 기준에서 공부를 월등히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급학교 공부에 대비한 수학(修學)능력은 갖췄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앞으로 고령화 사회가 되면 한 직업만으로는 살 수 없을 만큼 각 개인이 긴 시간을 갖게 될 겁니다. 과외 선생이 옆에 붙어서 가르쳐 주는 것도 찰나적인 것이죠. 결국 자기 스스로 정보를 찾아서 소화해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데, 그 해결책은 다독(多讀)에서 비롯됩니다.”
▼ 책을 많이 읽자는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지 않습니까.
“저희 집 예를 들어볼까요? 요즘 거실에서 TV를 치우고 대신 서재를 만들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는데, 저희는 결혼 초기부터 거실에 TV를 놓지 않았습니다. 일단 집안의 모든 곳을 책장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집에서는 거실이나 주방에 높은 책장들을 가져다놓기도 하던데, 너무 높으면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저희 경우는 허리높이의 책장을 집안 구석구석에 둘러놓았습니다. 화분이나 액자는 늘 그 위에다 놓았죠. 복도건 화장실 옆이건 어디건 걸어다니다 손만 뻗으면 책이 집힐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했는데,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학부모들에게 꼭 권하고 싶어요.”
‘입’ 아닌 ‘몸’으로 가르치라
▼ 책 읽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저는 주변 학부모들에게 ‘몸으로 가르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동물들은 새끼를 몸으로 가르치는데, 우리 인간은 언젠가부터 입으로만 가르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부모가 본을 보이고 자식이 따라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부모들이 반성할 게 많죠. 부모는 50~60인치짜리 고화질 TV 앞에 누워서 매일처럼 드라마를 보면서 자녀에게는 ‘야, 너 왜 책 안 읽냐’고 하면 설득력이 있겠어요? 또 유달리 책 사주는 데 인색한 부모도 적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또다른 문제 아닐까요.
“제 아들이 중3 때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든 적이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그런 소설들만 읽어서 걱정을 많이 했죠. 그래서 제가 안사람과 작전을 짠 것이, 아이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교양서적을 눈길이 자주 갈 만한 요소요소에 꽂아놓았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가 저희 기대만큼 그런 책에 눈길을 주지는 않았죠. 다만 때가 되니까 아이 스스로 판타지 소설 독서량을 줄여갔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저희가 꽂아둔 책들을 읽는 시간이 길어졌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요즘 시장에 나오는 책들 중에 ‘유해 도서’라고 할 만한 게 얼마나 될까요.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책 선택 문제를 놓고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어요. 최대한 다양한 도서를 구비해놓고, 선택은 자녀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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