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기할 점은 신종플루의 발생원인과 발원지에 대해 그 이름만큼이나 다채로운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생물학적 공격이라는 등 괴담 수준에 불과한 황당무계한 것들도 있지만, 곰곰 읽다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느껴지는 주장도 제법 있다. 전세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제약사 자작극이나 미군의 생물학무기 실험 같은 몇몇 음모론을 정설로 믿는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다.
이들 음모론은 크게 두 가지를 따져 묻는다. 우선 신종플루가 과연 자연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다음은 신종플루의 발원지가 과연 멕시코인지, 아니면 미국인지다.
신종플루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음모론은 이 바이러스가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은 신종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전문가들은 신종플루를 돼지, 조류, 사람 인플루엔자 각각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형태로 추정하고 있다. 통상의 경우처럼 한두 가지 유전자에서 변이가 일어난 게 아니라 세 가지 유전자가 결합하는 자연적으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이 바이러스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신종플루 발생지가 멕시코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주장도 신종플루의 인위적 발생론을 뒷받침한다. 호세 코르도바 멕시코 보건장관은 신종플루 환자 발병 당시 기자회견에서 감염환자가 멕시코가 아닌 미국에서 먼저 나왔다는 점을 언급하며 “멕시코가 신종플루 발원지가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야기했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멕시코에서 첫 감염환자가 보고된 것보다 앞선 4월28일 캘리포니아 남부와 텍사스에서 감염자가 처음 발견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WHO의 그레고리 하틀 대변인도 “지금까지 첫 발병지가 멕시코라고 알려졌지만 북미와 영국 등 유럽에서의 감염사례 중 그 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발표해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누가 이익을 보는가’
신종플루 발원지로 알려진 멕시코 동부 베라크루스 주 라글로리아 마을에서도 주민들 사이에 ‘근본적인 원흉은 미국’이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 마을 근처에는 미국 버지니아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양돈업체 스미스필드의 공장이 있는데, 이 회사는 분뇨를 공장 근처 강에 불법으로 무단 배출한 사실이 적발돼 2000년 미 대법원에서 1260만달러의 벌금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인근 돼지 공장에서 나오는 배설물과 파리떼가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는 것. 낯선 변종 바이러스가 그 발원지마저 불분명하다는 이유 때문에 혹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음모론이 그러하듯 신종플루를 둘러싼 음모론도 ‘누가 이익을 보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바이러스가 인위적으로 발생했다면 신종플루 창궐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선진국 제약사들이다. 이들이 약을 팔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음모론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인도네시아 고위 관료의 입을 통해 세상에 공개되기도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시티 파딜라 수파리 인도네시아 보건장관은 4월28일 기자회견에서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신종플루가 (선진국 제약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세계 최대의 제약사인 박스터(Baxter)와 WHO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박스터가 신종플루 대유행을 마치 예상하기라도 한 듯 신종플루가 창궐하자마자 바로 WHO로부터 백신에 대한 독점 개발권을 따냈다는 점도 의구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당시 박스터는 빠르면 7월부터 신종플루 예방 백신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박스터는 5월초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로부터 신종플루 바이러스 샘플을 제공받은 후에야 백신 개발에 착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박스터는 백신 개발을 확신하고 이미 여러 국가와 대유행(Pandemic) 관련 계약을 체결했으며, 때맞춰 WHO의 대유행 선포로 백신을 주문할 수 있게 된 국가들에 대해 수량을 차등화해 판매할 계획이다. 박스터는 이와 함께 WHO에도 백신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종플루 창궐-WHO의 대유행 선언-박스터의 백신 개발이 시나리오처럼 딱 들어맞는다는 추론이 나올 법한 정황이다.
의구심의 근거는 또 있다. 박스터는 앞서 또 다른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유포할 뻔했다는 의혹을 받은 적 있다. 자연치유요법으로 유명한 미국 일리노이주의 조지프 머콜라 박사에 따르면 2008년 12월 박스터는 통상적으로 개발했던 인간 인플루엔자(H3N2) 예방 백신에 완벽하게 살아있는 조류 인플루엔자(H5N1) 병원체를 섞어 오스트리아 지사로 하여금 무려 18개국에 발송케 했다.
문제는 이를 가장 먼저 받아본 체코 정부기관이 이 백신을 실험실의 흰족제비들에게 주사하자 이들이 한꺼번에 몰살했다는 사실. 이 내용이 공개되면서 박스터의 안전관리 능력은 곧바로 도마에 올랐다. 흰족제비는 보통의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는 사망하지 않지만, 조류 인플루엔자가 섞이면서 죽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