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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친서민 복지정책의 방향

경제 양극화 해소하려면 사회보장 인프라부터 개혁하라

중도 친서민 복지정책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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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보여주는 키워드는 친(親)서민이다. 정부는 내년에도 사상 최대 규모의 복지예산을 지출하는 등 취약계층 지원과 서민생활 안정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빈곤층의 증가와 사회 양극화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중도 친서민 복지정책의 방향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탈출 중임을 보여주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서민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게다가 경제 상황에 대한 서민의 불만이 폭발하는 시기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위기 속에 있을 때보다는 경제회복 과정에서 따먹을 과일이 주어질 때다.

허쉬만은 주변 사람이 하나 둘 위기를 벗어나는데 자기만 위기 속에 그대로 있을 때 불만이 폭발한다는 ‘터널 효과’를 주장한 바 있다. 10여 년 전 발생한 외환위기의 기억은 많은 이를 더욱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위기가 끝난 뒤 일부 사람은 이전 상태를 회복했지만 당시 구조조정 혹은 파산을 겪은 이들은 지금도 위기 이전의 생활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층 비율은 14.3%로, 2007년의 14.4%보다는 낮지만 빈곤층 비율이 가장 낮았던 1990년의 7.6%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중산층 비율은 1990년 74.2%에서 2008년에는 63.3%로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빈곤층은 늘고 중산층은 감소하는 양극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축구에서 미드필드가 약하면 경기운영이 잘 안되듯 국가에서도 허리부분이 취약하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

이번 위기회복 국면에서 우려되는 것은 10년 전에 발생한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국민의 이런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중도 친서민 정책을 펴고 있다. 복지정책은 그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MB정부가 지난 정부 10년간 해결하지 못한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면서 차별적인 정책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다.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엇박자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하지만 막상 경제 불황이 닥치고 보니 경제위기에 취약한 대응구조가 드러났다.

공공부조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그런대로 제 구실을 하고 있지만 중간계층의 사회안전망이 돼야 할 사회보험제도에는 문제가 많다. 먼저 고용보험은 안정적인 정규직 근로자를 주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자, 취업 포기자가 많은 우리 현실에서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건강보험제도는 높은 본인부담금과 광범위한 비급여 부분 때문에 중증 혹은 만성질환자에게 부담스럽다. 산재보험도 농어민과 자영업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민연금은 아직 보험료 징수액이 급여지급액보다 훨씬 많은 상태여서 강제저축효과로 인한 소비 위축이 문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튼실하다고는 하지만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이전 상태에서 계층을 유지해줘야 할 사회안전망으로서 사회보험제도가 부실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사이의 중간지대가 너무 넓은 것도 시정돼야 한다. 국민 복지정책을 기초생활보장제도 중심으로 운용하면 이미 사회적 위험에 봉착한 중간계층이 빈곤자로 전락한 다음에야 비로소 국가가 개입하게 된다. 그때는 이미 늦다.

우리나라는 빈곤 탈피율이 굉장히 낮다. 빈곤으로 떨어지는 원인은 노령, 질병, 장애, 실업 같은 사회적 위험이다. 이런 위험이 생겼을 때 바로 국가가 개입해야 중간계층이 유지된다. 빈곤선을 올리고 수급조건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면, 저성장 시대에는 빈곤층이 늘어나는 속도를 당해내지 못할 수 있다. 금융위기 때는 차상위 계층 대책을 이야기했는데 요즘에는 차차상위 계층 등 빈곤 대책 대상자 기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중산층을 볼모로 하는 복지제도

그러나 빈곤을 공공부조로 해결하려 하면 중산층은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세금을 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저소득층이 많아지면 중산층의 부담은 점점 커진다. 이런 개념의 공공부조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이미 사회보장을 위한 예산이 선진국보다 많지 않은데도 정부가 분배에만 치중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회보장이 한 단계 발전하려면 노인 부양, 의료, 교육, 주거 등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부분은 사회재로 함께 해결하고 나머지는 사적 재화로 남겨놓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서구처럼 광범위한 사회재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형의 적정 수준의 사회재를 만들어나가야 할 시점이다.

국민은 국가에 높은 수준의 복지를 요구하면서 필요한 비용은 부담하지 않으려 한다. 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복지는 사회가 함께 참여하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이 부문에 집중적으로 개입해 국민통합과 국가 효율성 제고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중간적 개념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조세에서 재원을 확보하고 자산조사를 통해 급여를 지급한다. 사회보험은 보험료 등 자기기여를 원칙으로 하고 급여는 자산조사 없이 지급한다. 그런데 저소득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보험료 부담 능력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여기에 엄청난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원은 보험료가 아니라 조세에서 마련하고 지급은 특별한 경우를 빼곤 소득이나 재산 조사 없이 노령, 질병, 장애 등이 발생했을 때 하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면 보장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은 예외적이고 한시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위험과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회보장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저성장의 틀 안에서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장기적 흐름을 볼 때 성장률 저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시장경제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도 새로운 사회보장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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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하│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yongha01@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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