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지난 10년간 피인용 상위 0.1% 논문 5권으로 국내 최고 기록
피인용 상위 0.1%는 학계에서 ‘꿈의 논문’으로 꼽히는 숫자다. 전세계 동료 학자들의 인용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논문을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12월 한국과학재단은 한국 과학자 논문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저널에 발표된 논문 중 피인용 ‘상위 1%’에 해당하는 한국 연구자 논문은 1194편. 피인용 ‘상위 0.1%’에 해당하는 한국 연구자 논문은 10년 동안 103건에 불과했다. 현택환(45) 서울대 교수는 이 중 5편을 발표해 상위 0.1% 논문 1위에 올랐다.
현 교수의 최근 연구 분야는 나노기술이다. 연구실에서 만난 그에게 우선 나노기술에 대해 물어봤다.
“나노기술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는 10년도 안 된다. 태동기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노기술은 자체가 산업을 일으키기보다는 도우미 기술이다. 정보기술(IT), 에너지나 환경, 바이오기술(BT) 등이 한계상황에 도달하면 병목을 터주는 구실을 한다. 나노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나노입자인데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나노입자는 의료진단, 태양전지, 데이터 저장 등에 많이 쓰인다. 나노입자는 현재 1g 가격이 2000달러로 다이아몬드보다 비싸다.”
▼ 논문 인용에서 사실상 국내 최고 수준인데 이유는 뭔가.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01년에 발표한 나노기술 관련 논문이다. 600번 가까이 인용됐다. 보통 노벨상을 바라보는 논문이 최소 1000번 정도 인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인용 횟수가 정말 많은 편이다. 2004년에 발표한 논문은 2005년에 재료공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꼽혔다. 지금까지 내 논문 인용건수는 8500번 정도 된다. 연구하는 분야인 나노가 새로운 분야인 데다가 나노입자를 만드는 데 있어 그동안의 난제를 해결한 점이 인정받은 것 같다.”
▼ 공학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뭐든지 제대로 하려면 미쳐야 한다. 자나깨나 그것만 생각해야 한다. 미국 대학에서 테뉴어(종신교수)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새로운 분야를 하다보면 실패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1997년 서울대 교수로 오면서 새로운 것을 하자고 결심했고 나노에서 연구주제를 찾았다. 지난해 포항공대 교수로 임용된 이진우 박사가 당시 석사 과정이었는데 1년 동안에 프로젝트가 6차례나 바뀔 정도였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게 어렵다. 도전의 경험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는 결과물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논문 읽을 때 가장 행복
▼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읽을 때다. 어제도 하루 종일 논문 30편을 읽었다. 그런데 논문을 공격적으로 읽어야 한다. 남의 논문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내 연구와 접목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다보면 새로운 시각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 아이디어 노트가 있다고 들었는데.
“내게는 보물이다. 논문을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메모해놓는다. 다른 일을 하다가, 때로는 잠을 자다가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잊지 않고 메모해놓는다. 끊임없이 연구만 생각해야 한다.”
▼ 실패하는 연구도 많은가.
“맞다. 실험을 해서 1년에 15일 정도 좋은 데이터를 얻으면 성공적인 공학자로 봐야 한다. 이를 제외한 다른 날은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찧는 것 같은 고통이 있다고 보면 된다.”
▼ 연구의 성공률은 어느 정도 되나.
“외국교수를 포함해 나만큼 성공률이 높은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런데 나도 연구성공률이 10%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실패를 통해 배운다. 학생들에게도 ‘연구가 너무 잘되면 오히려 배우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연구에 실패했을 때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또 실패로부터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 학부는 공대가 아닌 서울대 자연대에서 화학을 전공했는데.
“그렇다. 내 체질에 공대가 맞는 것 같다. 스케일이 훨씬 크다. 사이언스 쪽은 한 분야를 깊게 판다. 반면 공대는 시류에 잘 편승한다. 중요한 토픽이 있으면 바로 탄다. 나도 계속 바꿨다. 3,4년 재미있게 연구하다가 다른 분야가 나타나면 그 분야로 연구주제를 바꾼다. 공대는 5년, 길게 봐서 10년 안에 산업과 연관되는 것을 찾는다.”
▼ 서울대에서 대부분의 연구를 했는데, 외국 대학에 비해 연구여건이 불리한 것은 없나.
“처음에는 장벽이 있었다. 그런데 평판이 쌓이면서 편한 부분이 있다. 이제는 주요 저널이나 잡지 편집자들에게 e메일을 보내면 바로 답신이 온다. 얼마 전 발표한 논문에 공동저자로 노벨상 수상자도 들어가 있다. e메일을 보내 ‘당신이 연구한 결과를 응용해 새로운 논문을 쓰고 싶다’고 연락했더니 금방 답신이 왔다.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편하다. 그 단계를 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전에는 논문을 발표할 때 리뷰어가 2대1로 의견이 갈리면 무조건 거부됐는데, 요즘은 심사를 다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논문을 함부로 내지 못한다. 이제 부담도 많다. 선두주자를 따라가는 것은 쉽다. 그런데 이제 내가 앞에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한다.”
▼ 성공에는 운도 많이 작용하는데….
“그런 측면도 있다. 나노 분야가 막 시작될 무렵에 내가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연구한 학생들이 매우 잘해줬다. 개인적으로 고마운 점은 자연대 출신으로 거의 타대 출신이나 다름없는 나를 위해 공대가 정말 지원을 잘해줬다. 서울대 교수치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하고 싶은 연구를 다했다. 내가 자연대 화학과 교수 대신 공대 교수로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 학생들도 자주 접촉하는데, 어떤 특성이 엔지니어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가.
“중요한 것은 도전정신이다. 어떤 학생은 학부 성적이 탁월하게 좋은데 연구가 젬병인 경우도 있다. 반면 학부 성적은 형편없지만 연구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학생도 있다. 학부 성적과 연구는 정말 다르다. 도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남이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려는 자세, 때로는 엉뚱한 생각도 좀 해야 한다. 창의성이라는 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영화에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라는 말이 있는데, 현실에는 그런 게 없다. 세렌디피티는 열심히 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오는 보너스다. 게으른 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성실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같은 나노라도 보는 방향이 다르고, 잘 알고 있어야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 누가 경쟁자인가.
“매사추세츠공대(MIT), 버클리대 등 몇 개 그룹이 있다. 아직 일본에는 경쟁그룹이 없다. 이 분야에 관한 한 한국이 일본을 앞서고 있다.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연구를 하다보면 2등을 할 수가 있는데, 똑같은 논문이라도 2등은 1등에 비해 인용건수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나가지 않으면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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