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봉이 5억 원을 넘는 기업 등기임원의 개별 연봉을 공개하는 법안이 4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규제비용 더 드는 과잉 입법
재계는 임원의 개별 연봉 공개에 일제히 반대했다. 각 임원의 연봉을 공개할 경우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사회적 위화감 조장, 노사관계 악화 등의 부작용이 따를 것을 우려해서다. 보수 정책은 기업의 중요한 경영 노하우인데 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영업 비밀의 침해이기도 하다.
성과주의에 익숙한 미국에서는 임원과 직원 사이에 보수 격차가 커도 별다른 저항이 없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는 형평성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근로자의 근로와 경영자의 경영은 업무의 성격상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데도 근로자의 보수와 임원의 보수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건 그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근로자와 임원의 보수 격차가 500배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는 최대 70배 정도 차이가 난다. 한 명의 천재적 경영자는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고, 국가 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한다. 그에게 수백억 원을 지급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성과에 합당한 보상이 따르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 창업도, 창조경영도 활발해진다.
기업 임원의 개별 연봉 공개를 찬성하는 편에서는 외국의 사례를 든다. 미국은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포함해 연봉 상위 5인의 보수 명세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고, 일본은 1억 엔(한화 1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임원의 보수를 개별 공시하게끔 한다. 스위스에서는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 결정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으며, 유럽연합(EU)은 현재 은행 경영진의 보너스를 규제하고 있는데 이를 일반 기업에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처럼 임원의 보수 공개 강화가 세계적인 추세이기는 하다. 그런데 미국과 스위스 등에서는 임원이 자신의 연봉을 스스로 결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임원과 평사원 간의 보수 격차도 워낙 크다. 미국에서는 임원의 연봉을 임원 스스로 결정해왔는데, 최근에야 비로소 이에 대한 주주의 의견을 묻고 그 결과를 임원에게 권고할 수 있는 주주 승인권(say on pay)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것도 구속력은 없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주주총회에서 임원 보수의 총액을 결정한 뒤 이를 임원들에게 분배한다.
미국에서는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CEO가 1억5000만 달러의 보수를 챙기는가 하면, 2009년 금융기업이 망해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도 이곳 임원들은 수천억 달러의 보수를 챙겨 떠나는 일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질타하는 연설을 했을까. 미국만의 독특한 사고와 문화적 환경이 빚어낸 현상인데, 따지고 보면 유능하다고 평가한 인재를 영입할 때 계약한 조건에 따른 것이니 실은 분노할 일도 아니다. 미국은 임원에 대한 보상체계가 잘돼 있어서 퇴직을 하더라도 약속한 금액을 다 받고 떠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런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어려운데, 기업 임원 연봉 공개 찬성론자 중에는 한국에서도 미국과 같은 현상이 마구 일어나는 것처럼 선동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가 더러 있다. 기업 임원의 개별 연봉 공개는 저소득층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실익도 크지 않은 임원의 개별 보수 공개를 국회의원들이 추진하는 것은 진정 주주를 위한다기보다는 인기 영합적 요소가 강하다.
실제로 이 법률이 적용되는 임원(연봉 5억 원 이상을 받는 등기임원)은 코스닥 상장기업을 포함해도 600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끄러운 법률치고 수범자의 수가 너무 적어 규제의 효과보다 규제비용이 더 드는 전형적인 과잉 입법이다.
우리 국민은 염치를 인간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 중 하나로 꼽고 있으며 주변의 시선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5억 원을 상한으로 연봉이 억제돼 보수의 하향평준화 현상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액 연봉을 받는다고 회사 안팎에서 질시하는 상황이 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