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배심원 평결은 ‘권고적 효력’ 재판부 양심과 법률이 우선

국민참여재판

  • 선종문 │썬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 sunlawyer2012@gmail.com

    입력2013-11-20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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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심원 평결은 ‘권고적 효력’ 재판부 양심과 법률이 우선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헌법 제103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그런데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하 ‘국민참여재판법’)이 제정됐고, 2008년 1월 1일부터 만 20세 이상 국민이 배심원으로서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무죄에 관해 평결하고 양형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는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됐다.

    배심원 평결의 ‘사실상’ 기속력 우려

    최근 이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안도현 시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배심원의 전부 무죄 평결과는 달리 후보자비방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결하며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법리적 관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법 감정, 정서에 판단이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엿보인다”며 국민참여재판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영·미법계에서 시행되는 배심제는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재판에 참여해 독립적으로 유·무죄 판단에 해당하는 평결을 내리고, 법관은 그 평결에 기속되는 제도다. 이와 달리 대륙법계인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일반 국민인 참심원이 재판부 일원으로 참여해 법관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사실관계 및 법률 문제를 판단하는 참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의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영미법계의 배심제와 대륙법계의 참심제 요소를 혼용한 제도라 할 수 있다. ①재판장은 변론이 종결된 후 법정에서 배심원에게 공소 사실의 요지와 적용 법조, 피고인과 변호인 주장의 요지, 증거능력, 그 밖에 유의할 사항을 설명해야 한다. ②배심원은 제1항의 설명을 들은 후 유·무죄에 대해 평의하고, 전원의 의견이 일치하면 그에 따라 평결한다. ③만일 유·무죄에 대한 배심원 전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평결을 하기 전에 심리에 관여한 판사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이 경우 유·무죄의 평결은 다수결로 한다. ④배심원 평결이 유죄인 경우 배심원은 심리에 관여한 판사와 함께 양형에 관해 토의하고 그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는데, 재판장은 양형에 관한 토의 전에 처벌의 범위와 양형의 조건 등을 설명해야 한다. ⑤무엇보다 배심원의 평결과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아니하고 다만 권고적 효력을 가진다(국민참여재판법 제46조 참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총 848건의 국민참여재판 통계를 보면, 92.2%인 782건에서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이 일치했다. 배심원의 무죄 평결에도 재판부가 유죄로 판결한 사건은 2008년 7건, 2009년 6건, 2010년 13건, 2011년 24건, 2012년 12건 등 62건이고, 반대로 배심원이 유죄로 평결하고 재판부가 무죄로 판결한 사건은 총 4건이었다.

    통계를 보더라도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은 권고적 효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기속력이 인정되어 법관의 심증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안도현 사건 재판부도 후보자비방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배심원) 평결이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기속력을 가진다”고 밝히면서도 배심원의 ‘무죄’ 평결을 반영하기 위해 법원이 내릴 수 있는 최저형인 벌금 100만 원의 선고유예라는 ‘유죄’ 판결을 내렸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공안·정치적 사건 포함 재검토 필요

    헌법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제27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제 103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독립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는 사법부 독립의 요체이므로,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배심원의 평결에 기속력을 부여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배심원 평결을 단순히 참고용으로 확인하라는 권고적 효력이 현재 실무처럼 ‘사실상’ 기속력을 미치는 것으로 남겨두는 것은 문제다. 배심원 평결의 권고적 효력의 유지는 헌법적 결단임과 동시에 독립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기본권인 만큼 당연히 유지돼야 한다.

    그렇다면 개선 방향은 무엇인가.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유지를 전제로 한다면 이 부분은 방금 논의하고 또한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배심원 평결 및 의견에 대한 권고적 효력의 유지 △대상 사건의 축소 △배심원 선정의 다양성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배심원 평결은 ‘권고적 효력’ 재판부 양심과 법률이 우선

    안도현 시인의 후보자비방 혐의에 대해 배심원들은 무죄 평결을 내렸지만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최근 법무부는 국민참여재판 제도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주요 내용 중에서 판사가 피고인에 대한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을 존중하고 배심원의 유·무죄 및 양형에 관한 의견을 판결서에 기재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에 적시된 배심원의 평결 ‘존중’은 판사로 하여금 배심원의 평결과 의견에 기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것은 법률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은 물론 ‘법관’에 의한 독립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재고돼야 할 것이다.

    원래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대상 사건은 살인, 강도, 강간 등 중범죄만 해당됐다. 그런데 2012년 7월 1일부터 제1심 형사합의부 관할사건으로 확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즉 종래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도 사실관계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살인·강도·강간 등과 달리 이제는 일반 국민으로서는 생소하고 복잡한 법리를 동원해야 하는 뇌물 등 공무원범죄, 명예훼손 등 신용범죄, 배임·횡령 등 경제범죄 및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서 사실 판단 자체가 혼동될 우려가 있는 선거법·노동법·국가보안법 등 공안사건 등으로도 확대된 것이다.

    ‘무이유부기피’ 신청 적극 활용해야

    무엇보다 공안사건에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좌·우 이념 대립, 계층과 세대 간 갈등, 지역감정이 심한 나라에서는 매우 부적절하다. 예를 들어 2013년 6월 24일 부산지법에서 인터넷 게시판에 ‘숨겨둔 자식하고 연관이 있는 것 아녀?’ 등 허위사실을 53회 공표한 것으로 기소된 강 모 씨는 무죄 평결과 판결을 받았다. 반면 이틀 뒤에 같은 부산지법에서 인터넷 게시판에 ‘칠푼아 숨겨논 사생아 저거 우짤껴’ 등 허위사실을 23회 공표한 것으로 기소된 전 모 씨는 유죄 평결 및 판결(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는 우리나라 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풍조 확산 우려는 물론, 법치주의의 근간인 법적 안정성의 유지에도 장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공안사건 등은 국민참여재판 대상사건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하는 것이 맞다.

    현재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은 다음과 같이 선정한다. 안전행정부 장관이 관할 지방법원장에게 매년 관할 구역 내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국민의 성명·생년월일·주소에 관한 주민등록 정보를 송부하면 지방법원장이 이를 활용해 배심원후보예정자 명부를 작성한다. 그중에서 필요한 수의 배심원후보자를 무작위 추출하고, 선정된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의 재판 기일을 통지한다.

    물론 이렇게 선정된 배심원에 대해 ‘무이유부기피’ 신청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은 우리의 정치 성향을 감안한다면 공안사건, 정치적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 부치는 것은 위험하다. 이 경우 전담 재판부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만 단독으로 설치하고, 다양한 경력의 배심원을 선정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법원에서는 정치적으로 ‘오염’된 배심원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논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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