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서울시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는 문제로 시끄럽다.
서울본부의 관련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노동센터는 서울지역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화, 권익 보호, 복지 증진, 노동환경 개선을 통한 노사관계 안정화, 노조 설립 지원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상근 인력 10여 명을 채용하고, 노동자 법률학교, 노동인권교육, 법률지원센터 운영,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사업, 비정규직 노조 설립 지원 및 자문 사업,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 장학금 사업 등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또한 서울시 15억 원 이외에 자치구 사업응모를 통해 추가 예산 5억 원을 확보, 총 20억 원 예산으로 10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7월 18일엔 서울본부 홈페이지에 ‘비정규노동센터 직원 채용 공고’도 올렸다.
서울본부는 8월 초, 서울시에 15억 원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양측은 조율을 거쳐 정책연구사업 2억 원, 교육사업 1억7800만 원, 법률구조사업 1억2000만 원, 비정규직 노조활동 보장사업 5000만 원, 노동자 복지지원사업 1억3200만 원, 지역공동체 연계사업 2000만 원, 근로자자녀 장학금사업 8억 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서울본부는 이미 1억3000여만 원의 지급을 요청해 실제로 사업비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흔들리는 정당성
서울본부가 서울시로부터 사업보조금을 받는 것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재 민주노총에서는 공식적으로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사업비나 보조금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부 때 내부 논의를 거쳐 ‘국고지원금 및 정부 지원금은 건물, 토지 등 부동산과 최소한의 관리유지비를 포함한 비용으로 제한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정부가 국고지원금을 갖고 장난질치며 한국노총 등을 관리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자주성과 민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같은 방식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돈을 매개로 한 통제와 유착 가능성’은 오랫동안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을 어용노조라고 폄하하는 근거이자 민주노총의 도덕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근거가 돼왔다.
서울본부 역시 이명박, 오세훈 등 이전 서울시장들의 수십억 원대 지원 제안을 거절해왔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 체제에서 그 원칙을 스스로 파기한 것이다. 이에 일부 조합원이 강하게 반발하며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총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8월 중으로 예정된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본부의 문제를 넘어서 민주노총 전체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지자체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안산지부가 마라톤 행사를 하면서 경비 일부를 안산시로부터 지원받아 논란이 됐다. 경남본부도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시절 경남도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를 만들었다. 당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는 ‘방침 위반’이라며 승인하지 않았지만 경남본부는 사업을 강행했다. 이외에도 몇몇 지역본부가 해당 지자체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상 민주노총의 ‘원칙’이 무너진 것이고, 한국노총과의 차별성이 사라진 셈이다.
반면 이재웅 서울본부장은 ‘방침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지원 사업’은 민주노총이 역점을 둬야 할 사업임에도 그동안 재정문제로 소홀했는데, 박원순 서울시장과 선거 전에 합의한 ‘정책연합’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는 게 왜 잘못이냐는 항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