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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경제난에 급증한 ‘상속전쟁’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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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사하는 자식은 두지도 말라’고 할 만큼 법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송사에 휘말리고 있다.
  • 부모자식, 형제자매까지 법정에 나와 다툼을 벌이는 재산상속 분쟁 백태.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1 일찍이 결혼해 도시로 나온 40대 후반 여성 한모 씨는, 시골 유지로 만석꾼 소리를 듣던 아버지가 함께 농사짓는 첫째와 둘째오빠 명의로 논밭을 사들일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큰오빠가 죽자 아버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큰며느리와 손자에게 물려줬다. 이후 아버지가 사망하자 한 씨는 그 많던 재산을 딸인 자신은 한 푼도 못 받은 것에 대해 서운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둘째오빠는 “예전에 내 명의로 된 땅을 산 건 아버지 돈이 아니라 내 돈이었다. 돌아가실 때 나도 받은 게 없다”며 여동생을 외면했다. 당시 둘째오빠의 나이는 10대 중반으로 미성년이었다. 올케 역시 “아버님이 재산을 우리한테 물려줬으니 아가씨한테 줄 게 없다”고 발뺌했다. 억울하고 화가 난 한 씨는 둘째오빠와 올케, 조카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 40대 남성 윤모 씨는 여동생과 함께 두 형제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생전에 사이가 안 좋았던 부모가 이혼하면서 4명의 자식은 각기 두 편으로 나뉘어 아버지와 어머니 편을 들었다. 이를 괘씸히 여긴 아버지는 사망 직전 자신을 끝까지 따랐던 두 형제에게만 부동산 등 전 재산을 나눠줬다. 이에 분개한 윤 씨가 두 형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윤 씨는 부동산 외에 생전에 아버지가 증여한 현금자산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아버지 명의의 거래 통장 명세 등 각종 증거자료를 수집 중이다.

유류분 사건 10년 새 8.5배

세상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적지 않다. 그중 으뜸으로 꼽히는 게 ‘돈’인 세상이 됐다. 부모자식과 형제자매 사이에 상속을 둘러싼 다툼도 날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상속 관련 상담은 632건. 전년도와 비교할 때 약 3.4배 급증했다. 2012년에도 627건에 달했다. 상담소 분석에 따르면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부모의 재산 상속에 대한 자식의 기대감이 높아져 자신의 상속분이 얼마인지 미리 알려고 하거나, 부모가 사후에 자녀들 간 다툼이 일 것에 대비해 유언 절차나 상속분에 대해 알아보려고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락이 끊겼던 생존 배우자나 형제자매가 피상속인이 사후에 재산 또는 빚을 남기자 상속분과 한정승인, 상속 포기 등의 절차를 문의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50대 중반 여성 김모 씨는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편이 남긴 재산을 상속하는 문제로 괴로움을 겪었다. 남편 생전에 사업자금을 대준 큰아들과 해외 유학까지 시킨 둘째아들, 돈 잘 버는 남편과 결혼해 아쉬울 것 없는 큰딸까지 자식 4명 중 3명이 자신들의 상속분을 나눠달라고 요구한 것. 김 씨는 남편 사후 남은 재산이라곤 5억 원에 달하는 집 한 채가 전부인 상황에서 자식들 요구로 인해 당장 집을 팔고 전세를 얻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그는 “아이들과 달랑 집 한 채를 놓고 싸우는 건 못할 짓이다. 평소 재산 명의를 남편 앞으로 해둔 게 후회된다”고 했다.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아버지의 재산인 100억 원대 땅을 받기 위한 자식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

상속과 관련해 가족 간 첨예한 소송을 부르는 바탕엔 ‘유류분 제도’가 있다. 1977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신설된 이 제도는 피상속인이 재산상속에 있어 일정한 상속인을 위해 반드시 남겨둬야 할 부분(유류분)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생전 증여 또는 유증에 의해 상속인이 자신의 유류분을 침해당했을 때 일정 범위 내에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피상속인이 자신의 뜻대로 증여나 유언을 통해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더라도 그 상속분이 공동상속인 중 어느 한쪽의 유류분을 침해하는 경우 소송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

대법원에 따르면, 2002년 69건이 접수됐던 유류분 관련사건은 2012년 589건으로 10년 새 약 8.5배 급증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도 최근 몇 년 사이 유류분 관련 면접상담만 한 해 수십 건씩 몰리고 있다. “부친이 치매를 앓다 1년 전 돌아가셨다. 외아들인 남동생이 아버지가 치매 상태일 때 모든 재산을 자기 앞으로 돌려놨다”는 50대 중반 여성 금모 씨는 “4명의 딸이 상속재산을 찾을 방법이 없는지” 물어왔다. “남편이 사망하면서 유언으로 전 재산을 자기 누나한테 물려줬다”는 70세 여성 김모 씨는 “손위 시누이한테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40세 여성 이모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어머니와 동생들에게만 재산을 증여했다. 어머니가 나를 달래느라 당신이 돌아가신 뒤 내게 집을 주겠다고 했는데 동생들이 펄쩍 뛰며 집을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했다. 너무 괘씸한데 아버지의 상속재산에 대한 유류분 청구가 가능한지”를 상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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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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