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 소공동 지하도상가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청년 사업가 김영완 씨의 하소연이다. 6월 8일 서울시가 ‘지하도상가 임차권의 양도·양수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조례를 개정한다고 입법예고하자, 김씨와 같은 지하도상가 상인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임차권 양도금지 조례 추진
이번 조례 개정 법안이 시의회에서 가결되면 점포들 간의 양도·양수는 금지되고, 계약이 만료된 점포는 서울시가 경쟁입찰을 통해 새로운 점포주와 임대차계약을 맺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점포주들은 본인들이 지급한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나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조례를 적용받는 상가는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명동, 을지로, 강남, 영등포 등 총 25개 구역 지하상가 상점 2788개 점포다.이에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는 6월 28일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서울시의 조례 개정 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정인대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 회장은 “1970년대 지하도상가 건설 이후 현재까지 40년간 서울시가 임차권 양도·양수를 허용해온 조례를 믿고, 많은 상인이 거액의 빚을 내어 점포 임차권을 샀다”며 “점포에 거금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까지 한 소상공인들에게 서울시가 신의 성실의 원칙을 어겼다”고 강하게 규탄했다.
소공동 지하상가에서 4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장수형 씨 역시 같은 심정이다. 장씨는 “여기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는데 최근에 경기가 좋지 않아 장사가 안되니까 많이 힘들다”며 “조례 개정으로 권리금도 받지 못하게 되는 건 생각도 못한 청천벽력 같은 조치다”라고 말했다. 장씨네가 소공동 지하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아버지 때부터였다. 당시 장씨의 아버지는 상가 보증금 700만 원을 주고 입주했다. 당시 반포아파트 한 채 가격이 6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이곳 상가 상인 대부분은 다수의 가족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장사가 안돼 빚을 지고 있는 사람도 많죠. 그들 상당수가 1억5000만 원 내외의 권리금을 주고 이곳에 터를 잡았는데, 그 권리금을 못 받고 나가게 되면 삶에 큰 타격을 입게 되죠. 몸이 아파서 일을 그만하고 싶어도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상인이 지키고 키워왔다”

첫째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임차권리의 양수·양도 허용은 상위법령인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위반이라는 행정자치부의 유권해석(2016년 4월) 때문이다. 2016년 4월 25일 서울시는 행정자치부에 “1998년에 제정 시행 중인 지하도상가 조례 제 11조 제1항에 의하면, 조례에 따라 발생한 권리나 의무를 양도하고자 하는 자는 관리인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런 공유재산 임차권 양도 허용이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위반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행정자치부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6조에서는 누구든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공유재산을 사용하거나 수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임차권의 양도를 허용하는 것은 공유재산법을 위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둘째, 감사원 감사에서 서울시가 조례상 임차권리의 양도·양수 개정을 추진하지 않는 이유를 지적(2016년 10월)받은 것이 또 다른 이유다. 2016년 10월 31일 감사원은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에게 “행자부의 유권해석으로 조례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6조 및 제29조에 위배되는데도 이 조례를 재개정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지적했고, 서울시는 “조례 개정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답했다. 즉, 행자부와 감사원의 지적 등으로 지자체 처지에서 조례 개정을 더는 미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 보도환경개선과 조례 개정담당 오성균 씨는 “이번 조례를 개정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현행 조례가 상위법에 위반된다는 행정자치부의 해석을 받았기 때문이다”며 “행정기관에서 법령에 위반되는 조례를 만들면 안 되지 않느냐. 법령을 준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이 같은 입장에 정인대 회장은 “서울 지하도상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들이 왜 이렇게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에 따르면, 서울시의 지하도상가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1970년대 방공호 대피시설 목적으로 민간이 개발한 ‘지하도상가’, 다른 하나는 시에서 지하철을 개통하면서 만든 ‘지하철상가’다. 당시 지하도상가를 건설한 민자 건설사들은 지하도상가를 분양하면서 상가 점포주들에게 보증금과 임대료를 받았다.
1998년엔 임차권 양도 허용
그러다 1996년 민간 업체는 지하도상가를 서울시에 기부채납(반환)했고, 상가는 서울시의 소유가 됐다. 서울시는 상가의 관리를 위해 1998년 ‘임차권의 양도를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 지하상가 관리 조례를 제정하고 이를 시행해왔다. 즉, 지하도상가 관리기관인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승인을 받으면, 계약기간 내에도 다른 사람에게 점포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서울시의 소유가 된 이후에도 지하도상가 상인들 사이에서는 고액의 권리금을 주고받는 임차권 거래가 관행적으로 이뤄졌다.정인대 회장은 “서울시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점포 임차권 매도의 권리를 수십 년 동안 인정해왔다”며 “따라서 양도·양수는 국가가 마땅히 보호, 보장해야 할 국민 개인의 재산권이 분명하다. 이제 와서 양도·양수를 중지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 역시 소공동지하도상가에서 39년째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정 회장은 당시 일반 단독주택 3채 가격(당시 1000만 원)을 내고 상가에 입주했다.
정 회장은 “지하도상가의 경우 상인들이 초기에 보증금은 물론 시설물 개보수 비용까지 모두 부담해왔고, 지하도 상권을 우리 상인들이 스스로 지키고 키워왔다”며 “서울시가 상인들의 이러한 기여에 대해 전혀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우리 상인들은 그 권리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오성균 씨는 “이번 조례 개정은 상인들이 상가에 기여한 부분과는 별개의 이야기다”라며 “조례가 상위법에 위반된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서울시가 조례 개정을 추진하는 세 번째 이유는 바로 ‘임차권의 양도·양수 허용 조항이 불법 권리금 발생 및 사회적 형평성에 배치된다’는 서울시의회의 지적 때문이다. 정인대 회장은 이와 관련해 건설위원장으로서 이번 조례 개정을 맡은 서울시의회 주찬식(자유한국당, 송파1) 의원을 지목하며 “주 의원이 우리 지하도상가 상인들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성토했다. 지난해 11월 11일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행정사무 감사회의록을 보면 주찬식 건설위원장이 행정감사를 주재하며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지하도상가 양수양도 조례 개정이 왜 이렇게 진행이 안 되느냐고 따지는 부분이 나온다.
주찬식 시의원, “할 일 했을 뿐”

“2016년에도 조례 개정 추진이 지지부진해서 왜 조례 개정을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서울시 공무원들이 ‘2017년 대통령선거에 박원순 시장이 출마할 수도 있으니까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 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에 조례 개정을 추진한 것이다. 공무원들이 내부 사정으로 미루고 있었는데 마치 내가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호도되고 있다. 나는 시의원 입장에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하도상가가 서울시의 공유재산인 만큼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점포 상인들이 보호받아야 하며, 점포운영권에 대해서도 기회균등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행자부의 유권해석을 받고 조례 개정을 빨리 추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상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등 많은 검토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 것뿐”이라고 답했다.
사실 서울시에선 2008년부터 지하도상가의 불법 전대를 막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당시 서울시는 시민의 공유재산인 지하도상가의 임차인 선정을 경쟁 입찰로 진행한다고 밝히고, 같은 해 12월 강남·영등포 등을 시작으로 임차 상인들의 양도·양수 허가 시에 양수인에게 경쟁입찰을 실시했다. 이후 2011년에는 ‘서울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 개정안’을 통해 지하상가 29곳에 대해서는 ‘단위상가별’ 경쟁입찰로 운영하면서, 임차권 거래를 금지하는 조항을 조례에 포함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상인들의 강한 반대와 시의회의 부결로 무산된 바 있다.
서울시의회 한 관계자는 “지하도상가 2700여 점포 상인들의 권리보다 1000만 서울시민의 권리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며 “공유재산을 한 사람이 몇 십 년 동안 시세보다 낮은 임차료를 내면서 운영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권리금 법으로 보호받는 시대
조례 개정이 불가피하다면 상가 상인들에게 권리금을 보상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법상 권리금에 대한 보상 절차와 규정은 없다”며 “특히 양도·양수를 할 때 임차권을 받는 사람은 ‘권리의무 확인서’를 받게 돼 있다. 그 확인서에는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분명히 포함돼 있다. 상인들은 그걸 알고도 권리금을 주고받는다.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조항을 넣어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정인대 회장은 “2015년 5월에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상가권리금’이라는 말이 신설됐다”며 “이제는 법으로 권리금을 보호받는 시대가 된 것 아니냐. 그동안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물론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에는 ‘대규모 점포 및 국공유재산인 상가건물 임대차에서는 그 권리금에서 보호를 제외한다’는 조항을 달아놓았다. 이에 지하도상가는 공유재산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권리금을 보호받지 못하는 것.
“공청회 무의미”
하지만 국회에서는 현실을 반영해 지하상가 및 전통시장 상인들이 권리금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임대차보호법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2016년 12월,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통시장 및 지하도상가의 영세한 임차인의 권리금 보호를 위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이번 서울시의 조례 개정이 입법 예고된 이후, 지하도상가 상인들이 집단반발하고 나서자 시의회에서는 ‘공청회’를 통해 의견 수렴을 더 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서울시의회 주찬식 의원은 “상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공청회 등을 통해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수렴하고 조례 개정안을 시의회에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법령을 개정하는 데 중간 합의점은 없다”며 “조례를 개정하는 이유가 명백하기 때문에 공청회를 통해서 별도로 협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지하도상가의 권리금 양도·양수 문제는 시의회의 결정만 남은 상태다. 서울시는 ‘지하도상가는 서울 1000만 시민의 공유재산이기 때문에 서울시민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입장이고 지하도상가 상인들은 ‘40년 동안 피땀으로 일궈온 상인들의 권리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첨예한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있는 타협점이 마련될지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