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학교 교육의 비정상’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역사교과서 파동도 이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전국 45만여 초·중·고 교사 중 18만여 명이 회원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의 안양옥 회장(사진)을 만나 3시간여에 걸쳐 역사교과서 문제를 비롯한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교총은 좌파 성향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과 여러모로 대비되는 교원단체다.
“교육 위기가 사회 위기 불러”
▼ 초·중·고교 체육교사를 한 것으로 아는데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왔어요. 원래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친구들과 여러 스포츠를 하면서 붙임성 있고 리더십 있는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그 덕에 중학교 반장선거에서 당선됐고요. 교총 회장에 연임할 수 있었던 역량도 이 무렵 길러진 것이라고 봐요. 아무래도 체육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죠. ROTC(학생군사교육단) 장교로 군복무 마치고 대학 나온 후 몇 년간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 그러다 교사를 양성하는 서울교대 교수가 됐는데….
“체육교사이신 은사님의 권유로 같은 과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가 됐죠. 처음엔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교사직을 그만둬야 하는 모험이니까. 잠실의 포장마차에서 은사님을 만나 ‘저 그냥 교사 계속 할래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은사님이 ‘너, 많이 취했구나’라며 저를 대학원으로 밀어붙이셨죠. 사실, 중·고교 때 만난 선생님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죠.”
▼ 요즘 중·고교생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환경적으로 제가 학교 다닐 때와 많이 달라요. 그땐 대가족 중심이었는데 요즘은 맞벌이 부부의 한 자녀이거나 두 자녀이거나 그래요. 개인적 삶의 가치가 중시되고 사회적 삶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낮아요. 그러나 ‘더불어 사는 법’도 익혀야 잘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선 더 그래요. 따라서 학교가 학생들의 사회성과 인성을 길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나라가 이념적으로 갈라지고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한 것도 교육의 문제에서 비롯된 일일 수 있습니다.”
▼ 사회성·인성 교육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는 것인지….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레슬링 같은 스포츠 활동이 교육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해요. 서로 몸으로 부대끼면서 인간관계의 참 의미를 알게 된다는 거죠. 그러나 지금 우리 학교가 이런 데에 관심을 두기나 한가요? 또 과거엔 교사와 학생 간에 스승과 제자로서의 정서적 유대감이 두터웠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되게 메말라 있어요.”
▼ 정부의 교육정책이 큰 틀에서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비전은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입니다. 이 슬로건만 봐도 개인적 삶의 가치에 주안점을 두는 점이 확인되죠. 사회성·인성 교육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해요.”
‘친일’ 오해살 표현 간과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안 회장은 “논란의 불씨는 제가 처음 던졌다”고 말했다. 2013년 교총 회장에 재선된 후 “한국사를 대입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해야 한다”고 언론에 역설하면서 이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됐다는 것이다. 얼마 뒤 박 대통령이 언론사 논설실장 간담회에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겠다고 해 정부정책으로 굳어졌다. 이어 보수·진보 간 역사 논쟁이 벌어지고 한국사교과서 채택률 경쟁이 촉발됐다.
▼ 한국사의 수능 필수에 대해 보수 진영의 첫 반응은 어떠했나요?
“교학사의 한국사교과서를 쓴 우파 학자들은 놀랍게도 수능 필수에 반대했어요.”
▼ 왜죠?
“자신감 결여거든. 좌파 학자들이 역사학계를 장악한 상태이니 좌파 식 역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본 겁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죠. 내가 우파 학자들에게 ‘수능 필수로 가자. 그다음 역사 논쟁 벌이면 된다’고 했죠. 그러니 찬성으로 돌아서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