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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편가르기, 여론조작에 얼룩진 근시안 원전정책 30년

‘방폐장 갈등’ 속 부안과 原電지역을 가다

거짓말, 편가르기, 여론조작에 얼룩진 근시안 원전정책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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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폐장 유치 갈등으로 ‘계엄도시’를 방불케 했던 전북 부안 주민들이 2003년 12월10일 마침내 정부의 항복선언을 받아냈다. 이로써 정부는 지난 17년간 거듭해온 시행착오를 부안에서 또 재연한 셈이 됐다. 방폐장 후보지로 거론됐거나 원전이 들어선 지역 주민들은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의 30년 원전정책이 아물지 않는 상처만 남겼다고 비난한다. 한바탕 원전 바람이 할퀴고 간 바다마을들을 찾았다.
거짓말, 편가르기, 여론조작에 얼룩진 근시안 원전정책 30년
지난 11월22일 전북 부안 성모병원 5층. 입원실은 ‘영광의 상처’를 입은 환자들로 넘쳐났다. 입원환자 중 20여명은 17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일어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하 방폐장) 유치반대 시위에서 전투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다친 주민들이다. 온몸에 피멍이 들거나, 머리가 함몰되거나, 팔이 부러지거나, 발목을 삔 이들 대다수는 부안에서 태어나 부안에서 평생을 살아온 농부 혹은 어부들이다.

22일 오후 이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한마디’ 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부안성당을 찾았다. 환자들은 격해진 감정에 눈물까지 흘리며 생업을 내팽개치고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처지, 아들이나 손자뻘 같은 전투경찰들에게 욕지거리를 들으며 얻어맞는 비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중 한 명인 김대수(49)씨는 17일 시위 도중 골목으로 도망치다 40∼50명의 전경들에게 포위되어 곤봉과 방패로 몰매를 맞았다. 머리를 내리치는 곤봉을 피하기 위해 손으로 머리를 감싸다 오른손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이 부러졌다. 엉덩이께를 10cm 가량 베이는 부상도 입었다. 그는 “뭔가 차가운 감촉의 흉기가 허벅지를 쑥 밀고 들어왔다”고 기억한다.

김씨는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반핵(反核)을 상징하는 노란색 점퍼를 걸친 채 매일 저녁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11월25일에는 상경시위에도 참여했다.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김씨는 “노무현과 김종규(부안 군수)를 찍어준 이 손가락이 그놈들의 방패에 찍혀버렸다”며 철심을 박아넣은 손가락을 내보였다. 정부와의 극한 대립이 일상생활로 굳어지자 김씨는 이제 농담할 여유까지 생겼다.

“아, 글씨 고기가 먹고 싶거든 우리 집에 오지. 우리 마누라가 격포항에서 횟집을 하잖어. 추운 날씨에 고생들 하는데 회 한 접시 공짜로 못 줄까봐? 왜 먹지도 못할 사람 고기를 썩둑 자르는겨. 저네들은 사람고기까지 씹어먹는겨?”



방폐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촛불시위는 부안군이 후보지로 확정된 직후인 2003년 7월26일부터 매일 밤 열렸다. 촛불시위의 성지(聖地)가 됐던 부안 읍내 수협 앞 큰길은 ‘반핵민주화광장’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여름이던 지난해 8월 내내 산업자원부, 행정자치부, 청와대의 입장이 서로 엇박자를 그리는 가운데 부안 주민들은 전주 도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9월에는 김종규 부안군수를 집단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22만 주민, 66만 병력의 대치

민주적 문제 해결의 마지막 보루로 기대를 모았던 주민투표 방안에 대해 정부가 “연내 투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자 주민들은 11월17일과 19일 과격시위로 공권력에 맞섰다. 주민과 전경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이틀간의 시위 이후 부안에 투입되는 병력은 크게 늘었다. 11월20일부터 30일까지 매일 77개 중대 8000여명이 부안 읍내를 빽빽하게 둘러싸면서 부안은 1980년 광주를 떠올리게 하는 ‘계엄도시’로 일컬어졌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부안 주민의 80% 이상이 방폐장 유치에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11월22일 ‘동아일보’의 현지 여론조사 결과 88.3%의 주민이 반대의사를 밝혔으며, 72.1%는 경찰의 야간집회 원천봉쇄에도 집회에 계속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처음에야 핵이 어떤 건지 주민들이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고준위 핵폐기물에서 방사성이 사라지려면 무려 2만4000년이 지나야 된다는 거예요. 미쳤습니까, 그런 걸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주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데 군수 간이 얼마나 크다고 설마 유치신청을 하겠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가 이 지경까지 온 겁니다. 더욱 강력하게 시위를 해야 하는데, 저렇게 전경들이 막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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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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