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호

너 영계포주? 나 김강자야

  • 하태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2-21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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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천 티켓다방을 평정하고 미아리 텍사스에 입성한 ‘여전사’ 김강자(金康子). 30여년이 넘는 풍파에도 아랑곳 않던 난공불락의 ‘윤락요새(淪落要塞)’ 하월곡동 88번지가 풍운녀 김서장의 내공 실린 장풍 앞에 풍전등화(風前燈火)다. 미성년 윤락 척결의 선봉장을 자임하는 김서장의 각오와 김서장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옥천 티켓다방과 벌인 2년 전쟁, 그리고 김서장이 떠난 옥천 현지르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격려전화를 받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경찰서로 격려방문을 할 정도로 ‘귀하신 몸’이 된 김강자(金康子) 서울 종암경찰서장 인터뷰는 약속을 세 차례나 연기하는 우여곡절 끝에 1월11일 오후 7시로 정해졌다. 하지만 이 약속도 정확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 김서장은 당초 인터뷰 약속시간을 약 1시간 10분 정도 넘긴 오후 8시10분경 종암경찰서에 모습을 나타냈다.

    “어이, 저녁식사 좀 주문하지.” 160㎝가 채 안될 것 같은 작은 체격의 김서장은 어깨를 쫙 편채 당당한 걸음으로 서장 집무실에 들어서며 부하직원에게 말했다. 부속실 직원들은 기자가 1시간 이상 기다렸다며 서장에게 눈치를 줬지만 김 서장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김서장은 인터뷰 내내 단정적인 어투에 자신감 있는 어조로 질문에 답했다.

    종암경찰서 2층 서장실 안쪽에 있는 임시 숙소에서 마주 앉은 김서장은 지난 6일 부임한 이래 단 하루도 집에 들어가지 않은 채 이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아리 텍사스에서 미성년자 윤락행위가 근절될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시다. 약 3평 남짓한 임시숙소에는 분홍색 매트리스, 담요가 깔린 간이침대와 책상, 그리고 샤워기가 달린 화장실이 마련돼 있었다.

    “나, 지금 행복해요”

    ― 1월 6일 종암경찰서로 부임한 뒤 눈코 뜰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데. 먼저 하루 일과를 소개해주시지요.



    “잠을 하루 4시간 정도밖에 못 자요. 매일 새벽 1시에 미아리를 순시하고 업무정리를 한 뒤 잠자리에 들면 새벽 3시쯤 되는데, 늦어도 오전 7시까지는 기상을 해야 하니까요.”

    ― 직원들이 김서장 건강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미성년자 윤락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면 체력도 중요하잖아요?

    “체력만 좋으면 건강은 지켜지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 지금 행복하세요?

    “행복해요. 왜냐하면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하고 있으니까. 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죠. 신바람도 나고.”

    ― 이번 인사를 앞두고 지원하신 곳이 어디였습니까?

    “1지망은 서울 종암경찰서, 2지망은 서울 강동경찰서, 3지망은 서울 남부경찰서였습니다. 모두 윤락영업이 성행하고 있는 곳이지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 곳이어서 지망했고 1지망지로 발령이 나 행복해요.”

    이때 서장실 안에 설치된 서장 전용전화가 울렸다. 이날 오후9시에 방문할 예정이었던 황산성(黃山城)전 환경부장관 등 여성단체 지도자 6명이 약 30분 일찍 서장실을 방문하겠다는 연락이었다. 여성단체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김서장과 면담할 때 기자들이 배석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뜻을 표해왔다. 하지만 김서장의 생각은 달랐다.

    “제 시간에 맞춰 와 주십시오. 기자들과도 약속이 돼 있습니다. 제가 왜 기자들이 배석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느냐면 지금 미성년자 매매춘과 벌이는 전쟁은 저 혼자의 힘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언론·사회단체·여성단체 등 모두가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왕이면 시간을 맞춰 주십시오.”

    여기서 김서장의 언론관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서장은 인터뷰 도중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지나친 관심이나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뜨거운 관심에 오히려 감사한다”며 “매스컴에 의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대답했다. “폭주하는 인터뷰 요청 때문에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지만 매스컴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칠 것 같아도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충북과 옥천지역에서 근무하는 기자들도 김서장이 언론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무영(李茂永)경찰청장이 취임한 직후 각 지방경찰청을 초도 순시할 때도 김서장이 언론을 활용하려는 태도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무영 청장의 옥천 방문이 결정되자 김강자 서장은 옥천주재 기자는 물론 청주 주재 기자들에게도 일일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옥천은 충북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청장이 직접 방문하는 곳이고 이곳에서 여성문제와 관련된 주요시책이 발표될 예정이라며 기자들의 취재의욕을 불러일으키고자 시도한 것. 하지만 이날 공교롭게도 충북지역에서는 노근리사건의 후속보도가 있어 대다수 기자가 불참했고, 여성관련 주요시책도 발표되지 않았다.

    “이건 공권력을 개똥같이 본 거예요”

    김서장의 언론선호는 종암서에 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1월6일 취임 이래 1주일만에 150여건의 신문·방송·라디오 인터뷰는 물론 각종 대담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등 사실상 다른 업무처리에는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가 됐다. 종암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유명한 서장 때문에 결재 한번 받으려면 3~4시간씩 기다리기가 일쑤”라며 “이제는 언론에 웬만큼 알려졌으니 내실을 다질 때가 된 것 같다”고 뼈있는 말을 하기도 했다.

    ― 상당히 유명인사가 되셨네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은 경찰로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인데 뜻밖의 반응에 놀랐어요. 내 행동 하나가 전국적인 미성년자 윤락행위 단속으로 확대된 것 아닙니까? 경찰청장도 의지를 밝히셨고. 그래서 굉장한 보람을 느꼈어요. ‘아! 살만한 세상이구나’라고.”

    ― 미성년 윤락을 없애는 게 평생의 목표라고 들었습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그런 목표를 확립했습니까?

    “내 오기를 자극한 실화가 하나 있습니다. 94년 서울경찰청 민원봉사실장 시절에 한 아이를 찾으러 미아리 텍사스촌에 갔었어요. 그 아이 어머니가 신고를 해왔는데, 그 아이가 처음에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가 끊어버리더래요. 그러기를 몇차례 한 뒤 한번은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 다음에는 ‘엄마 나 구해줘’라며 자신이 일하는 업소위치를 알려주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경 두명을 데리고 미아리 텍사스촌을 찾아갔습니다. 업주에게 경찰 신분을 밝혔는 데도 문을 잠근 뒤 불을 꺼버리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를 완전히 무시한 거죠. 이건 공권력을 ‘개똥’같이 본거예요.”

    이 대목에서 김 서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일이 다음에 벌어졌어요.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밖에서 문을 걸어버린 거예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3시간 동안이나 갇혀 있다가 아이를 구해서 나오긴 했어요. 그 3시간 동안 ‘이제 너희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1000번도 더 되뇌었어요. 갇힌 게 무서웠던 게 아니라 공권력을 우롱하는 그들의 태도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죠.”

    ― 구출돼 나온 아이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얼굴은 노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고 완전히 황폐해졌더라고요. 14살 먹은 애였는데 몸집도 왜소했어요. 이런 식으로 미성년자를 학대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고, 그렇게 부도덕한 어른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내가 또 분한 건 우리나라 남자들은 돈이 있건 없건, 지식층이건 아니건 ‘영계’ 좋아하고, 세상에 이런 나쁜 놈들이 어디 있어요.”

    ― 단속이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97년 서울 강동경찰서에서도 천호동 윤락가에 대한 고사(枯死)작전을 썼지만 사실상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천호동의 실패 원인은 전쟁 대상을 너무 넓게 잡았기 때문이었어요. 윤락 자체를 근절시키려고 했으니 힘에 부친 거지요. 저는 우선 미성년자 윤락행위 단속에 주력한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작정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미성년자 윤락문제 해결은 단속만으로서는 안돼요. 후속조치를 해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가정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취업도 연결해 주고, 망가진 정신도 고쳐줘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는 그런 후속조치가 없었어요.”― 이제 미아리에 대한 실태파악은 어느 정도 된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 대책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공급원 차단입니다. 윤락업소마다 조직적으로 공급책이 있어요. ▲침식 제공 ▲월수 최고보장 ▲초보자 환영 등의 허위광고로 아이들을 유혹하는 조직책 말이죠. 집을 나온 아이들은 침식을 제공하고 일정액의 월수입을 보장한다는 말에 현혹되는 겁니다. 공급원 차단은 이미 10일부터 시작됐고, 벌써 12명을 잡았어요.”

    ― 요즘은 자발적인 윤락이 많다고 하던데요.

    “원조교제야 자발적이지만 윤락가에 흘러온 애들은 그게 아니에요. 상당수는 허위광고를 보고 옵니다. 만약에 술집이라면 ‘술만 나르고 경리만 보는 거야’라고 유혹한 뒤 강간을 해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나서 몸을 팔게 만들어요. 그것 때문에 어린 꼬마들이 윤락행위에 젖어들어가요. 스스로 사회에 나가도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죠.”

    미성년 윤락 퇴치 3개월안에 끝낸다

    ― 매매춘이라는 행태는 완전히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공창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범죄 예방차원에서도 배설장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 업주들이 1월 10일 자정결의를 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자정결의를 100% 믿지는 않지만 자정결의를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선정된 대표자는 경찰과 업주들 중간에 서서 의사소통에 통로 구실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의사가 통하다 보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어요.”

    ― 공급원을 차단한 후에는 어떤 작전이 벌어집니까?

    “위반하는 업주를 중심으로 압박작전을 쓸 것입니다. 위반행위가 적발되면 경찰을 위반업소에 고정근무시키고 1, 2개 중대를 동원해서 출입자 전원을 검문 검색할 것입니다. 그러면 고사하지 않을 수 없지요.”

    ― 경찰은 할 일이 많습니다. 미아리 단속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지역마다 특성이 있습니다. 종암서는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이 텍사스촌이에요. 이런 특성을 중시한다는 것이지 다른 부분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미아리 텍사스촌은 조직깡패 미성년자 윤락행위 등 대부분의 범죄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범죄 발생과 치안수요가 가장 높은 곳입니다. 여기를 잘 다스리면 다른 곳의 치안도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 성과는 언제쯤 예상할 수 있습니까?

    “미성년자 윤락행위는 3개월 내에 반드시 근절시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윤락행위 단속이 막을 내리지는 않아요. 전국적으로 여성단체와 공조해서 벌여야 할 후속조치도 뒤따라야 하고, 그 다음에는 성년 매춘부라 해도 불법행위나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여성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 업주들한테 협박전화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전화를 받으면 오히려 옛날에 감금당했을 때 가졌던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저한테는 절대 그런 위협이 통하지 않습니다.”

    ― 경찰과 업주의 공생도 대대적인 단속을 저해하는 원인일 법합니다만.

    “미아리 텍사스를 직접 관할하는 월곡파출소장으로는 경찰대학 출신 여경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6개월마다 교체를 해 구조적으로 비리가 생길 수 있는 고리를 사전에 차단할 것입니다.”

    70년 경찰시험에 수석으로 합격, 순경으로 첫발을 내디딘 뒤 공항검색요원을 시작으로 서울경찰청 초대민원실장과 최초의 여성일선서 과장을 지내는 등 최초 신화의 주인공인 김서장. 88올림픽 때에는 여경관리대장을 맡아 500여명의 여경들과 함께 여자선수촌과 여성VIP 경호업무를 총괄했고, 여자형사기동대 설치를 제의해 초대 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여성 경찰로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러 개 달고 있는 김강자 서장은 지금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조직내에서 이루고픈 원대한 꿈이 있다고 말했다.

    ― 두 딸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합니까?(김서장에게는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딸과 올해 대학입학을 앞둔 딸이 있다.)

    “한 명은 경찰 시킬 거예요.”

    ― 경찰 김강자가 평가받은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97년에 옥천 경찰서로 가서 인정받은 거예요. 거기 가서 민생치안 1등에 뭐든지 1등을 했잖아요.”

    김서장 재임 당시 옥천경찰서는 98년 하반기 민생치안활동 평가에서 충북도내 11개 경찰서 가운데 1위, 전국에서 4위의 영예를 차지했다. 또 98년 말 한달동안 실시된 기소중지자 일제검거에서도 465명을 붙잡아 충북 1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99년 승진심사에서는 27명 응시에 14명이 합격, 전국 최고의 합격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옥천은 김서장이 여성으로는 최초의 일선 경찰서장이라는 ‘훈장’을 달고 부임한 곳이면서 ‘티켓다방’과 전면전을 벌여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른 곳이기도 하다.

    ― 옥천서장을 하실 때 경찰서 내 펀치볼에 서장 사진을 붙여놓은 뒤 부하 직원들이 그것을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토록 한 일화가 있는데요. 어떤 발상에서 그런 일을 했습니까?

    “조선시대 며느리들이 시부모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해소법에 착안한 겁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근검절약을 강조했지만 밥그릇만큼은 조금만 금이 가도 재수 없다고 못쓰게 했어요. 집안에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조선의 며느리들은 1년동안 금이 간 그릇을 모았다가 산산조각을 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거예요. 부하들도 일하다 보면 서장에게서 스트레스를 받겠지요. 그러면 마음껏 때려치라는 취지에서 펀치볼에 사진을 붙이게 했어요. 제가 그 곳에서 서장으로 일할 때 모든 직원들이 일심동체가 돼 활기 넘치고 재미있게 일했다고 생각해요.”

    ― 요즈음 옥천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지금은 궁금할 여유가 없어요. 너무 바빠서.”

    ― 옥천에 티켓다방은 완전히 없어졌습니까?

    “티켓다방 자체가 아니라 티켓다방에서 일하는 미성년자가 없어졌습니다. 농촌에는 술집이 없고 티켓다방에서 윤락행위가 이루어져요. 티켓다방에 일하는 여종업원을 불러다가 술집에서 술 따르게 해요. 그뒤 은밀하게 윤락행위가 벌어지지요. 그렇지 않으면 차 가지고 여관으로 오라고 해서 윤락행위를 합니다.”

    1시간 반 정도의 인터뷰가 끝난 후 기자는 옥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옥천서장으로서 티켓다방과의 전쟁으로 일궈낸 ‘김강자 신화’를 검증하기 위해서 였다.

    티켓다방이란 식품위생법상 휴게음식점으로 구분돼 있는 다방의 변태영업. 커피나 차 등을 판매하는 애초 목적과는 달리 여종업원을 노래연습장이나 단란주점 등에 출장보내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차배달을 나간 여종업원이 손님의 요구로 1, 2시간 같이 놀아주게 하고, 다방주인은 그 시간만큼의 영업손실을 보전해 받는다는 의미에서 생긴 것이 ‘티켓’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다방주인은 여종업원을 술집 등에 출장보내 티켓값을 챙기고 여종업원은 손님들에게 여흥을 제공한 대가로 티켓값 이상의 팁을 받아 주머니에 챙기는 형태가 됐다.

    충북 옥천은 대전과 같은 생활권에 속해 있다. 새벽 1시 반 대전에 도착한 기자는 그 길로 택시를 잡아 타고 옥천으로 향했다. 새벽 2시경 옥천에 도착해 여관을 숙소로 정한 뒤 차배달을 시켰다. 최대한 어린 여자를 불러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5분도 안돼 검정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보자기에 싼 커피를 든 여자가 문을 노크했다. 광주가 고향이라는 이 여성은 20대 후반으로 ‘영계’는 아니었다.

    “그 여자(김강자 서장)가 떠나긴 했지만 요새 옥천 다방에 미성년자는 없어요.”

    10대 아가씨는 없냐고 묻는 기자에게 다방 아가씨는 이렇게 말했다. 후임 서장도 계속해서 미성년자에 대한 단속을 벌이고 있고, 미성년자를 고용하든 스무살을 넘긴 아가씨를 고용하든 티켓영업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데 업주들이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미성년자를 둘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

    대신 최근 들어 옥천지역 거의 모든 다방이 새벽3시까지 심야영업을 하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 새벽에도 커피 마시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이 아가씨는 손을 아래위로 흔들며 “밤새 팔운동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라고 대답했다. 찻값도 낮에는 1500원, 밤12시를 넘으면 2000원이지만 오히려 심야에 차를 시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 게다가 술집이나 노래방으로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하니 티켓다방은 불야성을 이룬다는 것이 이 아가씨의 설명이었다. 1시간 티켓료는 1만5000원.

    다방 아가씨를 돌려 보낸 뒤 아가씨를 불러 달라고 여관주인에게 다시 부탁했다. 화대는 4만원에 선불. 이번에도 최대한 어린 여자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술 더떠 30대 중반의 ‘아줌마’가 방에 들어왔다.

    김서장에 대한 상반된 평가

    5년전 이혼했다는 이 30대 여인은 대전의 보도방에 소속된 매춘부였다. 여관에서 보도사무실에 연락하면 보도사무실은 직업 여성을 자가용에 태워 손님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데려다 주는 것이다. 옥천에서 성행한다는 티켓영업과는 성격이 달랐지만 이 여성도 ‘티켓’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여성이 말하는 티켓이란 손님이 묵는 여관에서 동침을 해주는 대가로 20만원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하룻밤을 한 사람에게 봉사하는 대신 그날 밤 기대되는 예상수익을 보전해준다는 의미로 ‘티켓’이 사용되는 것.

    김강자 서장이 옥천에 있을 당시부터 방범과장을 맡고 있는 정용옥 경감은 “김서장 부임 당시만 해도 옥천에 있는 42개의 다방에서 평균 7명 정도의 아가씨를 두고 있었는데 그중 2~3명은 미성년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98년 7월부터 2000년 1월까지 김강자 서장이 옥천에 있으면서 미성년자 티켓 영업을 꾸준히 단속한 결과 이제는 옥천군에서만큼은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다방은 없다”는 것.

    김동권 정보보안 2계장은 “현장을 적발하고도 단속이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 김서장은 다방 종업원의 신원을 일일이 파악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며 “심지어 여관의 휴지에 묻은 정액 등을 체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넘긴 뒤 단속하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서장의 후임으로 온 이한기 서장은 “김강자 서장은 인격적으로도 훌륭하지만 경찰이 하는 일을 제대로 홍보할 줄 아는 ‘상품가치’가 있는 분”이라며 “이제는 미성년자 단속문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므로 전면 단속보다는 위반행위 등 문제가 발생할 때 단호하게 대처하는 식의 단속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강자 서장이 벌였던 티켓다방과의 전쟁을 모든 주민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경감은 “미성년자 티켓영업이라는 불법행위를 엄단해 살기 좋고 아름다운 옥천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자는 김서장의 취지는 수긍하면서도 옥천이 매스컴에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군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즉 김강자 서장이 선포한 ‘티켓다방과의 전쟁’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옥천 하면 티켓다방을 먼저 떠올리게 되면서 옥천이 마치 미성년자 윤락이나 티켓다방의 천국인 것처럼 오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생겨났다는 것.

    김강자 서장과 같이 일했던 한 경찰관은 김서장을 ‘꼴통’이라고 표현했다. 김서장은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다 여자로는 보기 드문 강인한 면을 가졌는데, 그 점이 최대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면 상관없지만 조직의 장이 추진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은 심한 피로와 짜증을 느끼게 된다는 것.

    “그여자? 떠났잖아요”

    김강자 서장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 한 가지.

    한번은 옥천의 한 교사가 학생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철저히 조사하라는 김서장의 지시가 있었고, 옥천경찰서 직원이 수사를 담당했다. 경찰관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학생과 교사를 불러다 조사했지만 혐의내용이 불분명했다. 그래서 보강조사를 계속하는데 다혈질인 김서장은 이를 참지 못하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학생을 불러다 면담한 뒤 교사를 성폭행범이라고 단정했다는 것.

    김서장은 “이 자식 당장 구속하라”고 불호령을 내렸지만 담당 경찰관은 증거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고 결국 이 사건은 학생측이 고소를 취하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옥천경찰서의 한 간부는 “법의 집행이란 형식과 절차를 모두 지킨 뒤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데도 김서장은 때때로 이런 기본원칙을 망각하는 일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단순 통계만으로 보면 김강자 서장 재임 당시 42곳이었던 옥천군내 다방은 2000년 1월 현재 51곳으로 약 20% 늘어났다. 하지만 이중 실제로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10여곳이어서 전체적으로는 김서장 재임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또한 다방 여종업원도 품귀현상을 보여 요즘은 한 업소에 3~4명만 고용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옥천군 중심가에 있는 한 다방의 업주 A씨와 만났다. 배달영업이 거의 90% 이상이라는 시골다방의 특색에 걸맞게 이 다방에도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전화가 걸려오는 즉시 아가씨들이 커피보자기를 들고 다방문을 나섰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다방의 업주는 김강자 서장에 대한 악감정을 숨기지 않고 토해냈다. A씨는 “경찰은 다방 업주들의 고충은 전혀 이해하지 않은 채 단속만 해서 업주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요즘 아가씨들은 주인 말을 고분고분 듣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 주인이 야단이라도 조금 치면 업소를 나가버리는 경우가 예사고 티켓영업도 아가씨가 원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업주가 매춘영업을 강요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상황이 이런데도 김서장은 업주들에게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고, 정작 단속을 한 미성년자들은 제대로 선도하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아가씨들은 마음만 먹으면 전국이 잠재적인 직장이므로 옥천에서 단속이 심해도 콧방귀도 안 뀐다는 것.

    또 다른 다방업주 B씨는 김서장을 소영웅주의에 빠진 출세주의자로 판단하고 있었다. B씨는 “소문에 의하면 김서장 남편이 서울대 법대를 나왔는데 선후배들이 요직에 앉아 있어 빽이 대단하고, 호남출신이어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물론 현직 경찰청장의 최측근이라고 한다”며 “일약 서울의 일선경찰서 서장이 된 것도 다 그런 배경이 작용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서장의 남편 김환국씨는 모 기관 3급 공무원이며, 서울 법대를 졸업하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다방 업주들과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옥천의 다방 앞에서는 소형오토바이가 쉴새 없이 커피 보자기를 든 아가씨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호랑이 등에 탄 서장

    12일 밤 11시반 서울역에 도착한 기자는 다시 종암경찰서로 갔다. 김강자 서장은 운동복 차림으로 집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다음날 이화여대에서 할 ‘우리나라 현행법상 성폭력 처리과정’이라는 주제의 특별강연 원고를 가다듬고 있었다. 옥천 주민들이 김서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 등을 취재하고 왔다는 기자의 말에 김서장은 흠칫 놀라며 “요새 옥천은 어떻더냐” “혹시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없더냐”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 김서장이 공명심 때문에 옥천을 매도했다며 반감을 숨기지 않는 사람도 있더군요.

    “물론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옥천만 티켓다방이 활개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농촌지역처럼 티켓다방이 성행했고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대다수 주민이나 여성들은 옥천 티켓다방의 실체를 알 수 없겠지만 서장으로서 그것을 묵과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나는 옥천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미성년자 윤락을 근절하고자 노력했을 따름입니다.”

    종암경찰서 관계자들은 최근 김강자 서장의 상황에 대해 ‘호랑이 등에 탄 격’이라고 표현했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뛰어 내리면 큰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대로 달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종암경찰서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은 매스컴의 과열된 취재나 보도때문에 초래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암경찰서의 한 간부는 “김서장은 실전경험이 많아 매매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며 “취임 직후부터 이번 전쟁은 미성년자 매매춘과의 전쟁이라고 범위를 분명하게 한정한 것도 매매춘이라는 거대한 적과 정면대결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서장이 파악하듯 미성년자 윤락을 없애는 일은 김서장 개인의 싸움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여론은 김강자 서장의 편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을 입증하듯 요즘 종암경찰서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의 격려전화가 쇄도하고 각계에서 성금이나 물품지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기우(杞憂)겠지만 김강자 서장은 미성년자 윤락과의 전쟁을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김서장에게 보내는 국민의 박수는 미성년자 윤락에 철퇴를 내리겠다는 공직자인 종암경찰서장에게 보내는 박수지 인간 김강자에게 보내는 박수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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