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15 국민대회’ 이후 상설 집행기구화
- 300여 보수단체 총결집, 1~2주 간격 릴레이 집회
- 평시엔 운영위원회 체제, 국민대회 땐 외연 확대
- “한나라당은 소신, 철학, 수권능력 없는 잡탕”
- ‘신동아’ 보도로 경제단체 지원 끊겨… 국민 후원회비로 행사비 전액 충당
- ‘9·9 원로 시국선언’ 주도 인사들과 불협화음
- 우익 대변할 정당 창당엔 내부 의견 엇갈려
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주도한 ‘10·4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
국민의례-애국가 제창-경과보고-인사말씀-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서울의 찬가’ 합창 순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 걸린 시간은 불과 40여분. 참가자 상당수는 50∼70대였다. 이들은 예전 보수단체 집회에서 흔히 대할 수 있던 비장감이나 결연함 대신 ‘승리감’을 한껏 만끽하는 듯했다.
행사장 외곽을 둘러 설치된 부스에선 ‘대한민국 안보와 경제살리기 국민운동본부(약칭 ‘안경본’)’ 주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후원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1000만인 서명운동’도 벌어졌다. ‘어제는 대통령, 오늘은 총리, 내일은 여당 의장! 막말하는 집권여당, 대한민국이 ‘저주의 굿판’인가? 갈등전략 중단하라!’는 자극적 문구가 적힌 현수막도 내걸렸다.
행사장에서 마주친 신혜식(37)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변인은 “우리(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이번 행사를 주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회원들이 많이 참석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행사장엔 북한인권운동가로 알려진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도 눈에 띄었다.
당초 이날 행사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포함된 ‘수도이전 반대 범국민운동연합’이 ‘수도이전 반대 범국민 궐기대회’라는 규탄집회로 치를 예정이었지만, 행사를 앞둔 10월21일 헌재의 위헌결정이 나옴으로써 서울시의회 주최 행사로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14일 뒤인 11월11일, 반핵반김국민협의회는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회원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4대 악법 저지 국민행동대회’를 개최, 다시 한번 다중(多衆) 앞에 그 존재를 드러냈다. 이날 ‘악법(惡法)’으로 지목된 법안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을 비롯해 과거사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으로 여당이 추진중인 이른바 ‘4대 개혁입법.’ 반핵반김국민협의회는 “대한민국을 죽음으로 몰고 갈 사대악법(死大惡法)의 입법을 총력을 기울여 저지할 것”이라 결의했다.
‘브레이크’ 없는 보수단체 집회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이하 국민협의회). 지난해 3·1절을 기점으로 시작된 보수진영의 ‘총궐기’ 때마다 전면에 나서는 이 단체의 실체는 무엇인가.
‘반핵’은 ‘反核’을, ‘반김’은 ‘反김정일’을 뜻한다. 명칭부터 독특한 이 단체가 실질적으로 주도한 최대 규모의 집회는 바로 10월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연 ‘국보법 사수(死守) 국민대회’(이하 ‘10·4 국민대회’)다. 일부 대형 교회가 주최한 구국기도회를 겸한 이날 집회는 지난 3월 진보진영의 탄핵반대 촛불시위 이후 최대 인파인 10만여명(경찰 추산, 주최측 주장은 30만명)이 운집한 보수진영의 ‘거리투쟁’이었다.
참여단체는 무려 160여개, 공동대회장만 해도 20명으로 그중 6명이 전직 국무총리였다. 경찰이 물대포까지 동원한 이날 집회를 국민협의회는 스스로 ‘의거’라고 표현했다.
이 매머드급 집회를 이끈 국민협의회는 언제 어떻게 태동한 것일까. 사실 국민협의회는 지난해 세 차례 열린 보수진영의 대규모 집회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보수진영은 지난해 3월1일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경찰추산 7만명 참가), 6월21일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 국민대회’(11만명), 8월15일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1만5000명)를 잇달아 개최, 진보진영을 겨냥해 보수세력의 기세를 한껏 과시한 바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1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두 차례 개최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가 보수진영 인사들의 이목을 끌면서 10여개 보수단체가 연합한 ‘구국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첫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이 국민대회의 시초인 3·1절 대회다.
보수진영에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 획득의 기폭제로 작용한 이 국민대회들로 상시 최소 1만명 이상 동원능력을 갖추며 세를 불린 보수단체들이 연대해 상설 집행기구를 출범시킨 것이 바로 국민협의회다. 다시 말하면 국민협의회의 뿌리는 역대 국민대회 집행위원회이고, 국민협의회는 이 집행위원회 조직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보수우익세력을 총망라한 협의체라 볼 수 있다. 당시 국민협의회 결성을 처음 주장한 단체는 자유시민연대(상임공동대표 임광규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보수단체들이 상설 집행기구를 만든 주된 이유는 국민대회가 국경일이나 주요 기념일에만 열리는 관례행사라는 고정관념을 불식해 ‘좌(左)편향적’인 노무현 정권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협의회의 실질적 동력(動力)은 국민협의회 내부 조직인 운영위원회다. 운영위원장은 서정갑(64)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대령연합회장.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ROTC 출신인 서 위원장은 일간신문에 시국관련 성명이나 보수세력의 궐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5단 통’ 의견광고를 2001년 1월부터 지금까지 110여 차례나 실어 이름 석자가 비교적 알려져 있다. 그가 이끄는 예비역 대령연합회는 1995년 4월 창립, 7000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보수단체 가운데 동원력과 활동력이 매우 왕성한 단체다.
지난해의 경우 세 차례의 국민대회 실무를 총괄한 기구는 국민대회 집행위원회다. 집행위원회는 국민대회를 열 때마다 새로 구성되는 한시적 조직. 대회가 끝난 뒤 차기 국민대회 준비단계에서 집행위원들이 교체됐다. 지난해 3·1절 대회에는 김상철(57) 변호사(전 서울시장), 6·25대회에는 김경래(76)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 사무총장, 8·15대회에는 안응모(74) 황해도중앙도민회장(전 치안본부장 및 내무부 장관)이 각각 맡아 행사를 이끌었다.
올해 3·1절에 열린 ‘친북 좌익세력과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국민대회’(3만명)에선 봉두완(69) 광운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및 대한적십자사 부총재)가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따라서 그 이후 열린 ‘10·4 국민대회’를 이끈 서정갑 위원장은 사실상 제5대 운영(집행)위원장이 되는 셈이다. 서 위원장은 지난해 6·25 및 8·15 대회 당시 홍보위원장을 맡아 국민협의회 태동에 일찍부터 관여해온 산 증인이기도 하다. 더욱이 민간인이 아니라 군 출신 인사로서는 처음 운영(집행)위원장을 맡은 강경 행동파로 통한다.
그가 운영위원장이 되는 과정에는 다소 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 4월30일 제4대 봉두완 집행위원장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그 뒤를 이을 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 자리는 3개월간 공석이었다. 임광규 변호사, 이동복 명지대 객원교수,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박세직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등 타천으로 운영위원장에 추대된 인사들이 이런저런 개인적 사정을 내세워 고사했기 때문. 결국 7월2일 서정갑 현 위원장으로 낙점됐다.
이 과정에 ‘서정갑은 운영위원장 부적격자’라는 내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국민협의회가 보수진영의 모든 단체를 아우를 수 있으려면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가 운영위원장이 되는 게 바람직한데, 대령연합회를 이끌며 강성 이미지가 굳어진 서 위원장은 적임자가 아니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7월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남파간첩과 빨치산 출신 장기수 3인의 민주화운동 경력을 인정해 논란이 일자, 이에 자극받은 보수단체들은 결국 행동력이 강한 서 위원장을 택했다. 당시 그는 위원장직을 수락한 뒤 “(국가의) 안보상황이 이 지경인데, 만날 회의하고 중지(衆志)만 모으다가 언제 일을 하겠느냐”며 “국민협의회 운영과 관련한 일체의 권한을 내게 위임해주면 제반 집행사항을 사후보고하겠다”는 조건을 달아 전권을 위임받았다.
전권 거머쥔 서정갑 운영위원장
국민협의회 조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대규모 집회인 국민대회를 개최하지 않는 평시의 조직이 그 하나다. 이는 국민협의회의 사령탑인 집행부 격으로, 운영위원장과 부위원장, 사무총장, 대변인 체제로만 구성되는 실무라인이다. 현재 부위원장 6명은 김병관 서울시재향군인회장, 김한식 ‘안경본’ 본부장, 박찬성 북핵저지시민연대 대표, 봉태홍 ‘자유를 지키는 사람들’ 대표, 신영철 대령연합회 수석부회장, 정화숙 재향군인회 여성회장이다. 사무총장은 최인식 시민정치연구회 상임대표가, 대변인은 신혜식 ‘인터넷 독립신문’ 대표가 맡고 있다.
운영위원회는 50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류기남 대한참전단체연합회장, 이동복 명지대 객원교수, ‘보수세력의 이데올로그’로 불리는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 지만원 시스템사회운동 대표, 허문도 전 통일원 장관 등이 특히 눈에 띈다.
국민대회 개최 단계에선 조직의 외연이 확대돼 큰 틀에서 움직인다. 즉 운영위원회 위로 의장단(공동대회장)과 자문위원단, 고문단이 구성되고, 아래로는 각 소관업무별로 12개의 분과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한다(‘국민대회 기구표’ 참조).
국민협의회 총회에서 선출하는 의장단은 현재 11명으로, 길자연 한기총 회장, 김동길 태평양시대위원회 위원장, 김성은 전 국방부 장관, 김옥균 천주교한민족돕기 총재, 안응모 황해도중앙도민회 회장, 오자복 성우회(예비역 장성 모임) 회장, 이상훈 재향군인회 회장,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상임의장, 장영철 이북도민중앙연합회 회장, 정기승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장, 채명신 베트남참전전우회 회장이다.
국민협의회 운영위원회가 추대하는 자문위원은 35명으로, 군경, 공무원, 경제인, 의료인, 종교인, 교육계 출신 인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국민대회 개최 당시에는 대회를 상징할 만한 명망가와 실제로 국민대회를 기획하는 인사로 ‘국민대회 대표단’이 꾸려진다. 현재 국민대표는 86명이다(‘국민대회 대표 명단’ 참조).
국민협의회에 가입한 보수단체는 300여개. 이 가운데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비롯한 군 출신 인사의 모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반에 알려진 북핵저지시민연대 등 강성 활동단체는 대략 40∼50개. 하지만 가입단체 상당수는 아직 외부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국민협의회의 지향점은 정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8월23일 한 차례 개정된 국민협의회 정관(定款) 제3조는 국민협의회의 목적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북한 핵무기 개발 반대와 북한의 자유실현을 위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사를 결집, 표현함으로써 자유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데 두고 있다.
또한 제4조는 국민협의회의 사업을 ‘①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국민단결사업 ②북한 자유화 및 북핵 저지를 위한 활동 ③국민 안보의식 강화를 위한 홍보선전사업 ④위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단체간 협력사업 ⑤기타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으로 명시했다. 간략히 말하면 남한체제의 안전보장이 국민협의회의 존립 목적인 셈이다.
탄핵정국 이후 결속력 강화
지난해 국민대회만 해도 연대가 다소 느슨하고 활동에서도 아마추어리즘을 감출 수 없어 진보진영에 열세를 면치 못하던 보수진영의 결속력이 ‘10·4 국민대회’에서 보듯, 급속도로 강화된 계기는 뭘까.
박찬성(51) 국민협의회 부위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이후 3∼4개월 동안 급속한 정국 변화를 거치면서 진보진영의 탄핵반대 운동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진영이 똘똘 뭉치게 됐고, ‘10·4 국민대회’에 와서야 마침내 역전승을 거뒀다. 특히 이번 수도이전 위헌결정 이후 큰 자신감을 얻어 보수진영이 무척 고무된 상태”라고 답했다.
현재 국민협의회는 주요 일간지에 의견광고를 내고 거기에 게시한 금융계좌를 통해 국민대회에 참가하는 보수단체들과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일반 국민의 후원회비를 받아 국민대회와 각종 집회의 운영 재원을 100% 충당한다.
‘신동아’가 입수한 ‘10·4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 결산보고서’(10월15일 작성)에 따르면, 국민협의회측은 이 대회 개최를 위해 9월21일부터 10월4일까지, 신문광고에 게시한 은행계좌 3개와 집회장 현장모금 등을 통해 1억2705만3370원의 수입을 얻어 홍보비(신문광고료) 7865만원을 비롯해 사무실 유지비, 인건비, 소모품비, 대회장비 임대료 등을 지출하고도 765만2630원의 흑자를 냈다.
그러나 지난해만 해도 이 같은 재정적 투명성은 확보하지 못했다. 지난해 세 차례 열린 국민대회 중 6·25 대회와 8·15 대회의 집행위원회는 삼성그룹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대한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로부터 합계 1억3000만∼2억원의 후원금을 은밀히 받았다. 국민대회 개최비용인 2억5000여만∼3억5000여만원의 절반 이상이 이들의 후원금이었던 것. 그런데도 해당 집행위원회는 국민의 광범한 지지 덕에 행사를 성황리에 치렀다고 발표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단독확인한 ‘신동아’ 보도(2003년 10월호 ‘6·25, 8·15 국민대회의 가려진 진실-전경련·대한상의·무협·삼성이 보수진영 ‘스폰서’ 기사 참조)로 인해 경제단체들의 지원이 완전히 끊겨 한때 국민협의회는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와 관련, 서정갑 위원장은 “솔직히 과거엔 경제단체의 지원을 받았다. 국민 후원회비가 신문광고료의 절반에도 못 미쳐 적자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자발적으로 1000원, 1만원씩 후원회비를 내준 애국시민들의 참여로 행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경제계 인사 가운데 친분이 있는 대학동창도 없지 않지만, ‘도와달라’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경찰과 부딪히는 과정에 부상한 참가자 10여명의 치료비 630만원도 국민협의회가 부담했다”고 설명했다.
국민협의회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른바 ‘보수 원로’들과의 관계다. ‘10·4 국민대회’ 이전인 9월9일, 보수진영에선 파급력이 결코 작지 않은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9·9 시국선언’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도한 ‘9·9 시국선언 모임’의 몇몇 인사와 서정갑 위원장의 갈등을 시사하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시국선언문에 서명한 이른바 ‘국가 원로’는 1700여명. 시국선언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국가이념이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언론이 ‘386세대’라고 명명한 ‘친북좌경, 반미세력’의 손아귀에 나라가 들어가 있다”며 “국론을 분열하고 정쟁을 유발하는 소모적 현안인 ‘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 과거사 청산’ ‘언론 개혁’의 일방적 추진을 중단하고 그 대신 모든 국력을 경제와 안보 등 시급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에 참여한 인사의 상당수는 전직 국무총리, 전 국회의장, 전 장관, 전 정당 대표, 전 국회의원, 예비역 장성 등이다. 시국선언문 초안을 만든 사람은 이동복 명지대 객원교수였다. 국민협의회의 서 위원장은 이 선언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과연 시국선언 참여자 모두에게 ‘국가 원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들 중 상당수는 유신과 5·6공 당시 요직을 맡았거나 권력기관에 몸담았거나 부정부패, 비리에 연루된 ‘부끄러운 과거’를 지녔다. 사정이 이러니 시국선언을 하고도 이른바 진보를 부르짖는 이들에게 비판받는 빌미를 제공한 게 아닌가. 보수라고 다 같은 보수가 아니다. 단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원로로 대접받아야 한다면 그건 코미디다.”
서 위원장은 또 “시국선언 참여자 상당수가 국민협의회 국민대표들이다. 시국선언을 주도한 사람들 역시 당초 보수진영의 구심점 구실을 할 국민협의회 결성을 주창하며 주춧돌을 놓은 이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국민협의회 테두리 안에서 시국선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괜히 별도 행사를 열어 ‘분파주의’라는 외부의 오해를 살 필요가 뭐 있나. 이제 쉬어야 할 분들은 집에 가서 좀 쉬어야 한다. 국민협의회는 업그레이드된 신보수를 주창한다. 앞으로도 분파적인 모습을 보이면 보수가 설 자리는 없다. ‘사쿠라’란 소리만 듣게 된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9·9 시국선언 모임’측이 시국선언 이후 10월7일 부산, 10월14일엔 대구 등 지역을 순회하며 국보법 폐지 및 수도이전 반대 집회를 잇달아 연 데 대해서도 국민협의회는 달갑잖은 눈치다. 애초 국민협의회측이 ‘10·4 국민대회’ 이후 부산 대구 마산 등지에서 관련집회를 갖기로 하고 9월에 국민대회 대표들에게 안내서한을 보냈는데, ‘9·9 시국선언 모임’측이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내홍
하지만 시국선언 서명 실무작업을 맡았던 김구부(58) 자유시민연대 사무총장의 말은 다르다.
“시국선언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세밀히 준비돼온 행사였다. 서명을 받기 위해 6000여명의 원로에게 취지문을 발송해야 할 만큼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분파적 행위’라는 건 서 위원장의 오해일 뿐이다. 게다가 시국선언에 참여한 인사들은 한결같이 고위직에 있던 분들이다. 그런 이들에 대해 대령 출신인 서 위원장이 이러쿵저러쿵 ‘지도’하려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분파주의다. 원로들에게 긍·부정적 평가가 혼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는 어차피 그런 요소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실제로 시국선언의 주력은 군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다. 시국선언에 서명한 예비역 장성만도 500여 명에 달한다.
어찌됐건 국민협의회와 ‘9·9 시국선언 모임’의 이러한 불협화음은 보수진영 외부로까지 불거지진 않았지만,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닌 ‘동몽이상(同夢異床)’ 격이 돼버린 보수진영의 내홍(內訌)을 방증하는 셈이다.
“신보수로 거듭나야”
국민협의회와 관련해 외부에서 갖는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국민협의회가 정치세력이 될 것인지 여부다. 이에 대한 서정갑 위원장의 답변은 이렇다.
“외부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한테서 정치세력화를 도모하자는 연락이 적잖게 온다. 사실 보수정당을 자처하고도 기회주의적으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한나라당은 소신도 철학도 없는 잡탕이자 ‘식물야당’이라 국민에게 더 이상 신뢰를 주지 못한다. 앞으로 정권을 수임할 능력조차 없다. 그래서인지 ‘정당을 태동시키자’ ‘때묻지 않은 보수인사들끼리 결집해 신(新)보수를 주창함으로써 국민협의회도 새롭게 태어나게 하자’는 주장이 있다. 나는 후자엔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세력화 문제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싶다.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이 나타난다면 국민협의회는 그들을 지원하는 데 진력하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정당을 만드는 데는 운영위원장으로서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견해가 보수진영 내부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니다. 박찬성 국민협의회 부위원장은 다른 의견을 편다. 그는 “아직 공식 논의는 없지만, 보수진영 내부에서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혁신적 국민정당을 지향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며 “지금은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지만, 궁극적으론 국민협의회도 새로운 보수정당의 태동에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실제로 국민협의회 집회에서는 ‘자유민주체제 대한민국 수호하는 국민정당 창출하자!’는 구호가 종종 터져나온다.
신혜식 국민협의회 대변인은 “정치세력이 되든 그렇지 않든, 그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협의회가 스스로 한계를 깨는 일이다. 아직까지 청년층 참여에 유인(誘因)이 될 만한 문화적 아이템이 부족하고, 진보진영에 비해 조직 네트워크가 세밀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며 “신보수세력으로 거듭나려면 무엇보다 대중적 지지도를 높이는 것이 과제”라고 지적한다.
내부 갈등과 정치세력화 요구에 직면해 있는 국민협의회. 수구세력이란 일각의 비판을 떨치고 그들이 주창하는 ‘신보수’로 거듭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열린우리당은 ‘정신병자 집단’”
서정갑(徐貞甲·64)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7월2일 임기 6개월(1회에 한해 6개월 연임가능)의 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됐다. 11월5일 서울 역삼동 삼성제일빌딩 내 국민협의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10·4 국민대회’ 외에도 크고 작은 집회를 자주 열고 있다.
“나는 명망가들과 다르다. 군 출신이라 전략과 전술밖에 모른다. 그래서 1년에 고작 몇 번 여는 대규모 국민대회에 만족하지 않는다. 운영위원장이 된 후 거의 1∼2주 간격으로 집회를 열었다. 7월23일 ‘국군격려 국민대회’, 8월6일 ‘노무현 정권 규탄대회’, 8월15일 ‘건국 56주년 국민통합대축제’, 8월23일 ‘애국탄압 규탄 기자회견 및 임시총회’, 8월27일 ‘노(盧)정권 경제파탄 애국탄압 규탄대회’ 등을 ‘10·4 국민대회’ 이전에 열었다.”
-이번 국민대회를 총평(總評)한다면?
“무엇보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광복 이후 가장 격렬한 보수진영 집회로서 경찰과 맞부딪친 행사라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애국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행사를 성공리에 치렀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한국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쾌거다. 참가자들이 동원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큰 착각이다. 해외동포 중에도 100달러, 1000달러씩 보내주는 고정 후원세력이 생겼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대회였고, 헌재의 수도이전 위헌결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청와대를 비롯, 정부여당에 큰 타격을 가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한다. 사실 탄핵 국면에선 좌익의 탄핵반대 촛불시위만 부각됐지 우익 쪽에선 집회다운 집회를 갖지 못했다.”
-국민대회 이후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 대회와 관련한 모든 법적 책임은 운영위원장인 내가 지겠다고 진술했다. 국민협의회 부위원장이 인공기를 불태우고, 대변인이 대통령 폄하발언을 한 것도 다 내가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4대 개혁입법을 추진하는 여당에 대한 시각은?
“국민협의회의 외침은 곧 국민의 소리다. 열린우리당은 항상 ‘개혁’이란 표현을 쓰지만, 사실 그들은 정상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국민 다수가 ‘개악’이라 부르짖는데 유독 자신들만 ‘개혁’이라 우기는 열린우리당은 ‘정신병자 집단’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해서 불편한 사람은 간첩과 그 동조자뿐이다. 4대 악법은 적전(敵前) 분열만 부를 뿐이다. 그러니 더는 국민을 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수진영 내부에도 문제점이 많을 법한데….
“보수를 가장한 ‘꾼’도 없지 않다. 아마도 국민에게 받은 후원회비를 일부 뜯어내 자기 생활수단으로 삼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수단체들의 나쁜 습성 중 하나는 다른 보수단체나 인사를 음해하는 경향이 종종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런 세력들은 이젠 좀 물러가줬으면 한다.”
-운영위원회는 얼마나 자주 여나.
“예전엔 사무실이 없어 호텔이나 프레스센터 등지에서 여느라 매번 비용이 수백만원씩 들었다. 지금은 사무실이 있으니 수시로 연다. 어제(11월4일)도 회의를 했다. 거기서 11월 중에 2번 정도 더 국민대회를 개최하자는 안건을 갖고 논의했다.”
-신문에 게재하는 의견광고 문구는 누가 작성하나.
“직접 쓴다. 가끔 국민협의회에 몸담고 있는 변호사들한테 문구 선정과 관련해 조언을 얻기도 한다.”
-서울 이외 지역엔 국민협의회 지회가 구성돼 있지 않은데….
“국민협의회는 물론 모든 보수단체의 활동은 자생적이어야 한다. 인위적으로 새 단체를 조직하려 들면 별도 조직을 갖춰야 하고 상근직원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잖아도 전국 각지에 지회를 조직하자는 목소리가 왕왕 나오는데, 선뜻 내키지 않는다. 국민협의회 본부만으로도 우리가 목적한 활동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향후 활동계획은 어떤가.
“11월 말부터 ‘4대 악법 저지 국민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물론이고 부산, 대구 등 전국 광역권으로 확대해 전국민 저항운동을 강력히 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