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호

다신교 시대 종식 이슬람 新문명사 개막 상징

이스탄불의 무함마드 외투

  • 김능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aminkim@daum.net

    입력2013-08-21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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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카나 메디나가 아닌 이스탄불에 무함마드의 성물이 보관돼 있는 까닭이 뭘까.
    • 몽골의 침입으로 압바스 국이 무너진 후 그곳에 이주해 있던 투르크 족이 아랍인을 대신해 이슬람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이슬람 수호자를 자임한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술탄들은 여러 정복지에서 보물을 가져와 보존함으로써 그들의 위상을 강화하려 했다.
    다신교 시대 종식 이슬람 新문명사 개막 상징

    토프카피 궁 내 사실(私室) 전각.

    터키 이스탄불의 토프카피(Topkapi) 궁 제3정원에 있는 사실(私室) 전각에는 이슬람 성물이 보관되어 있다. 주로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와 관련된 성물들이다. 무슬림들은 이곳에 들러 그들의 종교를 세상에 공표한 예언자이며 알라(Allah·하나님)의 사도인 무함마드의 흔적을 보며 경의를 표하고 신앙을 다진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무함마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두 도시 메카와 메디나에서 활동했고, 그 지역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어떻게 그와 관련된 성물이 멀고 먼 이스탄불에 있게 됐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이슬람 역사에서 명멸한 주요 국가의 궤적을 살펴야 한다.

    토프카피 궁의 이슬람 聖物

    632년 무함마드 사망 후 아랍 무슬림들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아 우마이야 국(661~ 750)을 세웠다. 이후에는 바그다드를 수도로 하는 압바스 국(750~1258)을 만들어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방대한 지역을 통치했다. 두 제국은 무함마드를 수장으로 하는 이슬람 공동체를 기반으로 했기에 ‘무함마드의 계승자’라는 의미의 ‘칼리프(khalifah)’를 최고 통치자로 삼았다.

    1258년 압바스 국이 몽골의 침공을 받아 사라짐으로써 이슬람의 존립이 위태로워졌을 때 투르크족이 아랍인들을 대신해 이슬람을 지켜냈다. 투르크족은 이슬람을 근간으로 하는 셀주크 조(1077~1307)와 오스만 터키 국(13세기~1924)을 세웠다. 이스탄불을 수도로 한 오스만 터키 제국은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장장 500여 년간 중동의 패자(覇者)가 되어 아랍인들이 세운 칼리프 국가 체제의 명맥을 유지했다.



    이것이 이슬람 상징물인 성물이 이스탄불에 있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오스만 터키 국은 중세와 근대의 오랜 기간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군림하면서 종교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이슬람 초기의 중요 유물을 보관했던 것이다.

    16~19세기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술탄(군주)들은 이슬람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전리품으로 여러 정복지에서 중요한 보물들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슬람 수호를 자임하면서 이슬람 성물들을 찾아내 보존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상을 강화하려 했을 것이 분명하다.

    외투에 얽힌 비밀

    다신교 시대 종식 이슬람 新문명사 개막 상징

    무함마드의 외투가 들어 있는 황금 궤(중앙의 긴 다리가 달린 궤).

    토프카피 궁 사실 전각에는 무함마드의 발자국, 메카의 이슬람 신전인 카으바의 열쇠, 그 신전 안에 있던 흑석(黑石)의 덮개, 무함마드 교우들의 칼 같은 성물들이 여러 칸의 방에 전시돼 있다. 별도로 마련한 알현실에는 무함마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도록 그의 치아와 턱수염 일부, 인장과 친필 서한, 그가 사용하던 칼과 활을 전시해놓았다.

    일명‘성(聖)스러운 외투의 방’에는 무함마드의 외투와 그의 깃발이 들어 있는 황금 궤가 전시돼 있다. 필자는 무함마드의 외투라는 말에 관심을 가졌다. 외투를 뜻하는 아랍어는 ‘부르다(burdah)’인데, 7세기 초에 지어진 유명한 ‘알부르다(al-Burdah·외투)’라는 제목의 고전 아랍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찬양하는 시인데, 혹시 이 시와 토프카피 궁에 전시된 외투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조사 결과 이 외투에는 이슬람 출현 당시인 7세기 초의 시대 변화에 따른 문명사가 담겨 있었다. 결론부터 밝히면, 이 외투는 무함마드가 이슬람 초기 시절 카읍 이븐 주하이르(662년 사망)라는 이름의 아랍 시인에게 하사한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왜 자신의 외투를 시인에게 줬을까. 카읍이 예언자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일까.

    카읍 이븐 주하이르는 이슬람을 거부하고 무함마드를 비난했던, 그래서 무함마드의 명에 의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몰렸던 반(反)이슬람 시인이었다. 그런 카읍에게 예언자가 외투를 줬다니 의아하지 않은가. 그 문명사적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이슬람이 출현한 7세기 초의 메카로 돌아가보자.

    무함마드는 40세 때인 610년 메카의 히라 산 동굴에서 알라의 첫 계시를 받았다. 그리고 632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 계시(향후 이슬람 경전 코란으로 집성될)를 받으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갔다. 처음 메카에 이슬람이 전해질 무렵, 사람들은 무역에 종사하던 무함마드라는 자가 절대 유일신 알라에 대한 신앙과, 죄악에서 벗어난 올바른 삶을 강조하는 아리송한 내용의 구절을 말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초자연적 인식 능력을 타고났거나, 악마의 힘을 빌려 마력을 과시하거나, 부족의 신탁자로서 임무를 수행한 특출한 시인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겠거니 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쿠라이시 부족의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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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함마드를 살해하기 위한 방안을 궁리하는 쿠라이시 부족 지도자들.

    메카에서 가장 유력한 집단은 쿠라이시 부족이었다. 정치·경제적으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이 부족은 무함마드가 주창한 이슬람의 등장으로 그들의 영향력이 약해지지 않을까 우려해 탄압에 나섰다. 무함마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됐다. 622년 그가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주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다른 압력도 있었다. 당시 아랍 부족 사회에서는,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시인들이 촌철살인의 비수 같은 언사로 공격하면 무함마드의 포교가 수포가 돌아갈 수 있었다.

    이슬람을 부정하고 반박하던 이들의 대열에 사회 지식층인 시인이 여럿 가담하고 있었다. 많은 이가 무함마드를 알라의 사도로 인정하기보다는 특이한 문체를 구사하는 시인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함마드는 신도들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는 방안을 선택했다. 그는 614, 615년경 홍해를 건너 아비시니아(지금의 에티오피아) 지역으로 일부 신도들을 이주시켰다. 622년에는 자신도 신도들과 함께 메디나로 옮겨 갔다. 그리고 메디나에서 이슬람 공동체 기반을 세우고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에 대한 물리적 대응책을 마련해갔다.

    무함마드의 또 다른 고민은 시(詩) 또는 시인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가 시인으로 격하된다면 알라의 계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슬람에 반대하는 시인들이 이슬람과 그를 공격하면, 많은 사람이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이슬람 전파의 성공 여부는 시와 시인에게 어떻게 대처하느냐로 결정될 판이었다.

    무함마드가 그런 위기의식을 느낀 순간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는 예언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지키려 했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시인들을 폄하하고 시도 배척함으로써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도 시인과 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한 대응책은 코란의 일부 구절과 하디스(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에 수록된 그의 언사에 잘 나타나 있다. 코란의 예로는 다음 구절을 들 수 있다. 무함마드가 자신이 시인이 아님을 극구 강조한 대목이다.

    “실로 이것은 훌륭한 예언자의 말씀으로, 한 시인의 말이 아니라 너희 중에 믿는 자가 소수라, 또한 이것은 점쟁이의 말도 아니거늘 너희 중에 숙고하는 자 소수로다.”(코란, 69장 40~43절)

    이슬람 이전 시대에 시인은 예언 능력과 신통력을 구비한 점쟁이 구실도 하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사람들이 자신을 예언자 행세나 하는 일개 시인이나 점쟁이로 보려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그는 개인적 영감으로 말하는 시인이 아니라,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를 전하는 사명을 띤 사도임을 암시하고자 했다.

    그가 지닌 예언자로서의 숭고한 지위와 시인의 위치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의미다. 코란에는 또 다른 구절이 있다.

    “시인들이란, 사악에 길 잃고 헤매는 자들이며 그들(사탄)의 뒤를 따르는 이들이다. 그대는 그들(시인들)이 골짜기마다 헤매고 있는 꼴을 목도하지 않았던가.”(코란, 26장 224~225절)

    시인에 대한 무함마드의 분노를 매우 강하게 드러낸 부분이다. 시인을 일컬어 사악한 자들과 사탄의 추종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시인을 이슬람을 믿지 않는 불신자와 동일시했음을 알 수 있다.

    “너희들 중 한 사람의 배가 고름으로 가득 찬 것이 시로 찬 것보다 더 낫다”라는 하디스 구절도 시를 극도로 격하하는 표현이다.

    이슬람 포교엔 詩 활용

    그렇다면 무함마드는 시인들을 모두 불신자로 여겼고 시는 그가 건설하려는 이슬람 공동체에 불필요한 것으로만 봤을까. 그랬다면 그는 지속적으로 시인을 배척하고 시를 말살하려 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분명한 증거들이 있다.

    일부 자료들은, 무함마드가 그를 밀어내려 하고 이슬람 전파를 방해하는 불신자 시인과 알라와 사도에게 해를 입히는 일부 시만 공격했음을 보여준다. 이슬람에 반(反)하지 않는 시나 이슬람을 수용하고 지지하는 시인들에 대해서는 존재를 인정했다.

    다신교 시대 종식 이슬람 新문명사 개막 상징

    바드르 전투에 나서는 무함마드(베일로 얼굴이 가려진 자)와 이슬람 군대.

    무함마드는 시 낭송 듣기를 좋아했다. 뛰어난 시행과 탁월한 시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수사학적 비유에는 마술적인 것이 있고, 시에는 명민함과 지혜가 있다”라고 한 무함마드의 말은 그가 시의 예술적, 지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시가 아랍인의 긍지이자 아랍인의 위상을 높이고, 적을 격하하는 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슬람의 대의(大義)에 합치되는 시는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그런 시를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활용했다.

    시인들 중에는 시를 통해 이슬람의 정신과 교리를 알림으로써 이슬람 전파의 전위대가 된 이들이 있었다. 특히 핫산 이븐 사비트, 카읍 이븐 말리크, 압둘라 이븐 라와하 세 시인은 메디나 출신으로 예언자 무함마드 곁에서 메카 시인들과 불신자인 적들의 주장을 시로 반박하며, 이슬람을 옹호하고 전파했다.

    예언자는 이들의 시를 쿠라이시 부족과 이슬람 전파를 가로막는 다신론자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게 했다. 그는 “적에게 시(詩)의 화살을 쏘는 것은 칼로써 그들을 치는 것보다 강력하다”고 말했다.

    메카의 예언자는 쿠라이시 부족의 거센 공세에 밀리던 이슬람 초기엔 그를 시인으로 매도하는 시인들에게 큰 반감을 가졌으나, 622년 메디나로 이주해 이슬람 공동체의 기틀을 잡아가면서부터는 시의 효용성을 알고 이를 이슬람 포교에 활용하려 했다.

    이슬람의 영향력이 눈덩이처럼 성장하자 시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일찍이 이슬람을 택한 시인들은 이슬람을 알리고 그 교리를 전달하는 시를 써 새 시대에 적응했다. 그러나 이슬람을 부정하는 시인들은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초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시인인 핫산 이븐 사비트의 경우를 보자. 그는 예언자가 메디나로 이주할 때 이슬람 신자가 됐다. 예언자가 불신자인 적에 대응하는 시를 짓도록 권하자 핫산은 쿠라이시 부족을 비난하는 통렬한 풍자시를 지었다.

    핫산의 풍자시를 들은 예언자는 “그의 시는 화살에 맞는 것보다 고통스럽다”고 평했다. 하디스에는 “핫산에게 쿠라이시 부족을 비난하라고 명했더니 그동안의 분노가 치유됐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핫산의 시가 예언자와 이슬람 수호를 위해 큰 빛을 발휘했다는 뜻이다.

    핫산이 쓴 다음의 시는 바드르 전투(624년)에서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 군대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운 예언자와 교우들을 드높이면서, 패배한 적을 한껏 조롱한다.

    흰 갑옷을 걸친 무리의 선두에 강인하고 결단력 있는 겁 없는 남자가 나섰으니/ 그는 곧 알라의 사도. 알라께서는 만물 중에서 신앙과 관대함을 지닌 그분을 택하셨도다/ 너희들(쿠라이시 부족)은 자신들의 소중한 것을 지킨다고 우겼고, 우리가 바드르 우물에 못 온다고 애써 말했지만/ 우리는 너희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우물에 당도하여 우물물을 넉넉히 마셨지/ 우리는 알라께서 내려주신 튼튼하고 끊어지지 않는 밧줄을 꽉 붙든다/ 우리에겐 무한한 승리를 향해 죽을 때까지 따를 사도가 계시고 진리가 있다.

    개종한 시인들

    이슬람에 부정적이었다가 이슬람을 믿게 된 시인들도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들이 겪은 심리적 갈등을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메카 쿠라이시 부족의 시인인 이븐 알지바으라는 메카가 이슬람에 정복된 후 이슬람 신자가 됐다. 그는 시로써 행했던 과거의 잘못에 대해 속죄했다. 사도 무함마드에게 사죄하는 그의 시를 읽어보자.

    통치자(알라)의 사도시여! 지난날 제가 무뢰배였을 때 짖어댔던 것을 이렇게 말로나마 수선합니다/ 그때 저는 망상의 악습 속에 사탄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 자들은 파멸로 이를 것입니다/ 제 살과 뼈가 당신의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경고로 이제 내 영혼은 구원 받았습니다.

    카읍 이븐 주하이르는 다신교 시대에서 유일신교인 이슬람 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의 특성을 자신의 일화를 통해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 시인이다. 그의 부친 주하이르 이븐 아비 술마는 이슬람 이전 시대의 손꼽히는 시인이었다. 카읍은 동생 부자이르와 함께 아버지에게서 시를 배웠다. 이슬람 시대를 맞아 부자이르가 먼저 이슬람 신자가 됐다. 카읍은 그러한 동생을 비난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부자이르에게 내 말을 전해주오. 내가 한 말에 그대는 할 말이 있는가/ 너는 알마으문(예언자 무함마드)과 함께 술을 마셨다. 알마으문은 한 모금 두 모금 술을 마셨지/ 너는 바른 길로의 인연(因緣)을 저버렸고 그를 따랐다. 그는 몹쓸 너를 어디로 인도했는가/ 너의 부모도, 형제도 알지 못하는 종교로 인도했는가

    이 시를 전해 들은 예언자는 분노해 무슬림들에게 누구라도 카읍을 보면 죽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부자이르는 다음의 시로 카읍에게 응수했다.

    누가 카읍에게 알려주겠는가. 당신이 거짓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할 말이 있는가/ 그것은 ‘알웃자’ 여신(女神)도 ‘알라트’ 여신도 아닌 ‘알라(하나님)’에게 인도하는 확고한 길. 당신이 구원을 받으려 무슬림이 되면 당신은 구원받을 것/ 마음이 정결한 무슬림 외에 구원받지 못하고 불의 심판에서 벗어날 길 없는 그 날에

    예언자의 용서

    다신교 시대 종식 이슬람 新문명사 개막 상징

    오늘날 이슬람의 중심지인 메카의 카으바 신전. 이슬람 이전 시대에 이 신전에는 360개의 우상이 안치됐다고 한다.

    카읍은 예언자가 쿠라이시 부족을 제압해 메카를 정복할 때까지도 계속 우상숭배 관습에 머물러 있었다. 부자이르는 형에게 ‘예언자가 자신에게 해를 가한 다신교도 시인들 가운데 이슬람을 택한 자를 제외하고 모두 죽이려 한다’는 것과 ‘회개하고 서둘러 예언자를 찾아갈 것’을 당부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잔뜩 겁을 먹은 카읍은 메디나로 예언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메디나의 원주민들 중에는 카읍이 이전에 예언자를 해하려 했던 점을 들어 카읍을 모질게 대하고 죽이려는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메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은 예언자에게 이슬람 신자가 되기로 한 카읍의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청했다. 예언자는 카읍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에 대해 카읍은 예언자를 칭송하는 불후의 명시 ‘수아드는 멀어졌네’를 지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 시는 본 주제에 앞서 옛 애인을 회상하는 도입부를 넣고 낙타 여행에 대해 말하는 아랍 전통시의 방식을 따랐다. 애인 수아드와 이별하는 아픈 마음을 토로하는 도입부로 시작해 낙타 여행,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찬양으로 주제를 옮겨간다. 57행에 달하는 이 시에서 예언자를 찬양하고 무슬림을 칭송한 부분만 소개한다.

    알라의 사도께서 나를 위협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네. 사도님, 부디 용서해주시길 앙망하나이다/ 고정하소서. 당신에게 설교와 가르침의 말씀이 담긴 코란의 지식을 주신 알라께서 당신을 인도해주시길 기원하나이다/ 저에 대해 중상모략하는 이들의 말로 저를 책하지 마소서. 저에 관해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저는 아무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 덩치 큰 코끼리가 서서 내가 듣고 보는 것을 보고 듣는다 하더라도/ 두려움으로 내내 벌벌 떨고 있을 게야. 알라의 허락하심으로 사도님의 은총을 받을 때까지는/ 그러다 나는 내 오른손을 그분의 손에 놓고는 빼지 않았지. 복수심을 지닌 그분의 말씀은 곧 세상의 법이지/ 내게 사도님은 무서운 분. 앞서 나는 사도께서 나를 찾으시고 나에 관해 묻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지/ 사도님은 앗사르 지역 내 우거진 숲 속에 사는 맹수인 사자보다 무서운 분/ 진정, 사도께서는 알라의 칼들 중에서도 칼집에서 뽑힌, 진리로 이끄는 인도산(産) 칼

    카읍의 전향

    이어 카읍은 구명(救命)에 도움을 준 메카 출신 이주민들에게 대한 감사의 표시로, 622년 예언자를 따라 메디나로 이주하기로 한 그들의 결단력과 이슬람 수호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투에 임하는 그들의 용기를 칭찬한다.

    쿠라이시 부족 청년들이 무슬림이 됐을 무렵, 그들 중 한 명이 “메디나로 가자”라고 말했다/ 그들은 메디나로 이주했지만, 전투에서 마음이 약한 자나 무기를 들려고 하지 않는 자는 가지 않았다/ 그들은 긍지가 대단한 영웅들. 전쟁에서 그들이 입은 것은 다윗이 입던 직조(織造)된 갑옷/ 흰색 갑옷은 고리들을 단단히 엮어 만든 것으로, 억센 카프아 나무 같구나/ 그들은 창으로 적을 찌를 때 기뻐하지 않으며, 적에게 당할 때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칼을 맞아도 가슴팍에 맞으며, 죽음을 맞기를 더디 하지 않는다

    외투는 관용과 통합의 상징

    이 시를 들은 예언자는 크게 감탄해 자신의 외투(아랍어로 ‘부르다’)를 카읍에게 하사했다. 그리하여 원 제목이 ‘수아드는 멀어졌네’인 이 시는 ‘알부르다’, 즉 ‘외투’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지게 됐다.

    이 전설적인 외투가 오늘날 이스탄불의 토프카피 궁에 보관돼 있다고 무슬림들은 믿고 있다.

    예언자는 이슬람과 자신을 모독한 죄로 죽이려 했던 카읍에게 자기 외투를 줬다. 무슬림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간주되는 예언자로부터 그렇게 귀한 선물을 받은 이는 카읍이 유일할 것이다. 필자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이슬람에 반대하다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슬람을 택한 카읍을 포용함으로써 그때까지도 망설이고 있던 저항 시인들을 회유하려 했을 것이다. 회개하는 자는 관대히 목숨을 살려주지만, 여전히 이슬람을 비난하는 시인들은 죽음을 각오하라는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다.

    둘째는, 카읍이 이슬람에 믿음을 보이고 예언자에 대해 충성의 맹세를 했다고 확신한 예언자가 그를 가신(家臣)으로 인정해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으로 외투를 줬을 수 있다.

    이슬람 이전 시대에는 통치자가 충성스러운 가신에게 자신의 옷을 하사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 옷은 통치자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 간주됐기에 양자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죽음 일보 직전에 회생한 카읍의 경우에서 보듯 외투는 구원과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슬람 이전 시대의 우상숭배가 죽음이고 암흑이었다면 이슬람은 생명이고 빛이라는 종교적 함의를 외투에 투사한 것이다.

    따라서 예언자의 손길이 닿아 있는 이슬람의 보물인 외투를 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가 소중히 간직한다면, 그는 신도들의 충성과 결속을 강화시킬 수 있다. 우마이야 국과 압바스 국의 통치자들이 그랬듯이 투르크족이 세운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술탄(군주)들은 종교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도 이스탄불에 예언자의 외투를 보존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이스탄불에 보존된 예언자의 외투에 얽힌 일화는 7세기 다신교 시대를 끝내면 서 들어서 지금까지 1400여 년간 이어져온 이슬람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역사적, 문명사적 전환을 상징한다. 비록 외투 한 벌이지만, 낡은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문명 시대를 열겠다는 무함마드의 강한 의지가 그 안에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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