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르포] 박원순표 재개발 ‘뇌관’ 수표구역을 가다

“재개발하면 청계천 제조업 생태계 무너진다”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19-03-29 17: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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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재개발 ‘잠정 중단’

    • 공구단지, 집적지효과 사라질까 불안

    • 불황에 매출 뚝!, 재개발 중단 후 임대료 인상 조짐

    • 공구상 “여기서 계속 장사하게 해 달라”

    수표구역 위치

    수표구역 위치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1번 출구. 계단을 걸어 올라가 마주한 전경이 화려하다. 미세먼지로 희뿌옇지만 통유리로 된 은행이며 금융회사 건물이 아침 햇살을 반사한다. 날이 맑다면 을지로를 따라 서울시청까지 병풍처럼 이어진 고층 빌딩의 숲이 뚜렷이 보일 터다. 청계천을 지나 종각으로 통하는 삼일대로도 차로 빼곡하다. 이곳을 찾은 3월 28일 오전 8시. 출근길 직장인들은 뒤도 안돌아보고 도심 오피스로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면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을지로를 따라 대로변에는 타일과 도기 도소매점이 입주한 3~5층 건물이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 골목길로 들어서면 ‘~기기’, ‘~공구’ 간판이 즐비하다. 공작기계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소규모 업체들이다. 청계천변에서는 기술자들이 고속절단기와 대형 모터를 수리하느라 한창 바쁘다. 벌써 정비를 끝마친 물건을 오토바이에 실어 보내기도 한다. 청계천·을지로공구단지(공구단지) 서쪽 끄트머리, 1만2316㎡ 면적의 이른바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수표구역)이다. ‘신동아’ 올 3월호에 재개발을 진행 중인 풍경이 실리기도 했다.

    청계천·을지로의 거대 공구단지

    수표구역 내 공구단지(서울 중구 충무로) 골목에 재개발에 반대하는 임차인들의 플랜카드가 붙어있다. [김우정 기자]

    수표구역 내 공구단지(서울 중구 충무로) 골목에 재개발에 반대하는 임차인들의 플랜카드가 붙어있다. [김우정 기자]

    지도상 수표구역은 종묘 앞부터 충무로역 일대까지 직사각형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와 4차선 충무로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홀로 돌출됐다. 하지만 두 지역은 모두 을지로와 청계천을 아우르는 거대한 공구단지의 일부다. 수표구역이니 세운지구니 하는 명칭도 재개발 과정서 임의로 붙인 것이다. 행정구역상으로도 공히 중구 을지로동에 속한다. 

    현지 업체 관계자들은 그저 공구단지로 통칭한다. 수표교에서 따온 수표구역이라는 낯선 용어 탓에 세운지구와 별개 지역인 것처럼 오해받기 십상이다. 재개발 논란과정서도 세운지구에 비해 비교적 관심에서 소외됐다. 

    1월 23일 서울시는 수표구역과 세운지구 제 3구역(면적 3만6747㎡)에 대한 재개발 사업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세운전자상가(세운상가)와 인근의 노포(老鋪‧대를 이어 운영돼온 오래된 가게) 등 ‘생활유산’ 보존이 골자다. 이에 따라 2014년 재정비촉진계획이 적용돼 지난해부터 철거중인 세운3-1·6·7구역을 제외한 사업은 잠정 중단된다. 서울시는 올 연말까지 해당 지역 내 생활유산 실태조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재정비촉진사업은 낙후된 구 시가지를 광역 단위로 재개발해 주택 등 도시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사업이다. 노후 건축물 정리가 이뤄진다는 점에선 도시환경정비사업과 비슷하지만 상공업 지역이 대상이란 점이 차이다. 세운 3구역은 10개 소구역으로 나뉜 채 2015~2018년 사업시행인가 신청을 거치는 등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수표구역도 지난해 12월 개발사가 관할 시행자인 중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제출했다. 상공인 등 세입자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서울시가 사업 보류를 선언한 것이다.

    재개발 보류에도 불안 여전

    재개발사업이 중단됐지만 공구단지 업체 관계자들의 불안과 불만은 여전하다. 여전히 ‘단결투쟁’ 등의 문구가 적힌 붉은색 조끼를 입은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삶의 터전을 밀어버린다니 절대 안 될 일이지.” 

    공구단지 골목 안 ‘대성테크’ 작업장에서 만난 박행석(58) 대표가 운을 뗀다. 

    “재개발을 잠깐 멈추면 뭐합니까. 당장 내년에는 또 어찌될지 모르는데.” 

    그는 서울시가 내놓은 ‘공구혁신센터’ 신축에도 회의적이다. 집적지(集積地) 효과가 사라질 거라는 우려 탓이다. 

    “공구단지의 핵심 장점은 여러 기술자들이 모였다는 데 있어요. 부품-수리-판매가 근거리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뿔뿔이 흩어지면 소용없습니다.” 

    박 대표의 주업은 화물 리프트 설치다. 여기에 필요한 ‘노라’(도르래), 와이어 등의 부품을 모두 이웃 업체서 구입한다. 대화 도중 작업장으로 들어온 전동공구수리업자 정 모씨도 말을 거든다. 

    “이명박 시장 때 청계천 복개한다고 장지동으로 쫓겨난 사람들 보세요. 처음에 1억원 밑으로 세 준다더니 지금은 4~5억원이라는데.” 

    이곳 사람들에게 2003~2005년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가든파이브(서울 송파구 충민로) 단지 툴(Tool)동으로 이전한 동료 공구상은 두려운 선례다. 애초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제안보다 높아진 임대료와 외진 위치 탓에 다수 공구상이 가든파이브를 떠났기 때문이다. 수표구역도 재개발로 임대료가 오르면 세입자인 상공인들이 이를 감당키 어렵다는 것이다.

    재차 고개 든 임대료

    설상가상 경기 불황으로 매출도 줄었다. 박 대표와 정 모씨는 “매출이 지난해와 비교해 3분의 1이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공구 수리 및 판매와 밀접히 연관된 건설업 경기 침체 영향이 크단다. 인근 퀵서비스업체 관계자인 박춘근(70) 씨의 체감도 비슷하다. 

    “지난해 비해 매출은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최근 10년 간 최악이에요. 이런 상황서 재개발까지 하면 버티기 힘들죠.” 

    박 씨의 업체는 공구단지서 수리한 장비를 건설현장으로 배송한다. 공구상의 매출 감소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을지로 일대가 젊은이들 사이에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가운데 재개발 계획까지 중단되자 임대료도 다시 상승 기미를 보인다. 

    “철거 여부가 불확실해지니 당장 7월 재계약을 앞두고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자고 했어요.” 

    인근서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하는 리종호(46) 씨의 말이다. 20년째 요식업에 종사하다 6개월 전 수표구역으로 가게를 이전했다. 

    “만약 일대가 전부 철거되면 권리금도 못 받아요. 그래서 불안합니다. 개발을 하더라도 전부 철거하지 말고 도시재생 방식으로 했으면 합니다.”

    “보류 말고 전면 취소하라”

    28일 강문원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농성장(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재개발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김우정 기자]

    28일 강문원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농성장(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재개발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김우정 기자]

    강문원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은 2018년 12월 7일부터 청계 3가 교차로 다리 건너 농성장을 차려 재개발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3월 28일까지 딱 112일째다. 세운 3-1구역이 철거되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인근 동료들과 비대위를 결성해 총대를 멨다. 오랜 연좌시위로 오른쪽 골반에 염증이 생겨 앉아있기도 어렵다. 

    강 위원장은 먼저 대규모 재개발 사업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슬럼은 사람 없이 건물만 남아 황폐화된 곳인데 여기는 많은 업체가 입주해 있어요. 노후 건물 수리는 개발제한구역 해제로 건물주마다 개별적으로 실시하면 됩니다.” 

    수표구역서 25년간 자동차용 공구 도소매업을 한 그는 이 지역의 특성을 강조한다. 

    “청계 1가부터 8가까지 연결된 제조업 생태계가 유기체처럼 한 몸을 이룹니다. 재개발로 임대료가 높아져 업체가 흩어지면 생존 자체가 어렵습니다.” 

    서울시 측에 대한 요구사항을 묻자 강 위원장은 단호히 말한다. 

    “우리의 뜻은 이 자리에서 계속 장사하자는 겁니다. 사업 보류가 아닌 전면 취소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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